소설리스트

능력자들 쇄도-74화 (74/101)

0074 / 0101 ----------------------------------------------

“일단 그 얘긴 나중에 하자.”

“네.”

“돌아온 거 환영한다, 선지명.”

“네. 환영해 줘서 고마워요. 누나.”

소명은 지명을 보내놓고 자기도 방으로 들어갔다.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운 채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잠을 깨운 것은 진환의 전화였다.

“엽, 여보세요?”

소명은 침자국을 교묘하게 훑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전화 받는 건지 다 보인다. 안 잔 척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지? 목격자가 없는가 확인하려는 습관으로.”

“아, 아니야.” “아니라도 상관없고. 거의 다 왔어. 어디로 들어가면 돼?”

“정말이야? 정말 벌써 다 왔어? 사십 분도 안 된 것 같은데.”

“사십 분은 넘었고. 사십, 어, 팔분만에 왔나보다. 그래도 꽤 빨리 왔지? 나와. 나와서 데려가.”

소명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로 가디건을 팔에 꿰고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눈에 익은 노란색 포르쉐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명은 스마트폰을 진 뒷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한달음에 진한에게 달려갔다.

오랜만에 연인들 사이에 말은 필요가 없었다.

진한이 한 팔로 소명을 안고 소명의 얼굴을 오래도록 살폈다.

“우와. 폭삭 늙어버렸네. 여긴 뭘 하는 곳이야? 시간을 열 배 속도로 흐르게 특수장치라도 해 놓은 곳이래?”

까불다가 소명에게 한 대를 얻어맞았고, 소명은 오른 팔로는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울상을 지었다.

“우와. 여자한테 맞고 아프다는 소리 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 이 정도면 살인미수야. 이건 폭행치상도 아니야. 살인의 고의가 있었던 거라고 봐야 한다고. 오른 팔 아무 때나 쓰지 마.”

진한이 우는 소리를 해댔다.

“알았으니까 그만좀 해.”

소명이 웃음을 지었다.

소명을 가장 소명답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진한이었다.

그의 옆에서는 뭘 해야할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었고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걱정을 하면서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좋았다.

진한과 함께라면.

문득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진한에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본부에서 모이는 일이라면 그의 조직에 꽤 큰 일이 생겨났다는 의미였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는 진한이 직접 본부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왜? 이번에는 뭐야? 혈판장이라도 쓰재? 너희는 그런 거 좋아하잖아. 무슨 일만 생기면 손가락 단도로 그어서 혈서로 연서 쓰고.”

소명이 낄낄거렸지만 진한은 웃지 않았다.

“우와, 정말인가 보네.”

“습관이라는 건 무서운 거라서.”

“뭐. 그리고 잘 먹히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남자들이 혈서를 써서 보내오면 두려운 마음이 안 생길 수가 없잖아.”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하면 나는 너랑 같이 갈 거야.”

소명이 진한을 바라보았다.

뭔가를 알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하긴.

진한은 찔러보기의 명수였다.

그리고 진한이 찔러보면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내일 출발해야 하는 거라고 해도?”

소명이 말했다.

진한을 놀리겠다는 심산에서 해 본 말이었지만 멍청하게도 진한이 펼쳐놓은 함정에 빠져든 꼴이 됐다.

“아니. 진짜로 무슨 일이 있다는 건 아니야.”

소명이 수습을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엉키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나한테 비밀을 두지 않겠다고 그것만 약속해줘.”

“…….”

진한은 차를 잠그고 소명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럼. 들어가볼까?”

지강은에 소진한이라 이거지.

소명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뒤를 걱정할 일은 없을 거라는 낙관론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들었다.

“이 안에 들어가면 나오는 건 힘들어 질 거야.”

소명이 말했다.

“왜?”

“살아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어려운 길을 곧 떠날 사람들이 있거든.”

“그 중심에 네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한이 말했다.

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누구하고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진한을 소개하는 일은 내일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진한을 제 방으로 이끌었다.

전쟁 같은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는 것이 소명을 숨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내일을 믿어보고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진한이 고마웠다.

오늘 비록 유준열이라는 남자를 잃었지만 더 이상은 그 문제로 상심하지 않기로 했다.

한 번 집착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세포 조각 하나 하나가 완전히 사라져버릴 때까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소명이 스스로 알았기에 소명은 더더욱 유준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 오늘이 될지는 몰랐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주려고 이걸 사 뒀다.”

진한이 말하면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뭐야, 이게?”

풀어보면 된다는 말이 나올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관용적인 표현이 일상에서 난무하는 것은, 침묵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을 이겨보려는 몸부림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소명은 생각했다.

그와의 사이에 침묵이 생겨나는 것이 지금은 무서웠다.

진한과 헤어져 있던 시간이 꽤 길었다는 것이 당연히 거기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상자를 열었을 때는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그와의 거리가 한 순간에 좁혀졌다.

“이런 변태새끼좀 봐.”

거기에는 짱짱하게 생긴 브래지어와 아무 기능도 못할 것 같은 흐느적거리는 망사 팬티가 들어 있었다.

소명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자 진한도 웃었다.

