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90화 (288/293)

290화

7.

노운은 재차 생각했다.

‘간단한 일이잖아? 핵탄두, 타이머 기폭장치까지 만들어준 놈이야. 그저 가볍게 카라카크가 있는 곳에 설치해두면 돼.’

핵폭탄.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일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치였을 것이다. 막말로 핵폭탄을 10개 정도만 케르빈 월드에 가져온다면 골치 아픈 일은 전부 무시하고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은 죽었지만 한석균이 이룩한 부와 권력이라면 핵탄두를 구하는 건 어렵기 해도 불가능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석균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첫 번째 노크맨인 문수르 역시 굳이 그런 엄청난 무기를 요구하진 않았다.

그 둘 사이에서는 무언의 공감대가 있었다.

그건 아니라는 식의 공감대.

하지만 노운은 달랐다. 노운은 일단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한석균으로부터 1개의 핵탄두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핵탄두를 살짝 개초해서 시간폭탄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운은 그걸 당장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카라카크를 죽이기 위해 쓸 줄은 몰랐지만 이런 날이 올 것 같은 조짐은 있었지.’

노운은 놀기 위해서, 자기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크맨이 되는 걸 수락했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핵폭탄 같은 걸 이용해서 일을 처리하는 건 쉽게 말해서 그의 미학에 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최악의 상황, 한 번 꺼내들 수 있는 카드를 미리 챙겨둔다는 마음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카라카크의 존재는 그 비장의 카드를 쓰기에 가장 제격의 상대였다.

‘간단한 일이야.’

노운은 재차 생각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카라카크는 핵폭탄이 뭔지 모른다. 그런 걸 알면 그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뭐,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지는 꽤 오래됐지만.

더불어 핵폭탄은 무슨 마법 같은 것도 아니다. 크기도 크지 않았다. 왕성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다. 여기에 심지어 시간 폭탄이기도 하다.

적당한 타이머를 설정해두면 된다.

노운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제 몸을 피할 수 있을 만한 확실한 방법이 있기도 했으니까.

대신에 콩탄 왕국의 왕도에 있는 모두가 죽겠지만 카라카크를 죽이는 대가로 그 정도 값을 치르는 건 오히려 싼 거다. 노운 입장에서는 굉장히 저렴한 일이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건 문수르다.

‘약해지지 마라.’

이리아 이제르트 그리고 이제르트 후작. 그 외에 이제르트 후작가와 관계된 자들.

그들이 인질로 이곳 왕도에 잡혀 있다. 카라카크도 바보는 아닌지라 최소한의 보험은 들어둔 것이다. 더불어 그 보험을 들기 위해 카라카크는 적지 않은 수고와 노력을 해야만 했다.

문수르는 그런 인질 앞에서 약해지면 안 된다!

‘각오는 했잖아? 응?’

절대 안 된다.

‘카라카크를 죽이면 돼. 이제르트 후작가의 계승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카라카크를 죽이는 게 그 무엇보다 가장 이익이 되는 길이야. 다른 길은 없어.’

노운은 재차 기도하듯 말했다.

그 기도를 문수르가 들을 수 있을 리 없음에도 말이다.

‘제발.’

그건 달리 말하면 노운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문수르, 명심해라. 다른 방법은 없다. 차선책 같은 건 없어.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이야.’

왠지 이번 일이 망쳐질 것 같은 느낌!

무언가 일이 틀어질 것마 같은 불길한 조짐!

8.

카라카크.

그는 필로스 왕의 가죽을 뒤집어 쓴 채 곰곰히 사색에 잠겨 있었다. 사실 그에게 사색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표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준비는 끝났다.’

그 순간 카라카크가 슬그머니 제 손을 보았다.

그의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창백한 느낌이 난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카라카크, 그는 이제 얼마든지 자신의 원하는 육체 정도는 가볍게 만들 수 있을 만한 경지에 올라섰다.

무수히 많이 실행되었던 생체실험들이 카라카크에게 불사에 가까운 능력과 권한을 주었다.

그렇기에 카라카크는 가능했다.

‘노운 혹은 문수르.’

카라카크가 노리는 것.

그리고 그가 하려는 일.

‘그 둘의 몸을 빼앗으면 이야기는 끝.’

타인의 몸을 빼앗아 그 몸에 카라카크의 영혼과 정신을 집어넣는 것!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차원이동의 능력을 손에 넣는 거다.’

노운에게도 말했다.

카라카크의 목적은 문수르의 몸을 손에 넣은 후에 노크맨이 가지는 차원이동 능력을 손에 넣는 것이다.

노운에게 밝힌 이야기.

그러나 노운에게 정답을 밝히진 않았다.

‘이 세계를 악마의 땅으로 만들겠다.’

차원이동능력으로 차원이동을 할 생각은 없다. 단지 다른 무언가를 차원이동을 통해 데리고 오고 싶을 뿐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악마다.

흑마법사들이 흑마법을 쓰기 위해 언제나 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대상!

흑마법사에게 강력한 힘을 주는 무시무시한 자들!

아직도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미지의 힘을 가진 존재들!

카라카크가 부르려는 건 그런 자들이다.

그들을 이 세계에 부를 것이다.

더불어 카라카크는 그런 악마들의 왕이 될 생각이었다. 말 그대로 마왕이 되는 것이다.

‘끝이 보인다.’

마왕(魔王)!

흑마법사의 궁극점이다.

