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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30화 (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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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들고있던 쟁반 가득 그릇이 쌓여 있을 때 정인에게 영상의 해일이 밀려들었다.

지명과 사이크는 와장창창 그릇들이 깨지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나른하게 졸고 있던 소명도 깜짝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깨지는 소리는 단 번에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날카롭게 깨진 조각들 위로 정인이 쓰러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지명이 들고 있던 실험도구가 그에게서 떨어졌다.

가늘고 얇은 유리가 깨지면서 슬리퍼만 신은 그의 발등을 찢었지만 지명은 그것을 상관할 틈이 없었다.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발바닥 전체를 통증이 감쌌다.

큰 유리 조각 하나가 밟힌 듯했다.

그래도 지명은 걸음을 늦추지 못했다.

정인은 마치 발작이라도 일으키듯 깨진 조각들이 가득한 바닥 위에서 몸부림을 쳤다.

소명이 먼저 정인에게 다가가 정인의 주변을 치웠고 사이크는 마침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물건을 재빨리 자리를 찾아 내려놓고서 정인에게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소명이 소리쳤다.

발작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정인은 분명히 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몰려드는 영상의 파편을 혼자서 감당할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정인은 허공의 한 지점을 맹렬히 바라보았다.

“안 돼요!!! 아아아악!!! 오빠!!!!”

정인의 눈은 순식간에 충혈이 되었고 곧 눈에서 핏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정인은 손을 내밀었다.

지명이 정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정인의 손톱이 지명의 손을 파고 들었다.

“사람들이!! 죽었어요!! 희영 언니랑 기선 오빠랑 모두요. 전부다!!”

정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소명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정인을 바라보았다.

정인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도록 따귀라도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장 항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가 일어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화를 내면 기분 좋게 미안하다고 사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장 항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명은 점점 초조해졌다.

“야쿠자, 쇼스케……!”

정인의 입에서 한 마디씩이 튀어나왔다.

소명은 사납게 다시 정인을 노려보았다.

그래봤자 정인은 소명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기선이 번호 몇 번이니.”

소명이 지명에게 물었다.

지명은 단축번호로 저장이라도 해 두지 그랬냐고 화를 내고 싶은 것을 참았다.

“내가 해 볼게.”

사이크가 일어섰다.

그는 자기 것과 지명의 것으로 동시에 기선과 희영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정인의 것을 가져다가 선우 형에게도 전화를 했다.

“남은 사람이 누구야?”

소명이 사이크를 보며 물었다.

“장 사무장이랑 이 변호사한테는 안 한 거지?”

소명이 재차 묻자 사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명은 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무지 한 사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명은 화가 나서 스마트폰을 던져버릴 뻔 했다.

“유우신!”

정인의 입에서는 점점 수수께끼같은 말만 튀어 나왔다.

“공항에 알아봐. 당장 일본으로 갈 방법이 없겠는지.”

소명이 사이크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하는 게 빠르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었다.

“일본으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약해. 지금 당장.”

누구에게 내리는 명령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곧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비행기가 왜 못 떠, 이 개새끼야!! 그 새끼들 하는 일이 비행기 띄우는 일이잖아. 그런데 며칠 째 왜 비행기를 못 띄우는 거냐고. 이런 씨이발. 날씨 좋을 때만 띄우는 거라면 나도 하겠다, 이런 개 씨입!! 다른 방법은. 다른 방법은 없어? 당장 일본으로 가야 된다고!!”

소명은 한 곳에 서 있지 못했다.

“누나!!”

사이크가 소명에게 달려와 소명의 팔을 날카롭게 붙잡았다.

잔뜩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소명이 사이크를 노려 보았다.

하지만 사이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소명을 흔들어대기만 했다.

“너까지 왜 이래?”

그러면서 소명은 사이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명이 사라지고 있었다.

홀로그램처럼.

그의 몸 일부가 츠츠츳, 공간 속에서 흔들리며 균형을 잃으며 흩어지고 있었다.

정인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고 지명을 바라보았다.

지명은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정인은 지명에게 이름을 던져 주었다.

“유우신, 그 사람한테 가요. 그 사람을 찾아요. 유우신의 도움을 받아요. 지명씨가 제대로 각성할 때까지 시신을 보관해 달라고 해요. 그래야 돼요. 지명씨가 모든 일을 바로잡을 때까지 시신이 훼손되지 않게 해야 돼요!!”

지명은 정인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사이크가 지명에게 달려왔다.

지명은 사이크와 소명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했다.

***

유우신의 곁에는 히나타가 누워 있었다.

유우신이 다시 쓰러졌다.

매번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한동안 괜찮았었기에 이번에는 유우신도 히나타도 꽤 놀랐다.

특히 유우신은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

자기가 병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믿고 있었던 듯했다.

히나타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유우신은 히나타의 몸을 어루만졌다.

