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91화 (289/293)

291화

<90화. 노크맨.>

1.

노운은 초조했다.

‘왜 이야기가 없는 거지?’

디데이가 왔다.

오늘까지 문수르가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는다면 혹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면 대치국면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무너져야 일이 끝날 것이다.

물론 오늘까지 대답을 하지 않을 경우 문수르가 잃는 건 그렇게 크지 않다.

이제르트 후작과 이리아 그리고 이제르트 후작가의 기사들 몇몇과 이십여 대의 기가스 정도다.

그냥 보기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것들이지만 문수르가 목숨을 구한다는 결과를 본다면 절대 큰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카라카크의 제안 같은 협박에 응수하지 않는 게 문수르 입장에서는 나름 정답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이미 진즉부터 준비를 끝낸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이미 이 근처에 핵폭탄을 설치해둔 건가?’

핵폭탄의 설치는 끝났다.

그러나 문수르는 그 사실을 노운에게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

‘나라면 차라리 그렇게 한다.’

노운이 만약 지금 문수르의 처지였다면 오히려 아무 것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배신?

배신이라면 배신이겠지.

하지만 배신 운운할 정도로 노운과 문수르의 사이가 끈적끈적한 사이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노운은 자기자신은 잘 알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자신 같은 인간은 해치울 수 있을 때 해치우는 게 이득인 부류다. 괜히 이것저것 정이니, 뭐니 하는 마음으로 살려둬서 딱히 좋을 것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문수르가 그걸 모를 리 만무하다.

‘젠장.’

이 순간 노운은 고민에 빠졌다.

‘그냥 몸을 뺄까?’

노크 두 번이면 된다.

노크 두 번이면 케르빈 월드를 단숨에 떠날 수 있다. 제 아무리 카라카크가 대단하다고 해도 차원이동으로 도망치는 노운은 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안전하게 도망치는 게 가능하다.

더군다나 문수르가 정말 노운도 함께 죽일 생각이라면 지금 사고가 가능할 때 도망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핵폭탄이란 놈은 무슨 조짐 같은 게 있는 놈이 아니니까. 터지는 순간 범위 내의 모든 생명체들, 모든 것들을 소멸시켜버리는 놈이다. 놈이 터진 후에는 제 아무리 노운이라고 해도 도망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친다면?

과연 그 후 돌아왔을 때 노운은 자신의 것이 남아있을까?

어쩌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할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문수르가 다른 의도가 있다면? 문수르가 다른 노림수가 있어서 뜸을 들이는 거라면?

‘어떻게 하지?’

노운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 순간.

- 노운, 접니다.

문수르가 연락을 줬다.

2.

노운은 비명을 내지르듯 소리쳤다.

“빌어먹을 새끼!”

그 욕지거리는 다름 아니라 문수르, 그를 향한 욕지거리였다. 더불어 지금 문수르는 노운이 볼 수 있는 장소에 있었다.

왕성의 내성에 위치한 큼지막한 정원.

그곳에 모두가 모였다.

문수르와 노운 그리고 카라카크., 이 세계, 케르빈 월드로 불리는 이 차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노운은 재차 소리쳤다.

“병신 새끼. 일처리를 그딴 식으로밖에 처리하지 못하니까 지금 그 꼴인 거다!”

노운의 분노 이유.

그건 바로 문수르의 옆에 있었다. 문수르의 옆에 있는 적당한 007가방 크기의 녀석.

핵폭탄이다.

노운이 핵탄두를 살짝 개조에 시한폭탄이든 뭐든 정말 간편하게 쓸 수 있게 만든 놈이다.

문수르가 그걸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터뜨릴 거면 몰래 터뜨렸어야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폭탄은 이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터뜨릴 만한 놈이 아니었다. 몰래, 정말 적의 심중에 조용히 설치해둔 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터뜨려야 하는 놈이었다.

더군다나 그 표적이 누구인가?

“노운, 말이 많군.”

지금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뱉는 자.

그렇다.

핵폭탄의 표적은 그 누구도 아닌 카라카크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은 무시무시한 흑마법사!

그런 그의 앞에서 공개적으로 핵폭탄을 터뜨린다는 건, 그를 죽일 수 있는 확률을 반의 반으로 줄인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문수르가 그걸 모를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문수르는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자리를 마련했다.

“카라카크.”

문수르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옆에 두고 있는데 안색이 멀쩡하면 그게 비정상인 것이겠지.

“거래를 승낙했다. 이제 네 차례다.”

문수르의 말에 카라카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카크는 살짝 두 눈을 감았다.

음음.

그리고는 가볍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좋아.”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르트 후작과 이리아, 그 둘을 풀어주지.”

“포비어 경을 비롯한 이제르트 후작가의 모든 관계자들 역시 풀어주도록.”

“그건 다른 이야기일 텐데?”

“그렇다면 별 수 없지. 전부 같이 죽는 수밖에.”

말과 함께 문수르가 손에 쥐고 있던 핵폭탄을 가볍게 흔들었다. 사실 가볍게 흔들릴 만한 놈은 아니었다. 무게가 제법 대단한 놈이니까. 그러나 문수르가 누구인가?

