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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57화 (5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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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기운빠지게 하려고 하는 말은 아닌데. 승산이 있기는 한 걸까요?”

아미가 말했다.

“승산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데?”

시영이 물었다.

“우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겠냐고요.”

아미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 말은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고 그 후로 한동안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면 미친 짓이라고 하고 싶어요.”

지명이 말했다.

기선의 전화를 받고서 한동안 별 말이 없이 듣기만 하더니 드디어 입을 열어서 한다는 말이 그 말이었다.

사이크도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왔고 정인은 소명을 깨웠다.

소명은 자던 게 아니었다고 우기면서 일어났다.

“왜?”

소명이 정인에게 물었다.

“기선 오빠 전환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정인이 말했다.

“스피커폰으로 돌려.”

소명이 지명에게 말했다.

“형. 스피커폰으로 돌릴게요.”

지명이 말하자 기선도 그러라고 했다.

“기선. 우리가 놓친 부분부터 다시 말해 봐.”

소명이 말했다.

“아, 누나. 건강하죠? 별 일은 없고요?”

“그런 말들은 다 생략해도 되니까 본문이나 시작해.”

“짧게 말할게요. 곧 항이 형이 돌아올 거거든요.”

“항 오빠 모르게 뭔가를 꾸미고 있는 거니?”

“우선 들어보세요, 누나. ‘붉은 번개의 틈’에 사람들의 병을 고친다는 성녀가 있어요. 성녀라고 불리는 전신마비의 환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몇 시간 동안 최면에 걸려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뿐이에요. 오후 네 시가 되면 몸을 움직이죠. 제단 앞의 시계 종소리가 최면을 풀리게 해요. 최면이 풀리면 그림을 그려요. 이름이 임서림이고 그림에는 항이라는 사인을 하죠.”

“그런데?”

“그 분이 바로 형의 부인이에요. 죽었다고 생각한 부인요.”

“임… 서림이라는 여자가?”

소명이 물었다.

“네.”

“세상에……. 근데 그런 걸 전부 어떻게 알아냈어?”

“희영이의 능력이 강화되고 있어요. 환상으로 보는 사람이랑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게 이번에 새로 나타난 능력인지 그건 확실치 않아요. 희영이의 능력인지 그 분이 가진 능력인지도요.”

“그 사람도 희영이가 하는 말을 듣는다는 거지?”

“네, 두 사람은 대화가 가능해요.”

“우리가 항 오빠랑 같이 있다는 걸 그 분도 알아?”

“아뇨. 아직 그 얘기는 못했어요.”

“오빠는 어때? 와이프가 그런 상태라는 걸 알아?”

“그 문제 때문에 우리끼리 얘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전화를 한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그래. 듣고 있으니까 말해 봐.”

“우리는 형한테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게 서림 누나의 바람이기도 하고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테니 상처나 주지 말자는 거구나. 너희들 뜻은.”

소명이 말했다.

“그 말은 부분적으로만 맞아요. 조건부 침묵 서약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일을 달성할 때까지만 형한테 비밀로 하기로 했어요. 우린 미국으로 갈 생각이에요. 선우 형이랑 함께라면 ‘붉은 번개의 틈’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준 맥브라이언이 사택으로 쓰는 곳이나 제단이라고 불리는 곳도.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곳은 서림 누나가 누워있는 방이에요. 거기에서 누나를 구해낼 때까지는 형에게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격전을 치러야 할 거라는 건 각오하고 있는 거야? 맥브라이언이 우리가 자기 성녀를 데려가게 놔둘 리는 없잖아?”

“할 수 있다면 준 맥브라이언을 해치워야겠죠.”

“할 수 있다면.”

“네.”

“제단 아래에는 실험체들이 있다고 했지?”

“……네.”

기선은 예치기 않았던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거야?”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사람들까지 구하려면 이건 전면전이 돼야 하는데. 그렇다면 최고의 운에 기대도 승산이 없어요.”

“일단 알았어. 생각해 보자.”

“저, 누나…….”

기선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소명을 불렀다.