무수히 많은 흑마법사들이 제각각 다른 이유로 흑마법사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들의 궁극점은 하나다.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는 것!

애초에 힘을 탐했기에 흑마법사의 길에 접어든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힘의 궁극점을 추구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노운, 놈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한 보험.’

더불어 노운이 아닌 문수르를 타깃으로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노운은 이미 거의 손에 넣었다. 그럼 문수르만 손에 넣으면 노크맨 전부를 손에 넣는 것이다.

그 정도 밑그림은 그려둬야 무슨 일이든 나름 안심하고 시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사실 언제나 문수르를 노렸다. 노운의 등장은 카라카크의 입장에서도 갑작스러웠다. 문수르를 노렸기에 문수르를 잡을 수 있을 만한 인질들, 카드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얼마 남지 않았다.

‘노운이 수작을 부리겠지만.’

노운.

놈이 순순히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리라고는 카라카크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노운, 놈은 카라카크와 비슷하니까.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어떻게든 적을 박살내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 차는 부류다. 자신의 앞길을 막은 자를 씹어 죽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는 부류다.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

더군다나 할루이 이제르트의 수하들이다. 차원이동이란 엄청난 일을 해낸 할루이 이제르트가 가진 능력은 카라카크 입장에서도 부담의 차원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노운은 필시 그런 할루이 이제르트로부터 무언가 비장의 카드 정도는 받아두었을 터.

‘그것만 막으면 끝이군.’

비장의 카드는 먹힐 때 위력적이지만 반대로 실패했을 때의 사용자가 입는 타격은 더 위력적이다.

‘준비는 끝났다.’

카라카크는 그런 노운의 비장의 카드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약속된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9.

카라카크가 일주일의 시간을 약속했을 때 문수르는 일단 노운이 준비해둔 비장의 한수부터 챙겼다. 그 후에도 시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문수르가 한 일은 다름 아니라 불스 후작과의 만남이었다.

불스 후작.

문수르가 스스로를 피스언 가문의 일원이라고 소개하는 순간부터 중립을 표방했던 그는 제 영지에 박혀 있었다. 제 영지에서 마치 고슴도치처럼 온갖 가시를 내세운 채 조용히 있었다.

그런 그를 문수르가 찾아온 것이다.

불스 후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군.”

놀라면서도 그는 자신의 내심을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연극을 했다.

문수르는 그런 불스 후작을 보며 짧게 감탄했다.

‘참 대단한 자긴 대단한 자다.’

불스 후작이란 자.

어수룩한 자는 아니다. 어수룩한 자였다면 자신 앞에 등장한 기회를 잡아채지 못했을 테니까.

결과적으로 그는 후작의 위에 올랐다.

더 나아가 변방의 백작이었던 그는 단숨에 콩탄 왕국 정계의 실세 중의 실세가 됐다.

지금은 흐지부지됐지만 문수르가 카스트로 왕태자의 아들임을 밝히고 피스언 가문의 일원임을 주장했을 때 콩탄 왕국의 귀족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건 불스 후작이었다.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공작의 연합전력과 이제르트 후작 파벌의 싸움이 자명한 상황에서 불스 후작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콩탄 왕국의 정세가…… 아니, 왕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불스 후작가가 킹메이커가 될 수 있는 권한을 쥐게 된 것이다.

물론 페스로 제국이 개입하면서 흐지부지됐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도 불스 후작이 가진 정치적 역량, 입지는 절대 작은 것이 아니었다.

대단한 자다.

‘정치 감각이 대단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태풍이 연달아 몰아치던 콩탄 왕국의 정치 속에서 불스 후작은 놀라울 정도의 균형감각을 보여주며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조금의 실수만 했어도 불스 후작이 이룩했던 것들은 마치 신기루처럼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이 자를 찾아온 것이다.

‘각오는 했다.’

애초부터 했던 각오들이 이제 와서 사라졌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견고해졌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또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각오 역시 얼마든지 있다.

이제르트 후작과 이리아, 그 둘의 목숨이 아깝지만 이제르트 후작가 전체를 위해서 그 둘의 목숨 정도는 포기할 생각이 있다.

더 나아가 문수르는 이 노름판에서 자신의 목숨마저 칩 삼아 배팅할 생각이 되어 있었다.

“길게 대화를 나눌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으니.”

불스 후작 역시 그런 문수르의 각오를, 의중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빨리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길게 미사여구 따위를 내뱉으며 이야기를 질질 끌지 않았다. 단도직입, 정말 빠르게 본론을 논했다.

문수르는 그런 불스 후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런 불스 후작의 태도에 나름 감사했다.

“이제부터 제가하는 말은.”

이윽고 문수르도 입을 열었다.

“불스 후작님을 믿기에 하는 말입니다.”

“하하하.”

짧게 웃는 불스 후작.

그는 문수르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도 놀랐지만, 지금 들은 말이 더 놀라웠다.

“나를 믿는다라…… 내가 그 정도로 자네에게 신용을 줄 만한 위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것을 믿는 게 아닙니다.”

“호오, 그럼 무엇을 믿고 나를 찾아온 거지?”

“불스 후작님의 감각을 믿는 겁니다.”

“내 감각?”

“적어도 불스 후작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콩탄 왕국을 무너뜨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불스 후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더 이상 놀라움은 없다.

이제부터 필요한 건 각오, 그 두 글자뿐이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불스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문수르의 최후의 시나리오가 에필로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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