“카라카크, 네놈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오러 마스터다. 내가 네놈을 죽이진 못해도 네놈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이 폭탄 정도는 터뜨릴 정도의 실력은 있다.”

오러 마스터!

문수르는 강자다. 케르빈 월드에서도 필시 손에 꼽을 만한 강자가 바로 그다.

카라카크도 안다.

“좋아.”

카라카크는 길게 이야기를 끌 생각이 없었다.

사실 문수르가 지금 눈앞에 등장하는 순간 카라카크가 원했던 모든 것이 마련된 상황이었으니까.

‘하하하!’

터져 나오려는 웃음.

‘미치겠군.’

그걸 간신히 참는 것만으로도 카라카크는 힘이 들 지경이었다.

과연 이게 얼마만일까?

언제부터인가 카라카크는 잊어버리게 시작했다. 성취감이라는 놈을 말이다. 어느 경지에 오르는 순간 무엇을 얻는 간에 카라카크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떠한 결과를 얻어도 감흥이 없었다. 카라카크가 무언가를 원하면 당연히 그것이 카라카크의 것이 되는 것이 세상의 진리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문수르를 얻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 카라카크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성취감이란 놈을 느낄 수 있었다.

‘하하하!’

카라카크는 재차 웃었다.

하지만 그는 그 웃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카라카크는 생각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해.’

준비는 끝났다.

카라카크가 적당한 수작을 부리는 순간 문수르의 모든 것은 카라카크의 것이 될 것이다.

동시에.

‘문수르를 얻으면 노운, 놈도 처리한다.’

문수르의 다음 타깃은 노운이다.

노운을 이대로 살려두거나 혹은 노운과 손을 잡을 생각이 카라카크는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그런 카라카크의 심중.

‘빌어먹을 새끼.’

노운이 눈치 채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노운은 마치 깨끗하기 그지없는 호수 아래를 바라보듯 카라카크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놈은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다.

‘문수르 병신 새끼!’

이 모든 게 문수르 때문이다.

“이제르트 후작과 이리아 이제르트, 그리고 이제르트 후작가의 기사들이 뭐가 중요하다고!”

노운이 재차 소리쳤다.

노운은 분노했다. 아니, 분노의 유무를 떠나서 지금 노운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문수르가 핵폭탄을 터뜨리면 알짤 없이 죽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카라카크는 노운은 살려둘 생각이 없다.

결국 어떤 선택지가 나오든 노운의 목숨은 이미 산 목숨이 아니라는 의미다.

딱 하나!

경우의 수가 하나 더 있긴 하다.

문수르가 카라카크를 힘으로 처치하는 경우! 혹은 여기서 적당한 타협이 성사되어 카라카크가 말없이 떠나는 경우!

전부 로또 당첨 확률 만큼이나 가능성이 없는 경우다.

노운은 이를 갈았다.

“병신 새끼. 대와 소를 구분도 못하는 병신 새끼. 그딴 정에 휩쓸리니까 그 모양 그 꼴인 거다!”

노운은 재차 문수르를 힐난했다.

문수르는 그런 노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건 명백하기 그지없는 무시였다.

노운은 더 분노했다.

문수르의 무시가 노운의 성깔에 불을 질렀다. 가뜩이나 불안한 노운의 마음이 결국 폭발했다.

댐이 무너지듯.

“야이 새끼야!”

무너진 댐 사이로 물이 터져나오듯.

터져 나온 노운의 감정은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였고, 노운은 감정에 휩쓸렸다.

순식간이었다.

노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수르에게 다가갔다.

‘음.’

카라카크가 살짝 움찔했다. 혹이 놈들이 어떤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니까.

그러나 노운이 문수르의 멱살을 잡는 순간.

그리고.

퍽!

문수르가 제 멱살을 잡은 노운을 단숨에 제압해 내동댕이치는 순간 카라카크는 의심을 버렸다.

이건 그냥 난장판이다.

노운도, 문수르도 딱히 이러다할 교감은 없다. 오히려 그 둘은 이제 정말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됐다.

카라카크는 미소를 지었다.

문수르는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카라카크, 제안을 하나 하지.”

갑작스런 문수르의 말.

카라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안이라…… 내가 그 제안을 들어주어야만 하는가?”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이 폭탄을 터뜨리는 것, 다른 하나는 이 폭탄을 터뜨리지 않는 것.”

“그 폭탄이 그렇게 강한가?”

“장담하지. 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증발시켜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놈이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제안을 일단 들어주는 수밖에.”

카라카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문수르가 입을 열었다.

“한판 붙자.”

말과 함께 문수르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창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창을 고쳐잡았다.

츠릉!

창이 묘한 소리를 내뱉었다.

문수르의 오러와 창이 가진 기운이 공명하면서 나는 소리였다.

동시에 문수르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임전태세!

말 그대로다. 문수르는 정말 진지하게 카라카크와 싸우기 위한 준비와 각오를 하고 온 것이다.

카라카크는 그런 문수르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고.

“미친 새끼!”

노운은 그런 문수르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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