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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7화 (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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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도 없는 영상만 정인의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어쩌라고. 그래서 뭘 어쩌라고!!’

유경태의 거친 수염이 정인의 얼굴에 닿기 직전에 그의 몸이 뒤로 거칠게 잡아당겨졌다.

정인은 유경태의 두 다리가 허공으로 들리는 것을 보았다.

하얗게 질려가는 얼굴로 유경태는 눈동자를 돌려서 공격자를 바라보려고 애썼다.

“살, 사아, 사알, 사알려 흐윽!!”

정인은 그 억센 팔이 금방이라도 유경태의 목뼈를 끊어 놓을 것만 같아서 당황했다.

“그만하세요. 이런 인간 때문에 죄를 지을 필요는 없어요.”

정인이 소리쳤다.

“나도 알아. 나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팔이 치워지자 유경태는 그 자리에서 나뒹굴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유경태가 고개를 들어 공격자를 바라보았다.

고통이 한 발 물러난 자리에 경악이 촘촘하게 채워졌다.

“기분 나쁘지? 여자한테 당했다는 말은 하기 싫지? 그래서 내가 일을 더 쉽게 할 수 있는 거야. 멍청한 녀석들이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여자한테 맞았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하려고 하거든. 너도 어디가서 자랑할 생각은 하지 마라. 응? 그리고 한 번만 더 내 동생 주위에 얼씬했다가는 그때는 확실하게 뼈를 꺾어놔 줄 테니까 경고 잊지 말고 해골에다 새겨.”

소명이 발로 허벅지를 걷어차자 유경태는 귀신에게서 달아나는 것처럼 황망하게 도망쳐 버렸다.

정인은 아직까지 크게 요동치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많이 놀랐니?”

소명이 물었다.

“고마워요, 언니.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여기에 나타날 리가 없을 거라고 제 마음대로 자신하고 있었어요.”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하네.”

소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아, 마침 말 잘했다. 기껏 여기까지 왔다가 주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뻔 했잖아.”

소명이 주머니에서 머리핀을 꺼냈다.

“빌려줘서 고마웠어.”

“아, 이것 때문에 일부러…….”

“집까지 데려다 줄까?”

“집은 바로 앞이에요.”

“그러니까 그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집 앞이라고 안심하다니 아직 어리네. 내가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잡아간 사람들이 얼마나…….”

소명은 아차싶어 허둥대며 말을 멈추었다.

정인도 깊게 캐묻지는 않았다.

소명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빌딩관리 용역업체를 운영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닐 거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같이 들어가서 차라도 하실래요? 잠자리에 들 시간이긴 하지만.”

“아직 놀란 것 같은데 기꺼이 같이 가 주지.”

소명이 말했다.

정인은 소명과 나란히 걸으면서 소명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왜?”

소명이 물었다.

“어, 아뇨. 저기, 사실은, 보기보다 다정다감하신 분인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 틀렸어. 처음 생각이 맞을 거야. 나는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거든.”

“그래도 구해주러 오셨잖아요.”

“핀을 돌려주려다가 구해준 것 뿐이지, 구해주러 온 건 아닌데?”

“그래도…….”

“평생 빚을 갚으려고 고생하다가 막상 돈을 갚으려고 갔는데 채권자가 죽었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어이 없겠니? 모파상의 [목걸이]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잖아.”

소명은 요즘 애들은 정말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하며 탄식하는 어조로 말했다.

“언니, 모파상의 [목걸이]는 그 내용이 아닌데요……. 친구 목걸이를 빌렸다가 잃어버리고 그거랑 똑같은 걸 사서 갚아주느라 10년이나 고생을 하고 친구한테 고백을 했는데 자기가 빌려준 목걸이는 가짜 보석이었다고 말하는 건데…….”

“그러니까.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소명의 말에 정인은 입을 다문채 크큭 거리고 웃었다.

지명이 소명의 화법에 대해 얘기하면서 분개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지명의 주장에 의하면 소명은 온갖 아이디어와 고상하고 창의적인 표현을 가로채기 하는데 선수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라는 한 마디로.

“언니가 부러워요. 많은 사람한테 도움이 될만한 능력을 가졌잖아요.”

“그래? 왜 갑자기 이런 힘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줄 마음은 없는데.”

“네? 정말요?”

“그건 내 방식이 아니거든. 약한 개체는 일찍 사라져서 거대한 자연에게 순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 그래도 언니가 부러운 건 사실이에요.”

“마음대로 해. 부러워하지 말라고 때리겠니, 어쩌겠니.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 건 아니지?”

“제가 일찍 사라져버려야 되는 것도 아니죠?”

정인이 웃으며 말했지만 소명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직 너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뭐라고 말 하기는 어렵지.”

“네에?”

정인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가 겁을 먹고 재빨리 웃음 소리를 줄이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정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소명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아, 이 자식, 밤에 왜 전화질이야!!”

소명은 정인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길거리를 꾸욱 꾸욱 눌러 밟으며 골목에서 사라져버렸다.

정인은 그런 소명의 뒷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뭘하는 사람일까 궁금해 했다.

소명의 덕에 유경태로 인해서 놀랐던 마음은 어느 새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나중에 거기에 다시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정인은 부지런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지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는 무사히 집에 들어갔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인은 그가 그런 사소한 것을 보고하기 위해서 전화를 걸어준 것이 고마웠다.

조용히 웃느라고 정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침묵이 만들어졌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

지명이 물었다.

"아, 아뇨."

