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80화 (278/293)

280화

6.

카라카크.

그가 노리는 건 다름 아니라 황도가 비어지는 일이었다.

카라카크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이 이끄는 군대만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황제와 독대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너무나도 쉽게 끝날 것이다.

카라카크를 단신으로 처치할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 그 누구도 혼자 힘으로 카라카크를 죽이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카라카크란 흑마법사는 이미 인간의 수준을 초월해버린 정말 괴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콩탄 왕국을 이용했다.

적당한 수작을 부려 제국의 군대가 콩탄 왕국이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린 것이다.

작전은 성공했다.

제국의 엄청난 군대가 콩탄 왕국을 짓밟기 위해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기대 이상으로 말이다.

그리코 카라카크는 엄청난 속도로 황도에 도달했다. 심지어 황도에 주둔하던 귀족들마저 자신을 잡겠다는 명분을 앞세운 채 콩탄 왕국과의 전선에 향한 상황이었다.

카라카크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그 어디도 아닌 제국의 황도에 있는데, 자신을 잡기 위해 콩탄 왕국으로 간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이란 말인가?

종국에 카라카크는 황제의 근처까지 이동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황제까지 향하는 길 곳곳에는 정말 온갖 마법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숫자의 마법들도 카라카크를 막진 못했다.

이윽고 황제 앞에 섰을 때.

카라카크는 진실을 본 것이다.

“페스로 제국의 황제가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있다니? 이런 재미난 일은 그동안 몰랐다는 게 너무 아쉽군.”

황제는 이미 다른 누군가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그 방법도 기묘했다. 흑마법을 이용한 게 아니었다.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든 것이다. 그 방법은 이제까지 온갖 생체실험을 통해 인간을 조작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방법을 터득한 카라카크마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카라카크는 거기서 한 가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만나고 싶다.

감히 페스로 제국의 황제를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든 놈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

그래서 어떠한 수작을 부리기 전에 기회를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 이 만남의 이유였다.

노운과 카라카크.

어떤 의미에서 가장 궁합이 잘 맞을지도 모르는 두 존재가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7.

콩탄 왕국의 논공행상이 시작됐다. 전장에서 승리한 자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건 당연했다.

무수히 많은 자들이 상을 받았다. 작위가 올라간 자, 새로이 작위를 받은 자, 영지를 하사 받은 자. 하지만 개중에 재물을 받은 자는 많지 않았다. 콩탄 왕국의 사정이 좋지 못한 탓이었다. 필시 전쟁에서 이긴 건 맞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전장은 다른 어디도 아닌 콩탄 왕국의 영토였다. 전쟁이 한 번 일어난 땅은 몇 년이 지나도 쉽사리 회복되지 못한다.

더군다나 승리한 대가로 얻은 건 승리, 단 그 두 글자뿐이다. 페스로 제국의 영토로 진격해서 새로이 영토를 얻은 것도 아닐 뿐더러, 페스로 제국으로부터 전쟁에 따른 배상금을 받는 것도 아니다. 배상금 문제는 아직 이러다할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포로로 잡은 귀족들의 몸값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난행을 겪고 있다. 페스로 제국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패배한 귀족에게 보여줄 아량 같은 건 없었으니까.

결국 왕실이 나눠줄 수 있는 건 작위나, 영토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번 전쟁에서 절대적인 공을 세운…… 아니, 그냥 이번 전쟁을 거의 주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이제르트 백작가에게는 대체 어떤 식으로 상을 주어야 할까?

그 부분에 대한 결론이 나왔다.

“이제르트 백작가에게 후작의 위를 하사한다. 또한 이제르트 백작가 근처의 세 곳의 영지를 이제르트 후작가에 하사한다.”

후작의 작위 그리고 영지.

그것이 전부였다.

금화니, 뭐니 어느 정도의 재물 역시 하사됐지만 이제르트 백작가, 아니 이제르트 후작가가 현재 상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콩탄 왕국 최고의 부자 가문 중 하나란 소문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용돈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몇몇 이들은 말했다.

