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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2화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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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활주로 위의 제트기를 향해 걸어갔다.

여자의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려지는 것 같으면 칸트가 여자의 등을 밀었다.

손으로 밀었지만 여자는 총구로 밀리는 것 같다고 느끼며 공포에 떨었다.

힐끗 칸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는 보지 않는 게 나았겠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무표정한 그 얼굴은 지옥에서 여자를 맞으러 나온 사자의 얼굴처럼 보였다.

킬힐을 신은 채 계단을 올라가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여자는 뒤뚱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여자가 들어가자 칸트는 따라 들어가지 않은 채 뒤로 사라졌다.

여자는 머뭇거리며 칸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칸트가 같이 있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여자가 부탁한다고 들어줄 칸트도 아니겠지만.

“돌아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어둠 속에서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시는 겁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붉은 번개의 틈으로 구원을 얻어 올라갔다고 알려져 있었다.

제시만 남겨지자 사람들은 제시를 따돌렸다.

죄에 쩌든 아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면서 제시를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시의 부모가 교단에 의해 살해당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시가 마침내 교단에서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제시가 어디로 간 건지 궁금해했다.

차라리 죽어버린 거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던 제시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제시가 어떻게 되었다는 교단의 발표도 나오지 않자 사람들은 제시가 죽어버린 것으로 믿어버렸고 그것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랬던 제시가.

다시 교단에 나타난 것이다.

제시는 가는 곳마다 소란을 일으켰다.

교단의 가르침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에 대해서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남자들에게 끌려가서 맞는 일도 허다했지만 제시는 도무지 입을 다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 않던, 부러워마지 않던 자기 부모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불손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들은 구원받아 붉은 번개의 틈새로 끌어올려진 게 아니라 교단 지도자들에 의해서 살해당한 거라고 했다.

조용히 제시를 주시하던 칸트가 제시를 끌고 갔다.

칸트는 제시에게 단 한 번의 기회만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시는 간단하게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차라리 돌아오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구조의 부조리를 제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다면.

그냥 차라리 비루한 목숨을 조용히 연명이라도 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계단을 내려가면서 칸트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준이 불을 켜자 안이 천천히 밝아졌다.

준은 커다란 소파 위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호화로운 실내 장식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벽에는 몇 종류의 술과 유리잔이 놓인 장식장 하나를 빼고는 상아 장식품들만이 차곡 차곡 걸려 있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1/2씩 줄어들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는 코끼리 이빨.

제시는 거기에서 자기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너를 놓친 거라고 생각했나 봐?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한 걸 보면.”

준이 말했다.

“…….”

“날갯짓이 너무 처량해보여서 눈감아 줬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어?”

준은 억양 없이 말했다.

“준. 출발하겠습니다. 비행은 두 시간 27분이 걸립니다.”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었지?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

준의 말에 제시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썼다.

“옷을 벗어 봐. 제시.”

제시는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저었고 준에게서 멀어지려다가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질 뻔 했다.

준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지금 기분이 굉장히 안 좋은 상태야. 실험실에서 붉은 털 원숭이들이 잔뜩 탈출해 버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전혀 짐작이 되지 않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허공을 찢는 제시의 비명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헉!!”

희영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희영의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지명마저 놀라서 제 방에서 달려왔을 정도였다.

희영의 얼굴에는 식은 땀이 맺혀 있었다.

지명이 기선을 바라보았고 기선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희영을 바라보았다.

“또 꿈을 꿨어?”

희영은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파랗게 질린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았고 간간히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무슨 꿈이었는지 말하고 싶어?”

기선이 희영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희영을 감싸 안으면서 물었다.

희영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일부러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하지만 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여자가 제트기에 탔어요. 그 안에는 상아가 걸려 있고……. 여자의 비명 소리가……. 하늘에서…….”

지명이 제 이마에 손을 짚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희영에게 전기충격을 가해보고 싶다고 사이크가 말했을 때 어떻게든 그를 막아야만 했다.

희영이 사이크에게 먼저 부탁한 일이었다고 해도 지명이 막았어야 했다.

사이크가 희영의 머리에 젤을 바르고 관자놀이를 두들기지 않도록 막았어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 뉴런을 자극하겠다고 강한 전류를 흘려 넣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다.

