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 쇄도-62화 (6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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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나는 그러면 강은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만한 사람을 먼저 찾아가야겠다. 혹시 그 사이에 다른 곳으로 이송됐는지도 모르잖아. 헛걸음하면 화가 많이 날 것 같으니까 형사 아저씨한테 물어봐야지.”

소명은 흥흥거리면서 콧노래까지 불렀다.

“지강은이라는 사람은 결국 풀려나진 못한 거예요?”

“법원에서는 정신 감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선고를 내렸고 강은이는 한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아아.”

***

복개천 주변에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둘러쳐져 있었다.

피로에 찌든 얼굴로 시신을 확인하던 유준열은 기시감을 느꼈다.

“유형사도 지금 지강은 사건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지강은을 체포할 때도 호흡을 맞췄던 선배는 지금도 유준열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도저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모방범의 소행이 아닌 것 같았다.

지강은이 지금 복역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곧바로 지강은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을 것이다.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서 발견된 시신의 외관은 끔찍했다.

현장 감식반은 안면부 함몰과 전신 다발성 골절을 확인해주었다.

“지강은, 아직 복역중이지?”

선배의 말에 유준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때맞추어 걸려온 전화에 유준열은 그야말로 소스라칠 뻔 했다.

“무슨 전환데 그래?”

추궁하는 선배를 두고 몇 십미터를 걸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어디? 근처를 지나가는 길에 얼굴 좀 볼까 하고.”

소명이었다.

유준열은 대단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지강은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와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죽은 시신을 발견한 때, 지강은에게 씌워진 다른 한 건의 살인누명을 풀어줬던 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후우. 때맞춰서 잘도 전화를 했네.”

“왜?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

유준열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이 여자가 지금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리벳이 돌아온 것 같다.”

그가 말했다.

소명은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강은의 범행 현장이 고스란히 녹화된 CCTV에서 지강은 자신이 리벳이라고 소리쳤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잔인하고 광포한 방법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죽을 때까지 몽둥이와 돌로 때리고 찍어내렸다.

유준열은 그 후로 지강은은 수 개월 동안 계속해서 만나고 심문하고 얘기를 나눴지만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리벳이라고 지칭하지도 않았고 CCTV에 찍혔던 것 같은 포악한 표정과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신분열증, 악령에의 빙의, 다중인격 장애등 갖가지 의견을 내놓았지만 법정에서는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지강은을 보면서 지독한 혐오를 느끼고 다른 사건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했던 사람도 유준열이었다.

소명이 때맞추어 나타나주지 않았다면 그는 지강은에게 남의 죄를 씌웠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가 진범이라면서 범행 수법을 상세히 설명하며 야산에서 발견된 시신이 지강은과는 관계가 없다는 익명의 전화를 건 사람은 남자였지만 유준열은 소명이 그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럼 그때 지강은이 한 짓이 아닌 게 되는 건가?”

소명이 물었다.

“하지만 그때는 현장에 너무나 명백한 증거들이 있었잖아. 수많은 목격자들. 증인들. 반박할 수 없는 CCTV화면까지.”

“거긴 어떤데?”

유준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없어.”

“…….”

“그냥 지나가다 전화했을리는 없고. 왜 전화했어?”

“지나가다가 전화한 건 맞아. 목적지도 정해놓고 가는 중이긴 했는데 혹시 이송됐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확한 정보를 얻어가지고 가려고 했지.”

“왜 지강은을 찾아가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

“유형사가 똑똑해서 그런가 보지.”

“지강은을 찾아갈 생각은 왜 했는데?”

“지강은이 귀휴를 받을 것 같거든.”

“귀휴? 지강은 부모 중에 누군가 돌아가셨어?”

“나도 느긋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 운전하는 중이야.”

“여기로 우선 올 수 있어? 지나가는 길이라면 말야.”

“일행이 있는데.”

“운전하고 있다며.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가겠다는데 뭐라고 하겠어?”

“거기가 현장이야?”

“응.”

“알았어. 주소 찍어서 보내봐.”

처음에는 지강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 하니까 별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정인을 봤을 때는 생각이 달라졌다.

“너, 피살자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낼 수 있겠구나?”

“죽은 사람에 대해서요?”

“죽은 사람은 다를까?”

“모르겠어요.”

“리벳이 돌아온 것 같아. 원래는 나한테 보여주면 안 되는 자료였지만 유 형사가 나한테 그 화면을 보여줬었어. 그 사람은 지강인이랑 완전히 달랐어. 그러면서 자기가 리벳이라고 말했지.”

“리벳?”

“그래. 리벳.”

“그게 그 사람의 이름인가요?”

“그게 무슨 뜻일지 찾아봤는데 강철판 같은 걸 연결하는 부품이래. 그런데 그 사람이 그걸 뜻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렇겠죠.”

“지금 그런 일이 다시 생겼다는 건 아주 안 좋은 징조야.”

“왜요?”

“지강은이 귀휴 신청을 하고 교도소장 허가를 받아서 교도소 밖으로 나와야 되는데 강은이의 범행을 따라한 모방범죄가 일어났다고 해봐.”

“모방범죄일까요?”

“그렇게 판단하지 않겠어? 그렇지 않으면 강은이가 무죄라는 걸 인정하거나 아니면 강은이의 자기 의지로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악령에 빙의돼서 저지른 짓이라는 걸 뒤늦게 시인하는 꼴이 될 텐데. 그걸 인정하면 너무나 많은 패러다임이 흔들려. 그건 사법질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신념의 문제지. 사회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우와. 어려워요. 어려워.”

“그래. 인생은 결코 쉽지 않아. 좆도 모르는 것들이나 세상이 핑크빛인 줄 알고 지랄들을 떠는 거지.”

