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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42화 (4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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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미가 웃었다.

그가 보이는 인간적인 표정들이 요즘 들어서는 그다지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감정의 교류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내려고 애쓰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아미는 변해가고 있었다.

사이크는 기선과 통화를 하면서 점점 열을 올렸다.

계속해서 일본에 남아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사이크는 설득하려고 했다.

정인도 그 옆에 있었다.

정인과 사이크는 기선이 이미 일본에서 한 번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빨리 보지 않으면 걱정이 돼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제 새 건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돼요. 공사도 다 끝났고 개인 경호원들도 다 붙여 주기로 했단 말이에요. 여기가 훨씬 안전해요. 여기에 숨어 들기만 하면 그 준 맥브라이언이라는 개새끼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거라고요. 도청도 안 되고 완전히 안전한 곳이에요.”

사이크가 열변을 토했다.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은데? 아미가 그러는데 테오라는 인간은 장비에만 의존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거든? 우리가 바깥의 누군가와 교류를 하다보면 결국에는 우리 위치를 들킬 거야."

"위치는 들키더라도 그 안에 들어앉아 있기만 하면 완전히 안전할 거예요."

“그러다가 그 밑이 꺼지기라도 하면?”

“싱크홀요? 그게 도대체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퓨쳐 컨트롤 본사가 그렇게 가라앉은 건 정말 우연이었을 뿐이라고요. 조사 결과에 다 나왔잖아요. 하필 그 아래가 그렇게 돼 버린 건 정말 우연이었다고. 과도하게 지하수를 끌어다 쓰면서 지반이 약해져서 그렇게 된 거라고요.”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 우연이 모든 일을 만든 거라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인위적인 힘이 가해진 건 아닐까?”

기선의 물음에 사이크는 잠시 움찔했다.

그 일에까지 준 맥브라이언의 영향력이 미친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확언할 수가 있단 말인지.

기선이 맹공을 하자 사이크도 조금씩 기세가 눌렸다.

“그래도 형. 모두들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나는 여기가 더 안전할 거라고 믿어요. 이제는 그 망할 놈의 비행기들도 뜨잖아요. 아무거나 타고 날아 오라고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기는 해. 하지만 우리한테도 생각이 있어.”

“몇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희영이가 피로감을 많이 느끼고 있어. 정인이는 안 그래?”

사이크는 정인을 바라보았다.

정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인이는 팔팔해요.”

“그래? 우리 희영이가 늙어서 그런가 보다.”

멀리 떨어지기는 했지만 희영의 주먹이 기선의 등에 와서 떨어지는 소리와 기선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정말 보고 싶다.”

정인이 말했다.

“나도. 우리도 모두 보고 싶어.”

기선이 말했다.

“나도. 나도.”

희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몇 가지 이유라고 하지 않았어요? 형은 지금 고작 하나만 말했는데?”

사이크가 물었다.

사이크는 사람들이 얘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면 어김없이 끄집어다가 다시 요점을 찾아 얘기를 하게 만들었다.

“아, 맞다. 히나타에 대해서 얘기했던가?”

“하나타요? 히나타가 왜요?”

그들도 히나타의 활약에 대해서는 듣고 있었다.

“히나타는 그야말로 막강하게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데 말이지. 지역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아. 히나타가 본인 입으로 직접 한 말이야. 확실한 건 아닌데.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여기에서만큼은 천하무적인 것 같은데 이 흑사를 벗어나는 순간, 아니, 신사라고 말해줘야 되겠지? 신사에서 멀어지면서 힘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아주 무력해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신사에서처럼 막강한 위력이 나타나는 건 아니야. 폭우와 소나기의 차이랄까?”

기선은 히나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고 싶어서 지명과 아미를 대동하고 히나타와 함께 밤에 떠났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지명은 히나타가 기선의 앞에서 대단한 것들을 보여주기를 자랑스럽게 기대했지만 히나타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했지만 신사에서 멀어져서 그런 것 같다는 히나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타는 애초에 나무 신이었으니 뿌리가 있는 곳에서 멀어지면 힘들어지는 건가 보다고 터무니없이 수긍을 해 버린 것이다.

“그럼. 히나타랑 함께 그 신사에 머무는 동안은 안전할 거라고 믿는 거예요?”

사이크가 물었다.

“응. 그렇게 생각해. 여기에서는 자연 재해로 준 맥브라이언이 우리를 묻어버리려고 일을 꾸며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 같아. 히나타는 확실히 우리 수준이랑은 다르니까. 히나타를 여기에 와서 보면 과학이라는 것을 신봉했던 자기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질지도 몰라.이런 말을 히나타한테 해 보지는 않았지만 사이크랑 정인이도 이리로 오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소명이 누나도.”

사이크와 정인은 서로 바라보았다.

“지명이 얘긴 왜 안 해요?”

“아, 맞다. 그 자식 아직 거기에 있지? 아주 그림자처럼 내 옆에 쫄쫄 붙어다녀서 나는 지명이가 여기에만 있다고 생각했지. 당연히 지명이도 데려와야지.”

