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60화 (258/293)

260화

8.

왕도가 시끄러워졌다.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흑마법사의 소환마법이다!”

왕도에 괴물들이 등장했다. 보통 괴물들이 아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흉측한 놈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울이다!”

“시체가 살아났다!”

곳곳에서 시체가 구울로 변해 등장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흑마법사의 소행이었다.

기사들이 그리고 마법사들이, 병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기가스가 움직였다.

쿠웅!

괴물의 등장은 갑작스러웠지만 왕군의 대처는 신속했고, 정확했다. 단숨에 사태를 파악하고 각자에 맞는 역할이 주어졌다.

“기가스는 대형 괴물들! 기사들과 병사들은 구울들을 처리하라.”

“마법사들은 탐색 마법을 통해 흑마법사의 위치를 파악한다!”

“피해는 개의치 마라! 적을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전하를 찾아라!”

순식간이었다.

흉측하기 그지없던 괴물들은 무시무시했지만 기가스들의 위력은 더 무시무시했다.

제 아무리 커다란 괴물도 기가스 앞에서는 강아지에 불과했다. 기가스들은 주변 피해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거대한 검을 거침없이 휘둘렀고, 그 앞에서 괴물들과 마물들은 단숨에 곤죽이 되어버렸다.

구울들도 힘을 쓰지 못했다. 왕도는 잘 관리되는 장소다. 시체들이 넘쳐나지 않는다. 또한 흑마법사가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곳곳에 방해마법과 정화마법 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마법 앞에서 흑마법의 힘은 본래 위력의 반의 반도 발휘하지 못했다.

괴물들과 마물들의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필로스 왕의 안위!

더군다나 왕성에서 필로스 왕을 지키던 기사들의 시체가 발견됐다. 신하들의 시체도 발견됐다.

그 광경을 본 기사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절망에 빠지려고 할 무렵…….

“이곳이다.”

그림자가 짙게 깔린 어느 구석 안에서 기사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들은 놀라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그들이 그토록 걱정하던 필로스 왕, 그가 있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나는…… 짐은 괜찮다.”

“전하! 그 상처는!”

“괜찮다.”

“당장 마법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이곳에서……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필로스 왕은 살아있었다.

그러나 온전히 살아있는 건 아니었다. 어깨에는 검상이 있었다. 검이 어깨를 뚫고 지나간 상처! 출혈도 적지 않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 정도였다.

기사가 다급하게 힐링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를 데려왔다.

마법사 역시 오자마자 기겁하며 모든 마력을 쥐어짜내 힐링 마법을 사용했다.

덕분에 필로스 왕은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 필로스 왕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명령이 흘러나왔다.

“제이머스 공작을 찾아라. 왕성 안에 있을 것이다.”

갑작스런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기사들 중 그 누구도 반문을 하거나 의문을 갖지 않았다.

왕의 명령, 왕명이다.

무조건 받드는 것이 기사의 도리다.

9.

기사들과 병사들이 왕성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다!”

“제이머스 공작을 발견했다!”

드디어 제이머스 공작을, 필로스 왕을 암살하려고 했던 그를 발견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 상처가 아니었다. 매우 심각한 상처였다.

내장이 드러날 정도로 깊은 검상!

더불어 제이머스 공작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의 주변을 맴돌며 견제하는 기사들은 다름 아니라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이었다.

처음 그 장면을 발견한 기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이 제이머스 공작을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상황을 이해하기 까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은 왕의 기사들이 등장하는 순간 곧바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내려 놓았고, 무릎을 꿇으며 명백한 항복의 표시를 보여줬다.

그리고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공작 각하, 이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하를 암살한다는 건 기사의 도리가 아닙니다. 검을 내려놓고 죄 값을 달게 받으십시오.”

기사의 그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왕의 기사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이 전하를 구했구나!’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10.

제이머스 공작이 필로스 왕을 기습하는 순간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 중 한 명이 오히려 반대로 제이머스 공작을 공격했다. 그 이후 제이머스 공작가의 다른 기사들 역시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제이머스 공작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은 증언했다.

