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58화 (256/293)

258화

<79화. 시간.>

1.

제이머스 공작은 이동하고 있었다.

그 이동은 간소한 것이었다. 기사들조차 몇몇 대동하지 않은 이동이었다. 심지어 기가스는 이동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이머스 공작이 가진 모든 기가스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자신의 성에 남겨둔 상황이었다.

누가 보면 마치 망명을 준비하는 모습.

그러나 제이머스 공작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니라 왕도, 필로스 왕이 있는 곳이었다.

망명이 아니다.

항복도 아니다.

노리는 건 다름 아니라 왕도에 존재하는 필로스 왕, 바로 그의 몫이었다.

‘속전속결이다.’

더불어 그 이동은 정말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성에서 나오자마자 카라카크를 따라 이동하자 순간이동마법이 준비되어 있었다.

순간이동마법!

굉장히 효율적인 마법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마법사들이 활약하던 기가스 이전 시대에서도 그다지 많이 활용되지 않았다. 더불어 기가스가 대세가 된 이후에는 순간이동마법은 속된 말로 사장됐다. 더 이상 그 어떤 마법사도 순간이동마법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런 걸 공부할 시간에 기가스 제조에 필요한 마법을 연구하는 게 학술적으로도 높은 인정을 받고, 돈도 벌 수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순간이동마법을 기가스에 적용하면 엄청난 전술적 가치가 있으리라 주장했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기가스 1대 당 8서클 마법사가 한 명씩 달라붙어야 한다는 이론이 나온 이후에는 더더욱 순간이동마법에 대한 가치는 떨어졌다.

제이머스 공작은 그 생각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지금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카라카크, 이 자의 말이 맞다.’

카라카크는 말했다.

전쟁은 인간이 시작해서, 인간이 끝내는 거라고.

지금 와서 보니, 기가스는 말 그대로 도구에 불과했다.

어쩌면 정말 당연한 논리.

그러나 이제까지 세상을 이끌던 지도자들, 전장을 지휘하던 지휘자들은 그 당연한 논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논리를 지금 제이머스 공작이 깨달았다.

그렇기에 작전을 세울 수 있었다.

‘순간이동마법을 통해서 왕도 근처로 이동 후에 나와 기사들이 카라카크의 도움을 받아 내부로 진입하고…… 이후 카라카크의 사일런트 킬러들이 나머지 기사들을 처리한 후에 내가 왕성 안으로만 들어가면.’

왕이 거주하는 왕성 안으로만 들어가면 된다.

왕성 안에서 기가스가 날 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제이머스 공작을 막기 위해서는 기사들이 움직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제이머스 공작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카라카크의 도움이 있다면 필로스 왕을 해치우는 건 어렵지 않다.

물론 정말 문제가 되는 건 그 다음이다.

필로스 왕을 죽이는 순간 페스로 제국이 제이머스 공작을 처리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대군을 보낼 테니까.

제국과의 전쟁!

하지만 카라카크가 보여준 사일런트 킬러라면 그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는 몰라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적어도 제이머스 공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지금 인지하지 못하는 맹점을 찌를 수 있다면!

‘왕이 된다.’

역사에 왕으로 남는 것이다.

가능하다.

평생 꿈도 꾸지 못했던 그 기회가 지금 온 것이다. 더불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래, 한 번쯤 왕위에 오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제이머스 공작은 꿈을 꿨다.

그런 제이머스 공작을 바라보는 카라카크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2.

문수르는 생각했다.

‘돌릴까?’

지금 이제르트 백작군은 제이머스 공작가의 성벽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성벽 위의 병사들이 반격을 했지만, 고작 돌덩이나 화살 따위로 기가스를 어찌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무리해서 공격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문수르의 명령 때문이었다.

‘기가스를 남겨두고 떠났다.’

문수르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제이머스 공작은 기가스를 버리고 움직였다. 좀 더 가볍게,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기가스가 없는 전력으로 어떤 성과를 올리기란 지금 같은 시대에는 불가능하다.

‘그래, 어차피 왕도로 몰래 숨어 들어가 필로스 왕을 처리하는 게 제이머스 공작의 목적일 터. 그렇다면 기가스는 필요 없지. 더군다나 카라카크가…… 순간이동마법을 준비했다면 지금 이미 제이머스 공작가의 결사대는 왕도에 도달했을 것이다.’

순간이동마법!

그 마법을 염두에 두면 이미 제이머스 공작을 포함한 제이머스 공작가의 결사대는 왕도 안으로 침입했을 것이다.

왕도에는 많은 방비책들이 있다. 마법탐지마법을 비롯해서 마법방해마법까지. 마법사들이 대부분 기가스에 대한 업무에 투입되는 지금, 그 마법들을 뚫을 만한 경험과 실력을 가진 마법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카라카크를 상대로 그 마법들이 얼마나 효용성을 발휘할까?

물론 암살자들에 대한 대비 역시 어느 정도 한다.

하지만 그 암살자가 제이머스 공작과 같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라면?

막을 수도 있다.

반대로 못 막을 수도 있다.

‘다음 계획.’

하지만 필로스 왕을 죽인다고 해서 그 순간 곧바로 제이머스 공작이 왕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왕을 죽인 자로 콩탄 왕국 모든 귀족들이 제이머스 공작을 죽이기 위해 움직일 터.

왕이 되기 위해서는 지지 세력이 필요하다.

필로스 왕을 죽인 후에 제이머스 공작은 그 지지 세력을 모으기 전까지 농성을 해야 한다.