“왜?”

“누나한테는 선택권이 없어요. 알죠?”

“뭐?”

“누나는 꼭 가야 한다고요.”

“무슨 말이야?”

“그쪽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빠진다고 해도 누나는 우리랑 같이 가 줘야 한다고요.”

“불공평하잖아. 얘들도 다 데려갈 거야.”

“그런다고 할까요?”

“얘들 의견은 안 중요해. 내가 보기보다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타는 성격이거든.”

“몇 명은 죽을 거예요.”

“그럼 지명이가 바빠지겠지.”

“태평하네요.”

“태평해 보이니?”

“아뇨. 정말로 그렇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지명이는 잘 지켜줘야 되겠군. 지명이가 둘이라 다행이다. 하나가 과거로 돌아가기 전에 죽는다고 해도 하나는 여전히 남잖아.”

“누나. 지명이도 듣고 있는 거 아니에요?”

“듣고 있지. 내 옆에 딱 붙어있는데? 붙어있기만 한 줄 아니? 심지어 나를 노려보기까지 한다. 죽을라고, 이게.”

“누나가 말을 심하게 한 건 맞잖아요.”

“나는 전략을 얘기한 건데. 게임을 리셋시키는 남자를 지키는 쪽으로 하자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한 거고. 눈 깔아라, 선지명!”

“이크.”

기선은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쪽의 일에는 그다지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 괜히 핑계를 댔다.

“형이 올 때가 거의 됐으니까 저는 전화 끊을게요.”

“준 맥브라이언이 어쩌고 있는지 희영이한테 보이는 게 있으면 그때마다 즉시 알려줘. 우리한테만 정보가 차단된 채로 놔두지 말고.”

“네. 그럴게요.”

“잊고 안 한 말 같은 건 없어?”

“중요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칸트가 죽었어요. 준 맥브라이언을 수족같이 보좌하던 여자요.”

“그래?”

“그리고 맥브라이언이 던칸 상원의원을 찾아가서 협박을 했고요. 상원의원을 죽일 건가 봐요. 세상의 이목이 ‘붉은 번개의 틈’으로 집중되지 않게 하려고요. 칸트를 교단과 별개의 탐욕적인 인물로 몰아가고 칸트와 상원의원 간에 결탁이 있었던 걸로 하려나 봐요. 상원의원은 거기에 책임을 지고 죽어줘야 할 거고요.”

“그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거야?”

소명이 물었다.

“방법이 있다면 상원의원이 스스로 달아날 방도를 찾겠죠. 하지만 맥브라이언이 최면을 걸어서 상원의원을 조종한다면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꽤 요긴한 카드가 될 텐데. 살릴 수만 있다면.”

“그렇긴 하겠죠…….”

“좋아. 중요한 건지 어쩐 건지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매일 전화해. 매시간 전화해도 좋아.”

“네. 죄송해요.”

기선은 소명이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사과를 했다.

“좋아.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그런데 언제 들어올 거야?”

“일단은 히나타를 봐야 돼요. 신사를 떠나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내일이라도 같이 나가보려고요.”

“그래. 히나타야말로 핵심전력이니까 잘 해야 된다. 영 안 될 것 같으면 네가 최면을 걸어버려. ‘여긴 신사다. 여긴 신사다.’ 하면서 중얼거려 보기라도 하라고.”

“이제 제가 웃어야 되는 타이밍인가요?”

“어느 부분이 웃겼는데?”

“아니에요, 누나.”

“좋아. 그럼 다들 슬슬 준비하자고.”

“네, 누나.”

소명은 전화가 끊기고 난 후에 손가락을 무릎 위에서 까딱거리더니 지명을 바라보았다.

“준 맥브라이언과 ‘붉은 번개의 틈’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하나씩 쓰러뜨릴 방법을 찾아봐. 이제 실험 가운은 벗어던지고 ‘붉은 번개의 틈’이 뭘로 돌아가는지 알아보라고.”

“어떤 걸 말하는 거예요?”

지명이 물었다.

