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 쇄도-10화 (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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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힘도 들이지 않고 린다를 물 속으로 빠뜨렸고 블랙호크가 자신을 데리러 오기

를 기다렸다.

마침내 블랙호크가 나타났을 때 50미터가 넘는 커다란 요트 주위로 살벌한 물결이 생겨나며 요트가 요동쳤다.

블랙호크에서 긴 밧줄사다리가 내려오자 칸트는 뛰어 올라 거기에 매달렸다.

선장이 나와서 칸트에게 손을 흔들었다.

칸트는 그렇게 요트를 떠났고 선장은 퍼스트 레이디의 사고 소식을 전하러 선착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던칸 상원의원은 오랜 친구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린다가 우울해하는 것 같아서 바다에 나가보라고 권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그는 죄책감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다.

준이 TV화면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멍청한 바본줄만 알았는데 그럭저럭 해내네요.”

타올로 허리 아랫부분만 감고 욕실에서 나와 준의 뒤에 서서 칸트가 말했다.

“멍청한 바보기만 했다면 상원의원이 되게 하지도 않았겠지.”

준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들떴다.

“세상은 준이 다스리고 있어요. 이 세상은 준한테 속해있어요.”

칸트가 속삭이자 준이 웃음을 지었다.

밧줄 사다리에 매달리다 팔에 얻어온 상처를 보고 준이 고개를 들어 칸트를 바라보았다.

“키스해줘. 칸트. 바보들이 떠드는 소리를 잊을 수 있게. 나를 뜨겁게 만들어봐.”

칸트는 그거야말로 가장 고대하는 명령이라는 듯 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

코스피지수는 순식간에 600포인트나 떨어졌다.

나스닥, 다우지수 할 것 없이 세계 경제가 일제히 바닥을 목표로 곤두박질쳐 내려갔다.

사고가 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스크루업의 신화가 베리쳐에 새롭게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곡물가와 금값이 연일 최고가를 갱신했다.

달러의 가치도 하락했고 어떤 것도 견고한 가치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히 집단적인 위기 상황이었지만 그 위기 상황을 책임지고 헤쳐나갈 권위자는 보이지 않았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아내가 우울증에 빠진 것도 모른 채 그녀가 홀로 고통받도록 방치하다가 결국 외로운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가 되어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다.

혼돈의 지독한 어둠은 한 줄기 희미한 빛마저 아주 밝은 것으로 부각시키는 힘을 가졌다.

가엾은 린다의 신실한 벗 던칸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고 그가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늘 같이 등장하는 '붉은 번개의 틈' 마크는 던칸의 이미지를 덧입었다.

외롭게 고통받는 사람의 친구.

강인하고 따뜻한 조언자.

사람들은 이제 '붉은 번개의 틈'에서 그런 메시지를 읽었다.

처음에는 브로치를 보이는 것으로 소극적인 지지만 나타내던 던칸도 어느새 왼쪽 손바닥 아래로 길게 타투를 새겼다.

그는 이제 그것이 주는 영향력을 실감했다.

세상이 준의 손아귀에 있다는 칸트의 속삭임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마침내 던칸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기선은 잠결에 희영이 자신의 팔을 붙드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기도 전에 벌써 몸을 일으키고 희영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은 채 희영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희영의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희영의 귓가에 기선이 속삭였다.

“옆에 내가 있는 거 알지?”

희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기선을 붙든 손에서 힘을 빼지 못했다.

“희영아. 보인다면 봐. 봐야 한다면 봐. 하지만 이렇게 긴장하진 마. 몸에서 힘을 빼고. 너는 안전한 곳에 있어. 네 옆에 내가 있고. 숨을 깊이 들이마쉬고 천천히 내 쉬어. 네가 다쳐서는 안 돼. 할 수 있지?”

희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선이 말하는 대로 호흡을 깊이 했다.

기선은 잔뜩 경직되었던 희영의 근육이 천천히 이완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희영은 눈을 뜨지 못했다.

고통스럽고 겁에 질리는데도 보지 않을 수 없는 희영의 능력이 기선은 원망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시선을 옆으로 돌릴 순 없어?”

기선이 물었다.

희영은 아쉬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기선이 희영의 가슴에 손을 얹자 여전히 거칠게 요동하는 심장의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기선은 희영이 그 시간에서 벗어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희영의 곁을 지켜 주었다.

희영은 자기가 안전하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스스로 주입해야만 했다.

희영의 앞에서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린다라는 이름 이후로 던칸이 유명세를 탔다가 그 유명세를 등에 업고 ‘붉은 번개의 틈’이 빠르게 교세를 확장했다.

길에는 붉은 번개 문양의 타투를 새겨주는 아티스트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고 붉은 번개의 틈이 벌어지는 순간에 외계 행성의 구원자들에게 빨리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붉은 번개 모양의 성상을 파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교리는 단순했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 고행을 할 필요도 없었다.

즉흥적인 현대인들의 취향과 어울리기 쉬운 종교여서인지는 몰라도 ‘붉은 번개의 틈’은 유행처럼 전역으로 번져갔다.

린다의 익사체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린다가 외계의 구원자들에게 구원을 받아 올라간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람들은 그 소문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을 믿고 싶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린다가 지금은 다른 누구보다 더 좋은 친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만큼 린다의 죽음이 주는 상처가 깊었다.

