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73화 (271/293)

273화

<84화. 만남.>

1.

페스로 제국에는 무수히 많은 기가스가 있다.

하지만 개중에서 역시 가장 페스로 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기가스라고 한다면, 10대 밖에 존재하지 않는 3배 급 기가스들의 존재일 것이다.

카이탄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귀족들에게만 하사한 3배급 기가스의 존재는 무시무시하다. 그들이 등장하는 순간 그 어떤 적도 감히 창뿌리를 겨눌 수 없을 정도다.

당연한 말이지만 페스로 제국의 3배급 기가스는 쓰고 싶다고 해서 전장에 나올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지금도 그랬다.

콩탄 왕국과의 전쟁이다. 고작 콩탄 왕국과 싸우는데 3배급 기가스가 전면에 나서서 싸운다는 건 아무래도 품격이 맞지 않는다. 혹여 콩탄 왕국을 대표하는 제이머스 공작쯤 되는 이가 나온다면 모를까?

적어도 전쟁 시작 전에는 그랬다.

문수르의 드래곤 파이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2.

2배급 기가스들은 분명 강력한 병기들이다. 1배급 기가스 파일럿은 2배급 기가스를 보는 수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득함을 느낀다고 할 정도다.

그런 2배급 기가스가 정말 가차 없이 박살이 나고 있었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드래곤 파이터가 있었다.

후웅!

드래곤 파이터의 창은 벌처럼 움직였고.

콰직!

벌처럼 공격했다.

드래곤 파이터의 창 앞에서는 제 아무리 두터운 제국의 2배급 기가스의 갑주도 버티지 못했다.

퍼엉!

심할 경우에는 가장 단단한 부위인 투구마저, 마나 동력원이 있는 머리가 단숨에 박살나는 경우도 있었다.

더불어 드래곤 파이터는 위력적이지만 동시에 세밀하고, 정밀했다. 드래곤 파이터의 공격은 기가스를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그것을 알려주는 교본 같았다.

찌를 때는 기가스의 결합부위를 찔렀고, 때릴 때는 기가스 파일럿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부위를 노렸으며, 틈이 보이는 순간 가차없이 전력을 따한 찌르기로 기가스를 무력화시켰다.

더 놀라운 건 움직임였다.

쿠웅!

도약을 할 수 있는 기가스!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이야기다. 그런데 드래곤 파이터는 정말 날렵한 사람처럼 도약을 할 수 있었다.

그 엄청난 몸놀림!

보통의 기가스 파일럿들 입장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응할 수 없었다.

결국 그렇게 어이없게 뒤를 내주는 것이다.

적에게 뒤를 잡히는 것만큼 가장 치명적인 건 없다.

3.

드래곤 파이터가 쓰러뜨린 2배급 기가스가 두 자릿수를 가볍기 시작했을 때, 페스로 제국은 알 수 있었다.

“이게 문수르란 자의 실력이란 말인가?”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 기가스가!”

소문은 들었다.

아니, 소문으로만 들었다. 말 그대로 소문이다. 콩탄 왕국에 대단한 기가스가 등장했다는 소문!

하지만 페스로 제국의 대부분의 귀족은 생각했다.

제 아무리 콩탄 왕국이 대단한 기가스를 만들어봐야 제국이 자랑하는 3배급 기가스에 비하면 가소로울 거라고.

3배급 기가스는 페스로 제국이 가진 기술력의 결정체였으며, 자존심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온 드래곤 파이터의 위엄은 3배급 기가스들의 강력함조차 가소롭게 만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 어떤 기가스도 감히 적수가 되지 못했다.

더 놀라운 건 그 빠르고, 위력적인 기가스의 곁에는 그 기가스만큼이나 빠르고, 강력한 기가스들이 수십 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그 모든 기가스에는 오직 한 가문의 문장만 박혀 있었다.

이제르트 백작가!

결국 그 광경을 본 페스로 제국의 귀족들은 인정해야 했다.

‘이제르트 백작가는 제국의 그 어떤 영주들보다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다!’

이제르트 백작가.

현존하는 최강의 영지세력은 바로 그곳이었다.

4.

보급루트를 박살낸 후에 곧바로 적의 본진과의 전쟁을 시작한 문수르는 단 한 번의 패퇴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 뒤에 나오는 건 언제나 승전보, 그것뿐이었다.

콩탄 왕국군의 기세는 당연히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고.

페스로 제국군의 기세는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페서 왕국을 비롯해서 여러 왕국들과 콩탄 왕국이 은밀한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은 페스로 제국의 귀족들의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느낀 것이다.

‘이러다 제국이 위험하다!’

페스로 제국.

언제나 승리자였던 페스로 제국이 지금 패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물론!

페스로 제국이 무너진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콩탄 왕국과의 전쟁에 참가한 전력은 페스로 제국 전체 전력을 놓고 봤을 때 채 3할을 넘기지 못한다.

황태자 위를 정하는 전쟁이었다.

더불어 페스로 제국은 황자들이 지배하는 제국이 아니라, 여전히 카이탄 황제의 권한이 절대적인 곳이었다. 상당수의 귀족들은 그 어떤 황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채 오롯하게 황제만 따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카이탄 황제의 이름 아래 존재하는 황군(皇軍)의 존재는 그 어떤 병력보다 절대적인 것이었다.