“제이머스 공작님을 평생 섬기기로 했지만 차마 기사의 명예를 앞에 두고 전하의 암살을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중요한 순간 공작 각하를 배신하여 필로스 전하의 목숨을 구하는 것에 모든 기사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그 사실을 당시 알 리 없었던 제이머스 공작은 이 갑작스런 상황에 당연히 반발했다.

“네놈들이 감히!”

더불어 제이머스 공작은 강했다.

자신들을 향해 덤벼드는 이십여 명의 기사들을 상대로 쉽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십여 명의 기사들, 그것도 보통 기사들이 아니라 오러 마스터인 제이머스 공작이 인정하고 그가 키운 기사들은 보통 기사들보다 곱절이나 강했다.

무엇보다 갑작스런 상황, 제이머스 공작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부하의 기습공격은 제이머스 공작의 복부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 상처가 빠른 속도로 제이머스 공작의 전투력을 갉아먹었다.

결국 제이머스 공작은 왕의 기사들을 상대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사지가 결박된 후에 오러를 쓰지 못하도록 제압을 되자마자 곧바로 지하 감옥에 갇혔다.

더불어 무려 오십 명의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제이머스 공작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필로스 왕이 이 모든 보고를 들은 건 제이머스 공작의 기습이 있은 날로부터 3일이 흐른 뒤었다.

모든 보고를 들은 필로스 왕은 잠시 고민 끝에 말했다.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은?”

“현재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계속 수감하되 모든 편의를 봐주어라. 그들은 반역을 도모했지만 결국 짐을 구한 자들이다.”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제이머스 공작의 성을 향하던 모든 귀족들의 군대에 후퇴 명령을 내려라.”

“현재 이제르트 백작군이 성벽 대부분을 무너뜨리고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왕명만 내리시면 곧바로 내성까지 진격할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이제르트 백작군에도 후퇴명령을 내려라.”

“예, 명을 받듭니다.”

필로스 왕이 명령을 내렸다.

더불어 필로스 왕은 병석에 일어난 후에 곧바로 왕위에 앉은 채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이머스 공작, 그에게는 반역죄가 선고됐다.

당연한 일이었다.

왕의 몸에, 옥체에 위해를 가한 죄는 그 무엇으로도 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필로스 왕은 제이머스 공작에 대한 처형을 당장 시행하지는 않았다.

“제이머스 공작은 흑마법사와 결탁했다. 그를 고문하여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 한다.”

합리적인 결단이었다.

더불어 필로스 왕은 제이머스 공작을 배신하고 자신을 위해 싸워주었던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을 사면했다.

“그들 역시 반역죄를 도모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순간에 짐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콩탄 왕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제이머스 공작을 배신했다. 그 공을 인정하여 그들의 재산은 전부 몰수하되, 그들의 작위는 전부 유지한다. 또한 그들은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가 아닌 자유기사의 신분이 된다. 원하는 자는 짐의 기사로 받아들이겠다.”

나름 파격적인 선언이었지만 딱히 반발을 하는 자들은 없었다.

만약 제이머스 공작가들의 배신이 없었다면 필로스 왕은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어떤 의미에서 왕국을 구한 기사들이었다.

더불어 그들은 일찌감치 흑마법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술술 털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왕국의 행사에 협조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 그들에 대한 동정론은 충분히 형성된 상황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전하,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제국의 소식이 들려온 건 말이다.

11.

문수르는 제이머스 공작가의 성벽을 무너뜨린 이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왕도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역이 제압된 건가?’

갑자기 괴물들과 마물들이 등장했다. 흑마법사 카라카크의 수작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수작은 곧바로 제압됐다. 기가스들이 거침없이 움직이며 단숨에 마물들을 처치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왕국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 어디에도 혼란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문수르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제이머스 공작이 실패했다.’

필로스 왕에 대한 제이머스 공작의 암살이 실패했다.