“어쨌든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까지 가는 거 말이에요. 나랑 지명이는 여기에서 마쳐야 할 연구가 있어요.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일단 형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지금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우선 거기에서 머무르는 걸로 하자고요. 형이랑 같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능력도 더 강해지잖아요. 각자가 자기가 머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안전을 지키자고요.”

“그래. 근데 지명이는 어디에 있어?”

“퓨쳐 컨트롤에 갔어요. 그 녀석, 전략 보고서라는 걸 만들어 갔거든요.”

“뭘 꾸미는 건데?”

“지명이는 붉은 번개의 틈으로부터 숨어지낼 마음은 확실히 없는 것 같아요. 준 맥브라이언이랑, 그리고 붉은 번개의 틈이랑 싸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어, 어떻게?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잖아? 간단한 일이라면 우리가 이러고 있지도 않지.”

기선이 말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강해지라고요. 나는 여기에서 해답을 찾을 거고 지명이랑 선 사장님은 총알을 준비할 거예요. 퓨쳐 컨트롤의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는 건 이제 의미가 없어요. 준 맥브라이언이 깊숙하게 들어가 숨어 있는 그곳에 불을 지르든 폭탄을 던지든 해서 그 녀석을 끄집어 내서 끝장을 낼 생각을 하는 거예요.”

“…….”

“맞아요, 형. 미국의 영부인을 죽인 집단이에요. 테헤란로에 생긴 싱크홀과, 어쩌면 아이오와의 폭우에도 관련됐을지 모르는 집단이고 일본에서 지하철 폭파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이죠.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도 지명이랑 같은 생각이에요. 반격 없이 달아나기만 해서는 우리가 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요.”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해 봤어?”

“다른 사람 누구요?”

사이크가 정인을 보고 웃었다.

정인도 웃었다.

“정인이랑 소명이 누나. 전부 같은 생각이야?”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만큼 완전히 똑같은 생각이에요.”

“젠장.”

기선의 반응에 사이크가 웃음을 터뜨렸다.

“강해지고 안전하게 있으라는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 전력이 보충돼야 해서 하는 말이에요.”

“……알았어. 사람들한테 말할게. 그 말이 맞을 거야. 달아나기만 하는 걸로는 절대 끝나지 않아. 한 번 살아났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지. 이번에는 히나타 덕에 목숨을 구했고 그 전에는 지명이가 돌아와서 우릴 구출해 준 덕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이런 요행이 계속 되길 바랄 수는 없어. 우리도 우리 삶을 살 권리가 있잖아.”

“맞아요. 그리고 제 생각엔 희영이 누나도 곧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을 것 같고 히나타도 그 지역을 떠나서 비슷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것 같아요. 형이랑 같이 있으니까요. 아, 희영이 누나가 자꾸 피곤한 건 오히려 형 때문인 건가? 밤엔 좀 쉴 수 있게 해 줘요.”

사이크가 웃었다.

“형은 그 사람들만의 에너자이저가 아니잖아요. 형이 근처에 있으면 그 다음에 뭘 생각해 내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잘 떠오르거든요. 희영이 누나랑 히나타가  그곳을 떠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와 줘요.”

“그래. 의논해 볼게. 그런데 네가 말한 그건 미래씨가 너한테 하던 역할인 것 같던데?”

“그게요. 형. 그러니까. 미래랑 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지금 상당히 오래동안 방어전을 치르지 못하고 있거든요. 나는 우선은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내가 좀 알지. '나한테는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던데?”

기선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이크는 정인이 듣지 못하게 소곤거렸지만 정인은 무슨 일인지를 대충 깨닫고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웃지 말라고. 뭔지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지 마. 알았어?”

사이크가 정인에게 말하자 정인은 이젠 아예 소리내서 웃음을 터뜨려 버리기까지 했다.

“일단 끊어봐요. 형.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사이크가 씩씩거리자 기선도 켁켁 거리면서 웃어대다가 곧 다시 통화를 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마. 알았지?”

사이크가 정인을 쫓아다니면서 말했고 정인도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했지만 쉽게 웃음을 그치지 않는 폼새가 반드시 지명에게 말할 것만 같았다.

“에잇.”

지명이한테는 절대 비밀이라고 해 봐야 그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기대하기도 힘들겠고.

그때 경쾌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사이크.”

문 앞에는 환한 웃음을 입가에 가득 걸고 있는 미래가 서 있었고 정인은 웃다가 눈물을 쏟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왜, 왜요?”

미래가 정인을 바라보았고 정인은 면전에서 웃어버린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면서도 쉽게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언니, 아, 그게 아니라요. 아니, 기선오빠가 전화를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얘길 해서요.”

“그래요? 뭔데요? 다들 잘 계신데요? 언제 온데요? 다들 정말 보고 싶은데. 건강하게 잘들 계신데요? 희영씨도 정말 보고 싶고. 그런데 기선씨가 무슨 얘길 했는데요?”

기대하는 표정으로 들어오며 묻는 미래에게, 정인은 답을 주지 않고 웃음을 보이면서 방을 나갔다.

“사이크가 아마 얘기해 줄 거예요.”

‘젠장.’

사이크는 아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누가 보더라도 의심할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래는 오늘에야말로 사이크와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없슴을 확인할 기세였고 사이크는 진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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