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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13화 (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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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극적인 효과를 노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고 목이 타서였다.

하지만 그가 다음에 한 말은 꽤나 극적이어서 사람들은 그가 극적인 효과를 노린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준 맥브라이언이 말하는 걸 희영이가 들었어요. 우리에 대한 사냥을 시작할 거래요.”

“……!”

“……!”

“……!”

“……!”

일동이 만들어내는 침묵은 거인이 작정하고 눌러 밟은 것만큼이나 무겁고 참담했다.

탈출한 원숭이들을 하나씩 정리한다는 말은 희영이 전했다.

희영은 그것 말고도 자기가 그동안 봤던 것들을 설명했다.

칸트가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를 처리하고 돌아와 준에게 보고하던 것과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의식이 있는 채로 두뇌가 파헤쳐지고 해마를 제거당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들이 거부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 남자는 우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 때문에 거의 미친 것 같아요. 하긴. 처음부터 미쳤던 거겠죠. 이런 일을 꾸미는 사람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희영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제민혁씨의 자살도 그 사람 짓이에요. 세계 각처에 그 남자의 실험체들이 있어요. 우리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고 깨닫고 완전히 이성을 상실했을 때 준 맥브라이언은 동시다발적으로 사고를 일으켰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 자살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났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살방법으로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완전히 비전형적인 방법으로 자살한 그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로 준 맥브라이언의 지시에 따른 거예요. 퍼스트 레이디 요트 사고도 자기가 아직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인하려고 즉흥적으로 꾸민 일이에요.”

“그 미친 놈은, 마음 먹기만 하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거군.”

장 항이 말했다.

희영과 기선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벗어나게 된 거지?”

소명이 물었다.

“그건 여전히 의문이에요. 그 남자의 통제를 무력화시키는 힘을 가진 누군가가 우리 중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긴 했지만.”

기선이 말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찾아 들었다.

사이크가 기선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희영씨한테서 얘길 들었으니 아시겠지만 ‘붉은 번개의 틈’은 막강한 재원을 기반으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집단이에요. 준 맥브라이언은 그 중에서도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사람이고요. 그 남자의 잔인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기는 하지만 우리들은 그 남자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죠. 장 항 형, 그리고 희영 누나에게 명령해서 아들과 연인을 죽이라고 한 인간이에요. 그런 인간이 전쟁을 선포했다면 지금부터는 정말 위험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 생활은 이제 완전히 포기해야 되는 걸까요?”

선우 형이 말했다.

“아마도요. 당분간은 같이 있는 게 안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선이 말했다.

“이 일이……. 그러니까 이 사태가 말이야. 이 사태가, 언젠가 끝나기는 할까?”

장 항이 말했다.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가 한 마디를 하면 모두가 그 말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곤 했다.

아무도 장 항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숨어있다가 굶어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연우가 말했다.

“베리쳐의 이자수익과 배당금으로만 한 달에 30억 이상이 나옵니다.”

사이크가 말했다.

“삼, 삼십, 억? 한 달에요?”

선우 형이 말했다.

“도대체 뭘 한 거예요? 비슷한 시기에 미래신문을 받고 나도 나름대로 굴린다고 굴려봤는데. 세상에.”

선우 형이 놀라서 말을 하는 동안 장 항은 재빨리 연을 댔다.

“내 것도 거기에 넣읍시다. 같이 굴려줘요.”

“으음. 그렇다면 나도.”

소명이 말하자 시영은 연우를 바라보았고 정인은 지명을 바라보았다.

“뭐, 그럼 그렇게 하죠. 베리처의 정체성은 금속체 인간들의 전용창구로 하죠.”

지명이 깔깔거렸다.

“금속체 인간? 웃기냐? 너는 이게 웃겨?”

희영이 살벌한 눈초리로 말했다.

워낙 오랫동안 알아오고 허물없이 지내기는 했지만 괄약근이 확 긴장될 만큼 무서운 말투였다.

“아하하, 누나, 그게…….”

기선이 희영의 어깨를 안으며 지명을 놀렸다.

“조심해. 여기선 네가 소수자야.”

“소수자 여기도 있는데.”

연우가 손을 들자 사이크도 주섬주섬 손을 들었다.

“소수자들, 상황 봐 가면서 떠들라고. 아니다싶으면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장 항의 말에 소수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저기…….”

장 항이 기선을 바라보았다.

“네, 형님. 왜요?”

“우리 애를 잠깐 데리고 있으려고 했었는데……. 사이크 얘기를 듣고 나는 이제 그런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해 있었거든. 나한테는 막이 생겨났다고 해서, 그래서 잠깐이라도 애랑 같이 있으려고 불렀거든.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겠지……?”

웬만해선 말 붙이기도 힘들게 생긴 인상의 남자가 그렇게 말을 하자 괜히 가슴이 저릿해 왔다.

기선은 사이크를 먼저 바라보다가 소명을 보았다.

장 항을 빼면 소명이 연장자라, 소명에게 무게 있는 조언을 구하려는 의미였다.

“왜 날 봐?”

소명의 말에 이제는 장 항 마저 소명을 바라보았다.

“아, 왜 오빠까지 날 봐요?”

“오빠?”

갑자기 이상한 타이밍에 터져서 모두가 웃었다.