“좋아할 줄 알았지.”

“좋아할 줄 알았다고? 지금 이게 좋아하는 표정으로 보여?”

“어, 격하게 좋아하고 막 기대하는 표정으로 보여.”

진한이 능청을 떨자 소명이 웃었다.

단번에 모든 스트레스를 잊을만큼 자기가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한이 일부러 그런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맙다.”

“뭘 그렇게까지.”

“웃게 해 줘서 고마워. 오늘 정말 힘든 하루였거든.”

“입어봐.”

“뭐?”

“입어보라고. 보고 싶어.”

진한이 말했다.

꽤 끈적해진 목소리였다.

소명이 진한을 바라보았다.

“꽤 용기내서 한 말인 것 같은데. 그럼 용기낸 것에 대해서 상을 좀 줄까?”

“응.”

진한은 장난꾸러기처럼 고개를 마구 끄덕거렸다.

소명이 픽, 하고 웃음을 짓고서 그의 앞에서 일어섰다.

진한의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넘어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그럼… 나가 있어.”

“어차피 그것도 벗길 텐데?”

“에에?”

얼굴을 붉히지나 말든지 얼굴을 붉히면서 할 말은 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진한의 말에 자꾸 흥분이 되었다.

“갈아 입는 게 힘들 것 같은데 도와줄게.”

점점 편안해지는지 멘트가 과감해졌다.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할 새도 없이 진한이 소명의 입술에 기습적인 키스를 감행했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기분 좋은 키스였다.

키스란 좋은 거라고 소명은 생각했다.

그 후의 절차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진한이 소명을 완전히 벗기는 동안 소명은 간신히 그의 셔츠 하나를 벗기는데 성공했다.

진 위로 페니스의 윤곽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 지나치게 섹시해서 소명은 자연스럽게 진한에게 밀착했다.

진한이 젖은 눈길로 자신의 음부를 바라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진한이 욕망되기도 해서, 그리고 그에게 완전히 다가가면 자신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소명이 진한에게 바짝 다가가 진한을 끌어안았다.

진한의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

“이걸 입은 걸 보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도저히 다시 입게 할 수가 없겠어.”

그가 서둘러서 바지를 벗었다.

“흡!”

숨이 턱 막혔다.

발칙하게 선 페니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흣.”

아래쪽에서 팽팽한 통증이 느껴졌다.

2, 3초간 지속된 통증 때문에 소명은 허벅지를 뒤틀었다.

“왜?”

진한이 물었다.

“너무 야하잖아.”

“그래서 지금. 나 때문에 꼴려서 그러고 있는 거야?”

진한이 짓궂게 말했다.

너무 적극적으로 진한을 원하는 것이 온몸으로 드러나 버렸다.

그는 소명의 허벅지가 소명이 쏟아내는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것을 눈도 꿈쩍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가 서둘러주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그에게 화가 날 것 같았다.

그가 팬티를 벗어버리자 그의 페니스가 혼자서 요동을 쳤다.

너무 밝히는 여자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진한 척 굴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로 인해 심하게 자극을 받고 있어서 스스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가 침대 위로 밀어 넘어뜨렸을 때에야 소명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진한이 완전히 삽입을 마쳤을 때에야 겨우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으흣!!”

진한의 페니스가 들어오자마자 질이 심하게 수축하며 그를 조여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몇 초 만에 사정을 했고 소명은 그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삽입의 순간에 소명은 이미 절정에 이르렀고 소명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동안 소명의 안에서 강한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는 바람에 그가 참지 못하고 사정을 한 것이다.

소명은 진한이 빨리 사정한 것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하지 않기를 원했다.

조절하지 못한 것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임으로 따지자면 지나치게 섹시한 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었던 거라고 믿었다.

서로가 민망해 할 새가 없도록 두 사람은 뜨거운 후희를 나누었다.

"만나서 반갑다고 내가 말했나?"

소명이 말했다.

"응. 했어."

진한이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다음날 아침, 식탁 위에서 전날 사다 놓은 크롸상을 집어다가 뜯으면서 한 사람씩 거실로 모여들었을 때 소명은 진한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이로써 전력 보충 끝. 소진한이 있으면.”

거기까지만 말하고 소명은 고개를 저었다.

말이 필요없는 모양이었다.

“소명이가 그 정도로 자신한다면 우리도 더 묻고 따질 게 없지. 반갑습니다. 장항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항이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했고 한 사람씩 자기 소개를 하면서 진한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에 강은이 쭈뼛대는 듯한 동작으로 인사를 했다.

진한은 크게 반기면서 강은을 반겨 주었다.

“그럼 난 일단 본부에 갔다가 돌아올게. 당분간 내 자리가 비게 될 테니까 뒷 일도 맡겨야 하고.”

“그래. 어서 가.”

소명의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밀었다.

“슬슬 뭔가 그림이 갖춰지는 것 같은데요?”

기선이 말하자 그의 곁에 서 있던 희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진한의 등장에 놀란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었다.

돌아오기 전에, 희영이 환시로 보여주었던 장면에 진한이 끼어 있는 것을 모두가 보았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