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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40화 (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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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영이 고통 중에 본 광경이 기선에게도 보였다.

준 맥브라이언의 광기가 그들에게 미치는 순간, 누구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기선은 깨달았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급히 결정해야 할 문제는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를 정하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한국으로 서둘러 돌아가자는 것으로 방향이 잡히는 듯했지만 선우 형이 의문을 제기했다.

준 맥브라이언이 지하철 폭파 사고 같은 사고까지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연관성이 없는 이곳에서 싸우는 게 낫지 않은가 라는 얘기였다.

말하자면 파손이 예상되는 싸움은 남의 집에서 하자는.

"뭐, 나한테 선택할 권한이 있다면 나는 당연히 여기에서 싸우는 쪽을 선택할 거야."

선우 형이 말했다.

그 말에 장 항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결하게 뒤따르게 된다면 내가 모르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지."

연우와 시영은 의견 내는 것을 유보했다.

"치사한 자식들. 편파적인 발언은 하지 않겠다는 거지?"

선우 형이 말했다.

그렇다고 꼭 비난하는 투는 아니었다.

아미는 생뚱맞게도 한국에 꼭 가 보고 싶었고 한국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가 모두의 눈총을 샀다.

"얘는 가끔 가다 보면 꼭 천재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희영이 말했다.

"천재이긴 한 거야?"

기선이 말했다.

"그러게요. 점점 그 확신도 사라지려고 해요."

"일단 그것도 보류하자고. 아미가 천재인가 하는 것 말야."

연우가 말했다.

지명은 그 자리에 히나타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히나타와 의견을 같이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희영은 어떻게든 대화에는 참여를 해 보려고 했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해서 기력이 완전히 쇠잔해져 있었다.

기선은 희영이 여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말을 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연우가 물었다.

그때부터는 체류 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조금씩 가닥을 잡아갔다.

희영이 피로한 상태라는 것이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대충 방향이 정해진 것 같은데. 그럼 이제 다들 가 보세요. 희영이한테는 지금 휴식이 절실해요."

기선이 참새를 쫓듯 훠이훠이 팔을 내둘렀다.

그리고 희영이 정말로 휴식을 취해야 할 것처럼 보였기에 사람들은 서둘러서 방을 떠났다.

지명과 아미까지 전부 나간 후에 기선은 희영의 자리를 봐 주고 희영의 곁을 지켜 주었다.

그리고 희영이 막 잠들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노크 소리는 아니었다.

‘나 지금 들어가.’

라는 메시지를 명백하게 담은 듯한 소리였다.

희영이 계속 잠을 자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걸 알면서도 그 사이에 또 누가 문을 두드리는 건가 하고 불쾌한 기색을 비친 기선은 다음 순간에 벌어진 일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문이 열렸지만 곧바로 누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몇 템포가 지나고야 한 사람이, 한 형체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그리고 그 형체는 기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체는 분명히 다가오는데 문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못하고 길게 연결된 채 녹아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몸에서 빠르게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혀, 흐, 형!! 돌아가지 말라고……! 커크랜드 하우스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해줘요! 나한테……! 지명이한테!!”

기선은 그의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지명이라는 것도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겨우 알 수 있었다.

희영이 놀란 얼굴로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어머, 세상에. 지명씨!”

희영이 소리쳤다.

두 팔로 지명의 머리를 받쳐서 안았지만 지명의 호흡은 멈춰 있었다.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분명하고 냉정한 선언과도 같았다.

그가 죽었다.

지명이.

겨우 거기까지 온 지명이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너무 단호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완전히 닫히지 않았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지명과 히나타가 들어왔다.

지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히나타는 지명의, 미래에서 온 지명의 방문을 예상한 듯했다.

“누, 구…….”

지명은 바닥에 쓰러진 지명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미래에서 건너온 자신임을 깨닫고 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늑골 사이를 긴 칼로 찔렸나 봐요.”

지명은 문에서부터 이어지는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상한 객관화였다.

자신이 죽은 이유를 지금 지명이 설명하고 있었다.

짧은 거리를 빠르게 왔는데도 핏자국이 흥건했다.

“몇 리터는 족히 쏟아버린 것 같은데…….”

끝까지 살려보려고 애쓰는, 죽은 지명을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게 해 보려고 기를 쓰는 기선의 손을 지명이 붙잡았다.

“이미 끝났어요, 형.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거라고 누가 그래. 건방지게 누가!!"

하지만 결국 기선은, 스스로 감지 못한 지명의 눈을 감겨 주면서 오열했다.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다른 시간에서 건너온 지명을 대하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는 사람처럼 친숙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공유한 기억이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지명은 마지막 순간에 기선에게 의지를 하려고 시간을 거슬러서까지 온 것 같은데 기선은 그런 지명을, 지명이 자신을 대한 것처럼 그렇게 대해주질 못한 것 같았다.

희영은 그런 기선의 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딱 자기가 그랬던 것이다.

“지명아.”

기선이 지명을 불렀다.

지명은 바닥에 누운 자신을 바라보다가 기선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너희들, 자꾸 나한테 오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

기선이 물었다.

"너희들요?"

"너도 그랬잖아."

"아. 나요?"

"그래. 너희들, 왜 자꾸 나한테 오는 거냐고!!"