희영이 이런 꿈을 꾼 것은 그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명은 당장에라도 사이크를 찾아가서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런 지명을 멈춘 것은 희영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였다.

“'붉은 번개의 틈'. 제트기에 그렇기에 쓰여 있어.”

지명과 기선은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옷을 벗어 보라고 했잖아.”

준이 말했다.

제시는 떨리는 손으로 탑과 쇼츠를 벗었다.

더 이상 그를 거스를 용기같은 것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준이 다시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다시는 이 교단의 근처에는 기웃거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준 맥브라이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부모와 함께 교단에서 살 때도 준을 마주할 일은 없었다.

제시는 자기 또래의 준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준은 늘 실험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겨우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하필 이런 모습이라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시는 바닥을 더듬었다.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준의 페니스에 시선이 갔다.

준은 제시의 짙은 유두 색깔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금발과 회색 눈동자에 집중을 한 채로 섹스를 마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은 손가락으로 살짝 제시의 가슴을 건들었다.

서서히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회색 눈은 처음 봐.”

준이 말했다.

제시가 그의 앞에 누워 다리를 벌렸지만 준은 그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만 턱을 날카롭게 움켜쥐고 제시의 여린 회색 눈을 무섭게 응시한 채 제시에게 그의 페니스를 만지게 했다.

제시의 알몸을 쓰다듬는 손가락이 칼날의 감촉처럼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준의 손가락이 지나가는 부위마다 살이 베어져 나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뜨거운 액체가 뿜어져 나오다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제시는 그런 것 같다고 느낄 뿐 그런 일이 실제로 자기 몸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준의 페니스를 애무하는 동안에도 그의 손길은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그럴 때마다 제시의 몸에 뜨거운 감각이 밀려들었다.

제시는 몸을 일으켜 그의 것을 목구멍 깊숙한 곳에까지 받아 들였다.

구토감이 밀려 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제시는 준의 입에서 천천히 신음 소리가 나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시험 삼아 그의 고환을 손바닥 위에 놓고 굴리자 그의 신음 소리가 한층 강렬해졌다.

제시는 자세를 편하게 잡아 본격적으로 그를 애무할 생각을 했다.

그의 기분이 좋아지면 준에게 자비와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닥에 손을 짚었고, 그러는 바람에 바닥에 고인 미끌거리는 액체에 손이 미끄러져 준의 위로 상체가 쓰러졌다.

준이 화를 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제시는 그제야 자기 주위에 일어난 일들, 자기 몸에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있었다.

준은 조롱하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뻗어 잔을 들었다.

기분을 가볍게 하자면서 그가 만들어온 칵테일.

제시는 이미 비어버린 자신의 잔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약에 취했다고 해도, 살점이 난도질당하도록 모르고 계속 움직여 대고 있었다는 것을 제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시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피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과거에 누군가가 쏟아내서 만들어낸 흔적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제시의 몸에서 벌컥 벌컥 펌프질 되어 나오는 중이었다.

제시는 아주 느려진 동작으로 고개를 들어 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 상황을 설명해 주길 원했지만 준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녀는 보다 현실적인 공포감을 표출하려 했지만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을 들어 목을 만져보니 거기서도 피가 흘렀다.

제시는 준의 알몸을 바라보았다.

그가 언제 옷을 전부 벗었는지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준의 몸에 페인트가 튄 것처럼 붉은 액체가 튀어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분명히 이 방에는 남자와 제시, 두 사람이 있고 자신은 그저 공중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 보고 있는 중이라고 여겼다.

준의 느린 웃음이 집요하게 입술에 남았다.

기괴한 웃음이었고 당장이라도 그 웃음을 걷어내고 싶은데 도무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준은 뻐근한 느낌이 남은 페니스에서 콘돔을 벗겨내 묶었다.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제시의 몸에서는 이제 더 이상 인간적인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순도가 높은 고용량의 마약을 너무 많이 써버린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시에게 그 정도의 자비를 베풀어줄 정도의 아량은 있는 남자라고 준은 자신을 추켜세웠다.

움직이지 않는 여자의 몸은 고깃덩어리와 다를 게 없었다.

희영은 구토감을 느끼며 욕실로 달려갔다.

잠에서 깼는데도 영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희영의 눈 앞에서.

한 여자가 죽어갔다.

끔찍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자기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피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희영은 그 남자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소스라치며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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