필로스 왕이 살아남은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전쟁이 끝난 셈이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

문수르 입장에서는 나름 최선의 결과였다. 어쨌거나 길어질수도 있었던 이 내전이 정말 순식간에 종료되었으니까.

제이머스 공작의 패배로 끝난 전쟁, 더불어 이번 전쟁을 기점으로 콩탄 왕국의 모든 권력이 필로스 왕을 중심으로 뭉칠 것이다. 제국이 도발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버텨질 저력은 생긴 것이다.

더불어 이제르트 백작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안타깝게 두 명의 사망자가 있었지만 제이머스 공작가의 외성 성벽을 전부 무너뜨린 전공을 고려하면 미미한 숫자였다.

그 이후 무리하게 전투를 진행하다 더 많은 희생자를 보는 건 무의미한 짓이었다.

그러나 문수르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왠지 찝찝해.’

좋게 끝났다.

문수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더불어 이번 일에서 이제르트 백작군은 나름 공을 세웠다. 이제르트 백작이 필로스 왕이 보냈던 은밀한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를 필요는 없어졌다.

그런데 느낌이 좋지 못했다.

무언가 뒤가 개운하지 못하다.

‘카라카크가 있음에도 왕의 암살을 실패했다?’

더군다나 너무 쉽게 끝났다.

제이머스 공작은 모든 걸 포기하고 암살을 계획했다. 제이머스 공작 본인도 움직였다.

무려 오러 마스터인 그가 직접!

여기에 오러 마스터보다 더 무시무시한 흑마법사 카라카크도 암살에 동참했다.

기가스 전력이 배제된 상황이라 전면전은 감히 꿈도 꿈꾸지 못하겠지만 암살에는 특화된 조합이었다.

더군다나 상황을 보면 제이머스 공작은 어찌어찌 왕성 내부, 내성까지 도달한 모양이다.

팔부능선을 넘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런데 실패했다고?

“로이드.”

- 예, 주인님.

“제이머스 공작 본인과 흑마법사 카라카크, 그 둘이 왕성 내부까지 침입했음에도 암살에 실패할 확률은?”

- 변수가 많아 확실한 답을 내릴 순 없습니다만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략적인 확률을 고려하면, 실패확률은 9퍼센트입니다.

9퍼센트.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절대 높다고는 할 수 없는 확률이다. 그런데 제이머스 공작이 실패했다고?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허무하다.

더군다나 카라카크는 너무 조용했다. 그는 그저 얼마 안 되는 몬스터들과 마물들을 소환했을 뿐이다.

막말로 무지막지한 몬스터 군단을, 개조 몬스터 군단을 가졌던 이가 바로 그 아니었던가?

정말 카라카크가 작심하고 움직였다면 이렇게 쉽게, 빠르게 상황이 정리됐을 리 만무하다.

‘무언가 있어.’

문수르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곧바로 왕의 명령이 하달됐다.

왕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후퇴하라고?”

후퇴 명령.

“왜?”

문수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이머스 공작령은 무너졌다. 병사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위협적인 수준은 못 된다.

당장 이제르트 백작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내성 안까지 진격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제이머스 공작이 포로로 잡힌 상황이라면, 누군가가 잠시 동안 제이머스 공작령을 점령한 채 영지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소란을 대비할 수 있으니까.

더불어 그 역할은 이제르트 백작가에게 주어줘야 한다.

이유?

이제르트 백작군이 공을 세웠으니까. 그것도 큰 공이다. 왕명을 따라 제이머스 공작가를 공격했고, 큰 피해를 입혔다. 물론 제이머스 공작이 왕도에서 잡히긴 했지만 공은 공이다. 그에 따른 상을 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그런데 그냥 물러나라니?

다 잡은 물고기를 그냥 놔두고 떠나라는 의미다. 납득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젠장.’

그러나 문수르는 왕명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왕명을 거절했던 상황. 여기서 다시금 왕명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행동을 한다면 필로스 왕의 다음 타깃은 이제르트 백작가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결국 문수르는 왕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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