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68화 (266/293)

268화

5.

이제르트 백작가에 필로스 왕의 왕명이 하달됐다.

- 이제르트 백작가는 군대를 이끌고 전선 후방에 위치한 페스로 제국군을 견제할 것!

그 왕명을 듣는 순간 이제르트 백작의 얼굴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비단 이제르트 백작의 얼굴만 굳은 게 아니었다.

“사지로 뛰어들라는 의미군요.”

“필로스 전하께서…… 우리들은 탐탁지 않아하시나 봅니다.”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한 명.

“흐음.”

문수르.

이제르트 백작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한 마디의 불평도 토해내지 않았다.

오히려 문수르의 생각은 반대였다.

‘이거 나쁘지 않은데?’

왕명이 올 줄은 알았다. 더불어 필로스 왕이 적어도 쉬운 전장을 이제르트 백작가의 무대로 배정해주지 않으리란 사실 역시 애초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온 필로스 왕의 왕명.

‘내가 원하던 답이야.’

적절하다.

사실 문수르도 애초부터 이 부분을 고려하고 있었다.

‘목숨 걸고 덤벼드는 일황자 군대보다는 차라리 후방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이황자나 삼황자 쪽이 상대하기 편하지.’

보통 수성하는 쪽을 공격하는 게 더 힘든 게 맞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후방에서 대기 중인 이황자나 삼황자의 군대는 그저 진지만 구축했을 뿐이다. 성 안에서 공성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어설픈 진지만 구축한 채 싸우는 것이다.

공성의 이점이 없다.

무엇보다 문수르는 병력 사항을 실시간으로 전부 파악 중이다. 그렇기에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후방에 위치한 군대는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어.’

일황자 군대는 한 곳에 집중됐지만, 남은 두 황자의 병력은 현재 전선에 넓게 분포된 상황.

상대하는 건 오히려 후방에 위치한 군대가 더 쉽다.

더군다나 진지점령 싸움이 아니다.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가스는 기동력이 빠르다.’

치고 빠지는 전투를 통해 적군의 세력을 갉아먹는 것이 이번 전투의 핵심이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했을 때 후방의 제국군을 상대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왕명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제르트 백작가가 전공을 세우면 필로스 왕은 무조건 마땅한 대우를 해줘야 할 터.’

전공에 따른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이번 전쟁이 끝난다면, 그리고 콩탄 왕국이 페스로 제국군을 막아낸다면, 이제르트 백작가는 정말 반석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드디어 끝을 볼 때가 왔구나.’

문수르의 눈빛이 반짝였다.

길고긴 여정의 끝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았다.

6.

이제르트 백작군이 움직였다. 그 소식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페스로 제국에도 알려졌다.

“흠, 이제르트 백작가가 움직인다고?”

페스로 제국은 이미 콩탄 왕국에 적지 않은 협력자를 만들어준 상황이었다.

귀족들이란 게 그렇다.

누가 보더라도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의 전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페스로 제국의 필승에 배팅을 하는 귀족들이 없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명예? 충성?

그런 걸 중시하는 귀족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귀족들로만 나라가 구성되어 있다면 정말 평화로웠을 것이다. 현실은 다르지 않은가?

명백한 배신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리는 자들이 넘쳐난다.

그런 그들이 듣는 정보는 고스란히 제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르트 백작가의 참전 소식에 페스로 제국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요즘 들어 콩탄 왕국에서 가장 명성을 떨치는 곳이군.”

“그래봐야 조그만한 콩탄 왕국의 귀족일 뿐이지. 감히 대제국의 적수가 될까?”

“어차피 일황자의 군대를 막느라 바쁘겠지.”

제국이다.

그 어디도 아닌 페스로 제국이다. 그런 페스로 제국이 고작 콩탄 왕국, 그 조그만 나라의 귀족 한 명이 참전한 것에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울 이유가 있을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오히려 욕을 먹을 것이다.

어쨌거나 제국의 분위기는 별 거 아니었다.

단 한 명.

‘이제르트 백작가가 온단 말이지?’

노운, 그만은 생각이 달랐다.

‘슬슬 때가 왔군.’

두 번째 노크맨.

더불어 첫 번째 노크맨인 문수르보다 더 많은 지원 그리고 더 파격적인 가치관을 가진 그는 솔직히 말해서 문수르의 행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번 얼굴이나 보고 싶군.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토록 일처리가 병신 같은지.’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제르트 백작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말이 백작이지, 콩탄 왕국 내에서의 지위는 딱히 대단해지지 않았다.

만약 노운이 문수르의 자리에 있었다면, 노운은 자신한다. 마음만 먹으면 이제르트 백작가를 왕가로 만들 수도 있다고.

‘뭐, 놈이 일을 제대로 했다면 나한테 기회가 오지도 않았을 테지만.’

어쨌거나 이번에 일을 벌인 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 이제르트 백작가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문수르의 일처리가 시원치 않으니,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해줄 생각이었다.

‘아마도 일황자 애들을 노리기보다는 역시 후방에 있는 이황자와 삼황자가 매력적인 먹잇감이겠지.’

더불어 노운은 문수르의 의중을 꿰뚫었다.