그 농성을 위해선 다시 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좋아.’

제이머스 공작의 계획에는 허점이 많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제이머스 공작의 계획은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형태의 계획이니까.

아니,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는 계획이다. 그런 계획이 완벽하다면 이 세상에 왕이 아닌 자가 없을 터.

‘부순다.’

그렇다면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제이머스 공작가의 모든 걸 부수는 것이다.

제이머스 공작도 설마 이제르트 백작군이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영지에 들이닥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전력이다.’

문수르가 결단을 내렸다.

‘전력을 다해 제이머스 공작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후퇴는 없다.

오히려 더 격한 전진만 있을 뿐!

3.

이제르트 백작군의 공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모든 기가스들이 해자 근처에 모이기 시작했다.

해자는 깊었다. 어지간한 기가스 한 대가 머리까지 푹 잠길 정도로 말이다.

또한 넓었다. 적어도 해자 안으로 들어가면 기가스가 대여섯 걸음을 걸어야 해자의 반대편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제까지는 해자 안에 돌이나, 혹은 해자 근처의 땅을 무너뜨리는 식으로 길을 만들었다.

모든 기가스들이 그 작업에 투입되자, 길이 만들어지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순식간에 다섯 개의 길이 만들어졌다.

개중 한 길에 문수르의 기가스가 섰다.

쿠웅!

드래곤 파이터!

감히 이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압도적인 스펙을 가진 드래곤 파이터의 등장은 아군에게는 군신(軍神), 그 자체였으나 적군인 제이머스 공작가의 병사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였다.

길은 물렀다.

아무래도 흙이나 돌덩이 따위로 임시방편마냥 만든 길에 기가스의 육중한 몸뚱이를 제대로 받쳐줄 리 만무했다.

폭푹 들어갔다.

발이 푹푹 빠졌다.

하지만 문수르는 개의치 않고 전진했다. 세 번의 걸음만으로 단숨에 해자 건너까지 도달했다. 드래곤 파이터는 경사진 해자의 면을 강력한 출력의 힘으로 단숨에 올라왔다.

곧바로 눈에 성벽이 들어왔다.

문수르가 와이어를 잡아당꼈다.

끼리릭!

드래곤 파이터의 온몸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강력한 힘이 드래곤 파이터를 휘어감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힘이 폭발했다.

콰앙!

순식간이었다.

성벽에 거대한 구멍이 났다. 기가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더 높게, 더 두텁게 만든 성벽이었지만 드래곤 파이터의 창 앞에서는 힘을 쓰지를 못했다.

드래곤 파이터가 성벽에 큼지막한 구멍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병사들이 성벽 위에서 온갖 것들을 드래곤 파이터를 향해 던졌다.

돌멩이부터 시작해서 화살이나, 기름 따위들…….

“던져!”

“뭐든 던져!”

“젠장, 화살이 떨어지면 활이라도 던지란 말이야!”

안다.

많은 훈련과 교육을 받은 병사들이 지금 자신들이 하는 짓 따위로 감히 드래곤 파이터라는 괴물에게 어떤 타격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성벽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에게 기다리는 건 말 그대로 죽음뿐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사수(死守)다.

어차피 죽을 거, 죽음으로 지켜야 한다.

그 의지의 표현…… 문수르는 무시했다. 봐주고 싶다. 그들이 과연 무슨 죄란 말인가? 그들을 용서해줄 수 있다면 해주고 싶다.

하지만 전쟁이다.

그들이 항복하지 않는 이상 문수르는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어설픈 자비는 자비가 아니다. 무능의 증거이며, 병신짓이다.

문수르의 무능과 병신짓으로 문수르가 아닌 그의 부하들, 이제르트 백작군의 병사들이 피해를 본다면 그게 더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이다.

문수르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저 성벽을 부수는 일에 집중했다.

종국에 성벽이 무너졌다.

콰과광!

무너지는 성벽의 잔해들은 마치 산사태가 났을 때의 그것처럼 우수수, 해자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성벽이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해자를 메꾸었다.

그 잔해들을 밟고 드래곤 파이터가 무너진 성벽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수르의 눈에 들어온 건 기가스였다.

움직임은 없었다.

기가스 파일럿들 전부가, 기가스들 전부가 지금 이 자리에 없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그 순간 문수르는 지척에 있는 기가스의 머리를 향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창을 내찔렀다.

콰직!

창은 단숨에 기가스의 머리를 박살냈다.

그 순간 문수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거…….”

로이드가 말했다.

- 동력원이 없습니다.

“젠장,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동력원이 없다니?”

- 동력원을 따로 제거한 모양입니다. 의도는 아직까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머리부분에 위치한 기가스의 동력원. 기가스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이며, 때문에 기가스의 모든 부위 중에서 가장 방어력이 뛰어난 장소!

그런데 제이머스 공작가의 기가스에는 그게 없었다.

그저 속빈 강정마냥 텅 비어버린 머리통만 있을 뿐이었다.

기가스에 어떠한 수작을 부렸다.

아니, 기가스의 동력을 어디론가 빼돌린 것이다. 남은 껍대기만 전선에 배치했을 뿐!

대체 무엇을 노리고?

‘젠장.’

분명한 건 무언가를 노린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경에는 필시 흑마법사 카라카크가 존재한다는 것.

그 두 가지 사실이 문수르를 괴롭혔다. 문수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일단 물러나야…….”

후퇴!

시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 전쟁에서 문수르는 저도 모르는 사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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