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59화 (257/293)

259화

4.

왕도의 경비는 삼엄하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필로스 왕은 이미 한 번 왕도에서 위협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왕도의 경비를 더 증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삼엄한 경비였기에, 역으로 방심하는 부분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삼엄하게 경비를 펼치는데 감히 누가 왕성에 침입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방심 말이다.

카라카크와 제이머스 공작은 그 방심을 파고 들었다.

왕성 안으로는 순간이동마법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미 설치된 온갖 방해마법 때문이다. 하지만 순간이동마법 외에도 유용한 마법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가령 예를 들면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긴 후에 그 가죽을 제 얼굴에 뒤집어쓰는 마법 같은 것.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마법이지만 카라카크 그런 사실을 신경 쓸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온갖 시체들을 만져보고 조작해보고 실험해본 이가 카라카크 아니었던가?

순식간이었다.

성 밖으로 일을 하기 위해 나온 자들을 잽싸게 납치한 후에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얼굴 가죽을 벗긴 후에 몇 가지 약품 처리 그리고 마법을 걸자 완벽한 가면이 만들어졌다.

제이머스 공작과 그 기사들은 그 가면을 뒤집어 썼다.

이렇게 변장한 그들은 그 어떤 탐색마법에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말이 마법이지, 그건 기술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제이머스 공작과 그 기사들은 너무나도 쉽게 외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문제가 더 있다.

바로 내성!

외성으로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내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철저한 검문을 통과한 후에 허가를 받은 자들이다. 더불어 콩탄 왕국의 왕성은 내성과 외성 사이에도 해자가 있었다. 성벽을 넘는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이머스 공작 정도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카라카크가 여기서 비행마법을 쓰면 성벽을 넘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그러면 너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해결됐다.

“자, 받아라.”

“이건 뭐지?”

“내성과 외성 사이를 연결하는 비밀통로지. 왕가에만 전해지던 비밀통로 말이야.”

카라카크는 마치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비밀통로의 지도를 주었다.

“더불어 이 비밀통로는 필로스 왕도 모르지.”

“음?”

“정식으로 왕위를 계승 받은 게 아니라, 왕위를 찬탈한 그가 왕가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통로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하하하!”

제이머스 공작은 납득했다.

하지만 반대로 카라카크의 그 말은 제이머스 공작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그 말은 만약 제이머스 공작이 필로스 왕을 죽이고 왕위 찬탈에 성공한다면 제이머스 공작에게 그대로 적용될 말이었으니까. 반역으로 왕위를 움켜쥔 자는 본래의 왕보다 많은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아니, 아무래도 좋다.’

그 순간 제이머스 공작은 흔들리던 자신의 마음을 붙잡았다.

왕이 된 후의 고민은 말 그대로 왕이 된 후에 하면 된다. 지금은 당장 필로스 왕만 처치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

더군다나 지금은 시간이 금보다 더 귀하다.

만약 영지로 돌아가는 게 늦는다면 필로스 왕의 명령을 받고 온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를 초토화시킬 테니까.

물론 이 순간 제이머스 공작은 몰랐다. 이제르트 백작군이 벌써 자신의 영지에 도착해 공격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렇게 침착하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제이머스 공작은 그렇게 비밀통로를 통해 내성 안으로 진입했다.

카라카크는 그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빨리 내 계획대로 일이 끝났으면 좋겠군. 이렇게 구경만 하는 것도 좀이 쑤시니 말이야.’

5.

페스로 제국은 소란스러웠다.

다름 아니라 황제가 갑작스레 세 명의 황자들은 한 자리에 부른 것이다.

이미 황제가 황태자 위의 주인을 고른다는 소문은 황도를 벗어나서 제국 전체에 퍼진 상황이었다.

모두가 긴장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태양은 계속 하늘 위에 떠야하는 법이지.”

“문제는 오직 하나의 태양만이 하늘에 떠있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이겠지.”

“누가 됐든 간에 피바람이 불겠군.”

오랜 시간 이어졌던 황자들 간의 권력투쟁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온 것이다.

결과에 따라서 누군가는 환호할 테고 누군가는 절망하며 다음 세대를 기약할 것이다.

혹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피 비린내가 제국 전역을 뒤덮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모든 이들이 황제와 황자들 사이에 있을 대화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황자들이 세상에 나왔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자신들을 추종하는 귀족들을 불러모은 후에 그들에게 말했다.

“전쟁이다. 모든 군대를 소집하라.”

전쟁!

페스로 제국의 카이탄 황제, 그가 황자들에게 한 말은 다름 아니라 전공을 통해 황태자를 뽑겠다는 말이었다.

바야흐로 대전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6.

문수르는 잠시 전력을 후퇴시킨 후에 다시 전력을 추스르고, 곧바로 공격을 진행했다표적은 다름 아니라 성벽이었다.

“무리해서 성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성벽을 무너뜨려야. 어차피 성벽이 무너지면 그 후에는 다른 귀족들의 원군이 올 터. 제이머스 공작군이 제 아무리 강군이라고 해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성벽이 없는 성을 공략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성벽이 전부 무너진다면 차후 제이머스 공작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공작가로 돌아온다고 해도 자신을 노리는 군대로부터 절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해자가 가장 큰 문제였다.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가스들이 속빈 강정이라서 그걸 무시하고 작업을 한다고 해도 해자를 메우고 다시 해자를 건넌 후에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복잡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한 해가 지면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자 근처에서 작업을 하다가 혹여 기가스가 균형을 잃고 해자 안으로 빠지게 되면 기가스가 파손되거나 혹은 기가스 파일럿이 크게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제이머스 공작군은 이미 해자의 물에 독을 푼 상황이었다. 또한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른 것으로 성벽 근처로 접근하는 걸 계속해서 방해했다. 지금으로써는 제이머스 공작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이었다.