정확히 말하면 콩탄 왕국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재 콩탄 왕국 입장에서 이제르트 백작군을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니까.

‘삼황자를 노리면 적당히 수작을 부려주면 되고. 문제는 우리 쪽을 노릴 때인데.’

삼황자를 노리는 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이황자를 노리게 된다면 노운은 결정해야 한다.

일부러 져줄 것인지.

아니면…….

‘지금 당장 이황자 쪽이 패배를 경험하는 건 내게 썩 좋은 상황은 못 되니까.’

그 반대의 선택을 하든지.

“뭐, 오기 전까지 선택은 보류해도 되겠지.”

노운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묘한 미소를 지었다.

7.

이제르트 백작군이 파병을 위해 준비한 병력은 기가스 50기와 1천 명의 병사였다.

기동력을 위주로 병력을 구성하다보니, 모든 병력을 이끌고 가기보다는 적절한 수치를 정해두는 게 좋았다.

그 무리를 이끄는 건 문수르가 아니었다.

“기사 포비어, 이제르트 백작님의 명예를 위하여 목숨 바쳐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포비어 경.

이제르트 백작가의 가장 충실한 기사.

그가 이번 파병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더불어 그런 포비어 경 옆에는 아이어 경도 붙여줬다.

둘의 실력은 대단하다.

더불어 그 둘을 위해 특별한 기가스를 만들기도 했다. 2배급 기가스지만, 동급 기가스와는 기동력이 배 이상 빠르고, 보통 2배급 기가스보다 전투유지시간이 3배 이상 좋은 뛰어난 효율을 가진 기가스였다.

그 둘이 선봉에 선다면 감히 그 어떤 기가스들도 상대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페스로 제국이 자랑하는 3배급 기가스가 온다고 해도, 그들은 승리는 못해도, 패배 역시 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남은 기가스들 역시 대부분 기동력을 염두에 두고 생산한 모델로 아이언히트의 개량판인 아이언워커였다. 아이언히트의 출력을 1.1배급으로 올린 모델이었다.

“포비어 경,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명예가 아닌 자네와 기사들 그리고 병사들의 목숨이네.”

그렇게 떠나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향해 이제르트 백작은 그 무엇보다 따스한 말을 건넸다.

“패배는 허락하네. 하지만 죽음은 허락하지 않겠네.”

“명을 받듭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이제르트 백작군이 움직였다.

그리고 문수르도 움직였다.

문수르, 그가 왕도로 떠난 것이다.

8.

일황자의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군대 따위는 없었다. 성조차도 그들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진이다.”

또한 성을 무너뜨린 후에도 점령 따위는 없었다. 최소한의 휴식을 취한 직후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런 일황자의 군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왕도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거침없이 오던 일황자의 군대가 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탈이 난 건 일반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이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며 탈진상태에 빠졌습니다.”

“전염병인가?”

처음에는 병사들의 증세에 전염병을 의심했다. 하지만 전염병은 아니었다.

“전염병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강행군에 따른…… 여러 복합적 요인에 의해서 탈이 난 듯합니다.

“숫자는?”

“현재는 사백여 명 정도로…….”

“문제가 되는 숫자는 아니군. 그들을 버리고 이동한다.”

일황자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병사들을 추스르기보다는 그들을 버리는 선택을 말이다.

무자비하면 옳은 판단이었다.

여기서 어설픈 동정을 발휘하는 건 정말 무가치간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변수가 생기는 법.

버리고 간 그 병사들이 작은 반란을 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말 그대로다.

시름시름 앓던 병사들이 갑자기 정신착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아군을 향해 창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작은 반란이었다.

아니, 반란이라기보다는 소란이었다. 금방 제압되어버린 소란. 피해는 없었다. 그저 소란을 일으킨 병사들 대부분이 죽었을 뿐이다. 일찌감치 전력에서 배제한 것들이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일황자의 군대에 암울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두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페스로 제국의 군대라는 자부심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이 느끼는 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그 두 가지 뿐이었다.

그건 흑마법사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9.

기가스 파일럿들이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오러를 다룰 줄 알기에 어지간한 병마와 마주쳤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으며, 어마어마한 체력을 자랑하는 그들이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각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기가스 파일럿들이 탈진할 정도의 강행군은 절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쯤 되자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혹시 콩탄 왕국에서 독을 푼 게 아니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오. 아무리 대비를 한다고 해도…… 이곳은 콩탄 왕국의 영토. 적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으니.”

“그럼 진격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하지 않소?”

“여기까지 왔는데 멈추는 것도 문제일 터. 적진 한복판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만큼 멍청한 생각도 없을 것이오.”

“하물며 여기까지 오는 길목에 그 어떤 조치도 취해놓지 않았소. 후퇴는 없소. 전진만이 유일한 방법이오.”

독.

전쟁에서 언제나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현재 병력을 다시 뒤로 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조금의 휴식으로 전력을 추스른 후에…… 전력으로 진격하는 수밖에.”

이미 일황자의 군대는 너무 깊숙이 들어왔으니까.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단지 두 가지 결과만이 있을 뿐.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전쟁조차 하지 못한 채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카라카크, 그가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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