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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32화 (3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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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혼자서 간직하는 것은 히나타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히로시는 벌벌 떨리는 걸음으로 카트를 밀었다.

그동안 한 번도 의식의 붕괴를 겪어보지 않은 히로시였지만 그 날만큼은 많은 부분에서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버티는 한 미치지 않고 버틸 수가 없었다.

훼손된 시체로 모자라서 흐릿하게 사라지곤 하는 홀로그램 형체까지.

젠이 미지의 남자를 호텔로 끌어들인 사건 따위는 이제 하염없이 하찮게 느껴졌다.

히로시는 비품실에 가서 방수포를 챙겨가면서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이 정도로 관여를 하면 살인죄의 종범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들이 그를 주저하게 했다.

하지만 젠을 거스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라는 의문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한 구, 한 구의 시신이 방수포에 싸였다.

지명은 침통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제발 조심해서 다뤄줘.”

지명은 안절부절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되죠?”

마침내 히나타의 승합차에 시신을 전부 옮겼을 때 유우신이 물었다.

실질적으로 힘을 쓴 사람은 히로시였는데 땀은 유우신이 더 많이 흘리고 있었다.

히나타는 유우신이 쓰러지지 않고 버텨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될지를 왜 나한테 묻는 거지?”

지명이 말했다.

“쇼스케가 찾으러 올 수도 있어요.”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를 생각해내 봐.”

유우신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히나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살던 곳에 작은 신사가 있어요. 실은, 흑사지만요.”

“흑사?”

지명이 물었다.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것을 두려워하고 숭배하며 그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신이라 불렀다.

거기에서 시작된 신도가 서서히 통합되며 체계화되었고 메이지 정부의 제정일치 정책으로 신사는 신앙의 대상에서 국민의 의무가 되었다.

신관의 세습은 금지되었고 임명제 관리가 신관이 되며 신사는 국가시설이 되었다.

제사도 국가가 정한 양식으로 통일되었고 신 또한 통일적으로 편성이 되었다.

지역의 작은 사당도 신사의 씨족신으로 통합되어 그 안에 들지 못한 신앙은 미신으로 탄압을 받게 되었는데 통합되지 못한 신사를 흑사라 했다.

흑사는 미신의 산물로 치부되었고 사교라 불리웠다.

지명은 거리끼는 마음에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믿는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맥이 끊겼어요. 신도, 신관도 없는…….”

말을 흐릿하게 맺는 히나타의 목소리에서 지명은 히나타가 불경의 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면 제가 다 하지 못한 책무를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거나.

히나타가 지명을 바라보았지만 지명이 저를 보고 있었음을 알고는 곧 시선을 거두었다.

“사당에 신관이 없다면 누가 살고 있지?”

“대대로 이어지던 신관의 가족들요.”

“사당은 왠지 꺼림칙하고. 그냥 방에 보관해 줄 수는 없을까?”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그 집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되는 게 아닌가?”

지명이 물었다.

“지금 그 집 사람한테 물어보고 있는 거예요.”

히나타가 대답했다.

“게다가 신관이 사라진 건 히나타가 여기에 있기 때문인 거고요. 신이 사라져서 신관이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거예요.”

유우신이 말했다.

"히나타는 신으로 추앙받던 사람이었어요. 히나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도망쳐왔죠."

“그렇게 된 거군.”

지명의 말에 유우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타는 도망쳐야 했고 나는 젠이 될 사람을 찾아야 했어요.”

히나타와 유우신은 지명의 홀로그램이 점차 질량을 입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중력에 구속될 정도로 형체를 갖추었다.

무엇이 지명을 이쪽으로 더 강력하게 끌어당긴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히나타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였다면 진작 했으면 좋았잖아요. 그랬다면 히로시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아, 그 히로시.”

지명은 웃음을 지었다.

신격화 되었지만 신의 기질을 갖지 못해서 달아난 히나타는 준을 떠올리게 했다.

악마의 본성 말고는 아무 것도 갖지 못했지만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오른 준 맥브라이언을.

쇼스케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그의 옆에는 젠이 누워 있었다.

“애들은 호텔로 보냈지?”

쇼스케의 말에 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다 수거했을 거예요.”

“네 애들인데. 다시 확인해 볼 필요도 없겠지.”

젠은 쇼스케의 평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쉬지 않고 단련을 하는 덕에 탄탄하게 올려붙은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쇼스케는 다시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젠의 아래로 내려가서 다리를 벌리고 자기가 조금 전에 싸 놓은 정액을 혀로 핥았다.

거칠고 알싸한 느낌에 젠은 허리를 뒤틀며 신음을 했다.

“지나치게 매끈해. 다른 녀석이 주워가기 전에 이름이라도 써 놔야겠다.”

이그잭토 나이프가 젠의 허벅지 안쪽을 후비고 지나갔다.

‘쇼스케의 젠’

진한 피가 흘러나왔다.

쇼스케는 일부러 허벅지에 밀착하면서 젠을 신음하게 만들며 한 번 더 젠의 안에 저를 밀어 넣었다.

젠은 고통과 환희의 감각 중에 어느 것에 더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쇼스케를 끌어안았다.

쇼스케가 그토록 믿었던 젠의 아이들은 그 사이에 헛걸음을 하고 있었다.

히로시는 유난히 긴 하루를 마치고 교대를 했고 프론트에는 다른 직원이 있었다.

객실과 바는 비워져 있었다.

피가 흥건하고 살육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지만 다만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장님께 말씀드려야 할까?”

“쇼스케님이랑 계신데.”

“그렇군.”