린다가 죽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붉은 번개의 틈에 호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보스턴의 한 유력한 지역 일간지는 꾸준히 붉은 번개의 틈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칼 맥브라이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는 제하에 붉은 번개의 틈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써낸 적도 있었다.

린다의 죽음 이후에 광풍처럼 붉은 번개의 틈의 바람이 부는 것을 경계하며 가장 먼저 공격을 가한 것도 역시 그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서 머물기로 하는 대신에 모험심이 가득한 젊은 여기자 퀸을 붉은 번개의 틈에 파견하기로 했다.

말이 파견이지 실상은 잠입이었다.

퀸은 준에게 비범한 청력이 발달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희영은 하필 그 장면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퀸이 일부러 구두를 벗고 토슈즈 같은 덧신만을 신고 다가갔는데도 준은 염탐꾼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칸트도 준과 같이 있었지만 준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보고도 한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준이 알려준 곳에 갔을 때 칸트는, 발각되지 않으려고 몸을 숨긴 채 벌벌 떨고 있는 퀸을 찾아냈다.

퀸은 칸트가 그대로 그 앞을 지나가 주기만을 기도했지만 퀸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이 칼집을 빠져나오는 칼이 내는 소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그것이 제 몸을 찌르고 들어왔을 때는 그 감각을 빠르게 인식하지 못했다.

칸트는 모욕감을 느꼈다.

준이 알려줄 때까지 침입자가 그렇게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준에게 마음이 기울수록 사소한 실수가 자꾸만 일어났다.

칸트는 준에게 미안한 마음과 자기혐오가 쌓여서 분을 이기지 못했다.

단풍나무가 깔린 복도에 퀸이 흘린 핏자국이 페인트처럼 이어졌다.

“새 입교자에요.”

칸트의 말에 준은 아니라고 했다.

칸트는 다시 한 번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준의 앞에서 자신을 망신 준 퀸에게 모든 적대감을 쏟아 부었다.

수 십 대의 컴퓨터에서 얼굴 인식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몇 시간 만에 퀸의 정체가 드러났다.

“첩자였단 말이지?”

준은 재미있는 일을 발견한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칸트는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듯이 준의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퀸. 퀸이라는 거지.”

준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리듬을 만들어냈다.

“칸트, 나한테 무슨 생각이 났게?”

준이 말했다.

“네?”

“수술을 해 보자. 수술을.”

“어떤……?”

“더이상 번민하지 않아도 되도록 구원해 주자고. 붉은 번개의 틈에 들어온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해 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지, 칸트?”

“준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 꼭 알 필요도 없어. 그때마다 내가 알려주면 되니까.”

준은 일어서서 조용히 칸트의 아랫배를 더듬었다.

칸트는 움찔했지만 달아나지는 않았다.

준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떠올랐다.

“아기가 자랄까?”

“네?”

준은 또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방치된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퀸을 내려다보았다.

퀸은 남은 용기를 모두 끌어 모아서 준을 쏘아 보았다.

“좋아, 충분해. 자긍심을 가져도 될 거야. 누구도 나를 그렇게 본 사람은 없거든. 자긍심을 가져. 그리고 마음껏 떠올리도록 하라고. 곧 그 모든 기억이 너를 떠나게 될 거거든.”

준이 먼저 방을 나가자 칸트는 퀸을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를 깨달았다.

수술.

망각을 주입해 줄.

희영은 처음에 그것이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여느 꿈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깨달았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혀진 여자는 뒤로 손이 묶여 있었다.

대충 감아서 묶은 붕대는 피로 젖어 있었다.

희영은 본능적으로 이제부터 끔찍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퀸은 윙윙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리캉이 움직일 때마다 제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것을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머리 표면에 찬 공기가 고스란히 와서 닿을 정도로 머리가 전부 밀려 버렸을 때는 제가 마땅히 느껴야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짐작하지도 못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소독약이 머리에 발라졌다.

칸트의 손길에 자비는 없었다.

그것은 마치, 화가 나서 인형의 머리카락을 박박 신경질적으로 빗어대는 어린 여자 아이의 손길 같았다.

퀸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칸트에게 떠밀려 스스로 수술대 위로 올라갔다.

어쩌다가 배에 힘이 들어갔는지, 겨우 멈춘 듯했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배를 감은 붕대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준은 마스크를 쓰고 랜턴을 고정한 채 퀸의 머리 쪽에 미리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따끔한 통증을 주면서 주사 바늘이 들어가 퀸의 머리를 마취시켰다.

퀸은 더 많은 주사 바늘이 들어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복부의 통증을 잠깐이라도 잊게 해 준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꼬집는 것 같은 주사바늘이 왜 들어왔던 건지를 깨닫는 순간 퀸은 온몸을 뒤흔들며 경악했다.

칸트는 귀찮은 일을 맡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구속구로 퀸의 몸을 묶었다.

팔과 다리가 꽁꽁 묶이고 리도카인이 효력을 발휘하자 퀸은 저항을 멈추었다.

그렇다고 국부 마취제가 퀸의 의식까지 마비시킨 것은 아니었다.

퀸은 드릴이 자기 머리 위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는 선을 따라 칸트가 메스를 움직였다.

머리 가죽이 들어올려지고 드릴이 구멍을 뚫었다.

칸트는 준이 뚫은 구멍으로 퀸의 두뇌를 같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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