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84화 (282/293)

284화

8.

피스언.

그것은 콩탄 왕국 왕가의 성이었다. 달리 말하면 왕이 될 가장 기본적인 자격의 증거이기도 했다.

문수르 피스언.

그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부분의 이들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카스트로 왕태자의 밑에 자식이 있다니?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거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카스트로 왕태자 슬하에 자식이 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혹여 있었다고 해도 필로스 왕이 왕위를 찬탈하는 순간 처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말했다.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하물며 이제르트 후작가는 최후까지 카스트로 왕태자를 보필했던 가문 아닌가?”

“필로스 왕의 마수를 두려워 한 카스트로 왕태자가 자식의 존재를 숨겼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온갖 추론들.

그러나 사실 그런 추론들이나 가설들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문수르가 정말 피스언 왕가의 계승자인가, 아닌가 그게 아니지.”

“아무렴! 지금 이 순간 문수르가 그 무엇보다 그럴싸한 왕위 될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이제르트 후작가, 정말 많은 것을 준비했구나!”

진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수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금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그럴싸하다는 거다. 이제르트 후작가와 카스트로 왕태자의 관계를 고려하면 문수르가 충분히 피스언의 이름을 가진 자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문수르는 범인이 아니다. 그저 왕가의 피를 계승한 허울뿐인 자가 아니었다.

“문수르 경의 출중한 실력을 보면 필시 범상치 않은 내력의 소유자가 분명할 터!”

“문수르 경이 피스언 왕가의 인물이라면 그건 어떤 의미에서 피스언 왕가의 자랑이자, 콩탄 왕국의 홍복이 될 수 있겠지.”

문수르가 가진 능력 그리고 문수르가 이제까지 보여준 결과물들은 오히려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피스언 왕가의 인물이기를 기도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로스 왕이 그 말이 거짓이라고 해봤자 그 주장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집단이 움직인 것이다.

페스로 제국!

콩탄 왕국에 패배하며 잠시 몸을 웅크린 채 상처를 핥고 있던 그들이 등장했다.

9.

카라카크는 말했다.

“거래를 하지.”

말이 거래지, 그건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카라카크가 마음만 먹는다면 노운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까.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노운이라고 했나? 네 녀석이 원하는 건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제황이 되는 거겠지?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내 힘과 네 능력이 합쳐진다면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은 감히 없을 것이다.”

노운은 받아들였다.

카라카크가 정확히 어떠한 대가를 원하는지 듣지 못했음에도 일단 받아들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고개를 숙여주지만.’

당장 목숨이 위험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카라카크의 제안을 거절할 정도로 노운은 삶에 대한 집착이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내 목숨이 보장되는 순간 카라카크, 네놈은 죽는다.’

일단 무조건 살아남는 것이다.

그 후에 기회가 오면 카라카크를 처치할 것이다. 보다 확실하게! 보다 완벽한 방법으로! 다시는 세상에서 카라카크란 존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그런 와중에 문수르로부터 연락이 왔다.

노운, 그는 그것을 기회로 삼았다.

‘나이스 타이밍.’

노운이 전면적으로 움직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10.

페스로 제국은 콩탄 왕국과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정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다.

특히 3배급 기가스의 전력은 여전히 무사한 상황이었으며 카이탄 황제의 황군은 단 하나의 피해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콩탄 왕국과의 전쟁에서 가장 이득을 본 건 그 누구도 아닌 카이탄 황제일 것이다. 귀족들은 콩탄 왕국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손해를 입었지만, 황제의 힘은 여전히 강력한 상황. 자연스럽게 황제의 권력이 보다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페스로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카이탄 황제의 앞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런 와중에 카이탄 황제가 말한 것이다.

“문수르 피스언, 그는 카스트로 왕태자의 자식이 맞다. 그 사실은 나, 카이탄 황제가 증명한다.”

갑작스런 말이었다.

막말로 페스로 제국의 황제가 어째서 콩탄 왕국의 왕가에 대해서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하지만 문제는 황제의 존재감이다.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에 한 방 먹긴 했지만 과연 세상 그 누구도 페스로 제국의 주인, 카이탄 황제를 무시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과거 페스로 제국은 콩탄 왕국의 정세에 한 번 개입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

필로스 왕, 그가 누구 힘으로 왕위에 올랐던가? 페스로 제국의 힘! 카이탄 황제의 도움 덕분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카스트로 황태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콩탄 왕국의 왕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리 본다면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의 피스언 왕가에 숨겨진 비밀을 몇 개 정도 알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

“만약 페스로 제국이 문수르 피스언, 그를 차기 왕위의 주인으로 밀어준다면…….”

“과연 필로스 왕이 왕위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필로스 왕이 불리한 상황에서 제국의 힘만으로 왕위에 올랐던 것처럼, 문수르도 제국의 힘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다.

더군다나 문수르는 이미 본인 스스로도 강력한 힘과 능력 그리고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제국이 작은 도움만 준다면, 정말 콩탄 왕국의 왕위는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다.

11.

노운은 카라카크에게 말했다.

“이번에 병력을 이끌고 콩탄 왕국으로 향할 겁니다.”

“무슨 이유지?”

“문수르, 그 자가 왕위에 오르는 순간 곧바로 전력으로 콩탄 왕국을 무너뜨릴 겁니다.”

“갑작스럽군. 콩탄 왕국을 무너뜨리는 이유는?”

“내가 영웅이 될 기회가 필요하니까.”

“영웅?”