기선은 그게 잔인한 질문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이 뿌리처럼 여겨지나 보죠.”

지명이 말했다.

“뿌리를 찾는 거라면 선 사장님한테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기선이 항변했다.

“지명인 형을 뿌리로 여겨요.”

지명은 남의 말을 하듯이 얘기했다.

“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모른데? 왜 그러는 거래? 왜 온다는 거래? 내가 뭘 해 줄 수 있다고. 내가 살려주지 못한다는 걸 모른데? 더 올 거래? 계속 올 거래? 이후의 지명이는 계속 나한테 와서만 죽을 거래?”

기선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한 명의 지명을 지키지 못한 상처가 그를 깊이까지 갉아 먹어갔다.

지명이 와락 기선을 끌어안았다.

“살려달라고 형한테 오는 게 아니에요. 자기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고 형한테 말하고 싶어서 오는 거예요.”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지금의 나야? 차라리 다른 나를 찾아가라고 해. 나는 너무……. 벅차. 힘들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네 죽음을 바라볼 수는 없어. 지명아. 내 앞에서 죽지 마. 이 개자식아. 나보다 먼저 죽지도 마! 죽지 말라고!!”

기선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희영도 울었다.

“싫어요. 계속 나는 형을 찾아 올 거예요.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맬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형만 떠오른단 말이에요.”

“이 개자식아!!”

기선은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감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천장을 향해 부릅뜬 지명의 눈이 결코 잊힐 것 같지 않았다.

“커크랜드 하우스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어.”

희영이 기선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지명에게 말했다.

“커크랜드요? 하버드 기숙사요? 제 후랑 살던?”

희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가 아는 그곳이 거기라면 거기인 거겠지.”

“내가 거기에 왜, 돌아간데요?”

“몰라. 그 말을 하고는 곧바로…….”

숨을 거뒀어, 라고 말을 한다고 죽음의 의미가 반감되지는 않았다.

희영은 지명의 죽음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희영이 물었다.

“그는 시간의 일부예요. 지명의 일부고 무수한 순환 중 하나를 감당한 사람이었어요. 이제 쉼을 얻었고 평안을 누릴 차례예요.”

히나타가 말했다.

기선과 희영은 히나타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가 히나타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며 바라보았다.

지명과 히나타는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지명이 미래에서 온 자신을 안아들자 히나타가 앞장을 섰다.

기선과 희영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장례식은 그야말로 허허로웠다.

지명이 또다른 자신을 땅 위에 내려놓자 땅이 저절로 꺼져버렸다.

그리고 미래에서 온 지명의 위로 흙이 덮였다.

“지명아…….”

기선이 흐느꼈다.

지명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기선을 지명이 애도했다.

“너, 내가 확실히 말하는데, 다시 죽게 된다고 해도 나한테 오지 마. 알았어?”

기선이 이를 갈며 말했지만 지명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생각날 것 같진 않단 말이에요.”

“차라리 히나타한테 가. 정인이한테 가든지.”

“내가 형한테 오는 건 두 사람한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인 건지도 모르죠.”

지명이 웃었다.

기선은 지명에게 주먹을 날릴 것처럼 하다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이런 일을 또 겪게 될까?”

누구에게 묻는 건지 아리송하게 그가 물었다.

“형보다 오래 살게요. 커크랜드 하우스엔 가지 않을게요.”

지명이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커크랜드 하우스에는 왜 가게 된 걸까?”

희영이 물었다.

“거기는 제 후가 있던 곳이죠. 제가 사이크를 만난 것이기도 하고.”

지명이 말했다.

“사이크를 살려야 했다면 사이크가 살아있는 다른 시간으로 갈 수도 있었겠지.”

기선이 말했다.

“너는 제 후를 살리러 가는 거였나봐.”

희영이 말했다.

기선과 지명이 동시에 희영을 바라보았다.

“제 후를?”

“후를요?”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지명은 이마를 짚었다.

“지명씨. 절대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어. 그곳으로는. 지명씨가 한 말이야. 지명씨가 꼭 전해주라고 한 말이라고.”

희영이 말했다.

“지명인 나를 찾아올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형을 찾아갔죠. 그건 형이 결정을 내려주길 바라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자기 스스로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건지도 몰라요.”

지명의 말에 기선은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제발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

“형은.”

지명이 희극적으로 웃었다.

“내 뿌리라니까? 내 이야기의 시작. 생각을 시작하게 만든 사람. 그게 형이에요.”

“감동적이지도 않고 고맙지도 않아. 네 짐을 떠넘기려는 수작이잖아.”

“그것 봐요. 그래서 형이어야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대충 이렇게 말하면 감동받고 눈물을 훌쩍일 텐데 형은 본질을 보잖아요.”

지명이 그렇게 말을 하는 데야 기선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를 살려주지 못한 걸 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안 죽을 거예요. 형을 상상해 봐요. 나이든 형은 더 그러겠죠. 내가 먼저 죽는다면 곱게 보내주겠어요?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라고 하면서 나를 흔들어 댈 거 아니에요? 그러면 나는 천국에 가기도 전에 멀미를 할 거예요.”

기선이 지명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왜 커크랜드 하우슨지, 왜 제 훈지 생각해 보자.”

지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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