“턱 없이 부족하군.”

“이제르트 후작가의 피해도 적지 않은데, 고작 후작의 작위 하나로 끝을 보는 건 역시 좀…….”

심지어 극단적인 말을 하는 자도 있었다.

“콩탄 왕국이 품기엔 이제르트 가문이 너무 커진 거지.”

이제르트 후작가는 이제 콩탄 왕국이 어찌할 수 업을 정도로 거대해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이제르트 후작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파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힘은 있어도 정치권에서는 이러다할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던 이제르트 후작가가 이제는 콩탄 왕국의 정치판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8.

문수르는 몇 가지 안건들을 정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조만간 있을 이제르트 후작의 왕도행에서 이제르트 후작이 필로스 왕과 그 외의 귀족들을 상대로 제안할 안건들이었다.

이제 정치적 발언권을 얻게 된 이제르트 후작가다. 말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통과되든, 아니면 거절되든 정치적 현안을 제시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여하튼 그 일 때문에 문수르는 바빴다.

더군다나 지금 영지 사정은 장난이 아니었다.

‘전쟁에 집중하느라 이곳저곳에서 일이 터졌어!’

영지의 모든 역량을 전쟁에만 집중시켰다. 부작용이 없을 리 만무하다. 곳곳에서 일이 터졌다. 더불어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터진 일들은 처리되지 않았다.

‘마구르 녀석! 언제 돌아오는 거야?’

더군다나 나름 문수르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해줄 수 있는 마구르가 영지를 떠나면서 일처리가 늦어졌다. 결국 문수르는 피로를 풀 휴식시간도 없이 곧바로 영지 업무를 진행해야 했다.

‘엘프와 드워프의 숫자가 너무 많아. 이게 핵심이야.’

최근 이제르트 후작가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다름 아니라 엘프와 드워프의 숫자가 늘어나는 일일 것이다. 칼란 왕국을 제외하면 엘프나 드워프의 처지는 좋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콩탄 왕국의 이제르트 후작가가 엘프와 드워프에게 나름 사람다운 대우를 해준다고 하니, 그 소식을 들은 다른 엘프 부족과 드워프 부족들이 목숨을 걸고 이제르트 후작가로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숫자가 이제는 꽤나 커져서, 어느 순간부터 엘프와 드워프들이 이제르트 후작령 내에서 큼지막한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내치지 않는 이상, 이제는 그들과도 어느 정도 거래를, 정치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들을 그저 단순한 노동력으로 바라보았다가는 훗날 큰 일이 터질 게 분명했다.

‘이번 왕도행에서 엘프와 드워프에 대한 권리를 얻어내야 돼.’

그렇기에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니라 콩탄 왕국 전체는 아니더라도 이제르트 후작령 내에서는 엘프와 드워프의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내용의 증명서였다.

필로스 왕이 사인만 해주면 된다.

콩탄 왕국의 왕인 필로스 왕이 사인을 해주고, 허락을 해준다면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터!

더불어 문수르는 필로스 왕은 이 증명서에 사인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필로스 왕은 여론을 고려해서라도 이제르트 후작가에 몇 가지 파격적인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안다.

필로스 왕, 콩탄 왕국의 왕실이 이제르트 후작가의 전공에 대해서 제대로 된 보답을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앞으로 필로스 왕은 몇 차례 더 이제르트 후작가에게 보답을 해주어야 한다.

이제르트 후작가가 내민 이 증명서에 사인을 해주는 것 역시 보상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 다음.’

드워프와 엘프들의 권리를 인정받게 되면 그들을 좀 더 표면으로, 세상 밖으로 끌어낼 것이다.

‘마법연구.’

그 후에는 곧바로 흑마법을 연구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이 세계의 마법은 과거보다 발전했지만 모든 것이 기가스를 위한 방향으로 틀어져 있다.’

