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61화 (259/293)

261화

<80화. 조작.>

1.

제이머스 공작의 반역사건 이후 콩탄 왕국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평화가 온 듯했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평화에 불과했다. 페스로 제국의 움직임이 콩탄 왕국의 관계자들 눈에 포착된 것이다.

너무 노골적인 움직임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대군이 콩탄 왕국 국경 근처로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기가스가 다수 포함된 전력이기도 했다. 숨기고자 해서 숨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더불어 콩탄 왕국에도 황도를 한 번 크게 흔들었던 소식이 닿았다.

“콩탄 왕국과의 전쟁에서 쌓은 전공에 따라 황태자를 정하겠다고?”

“콩탄 왕국을 아주 장난감 취급하고 있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벌써 공작 두 명이 연달아서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나? 더군다나 그동안 페스로 제국과의 화친을 믿고 병력을 모으기보다는 그 돈으로 사치를 부리는 데에 익숙해진 콩탄 왕국의 귀족들은 페스로 제국 입장에서는 호랑이는커녕 사슴 정도에 불과한 사냥감이나 다를 바 없지.”

콩탄 왕국의 귀족들은 비탄에 잠겼다.

한편으로는 기대심도 있었다.

“그래도 필로스 전하와 페스로 제국은 나름 좋은 관계였으니, 필로스 전하께서 움직여주신다면 전쟁은 없겠지.”

“필로스 전하가 고개를 숙인다면 제국도 마냥 외면하기는 좀 그럴 테니까 말이야.”

필로스 왕은 페스로 제국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자다.

그런 그가 나선다면 페스로 제국의 일부 귀족들이 콩탄 왕국을 위해 움직여줄 가능성은 충분했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긴 해야 할 것이다. 엄청난 수준의 대가 말이다.

하지만 페스로 제국과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을 바에는 대가를 지불해서 끝내는 게 최선이라면 최선이다.

더군다나 귀족들 입장에서는 대가를 치른다는 건 그저 마구잡이로 부리던 사치를 줄이고 조금 검소하게 사는 정도뿐이다. 진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건 평민 이하 계급들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귀족들의 거부감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의견에 대한 반박 의견도 있었다.

“이미 제국과 한 차례 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창끝을 겨누었던 상황에서 필로스 전하가 나선다한들 제국이 교섭을 받아준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교섭에만 모든 걸 배팅하다가 교섭이 결렬되면? 그 후에는 페스로 제국에게 그냥 목을 넘겨줄 것인가?”

“차라리 전쟁을 준비하는 게 낫다. 허무하게 패배할 바에는 분전하여 명예라고 치기는 게 최선이다.”

계속되는 귀족들의 의견대립.

그 사이에서 필로스 왕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2.

카이탄 황제가 갑작스런 발표를 한 후에 아히만트 백작은 곧바로 노운 경을 찾아갔다.

그리고 물었다.

“노운 경, 이게 어찌된 일이오?”

노운 경.

그는 사전에 아히만트 백작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이황자를 황태자로 점찍어두지 않았다 하지 않으셨소? 그런데 대체 이게…….”

카이탄 황제가 황태자로 이황자를 낙점했다고!

아히만트 백작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상황에서 카이탄 황제와 가까운 자는 그 누구도 아닌 노운, 바로 그였으니까. 더불어 그의 혜안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마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아히만트 백작은 이황자가 황위에 오른다는 가정 하에 계획을 세웠다.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조금 무리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과 움직임이 갑자기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아히만트 백작의 모습에 노운은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정말 이 세계 사람들을 가지고 놀기 좋군. 게임 속 NPC들보다 멍청한 것 같단 말이야.’

물론 속으로 하는 비웃음이다.

겉으로는 조금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폐하께서는 사실 이황자님을 황태자로 뽑으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두 황자분들에게도 말하셨습니다.”

“그 대화를 들었소?”

황제와 세 명의 황자들만이 나눈 대화, 그 외에는 그 누구도 듣지 못했던 그 대화의 한 구석에 노운 경, 그가 있었다.

“예.”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이황자님을 황태자로 정한다는 말에 일황자님이 잠시 고민하더니 폐하께 말씀하셨습니다. 납득할 수 없다고. 그런 식으로 황태자의 자리가 정해지는 건 페스로 제국의 역사에 먹칠을 하는 거라고.”

“아!”

아히만트 백작의 눈앞에 당시의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카이탄 황제를 바라보며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펼치는 일황자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일황자 역시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이황자가 황태자 위에 오르는 순간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은 송두리째 사라질 테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

그 상황에서 일황자는 감히 카이탄 황제, 제국의 주인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폐하는…….”

“폐하는 단호하셨습니다. 일황자님의 그 발언에 짧게 웃으시더니 그럼 반역을 저지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일황자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시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시더군요.”

반역!

그 단어 앞에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더불어 카이탄 황제는 페스로 제국의 황제치고 다름 온화한 성정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칼을 뽑아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황자를 황태자로 점찍은 상황에서 만약 그 누가 그 결정에 반기를 든다면 반역죄란 무기를 들어 가차 없이 심판할 인물이었다.

카이탄 황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다름 아니라 제국의 분열이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서 노운 경이 나섰다.

“제가 폐하께 간청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황태자의 주인을 정하자고.”

“노운 경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오?”