“준 맥브라이언의 팔, 다리, 머리, 어깨. 그런 것들이 뭔지 알아내는 거야. ‘붉은 번개의 틈’을 잘게 조각내서 잘라내면 결국엔 죽겠지.”

“유지 기반을 말하는 거예요?”

사이크가 물었다.

“그래. 인프라를 파괴하지 않고 일부분에 타격만 주고 빠져나오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거긴 어마어마해요, 누나. ‘붉은 번개의 틈’은 퓨쳐 컨트롤을 통째로 가져다댄다고 해도 상대도 안 될 걸요? 자기들이 구원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징표로 전 재산을 헌납하고 그리로 들어가 버린다고요. 그렇게 바치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생각하기에 학식이 없는 사람들이 선동돼서 그런 데에 들어갈 것 같죠? 어느 주립대학은 교수들이 몇이나 한꺼번에 ‘붉은 번개의 틈’에 입교하면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학기 중에 난리를 겪기도 했다고요. 제가 알기로 베네수엘라엔가 유정도 있고 캐나다랑 러시아, 남아공에 칼륨 광산이랑 다이아몬드 광산도 있다던데요?”

“그 상원의원이 죽는다는 걸 준 맥브라이언은 알고 있겠지. 자기가 죽일 거니까. 어느 곳으로 물이 흐를 줄 알 테니까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물을 받으려고 하겠지.”

“그러겠죠. 당연하잖아요. 우리도 이제 희영이 누나 때문에 미래신문 없이도 그런 일들을 미리 알게 됐으니까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지명이 말했다.

“같이 벌어서 뭘 하게?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건 부의 축적이 아니라 생존 아니던가?”

소명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기선이한테 다시 전화를 걸어봐. 상원의원이 죽는다는 날이 언젠지 물어보라고.”

지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버튼을 눌렀다.

“어. 지명아. 항 형이 왔어.”

기선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삼가라는 듯이 먼저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냥 대답만 해요. 형. 상원의원이 죽을 날이 언제냐고 소명이 누나가 묻거든요.”

“사흘 후.”

“알았어요.”

“그래. 끊자, 그럼.”

기선이 서둘러 말했다.

“누구? 지명이야?”

항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형이다. 어떻게 해요, 누나?”

지명이 괜히 얼어서 소명에게 물었다.

“반갑다고 인사하면 되지 왜 나한테 묻니?”

“누나가 받을래요?”

“싫어. 안 해. 알고 있는 거 티내게 될 것 같단 말야.”

“저도 그럴 것 같다고요.”

서로 미루다가 결국 사이크가 전화를 받았다.

“아. 일본은 날씨가 어때요?”

사이크가 물었다.

“그러게. 여기 날씨가 어떨까?”

항이 말했다.

가장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항도 당황했다.

“보고 싶었어요. 형. 제가 형을 가장 많이 보고 싶어해서 제가 전화를 받는 거예요. 다른 뜻은 없어요.”

사이크가 장황하게 말을 하자 소명이 전화기를 뺏었다.

“오빠.”

“어. 소명아. 너는 나를 두 번째로 많이 보고 싶어했나보다?”

“그런 건 아니고요.”

“어. 정말로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야.”

“불편하진 않아요? 있을만해요?”

“어쩔 수 없잖아. 사는 게 우선인데 불편한 걸 탓할 순 없겠지.”

“곧 끝날 거예요. 끝낼 방법을 찾을게요.”

“응?”

“그냥. 그렇다고요.”

“……. 그래.”

“힘내요.”

“그래. 너도.”

항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마치 돌잔치의 주인공이었던 아기가 등을 톡톡 두드려 주면서 힘내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 기분?

소명은 괜히 짠해져서 혼자 눈시울까지 붉혔다.

“오빠 너무 불쌍하다.”

“하던 얘기를 끝내야죠. 사흘 후라잖아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지명이 말했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정인이 입을 열었다.

“상원의원이 죽지 않으면 일이 재미있게 되긴 하겠죠.”

“그래. 던칸을 살리는 거야.”

소명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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