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3.
그건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카라카크!
그는 이제 감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은 괴물이다.
그 누구도 카라카크를 어찌할 수 없다.
심지어 기가스가 나선다고 해도 카라카크를 죽일 수는 없다. 오히려 기가스를 쓰는 건 패인이 될 것이다. 카라카크는 온갖 종류의 독을 쓸 수도 있고, 온갖 종류의 흑마법도 쓸 수 있으니까. 기가스를 탑승한다는 건 제한된 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가스의 강한 힘을 가지게 되겠지만 그에 다른 제약도 있다.
문제는 기가스의 강한 힘으로도 카라카크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 결국 남는 건 제약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수르가 기가스가 아닌 창을 꺼내든 건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하하하.”
카라카크를 상대로 싸움을 건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비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재미있군.”
카라카크는 정말 진심으로 웃었다. 진심으로 재미있었으니까.
“정말 재미있어.”
얼마만인가?
누군가의 도전을 받는 것이?
아니, 카라카크는 이런 정정당당한 도전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흑마법사였으니까. 사악하기 그지없는 흑마법사였으면서 실제로도 온갖 패악을 저지른 인간 쓰레기였다.
그런 카라카크는 그냥 처단해야 할 존재였다.
정정당당?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카라카크를 죽여도 비난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정말 더러운 수법을 썼다고 해도 카라카크를 잡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영웅으로 불리며 온갖 종류의 칭송을 받을 것이다.
카라카크는 그런 놈들과만 싸웠다.
온갖 비열하고, 더럽고, 추잡한 수법을 쓰는 놈들을 상대로 이제까지 싸워왔다.
물론 그런 그들에게 카라카크는 그들이 준비해온 것보다 더 비열한 수법으로 그들을 죽였지만.
그런데 지금 여기에!
“이런 식으로 싸우게 될 줄은 몰랐군.”
정정당당하게 싸움을 거는 놈이 나타났다. 카라카크 인생에서 가장 신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경험은.
“좋아.”
카라카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되기도 할 것이다.
“받아주지.”
카라카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로잡아야 했으니까.’
이 싸움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카라카크 입장에서는 애초부터 문수르를 제압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싸우는 도중이라면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
오러 마스터?
‘가소롭군.’
솔직히 말하면 콧웃음이 나온다. 오러 마스터란 것이 약한 존재인 건 절대 아니지만, 카라카크의 힘 앞에서는 순식간에 가소로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유?
인간이니까.
‘금방 끝내주지.’
제 아무리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그 본질이 인간인 이상 카라카크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 카라카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이 그 사실을 증명해줄 것이다.
그 불길한 기운은 이윽고 색마저 띠기 시작했다.
그 기운이 점차 퍼져나가며 단숨에 사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하늘 위에 태양이 밝게 떠있음에도 문수르의 시야는 단숨에 어두컴컴한 밤처럼 변해버렸다.
모든 게 보이지 않았다.
‘온다.’
그러나 문수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싸움을 건 건 그 누구도 아닌 문수르다. 카라카크가 보여주는 건 걸어온 싸움에 대한 대응이다.
놀랄 건 없다.
맞서 싸우면 된다.
‘오러로 느낀다.’
문수르가 오러를 이용해 기감을 넓히기 시작했다. 문수르의 감각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런 문수르의 눈빛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잡았다.’
문수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창을 휘둘렀다. 창이 어둠을 베었다. 베어진 어둠 사이로 빛이 보였다. 그 빛 틈 사이로 필로스 왕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는 카라카크가 보였다.
문수르는 그 틈이 사라지기 전.
‘집중.’
창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마치 드릴처럼 손바닥 안에서 창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강력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창이 탄환처럼 발사됐다.
타깃은 카라카크!
방향은 일직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문수르는 모든 것을 자신의 창 안에 집어넣었다.
‘두 번은 없다.’
카라카크와의 일전을 계획하기에 앞서서 문수르는 단 한 번도 격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한 번 혹은 많아야 두 번.
문수르에게 주어진 기회는 그 정도뿐이다. 그 이상의 기회를 바라기엔 카라카크라는 존재가 너무 거대하다.
이윽고 문수르의 창이 카라카크를 꿰뚫었을 때!
푸욱!
창이 피륙을 뚫는 역겨운 소리가 났다. 카라카크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문수르의 공격을 허락했다.
카라카크의 왼쪽 가슴을 뚫고 나온 문수르의 창은 여전히 나선으로 회전하고 있었고,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러는 카라카크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필살이다.
카라카크의 육체는 걸레라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정말 넝마가 되어버렸다.
이 정도면 제 아무리 대단한 생명체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위력적이야.”
카라카크는, 가슴이 뻥 뚫리고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 카라카크는 말을 뱉었다.
“하지만 결국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군. 보통의 오러 마스터들과 크게 다를 게 없군.”
말은 계속됐다.
카라카크는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여유가 넘쳤기에 카라카크는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오러 마스터의 공격은 위력적이지만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카라카크에게는 온몸이 찢기더라도 무사하다.
다른 종류의 타격, 육체를 정말 순식간에 산산조각내다 못해 소멸시킬 정도의 공격이 아니라면 카라카크를 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카라라카의 죽음이란 결과를 보기엔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카라카크가 굳이 방어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카라카크가 만든 이 어두컴컴한 공간은 문수르의 공격을 방해하거나 혹은 막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
“이제 끝이군.”
그 순간 어둠이.
“크윽!”
문수르의 몸을 속박하기 시작했다.
이 어둠은 카라카크가 문수르란 존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카라카크는 미소를 지었다.
끝났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문수르는 이제 카라카크의 것이 될 것이고 문수르가 가진 모든 지식과 능력 그리고 차원이동능력도 카라카크의 소유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카라카크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카라카크가 원하는대로 바뀔 것이고, 카라카크가 명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왕이 된다.’
종국에 카라카크는 마(魔)로 가득한 세상의 왕이 될 것이다.
마왕!
카라카크는 일찍이 그 어떤 인간도 이룩하지 못했던 절대적인 경지에 올라가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을 것이다.
“이것…….”
그때였다.
“이것 밖에 없었다.”
카라카크에 의해 속박 당한 문수르. 그런 문수르는 지금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카라카크, 그가 자신의 몸 속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럽고, 역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냥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직 이것 밖에 없었다!”
문수르는 기뻤다.
이 모든 것!
지금 카라카크의 노림수!
“카라카크, 네놈을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가장 저렴한 대가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문수르는 예상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을, 카라카크가 하고자 했던 것, 그가 노리고 있었던 것!
그 전부를 문수르는 예상했다.
그리고 문수르는 그런 카라카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흐하하하! 마지막 발악이냐?”
카라카크는 비웃었다.
카라카크는 지금 문수르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파악될 텐데?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문수르는 역으로 웃었다.
그 순간 문수르의 육체를, 지식을 빠르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던 카라카크의 얼굴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읽은 것이다.
문수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문수르가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
“네놈!”
카라카크가 소리쳤다.
그 순간.
“노크, 노크.”
문수르가 주문을 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