어린 아이가 모래를 손안에서 흘리는 것처럼,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하며 그는 위로를 찾으려고 했다.

“히나타.”

그가 부르는 소리에 히나타가 유우신을 바라보았다.

“왜요?”

“역사 소설가가 주인공을 역사 속에서 구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유우신이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면 히나타는 이 사람이 드디어 미치기까지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나타는 그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고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있었다.

“역사를 바꾸거나.”

히나타가 말했다.

“아니면 그 사람을 역사에서 빼오거나.”

“역사에서 빼온다고?”

유우신이 웃었다.

“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운명은 바뀌겠죠.”

“역사에서 빼 온단 말이지.”

유우신은 웃고 있었다.

그의 앞에 홀로그램 같은 형상이 나타나는 그 순간에 그의 입은 옆으로 길게 벌어진 채 웃음의 마지막 조각을 물고 있는 중이었다.

놀란 사람은 유우신 뿐만이 아니었다.

천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유우신의 몸으로만 덮고 있던 히나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히나타의 놀라움 역시 지명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히나타는 허둥대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지명은 제 몸을 만져 보았다.

실체라곤 느껴지지가 않았다.

제 손이 제 몸을 그대로 투영해 지나가 버렸다.

“젠장.”

유우신은 놀란 눈으로 그저 지명을 바라보기만 했다.

“유우신?”

지명이 물었다.

유우신은 일단 제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존재에게 저항을 해서 무엇하겠냐는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지명은 유우신에게 다가갔다.

그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빠르게 호텔 이름과 객실 번호들이 나왔다.

당장 거기로 가서 시신들을 수습해 달라는 말에 유우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명은 그가 이해할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지명은 서두르라면서 유우신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몸으로는 어떤 물리력도 행사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신이 화가 났다! 라고 유우신은 생각했다.

히나타는 이불을 잡아 끌어 대충 몸을 감춘 채 옷장으로 달려가서 유우신의 외출복을 꺼내 유우신에게 던져 주었다.

신을 화나게 했다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두 사람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세 사람은 함께 히나타의 커다란 승합차에 타고 있었다.

“어떻게 빼오죠?”

호텔에 있는 시신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말에 유우신이 물었다.

“그건…….”

지명은 머뭇거렸다.

그도 방법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유우신은 고민을 하다가 문득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젠. 그렇지. 젠. 히나타. 너는 젠이잖아. 젠이 그 구역을 담당하고 있을 거야. 네가 젠이 되는 거야.”

“하지만…….”

히나타가 말끝을 흐렸다.

언젠가 젠이 될 운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젠의 말투, 젠의 행동, 젠의 습관.

모든 것을 익혀두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젠이 되는 거야.”

유우신이 다시 말했다.

히나타는 유우신과 지명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신은 여전히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유우신은 히나타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히나타는 유우신을 향한 연모를 거두고 고개를 치켜든 채 유우신을 거만하게 내려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유우신이 말했다.

“젠장. 젠이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군.”

유우신이 쓴 웃음을 삼켰다.

***

유난히 긴 밤이었다.

새벽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동이 틀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나 하면서 히로시는 몇 번이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지나다니는 손님이 없는 것을 보고 하품을 했다.

한 번 터진 하품은 쉽게 멈춰지질 않았다.

졸려 죽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 미치겠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졸린 거지?

쇼스케와 젠이 다녀간 것이 신경 쓰이기는 했다.

하지만 히로시가 나설 문제는 아니었다.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위에 올라가 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지시만 내려왔다.

젠을 거스르고 이 지역에서 영업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업태가 뭐든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조장 쇼스케까지 함께 나타난 것이다.

이런 일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살인사건일까?

히로시는 몇 번 그 생각을 했다.

객실에서?

투숙객이 한 짓이라면 청소비용을 청구하겠지만 쇼스케가 한 일이라면 조용히 눈을 감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 그것도 히로시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일개 직원이었을 뿐이므로.

살인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그 긴박한 상황조차도 히로시의 졸음을 쫓아내지 못했다.

그 무엇이라고 해도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히로시는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회전문을 밀고 젠이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는 순간 그는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괄약근이 한 순간에 확 조여지는 기분을 경험했다.

자리에서 튀어오르듯 히로시가 일어섰다.

그런 히로시를 보고 오히려 젠이 놀란 듯했다.

하지만 젠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평소의 잔인한 눈빛으로 히로시의 위아래를 훑더니 히로시를 노려보았다.

히로시는, 아, 하고 탄성을 내 놓고는 모든 감시 카메라의 작동을 정지시켰다.

히나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히나타는, 이 정도의 시간 동안 노려봐 주면 되는 건가? 하면서 히로시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히로시가 알아서 움직였다.

경찰에 신고를 하려는 건가 해서 긴장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히로시는 열심히 손을 놀린 후에 당당하게 히나타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준비는 제대로 되었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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