더불어 시간을 끌기에는 최고의 방법들이기도 했다.

시간이 계속 흘렀다.

이 와중에 그래도 이제르트 백작군은 많은 소득을 얻었다. 성벽을 무너뜨림과 동시에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나온 제이머스 공작군의 상당수를 처치하거나 포로로 잡은 것이다. 그 숫자가 천 단위를 가볍게 넘어갔다. 반면 이제르트 백작군은 열두 명의 사상자만 있었을 뿐이며, 사망자는 고작 한 명에 불과했다. 이것만으로도 이제르트 백작군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전공을 세운 셈이다.

이제르트 백작군의 사기는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르트 백작군은 최고조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수르는 오히려 초조해졌다.

“로이드, 왕도의 상황은?”

- 아직 이러다할 움직임은 없습니다.

“암살 시도가 실패한 건가? 아니면 정말 확실한 때를 노리고 있는 건가?”

왕도는 여전히 조용하다.

이미 제이머스 공작이 일을 치렀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데 오히려 반대로 조용하기 그지없으니 불안감이 더 커질 수밖에.

그리고 어느 순간!

- 왕도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제이머스 공작이 움직였다.

7.

내성 안으로 침입한 제이머스 공작은 시간이 귀한 상황에서 오히려 뜸을 들였다.

‘한 번 밖에 없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한 번뿐이란 사실을 말이다. 시간에 쫓겨 그 한 번 뿐인 기회를 무모하게 쓰는 건 정말 병신 같은 짓이었다. 시간이 아깝더라도 확실한 기회를 잡아야 했다.

한편 카라카크는 내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왕을 암살하는 순간, 제이머스 공작과 그의 기사들을 데리고 탈출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카라카크는 엄청난 흑마법사다. 어떻게 보면 그가 제이머스 공작을 돕는 게 더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카라카크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카라카크는 이 정도 일도 해내지 못하는 제이머스 공작과 손을 잡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까실패하면 카라카크는 가차 없이 제이머스 공작과 그 기사들을 버릴 것이다.

제이머스 공작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카라카크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본질은 흑마법사.’

사실 제이머스 공작은 카라카크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회가 온다면, 때가 온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카라카크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유?

카라카크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흑마법사, 그것도 이제는 전설로 남은 흑마법사다.

속이 시커멓다 못해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족속이다.

그런 그를 믿는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믿는 게 아니라 이용할 뿐이다. 더불어 먼저 배신을 당하기 전에 먼저 배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마음을 품은 채 비밀통로를 이용해 내성 안을 움직이던 제이머스 공작.

그리고 그에게 기회가 왔다.

비밀통로를 통해 이동하다 들은 것이다.

“제이머스 공작의 일은 어찌 처리되고 있지?”

“소식에 따르면 이제르트 백작군이 가장 먼저 당도하여 공격을 하고 있다 합니다.”

“이제르트 백작군이? 의외군.”

“전하의 명을 거절했는데 이렇게 전쟁에서라도 공을 세워야 후환이 덜 두렵지 않겠지요.”

“그도 그렇군. 하지만 이제르트 백작에게는 분명한 벌이 필요해. 이번 일에서 큰 업적을 세운다고 해도 한 번 큰 벌을 내리 필요가 있겠어.”

그때였다.

“전하! 긴급한 소식이옵니다!”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필로스 왕을 향해 다가왔다. 그건 정말 엄청난 무례였으나, 그 자는 그 무례를 감수하고서라도 필로스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필로스 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인가?”

“제이머스 공작이 전하를 암살하기 위해 진즉부터 성을 떠났다는 소식이 이제르트 백작가로부터 도착했사옵니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옵니다. 이제르트 백작군이 제이머스 공작가를 공격 중이지만 그 어떤 반격도 없다 하옵니다. 기가스들이 성벽 근처에 배치가 됐지만 기가스 파일럿은 한 명도 탑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병사들을 지휘할 기사들이 없어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자주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건 이제르트 백작가의 추측이오나, 충분히 염두에 두어 대비를 해두는 게 좋다 생각하옵니다.”

필로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머스 공작이 직접 나를 죽이러 온다고? 제이머스 공작이 엄청난 계획을 세웠군.”

필로스 왕은 제이머스 공작이 정말 제대로 승부를 보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일단 경비부터 새로이…….”

그때였다.

필로스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콰앙!

거친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지며 동시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와 ?로스 왕을 향했다.

갑작스런 상황!

그 누구도 대응하지 못했다.

필로스 왕을 따라다니던 호위기사들도 이 갑작스런 상황에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아니, 대응을 했다고 해도 무의미했을 것이다.

그 날카로운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검이었다.

푸욱!

그 검으로 필로스 왕의 어깨를 단숨에 찌른 자의 정체는 그 누구도 아닌 제이머스 공작이었으니까.

찰나의 순간 필로스 왕은 갑작스레 등장한 제이머스 공작의 얼굴을 보며 움찔했다.

‘제이머스 공작, 그대가 여기에 어떻게…….’

그 순간 필로스 왕의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졌고 필로스 왕은 순식간에 기절했다.

동시에 제이머스 공작과 함께 온 기사들이 단숨에 필로스 왕의 신하들과 호위기사들을 처치했다.

자비는 없었다.

스윽!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사들은 제압한 필로스 왕의 호위기사와 신하들의 목을 그 자리에서 베었다.

살아남은 건 오직 필로스 왕, 그뿐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제이머스 공작의 눈빛이 빛났다.

‘이제 준비는 끝이다.’

진정한 음모의 시작은 바로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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