“영웅은 난세 속에서 나오는 법. 더군다나 이미 모든 황자들이 황태자 위에 걸맞지 못한 모습을 보인 와중에 내가 나서서 콩탄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온다면?”

“후후, 재미있군.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도 페스로 제국의 황제가 될 수 있을까?”

“황제가 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영웅이 되는 것뿐이지.”

“그 다음은?”

“페스로 제국의 개입으로 콩탄 왕국의 왕위가 바뀐 상황에서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을 공격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카라카크는 미소를 지었다.

대답할 필요도 없다.

만약 노운의 말대로 사건이 터진다면, 그건 명백한 페스로 제국의 잘못이며 동시에 페스로 제국의 전쟁에 대한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럼 절대 다른 국가들, 콩탄 왕국을 제외한 타국들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

콩탄 왕국 다음의 표적이 자신들이 될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의자 위에 엉덩이 무겁게 앉아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페스로 제국의 전력으로 콩탄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해도 피해는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콩탄 왕국의 전력은 절대 가소로운 전력이 아니다. 무엇보다 문수르가 있고 이제르트 후작가가 있다. 그들이 가진 저력은 무시할 게 못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노운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는 건 문수르, 그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때가 될 것입니다.”

노운.

그는 문수르와 약속을 지킬 생각이 그리 많지 않은 듯보였다.

12.

콩탄 왕국은 세 개의 세력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공작을 중심으로 모인 세력들. 그들은 이제르트 후작가를 비난하며 동시에 문수르가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려 콩탄 왕국의 정세를 어지럽힌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그에 반하는 세력, 이제르트 후작가의 반역죄는 어림도 없는 소리이며 문수르는 카스트로 왕태자의 자식이 맞음으로 피스언 왕가는 문수르를 왕가의 핏줄임을 정식으로 인정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세 번째 세력은 이 두 세력 사이에서 이러다할 의견 표명도 하지 않은 채 중립을 지키는 자들로 이 중립 세력의 구심점에는 그 누구도 아닌 불스 후작이 있었다. 불스 후작은 굳이 지금 같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배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까.

더불어 세가 가장 큰 건 이제르트 후작 파벌이었다. 필로스 왕의 무리한 정치적 수작에 반감을 느낀 귀족들이 상당했을 뿐더러, 무엇보다 페스로 제국이 은연중에 이제르트 후작 파벌 그리고 문수르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보이는 상황에서 필로스 왕을 택하는 자들이 많을 리 만무했다.

결국 선택의 몫은 필로스 왕에게 넘어갔다. 필로스 왕은 무조건 선택해야 했다.

이제르트 후작에 대하 반역죄가 틀렸으며 이제르트 후작을 풀어주고 이제르트 후작에 대한 사과와 함께 문수르를 피스언 왕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아니면 전쟁!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었다.

그리고 필로스 왕이 택한 건 바로 전쟁이었다.

13

전쟁이 시작됐다.

필로스 왕이 왕명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제르트 후작가는 감히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콩탄 왕국의 왕실을 위협하는 건 물론 짐의 귄위마저 노리고 있다. 이들을 심판하여 반드시 콩탄 왕국을 바로 잡고 왕실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이제르트 후작을 아예 죽일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동시에 이제르트 후작을 따르는 귀족들에 대해서도 온갖 명목으로 죄를 뒤집어 씌었다.

그건 너무나도 강경한 행동이었다. 필로스 왕이 미친 게 아니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반대로 필로스 왕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잃을 바에는 전쟁이라도 시도해보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필로스 왕의 입지는 좋지 못햇다.

더 나아가 선공을 취한 것 역시 필로스 왕이었다. 필로스 왕이 휘하의 귀족을 시켜 이제르트 후작가를 돕던 귀족가를 공격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단순히 말뿐이었던 전쟁이 피를 봐야만 결판을 낼 수 있는 전쟁으로 변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문수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르트 후작가의 병력을 이끌고 곧바로 왕도로 진격할 준비를 했다.

아니, 이미 진젹하고 있었다.

‘이제르트 후작님은 죽은 것으로 친다.’

이런 이제르트 후작군에 대응하기 위한 필로스 왕의 최후의 술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르트 후작을 인질로 내세우겠지.

그 때문에 이제까지 이제르트 후작을 죽이지 않고 그저 감옥에만 가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수르는 그 협박에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 협박에 넘어가는 순간 이제까지 문수르가 해온 모든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을 위해 죽어간 이들의 희생이 물거품이 된다.

‘후계자는 있다.’

더불어 이제르트 후작가에는 이미 이제르트 후작가를 이어가줄 훌륭한 후계자도 있었다.

문제될 건 없다.

이제르트 후작을 죽은 자로만 생각한다면,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처리될 것이다.

더불어 문수르는 전쟁을 길게 보지도 않았다.

‘왕도로 진격이다. 필로스 왕이 도망치든 말든 그건 아무래도 좋다. 왕도 함락이 곧 승리의 증거가 될 테니까.’

이것저것 치고 박고 할 필요가 없다.

이제르트 후작군이 왕도를 점령하는 순간, 이제르트 후작가의 승리가 확실해질 테니까.

필로스 왕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

아마도 제이머스 공작가의 모든 병력과 전력을 왕도에 집중시켰을 것이다. 그 전력에 필로스 왕의 왕국군이 포함되면 막강한 전력이 구성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문수르에게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부술 수 있다.

지금 이제르트 후작가의 전력은 최강이다.

단지!

‘카라카크, 그래 차라리 이번 전쟁에 모습을 드러내라. 네놈과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게!’

카라카크, 그 무시무시한 변수가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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