지금 세상은 흑마법에 대해서 너무나도 취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

카라카크만을 운운하는 게 아니다. 카라카크는 무수히 많은 흑마법사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흑마법사의 숫자는 생각 이상으로 많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대비책은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게 그렇겠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정해진 예산, 정해진 인력으로는 결국 제한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 마법에 대한 예선, 마법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은 기가스 생산과 기가스 관련 마법에 대한 연구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흑마법에 대한 대책예산을 줄어들 수밖에!

문수르는 이 부분을 늘릴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 당장 내가 카라카크와 1대1로 붙는다면 이길 수 있을까?’

카라카크.

당장 눈앞에 있으면 찢어죽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정말 눈앞에 카라카크가 번듯하게 등장하다고 해서 문수르가 그를 해치우리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제 아무리 오러 마스터인 문수르라고 해도 카라카크와 1대1 승부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

더군다나 이제 더 이상 흑마법사와의 싸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도 없다.

‘한 회장님.’

한석균 회장, 그는 죽었으니까.

‘젠장.’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노크 클락을 이용해서 어스 월드로 돌아가고 싶다. 하다못해 무덤에라도 인사를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지금 너무나도 다급하다. 차원이동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1분 1초가 너무 중요하다.

어쨌거나 한석균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그로부터 카라카크를 처치할 방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결국 문수르는 자기 힘으로 카라카크를 처치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엘프들이 방법을 알아내줄 것이다.’

그나마 인간들보다 마법에 대해서는 깊이가 더 있는 엘프들이 작정하고 카라카크란 존재를 해부하기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한 가지 더 남아있다.

‘새로운 왕을 세우는 것.’

바로 필로스 왕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왕을, 이제르트 후작가의 이념에 동의할 수 있는 왕을 세우는 일.

‘일단 어떻게든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공작의 세력을 줄여야 한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9.

이제르트 후작의 왕도행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필로스 왕에게 줄 선물들 그리고 이제르트 후작가의 세를 자랑하기 위한 온갖 것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질 지경이었다.

심지어 이제르트 후작 본인도 말이다.

이제르트 후작은 고개를 돌아봤다.

자신의 등 뒤에 존재하는 저 천란하면서도 웅장하기 그지없는 기가스와 마차들, 수레들을 보니 가슴이 든든해졌다.

“후작님.”

그런 이제르트 후작을 부르는 목소리.

“이제르트 후작님.”

“아, 문수르 경.”

문수르의 목소리였다.

“미안하네. 아직 후작이란 칭호에 익숙해지지가 않는군.”

이제르트 후작은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었다. 이제르트 후작은 정말 자신이 후작이 된 것인지,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일이기도 했다. 백작의 자리에 앉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후작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돌아보면 이제르트 후작이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했던 것 역시 아니다.

성취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과정이 없으니, 결과에 대해서 재대로 된 감흥을 느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문수르는 미소를 지었다.

“곧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래야지.”

이제르트 후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수르는 그런 이제르트 후작을 보며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문수르 경도 마찬가지네. 내가 없는 동안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좀 쉬게.”

문수르는 왕도로 떠나지 못했다.

이제르트 후작이 비운 상황에서 문수르마저 자리를 비우면 가뜩이나 엉망이 된 영지가 더 엉망이 될 테니까.

더불어 문수르까지 이제르트 후작과 함께 왕도에 오르면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공작의 견제가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문수르 입장에서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이제르트 후작보다는 이제르트 후작과 같이 가게 된 포비어, 이제는 포비어 남작이 된 그를 찾아갔다.

“포비어 남작.”

“포비어 경이라 부르시지요.”

전공을 인정 받아 드디어 기사 작위가 아니라 진짜 작위를 얻게 된 포비어.

문수르는 그에게 부탁했다.

“위험한 일이 있으면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명예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도망치겠소.”

혹시 모를 사태가 일어나면 무조건 이제르트 후작의 목숨만 생각하라고.

포비어 역시 문수르의 마음을 알았기에 그 사실에 대해 조금의 반문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르트 후작의 행렬이 왕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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