“이럴 때는 언니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나 하는 게 갑자기 분명해져요.”

정인이 웃으며 말하자 소명도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차 안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정인은 속사포 랩을 틀리지도 않고 완벽하게 따라 불렀다.

“걔들 뭐라는 거니? 넌 알아듣는 거야?”

“런, 데블, 데블, 런, 런!!”

정인은 신이 났는지 몸을 흔들고 소명에게 장난을 걸어가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신호등 불빛이 바뀌었다.

정인은 유형사가 보내준 주소가 왔다면서 문자에 찍힌 주소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이 말도 적혀 있네요. 정말 리벳일까? 라고.”

정말 리벳일까?

런, 데블, 데블, 런, 런.

정인의 말은 그 가사를 배경으로 들려왔다.

하나의 단어가 정주행과 역주행으로 반복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소명은 깨달았다.

“데블이었어.”

소명이 말했다.

“네. 데블, 런, 런.”

정인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리벳이란 이름 말이야. 데블을 거꾸로 한 거라고.”

“설마요. 그런 유치한 짓을. 명탐정 코난 같은 만화를 너무 오래 봤나?”

“거기에 그런 게 나와?”

“몰라요. 나비 넥타이 맨 꼬마애가 노려보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할 만한 말일 것 같잖아요. ‘그건 바로 데블이란 뜻이야. 영어로 데블은 d,e,v,i,l 이지. 범인은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해서 데쓰 메시지를 나타내려고 했던 거야. 레빗이란 이름은 바로 데블이란 단어를 그대로 뒤집어서 만든 l,i,v,e,d 였던 거야. 이제 내 말을 알아 듣겠어?”

정인이 꼬마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과장되게 설명을 하자 소명도 슬쩍 웃음을 짓기는 했다.

“그래서. 넌 아닌 것 같아?”

“모르겠어요.”

“네가 누군가의 이름을 차용한다면 너는 어떤 이름 뒤에 숨을 것 같아?”

“저요? 저는. 음. 아주 막강한 거. 그러면 역시 리벳이려나?”

정인이 웃었다.

“강은이가 이 일과 관련이 없다는 걸 유 형사한테 설득해야 하는데.”

“그 분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요?”

“내가 주위에 알짱거렸지. 우연을 가장해서 친해질 필요가 있었거든. 그러다가 더럽게 재수없는 녀석이 강도행각을 벌이고 도망가다가 나를 인질로 잡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질렀지.”

“세상에.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이네요.”

“그렇게 운이 없는 것도 아니지. 일반인인 척 하는 나를 붙잡은 거니까. 유 형사가 나를 구해줬어. 유준열은 지금도 내가 자기한테 생명을 빚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귀엽지?”

“정말 귀엽네요.”

정인이 웃었다.

“그 분은 언니가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알아. 잘못 안다는 게 문제지.”

“어떻게요?”

“나를 벤처 사업가로 알아.”

“벤처 사업가요?”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 신분 위장을 위해서 몇 년간 여러 사업체를 두루 관리해 오고 있긴 하거든.”

“아아. 꽤 치밀하신데요?”

“나는 다시 태어나면 둘 중에 하나만 할 거야. 두 조직에 동시에 몸 담는 건 아주 골치 아픈 짓이야.”

“지강은씨랑 접선하게 되면 언제 가는 거예요?”

“시간이 별로 없잖아. 낭비할 시간은 전혀 없는 거고.”

“출국을 하는 것도 가능해요?”

“그래서 형이를 먼저 불러 들일까 해.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출국을 하게 할 거야. 선우 형이 옆에 있으면 의심 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빨리 얘기해 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내가 아까 얘기 안 했나?”

“네. 안 하셨어요.”

모두가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지명은 사이크와 함께 자료 조사에 들어갔고 던칸과 관련된 기업 분석을 통해 투자의 방향을 정해 놓았다.

주식 시장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결정적인 증거야. 준 맥브라이언은 이것들을 처분하려는 게 분명해. 그래서 우선은 혼조 양상을 띄게 만들려고 하는 거야.”

지명의 말에 사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리서치를 끝내고 나자 준 맥브라이언이 어느 기업을 팔아치우고 어디에 돈을 투자할지가 손금 보듯 명확하게 드러났다.

“게임은 이미 시작됐어.”

사이크가 먼저 한국을 떠났다.

지명은 소명과 정인이 돌아오는대로 소명이 데려오는 사람들과 함께 그 다음날 출발하기로 했다.

사이크는 먼저 가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타이라를 만나서 자금 부족분을 채워야만 했다.

M-4소총과 유탄발사기로 중무장한 남자를 비비탄을 채워넣은 장난감 총을 가지고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행운을 빌어. 사이크.”

공항에서 지명이 사이크를 안아주었다.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사이크는 미래를 찾느라 몇 번 두리번 거렸다.

“금세 올 텐데 뭘 찾냐? 불안해 할 필요 없어. 미래 누나한테는 내가 잘 말해줄게. 걱정할 것 없다고 전부 이해시켜 놓을게.”

“미래한테는 정말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래.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인데. 너 만약에 나를 처음 만나던 순간으로 돌아갈 일이 생기게 되면 나한테는 절대로 아는 척 하지 말아줘.”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지명이 웃으며 물었다.

“……. 아니.”

“거봐. 네가 생각해도 나랑 엮인 인생이 즐겁지?”

“즐겁기까지 한 건 아니고.”

“이 자식. 끝까지 솔직해지지 못하네.”

다시 사이크가 고개를 두리번 거리자 기둥 뒤에서 사이크를 숨죽여 바라보던 미래가 서둘러 몸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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