소명은 자기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 것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빠 금속체는 확실히 막으로 막힌 거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옆에 살고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릴 부르면 될 테고. 오래 있는 게 아니고 너무 보고 싶어서 잠깐이라도 데리고 있으려고 그러는 거라면. 그렇게 해야지 어쩌겠어요?”

“그래도… 될까, 정말? 내 욕심으로 아이를 다치게 하는 거면 어떻게 하지?”

그것은 정말 의외의 모습이었다.

소명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보고 싶은 거잖아요. 데리고 오고 싶은 거고 같이 있고 싶은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확언을 해 주지는 못해요. 오빠가 결정해야 할 문제에요. 데리고 오면, 정말 힘을 다해서 지켜줄게요. 그 정도는 약속해 줄 수 있어요.”

소명이 힘주어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도 그러겠다고 말을 보탰다.

“그래. 고마워…….”

강한 남자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무산될 뻔했던 재회가 다시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에 울컥 눈물을 보였다.

“제 생각에는요.”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시영이 조용히 손을 들면서 말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계책을 세울 때도 누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면 판단을 내리는데 시간이 절약되지 않을까요?”

시영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자기가 먼저 자기 소개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생각하기에 자기가 가진 능력이 가장 초라해 보였던 것이다.

그럴 때는 모두가 공인하는 가장 하찮은 사람이 선두에 나서는 것이 좋았다.

사이크는 그 점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자기가 먼저 소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먼저 시작하죠. 저는 소수자 그룹에 속해 있고요. 스크루업이라는 영국 베팅업체에서 수석 오즈메이커로 있다가,”

“스크루업? 사이크가 그 스크루업에?”

선우 형과 장 항, 연우까지 동시에 소리쳤다.

“스크루업?”

시영이 연우에게 묻자 연우가, ‘있잖아. 그 왜.’로 시작하는 브리핑을 해 주었고 연우의 설명이 끝나자 시영도 사이크를 찬양하는 무리에 당당히 들어섰다.

“나는 사이크가 그 사이크라는 건 전혀 몰랐는데. 잘 알지도 못하고 무시해서 미안해.”

선우 형이 말했다.

“무시……까지 하고 있었어요?”

사이크가 진땀을 흘리며 웃었다.

“히멀건 녀석이 와서 설치니까 솔직히 마음에 들진 않았거든.”

이어서 장 항까지, 받아들이기 힘든 고해성사를 해버리자 사이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이크는 시영이 입을 달싹이려는 것을 보고 손가락을 냉정하게 들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됐어요. 거기까지만. 난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라서 이런 공격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시영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저건. 공격할 계획이었다는 뜻이잖아?’

어처구니없게도 그렇게 사이크의 소개가 끝날 뻔 했다.

지명이 자기 소개를 하려는 찰나에 사이크가 지명을 가로막았다.

“아, 이게 뭐야. 내가 나를 소개하던 중이었는데. 나 다시 할래요. 이번에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질문은 삼가 주세요.”

착한 학생들처럼 모두가 머리를 동시에 끄덕였다.

“스크루업이라는 영국 베팅업체에서 수석 오즈메이커로 있다가 양용은 쇼크라고 불리는 PGA 경기 직후에 영국을 떠나서 지명에게 왔죠. 여기에서 미래를 만났고 한국에 계속 남기로 결정하면서 지명을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게 된 거고요. 지금은 퓨쳐 컨트롤에서 일해요. 베리처의 자산 관리를 담당하는 게 제 일이죠. 최고기술경영자라는 직책이 주어졌지만 적당히 돈 받아가면서 우리 아들 좀 잘 봐 달라는 게 선 사장님의 숨은 뜻인 것 같아요.”

사이크의 말에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까 잠깐 얘기가 나왔지만 여러분들이 베리처에 지분 참여를 하고 싶다면 여러분들의 자산 관리도 제가 해 드리게 될 거예요. 베리처의 자산 중 금과 곡물에 투자한 걸 뺀 50퍼센트가 퓨쳐 컨트롤 주식에 들어가 있어요. 린다의 사망 사고가 있기 며칠 전에 베리처와 퓨쳐 컨트롤이 가지고 있던 다른 회사의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고 그걸로 전부 퓨쳐 컨트롤 주식을 사들였어요.”

“전부?”

지명이 물었다.

대형주, 소형주 할 것 없이 10~25퍼센트의 주가 하락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 홀로 빨간 화살표를 기록한 것이 퓨쳐 컨트롤이었다.

퓨쳐 컨트롤은 견고하게 주가 방어를 해냈고 매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장중에 하한가를 찍는 일이 있어도 장 마감때 보면 짧은 길이로라도 빨간 화살표를 유지했다.

전날보다 매일 매일 조금씩은 주가가 오른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거래량으로 매일 탑에 올랐고 여러 모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주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대장주와 격차가 줄어들었고 이러가다 주당 가격이 백 만원을 넘어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처음에는 대충 웃음기를 지은 채 사이크의 얘기를 듣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점점 그 느슨한 기운이 사라졌다.

허리를 세우고 사이크에게 바짝 몸을 기울인 채 이 괴물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것인지 잔뜩 귀를 기울였다.

“퓨쳐 컨트롤이 자력으로 주가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퓨쳐 컨트롤은 제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그래서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막강한 원동력을 실어 줬죠. 베리쳐가 퓨쳐 컨트롤 주식을 사 들인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미풍이 한 순간에 태풍이 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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