정인은 서둘러 말을 했다가 곧 말을 덧붙였다.

“저 이사할 거예요.”

지명은 난데없는 말에 놀랐지만 유경태가 찾아왔다는 얘기랑, 소명이 아니었다면 큰일날 뻔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실에 나왔던 희영이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어물쩡거리면서 지명의 전화 통화에 귀를 기울이더니 지명이 통화를 마치자 지명에게 다가왔다.

“정인이한테 무슨 일이 있데?”

희영이 물었다.

“유경태가 찾아왔데요.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는데 많이 놀란 것 같아요.”

“그 개자식이 또!”

희영은 자기 일처럼 화를 냈다.

“가봐야 되지 않겠어?”

희영이 말했다.

“하지만…….”

“됐어. 가봐. 우리를 지켜달라고 언제까지나 지명씨를 우리 곁에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거잖아. 기선씨랑 나는 각자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있어도 되는 거고.”

“그렇게…까지요?”

“그렇게까지는 아니어도 될 거라고 생각해. 있잖아. 나는……. 나는 이제 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더 이상은 그렇게 무력하게 휘둘리는 좀비가 아니라고 생각해. 지명씨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할 필요는 없어. 희생은 그동안 해 왔던 걸로 충분해.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더 이상 지명씨를 붙잡는다면 그건 정말 아니야. 아닌 거야.”

희영이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더 심하게 말해 버릴 수도 있어. 지명씨가 있는 게 불편하다고 말이야.”

지명이 웃었다.

“누나가 그렇게 말해도 믿지 않을 텐데요?”

희영이 웃으며 어깨를 축 늘였다.

“그래. 안 믿겠지. 이젠 정말 서로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가 됐잖아. 그러니까 내 마음도 알 거야. 이젠 갈라서자!!”

지명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믿어요. 그리고 형을 믿는 것 이상으로 누나를 믿고요.”

거창하게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던 것이 뻘쭘하게 여겨질 정도로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결을 보게 되었다.

선 사장이 사이크를 퓨쳐 컨트롤의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아파트를 주겠다고 제안하자 사이크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미래신문을 받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동에 아파트를 주고 이웃해 살게 하면 사이크가 그들을 관찰하면서 금속체로부터 받는 영향을 조사하는 것이 더 쉬워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사이크는 자기 생각이 어떻냐고 묻기 위해서 얘길 꺼내본 것 뿐인데 지명은 이미 다 이루어진 일인 것처럼 반겼다.

“정말 꼭 필요한 일이었어.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사이크와 지명은 신이 났지만 모두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시영과 연우는 자기들이 그들과 계속 연관될 필요가 있겠냐는 얘기를 나누었고 선우 형도 부정적이었다.

장 항은 중립이기는 했지만 조금 마음이 기울기는 했다.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참으려면 황폐해진 마음에 무언가를 새로 심어 넣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소명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지만 가까이에 꼭 휘트니스 클럽이 있어야한다는 점만큼은 단단히 못을 박아두었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될 대가족이 형성되었다.

평상복 차림의 선 사장을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지명은 의아해했지만 소명의 현관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줄행랑을 치는 아버지를 보면서 한참만에야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은 미래는 끝까지 그곳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사이크가 이사하는 날 와서 보고 부러워하기는 했지만 미래는 자신이 그들에게 위험을 나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적어도 '붉은 번개의 틈'에 대해 자료가 더 모아질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좋을 거라고 미래는 강하게 말했다.

***

준은 오랫동안 움직이지도 않은 채 한 곳에 앉아 있었다.

칸트는 그의 그림자만 벌써 몇 시간째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준을 지키라는 것이 칸트에게 내려진 임무였다.

준이 그토록 집중을 할 때면 금속체의 박동에 영향을 받은 그의 실험체들이 기이한 방법으로 자살에 이르렀다.

자기 몸을 꽁꽁 묶고 불붙은 기름을 끼얹는가 하면 거대한 냉동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버티다가 죽음에 이른 사람도 있었다.

준은 아직 자신의 통제가 불능상태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즐거워했다.

“칸트.”

한 남자의 몸을 폭파시킨 후에 어린 아이 같은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준이 칸트를 불렀다.

“좋은 생각이 났어. 다시 신문을 만들자. 발행일은 닷새 후의 날짜로 할 거야.”

“테오에게 연락해야 할까요?”

“테오? 왜? 5515K니 버스정류장이니 하는 건 이제 소용없어. 어차피 그들은 한데 모여 있잖아. 그보다는 퓨쳐 컨트롤 비서실에 던져주는 게 낫겠지.”

칸트는 준의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안심했다.

“어떤 기사를 준비하고 계세요?”

“USA의 퍼스트 레이디가 요트 사고로 죽는 건 어떻겠어? 몇 마리의 붉은 원숭이들이 내 통제를 벗어났다고 해서 언제까지 우울해 필요는 없겠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는지 보여주지. 그때는 그 녀석들도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게 되겠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알려줘야 페어 플레이가 되지 않겠어?”

칸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죠, 준.”

준의 얼굴이 오랜만에 자신감과 열정에 차 보여서 칸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퍼스트 레이디의 죽음이라.'

칸트는 포치를 내려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칸트의 스마트폰 화면에 상원의원 던칸의 이름이 떠올랐다.

"영원히 써 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축하해요, 던칸. 이렇게 가치있는 일에 쓰일 수 있게 돼서."

칸트의 머릿속에는 시나리오를 위해 동원될 사람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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