“일황자님을 반역죄로 처리한다면 제국인 필시 분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 이황자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이황자를 중심으로 강력한 권력이 모이지 않소?”

“강력한 권력이 모이기 때문에 역으로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카이탄 폐하께서 이황자님을 황태자로 점찍으신 건 이황자님이 처한 사정상 황태자의 자리에 앉는다하여도 피 비린내 나는 칼부림보다는 적당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황자님을 황태자로 임명하여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폐하께서는 적어도 자신의 제안에 숨긴 뜻을 눈치 채고 다른 황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를 바라셨지만 두 황자분이 고른 건 결국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맞다.

아히만트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노운 경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오?”

“간단하게 됐습니다.”

“간단?”

“이황자님이 전쟁에서 더 많은 공을 세우고, 남은 황자분들이 덜 공을 세우면 되는 일입니다.”

“그럼 좋겠소만 이황자에게는 지금 아무런 세력도 없지 않소? 하물며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신 상황에서 폐하의 병력을 이황자에게 주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일 터.”

“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 노운 경의 말에 아히만트 백작이 놀랐다.

“노운 경이?”

“제가 이황자님을 보필할 것입니다.”

그 말에 아히만트 백작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고작 노운이란 인물 하나만 추가되겠지만, 아히만트 백작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노운은 천재, 그 이상의 존재였으니까.

그가 이황자를 돕는다면 필시 그를 황태자의 자리에 올려 놓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히만트 백작은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오?”

노운의 편에 설 것이다.

아히만트 백작은 그것이 현 제국 정세에서 가장 확실한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3.

문수르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산 넘어 산 정도가 아니야.’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을까?

‘제국이 콩탄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택하다니. 그것도 황태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전쟁?’

모든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소식을 듣는 순간 문수르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위험하다.

이제까지 이제르트 백작가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이 가장 위험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황태자 위가 걸린 전쟁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황자들은 이번 전쟁에 목숨을 걸 것이다. 또한 그런 황자들을 모시는 모든 귀족들 역시 사활을 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콩탄 왕국으로 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전공에 따라 황태자 위의 주인이 바뀐다고 한다. 페스로 제국의 군대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막대한 피해가 있다고 해도 전공을 세우기 위해 악착 같이 달려들 것이다.

반면 그런 그들을 상대하게 될 콩탄 왕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내부에 폭탄마저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최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이머스 공작의 반역이 너무나도 쉽게 정리된 듯한 형세다.

그러나 아니다.

문수르는 느끼고 있다.

‘뭔가 있어.’

필로스 왕의 행보가 심히 의심스럽다. 더군다나 어쨌거나 제이머스 공작이 살아있다는 것. 이건 아직 반역이 완전하게 종결된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말 그대로다.

반역죄를 저지른 자는 삼족이 멸해야 한다.

반역을 저지른 자와 그 가족의 목이 전부 잘려나가 성 밖에 내걸러야 한다.

그 전까지는 절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그런데 필로스 왕은 이런저런 이유로 제이머스 공작의 처형을 미루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들다.

제이머스 공작으로부터 흑마법사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제이머스 공작이 과연 고문 따위에 정보를 토해낼까? 혹여 토해낸다고 해도 그 정보를 가지고 카라카크를 잡을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그럴 바에는 그냥 빨리 제이머스 공작을 처형하고 반역 사건에 종지부를 찍는 게 이익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이머스 공작을 다시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

페스로 제국이 달려드는 이 상황에서 콩탄 왕국은 모든 힘을 쥐어짜내야 할 것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제이머스 공작이 가진 힘은 확실히 크니까. 왕국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 특히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제이머스 공작은 콩탄 왕국을 대표하는 오러 마스터다.

문수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콩탄 왕국의 낳은 순수한 콩탄 왕국의 오러 마스터이기도 했다.

더불어 강하다.

제이머스 공작 본인은 물론 그가 이끄는 기가스 전력은 왕국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최강이란 타이틀은 아직 이제르트 백작가의 전력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에 유효한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페스로 제국과의 전면전이 시작되면 곳곳에서 패배 소식이 들릴 것이다.

그렇다 보면 결국 기대게 된다.

제이머스 공작이 전선에 나서준다면?

더군다나 제이머스 공작이 이 상황에서, 콩탄 왕국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면?

반역죄는 씻을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페스로 제국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제이머스 공작의 복귀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생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다가 혹여 제이머스 공작이 큰 공을 세우면 전쟁의 결과와 상관없이 콩탄 왕국 정치계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것이다.

아니, 이런 모든 걸 배제하더라도 이제르트 백작군이 이번 전쟁에서 뒷짐만 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선, 그것도 최전선에 설 것이다.

심지어 필로스 왕은 이제르트 백작가를 탐탁지 않아 하는 상황. 그런 그가 이제르트 백작가에 대한 편의를 봐줄 리 만무하다.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자들이 적군의 칼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종국에 이제르트 백작가의 전력이 1/3이하로 떨어지게 된다면…….

‘위험하다.’

온갖 것들이 이제르트 백작가를 물어뜯으려 덤벼들 것이다.

결국 이 세계는 힘이 최선이다.

힘이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힘이 있는 자만이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

‘젠장.’

문수르는 고개를 숙였다.

‘반전이 필요해.’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전쟁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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