현재 이제르트 백작가가 대륙 최강의 영지세력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말 그대로 영지세력이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왕국군 그리고 페스로 제국의 황군에 비교하면 이제르트 백작가의 전력 역시 가소로운 수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 이번 전쟁을 패배한다고 해서 제국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제국이 어떤 나라인가?

언제나 승자였던 곳이다.

그런 그들에게 패배는 존립의 위협 이전에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문제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5.

“제국은 지금 전력만 놓고 보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문수르는 부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기가스의 등장 이후 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기가스 기술력에 투자를 했고, 막대한 자금력과 자원을 이용해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 누구보다 많은 기가스를 생산했습니다. 종국에 그 무엇보다 강한 기가스도 만들었지요.”

부하들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문수르가 말하는 그 존재가 바로 지금 그들이 싸워야 하는 적이었으니까.

그런 적을 한껏 추켜 세워주는 문수르의 말에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문수르는 그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다.

“하지만 지금 제국은 역설적으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상황입니다.”

약점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수르의 말은 계속됐다.

“카이탄 황제, 현 제국의 황제인 그는 이제까지 전쟁과 폭력만으로 가득하던 제국에서 평화와 화합이란 단어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황제들이 문제가 생기면 전쟁을 통해서 제국의 통합을 도모하고, 문제를 해결했던 것과는 다르게 카이탄 황제는 전쟁보다는 일단 교섭을 통한 화합을 추구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전쟁으로 언제나 궁핍했던 제국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기 시작했고, 오랜 평화 속에서는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언제나 전쟁을 위해 소모되었던 제국의 전력은 오히려 평화를 추구하는 동안 축적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되었다.

태평성대였다.

제국은 날이 갈수록 살이 쪘고, 부유해졌다.

그러나 반대로 그 과정에서 제국은 자신들이 가장 자랑하던 요소 한 가지를 잃게 된 것이다.

“제 아무리 사나운 동물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못합니다. 사냥을 하지 않음에도 계속 배가 부르다면 결국은 사냥하는 법을 잊게 됩니다. 단지 자신이 맹수였던 때를 기억할 뿐이지요.”

전쟁에 대한 모든 것!

투쟁심, 경험!

제국은 오랜 세월 전쟁을 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가장 자랑할 수 있던 전쟁에 대한 능력을 잃은 것이다.

병력이 전쟁의 전부는 아니다.

한때 전쟁의 영웅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일선에서 은퇴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그저 지식만 가득하고 경험은 하나도 없는 귀족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의 제국이다.

거대한 돼지다.

정말 거대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질 정도지만, 결국 그 본질은 돼지라는 의미다.

“싸울 줄 모르는 자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압니까?”

문수르는 미소를 지으며 재차 말했다.

“그건 자신이 불리해졌을 때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정말 싸울 줄 아는 자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방법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싸울 줄 모르는 자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그저 발악을 할 뿐입니다.”

쿵!

그 순간 문수르가 자신의 뒤편에 있는 지도를 주먹으로 쳤다. 문수르가 주먹으로 두드린 부분에는 무언가가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건 현재 콩탄 왕국에 들어온 페스로 제국군의 병력들이었다.

“묻겠습니다. 지금 이들이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문수르의 질문.

그 질문에 모든 부하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발악입니다!”

문수르는 미소를 지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6.

전투는 예고 없이 진행됐다. 은밀하게 움직이던 이제르트 백작군은 때가 되자마자 곧바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 공격의 대상이 된 건 페스로 제국의 호요 백작이 이끄는 카라카크 제3 토벌대였다.

161대의 기가스!

개중에 2배급 기가스만 무려 66대였다.

여기에 4만 5천 명의 병력이 포함된 강력한 전력이었다.

약한 전력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 호요 백작을 향해 덤벼든 이제르트 백작군의 병력은 드래곤 파이터를 포함해 기가스 66대와 1천 명의 레인저들이었다.

병력은 명백한 열세.

그러나 문수르는 자신했다.

‘우리가 이긴다.’

병력상으로는 열시지만 지금 호요 백작이 이끄는 병력에는 큰 문제점 하나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최근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 보급루트가 끊어진지 일주일이 넘은 상황이었다. 더불어 문수르는 그런 보급이 지연되도록 수작을 부려놓았다.

굶주린 병사들이다.

여기에 이미 이 병력들 중 상당수는 전투에서 패배한 자들이 모인 패잔병들이었다.

간단한 이야기다.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패배한 자들을 한 곳에 모아 덩어리를 크게 만들어 재차 전투에서 유용하게 써먹는 건 전술의 기본이었으니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숫자상으로는 건실할지 몰라도, 패잔병은 패잔병이다. 전쟁을 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생기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패배라니? 그 과정에서 얻은 스트레스, 패배감, 무기력함, 트라우마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을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호요 백작!

이런 떨거지 부대를 맡게 된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부류의 인물인지는 뻔하다.

능력은 없다.

단지 지위와 권력만 있을 뿐!

능력이 없으니 최전선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적당한 구실로 적당한 자리에 앉아있는 자다.

실제로도 그랬다.

제국에서 호요 백작에 대한 평가는 그냥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평범한 귀족, 그것뿐이었다.

말이 평범하다는 거지, 무리를 이끌어야 하는 귀족에게 평범함은 곧 무능함과 같은 말이다.

이 모든 사항들!

이것들이 전투에서 어떤 요소로 작용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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