“없다는 건 누군가 먼저 와서 치웠다는 것 아닌가?”

“그렇겠지? 호텔 녀석들은 신고를 안했고. 경찰들이 왔다 가지도 않았고.”

“그럼 우리쪽 사람밖엔 없잖아.”

“그렇겠지?”

“쇼스케님이 직접 사람들한테 시키신 건지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해석은 무한한 상상력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인생이 재미있어 지는 건 멍청한 해석을 하는 인간들 때문이기도 했다.

그날 오후, 바에는 다시 손님이 들었고 객실에는 새로운 투숙객들이 들었다.

몇 사람의 삶이 멈추었다고 해서 세상이 잠시라도 움직임을 멈추는가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히나타가 얼굴을 바꾸었다고 히나타를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히나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어준 사람은 오래 전부터 히나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히나타의 얼굴이 바뀐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히나타는 아홉 분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라고 했다.

유우신은, 자기는 돌아갈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되지 않냐고 허락을 구하려는 표정으로 지명을 바라보았다.

“쇼스케와 마주쳐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명이 물었다.

“문제가. 될까요?”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하면 가.”

지명은 어차피 유우신의 용도는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 전화 좀 해도 될까? 아, 미안해. 한국에 전화해야 되는데 지금 돈이 없어.”

유우신은 상관 없다면서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사이크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거냐면서 방방거렸다.

지명은 자기가 겪은 일을 브리핑해주고 사당으로 기선들의 시신을 옮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이크는 왜 하필 거기까지 간 거냐고 물었다가 오히려 그곳이 안전할 수도 있겠다고 곧 입장을 바꿨다.

“오늘은 비행기가 뜰 건가봐. 첫 비행기로 갈 거야. 그러니까 여기로 돌아오려고 할 필요 없어.”

사이크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뭘 해야 하는 건지.”

지명이 말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구해야지.”

“내가 시간까지 거스를 수 있는지 모르겠어.”

“못할 리가 없어.”

사이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처럼 무력한 말이 또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전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격려만 잔뜩 해 주고 전화를 끊는 사이크가 야속했다.

커다란 방에 일곱 구의 시신이 옮겨졌다.

유우신은 쇼스케가 갑자기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별장으로 돌아갔고 히나타가 희영의 시신을 닦아주고 있었다.

지명은 희영만 히나타에게 맡기고 남은 사람들은 직접 닦아주었다.

싸늘하게 굳은 시신에 손이 닿자 드디어 그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실이,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무섭게 다가와 버렸다.

“형…….”

지명은 알코올에 적신 솜뭉치로 기선의 몸에서 흐르다 말라 붙어버린 핏자국을 닦아내며 기선을 불렀다.

히나타는 그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묵묵히 희영의 몸을 닦아주었다.

빨간 페인트 한 통을 전부 쏟아 부어버린 것처럼 온몸이 피투성이었다.

솜을 교체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히나타는 지명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지명이 있던 자리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핏물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던 희영도 사라졌다.

사라진 사람은 희영만이 아니었다.

히나타는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희영이 침대에 벌러덩 몸을 던지면서 기선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진 능력. 다듬어 보면 내가 보는 걸 상대방한테도 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변호사님이랑 얘길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전시키면 될지 감을 잡았거든요.”

“시영이 형이랑?”

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는?”

“사실은 아미가 가장 많이 도와주긴 했어요. 우리가 딱 막혀 버렸을 때 아주 열정적으로 실험체가 돼 줬거든요.”

“실험체? 그 말은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데.”

“시각을 관장하는 부위가 어딘지를 설명해 주면서 정확하게 그곳에 명령을 내린다는 느낌으로 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환시를 보게 되는 원리를 알아낼 수 있으면 상대방한테도 환시를 보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환시 뿐 아니라 환촉까지도요. 아미는 이 변호사님이 가진 능력을 이해했어요. 이 변호사님이 창틀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라고 명령하면 그 명령에 저항하지 못할 거라는 것까지 깨달은 것 같더라고요. 아미는 내가 가진 능력도 그렇게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걸 발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떻게?”

“실제로 코카인에 취해 환시에 시달린 사람이 주변에서 같이 코카인을 하고 잠들어 있는 사람의 피부를 전부 벗겨 죽이고 자기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은 경우를 봤데요. 환시를 조종할 수 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과정을 세세하게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거예요. 공격받는다는  망상을 심어주고 같은 편끼리 싸우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했어요. 뭔가가 몸 위를 기어다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할 수도 있을 거라는데 어땠어요?”

“그건 아직 안 되는 모양인데? 그런 느낌은 못 받았어.”

“환시는요?”

“끔찍했어. 정말 아주 아주 화가 났어. 화가 나서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

“진짜 같았어요?”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 나를 속일 생각을 하다니 정말 나쁘다.”

“속이려고 한 건 아니고.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 보고 싶었어요.”

“시영이 형이 나를 부른 건 이미 계획된 거였어?”

“네.”

희영이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뭐가 그렇게 당당해?”

“당연히 당당하죠. 나도 뭔가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요. 나도 공격에 가담할 수 있다고요.”

“뭐?”

기선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싶었던 거야?”

“당연하죠. 무력하게 견디기만 하는 건 정말 싫다고요. 불안에 떨기만 하는 건 싫어요. 맞서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고 구하고 싶다고요.”

희영이 말했다.

요란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선이 누구냐고 소리쳤다.

"열어줘. 지명이야."

"지명이?"

기선은 희영을 바라보았다.

희영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선을 바라보았다.

"지명씨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거죠? 비행기가 아직 못 뜨고 있잖아요?"

"그러게."

기선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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