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49화 (247/293)

249화

<76화. 협상.>

1.

무블 공작이 다시금 황도에 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블 공작님.”

누군가가 무블 공작을 불렀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블 공작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델 후작.’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아델 후작이었다.

3배 급 기가스 중 하나인 스타 라인의 주인. 더불어 스타 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날렵한 기가스다.

반면 아델 후작의 성격은 자신이 이끌고 다니는 쾌속의 스타 라인와는 정반대였다.

느린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선택 역시 장고 끝에 내리는 사내였다.

솔직히 무블 공작은 그런 아델 후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어코 저 자도 황도에 올라왔군.’

그 무엇보다 속도가 생명인 정치싸움에서 아델 후작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성정의 사내다.

그런데 그런 아델 후작이 정치판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무그 백작이나 슈페언 백작처럼 자신을 광고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꽤나 크다.

더불어 그가 지금 황도에 등장했다는 건, 지금 이곳 황도에 등장할 수 있는 자는 전부 등장했다는 의미다.

앞서 말했듯이 아델 후작은 일이 터지면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늦게 반응하는 자니까.

“용케 왔군.”

무블 공작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아델 후작은 그런 무블 공작의 말에, 허허 웃었다.

여유롭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사태가 사태 아닙니까? 제가 제 아무리 게으른 인간이라고 해도 이런 일에는 나서야지요.”

“게으른 걸 아니까 다행이군.”

“모르진 않습니다. 고쳐지지가 않을 뿐이지. 그보다 무블 공작님은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제야 안부인사를 하는 건가? 웃기지도 않군.”

“제가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너무나도 여유로운 아델 후작의 행동에 무블 공작은 속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지금 무블 공작은 칼끝 위에 올라탄 것 같았다.

‘이번 폐하의 결정으로 인해 제국의 정치구도가 바뀐다.’

대륙을 휩쓸은 소문.

다름 아니라 무그 백작이 이제르트 백작군에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는 소문은 페스로 제국에도 큰 충격을 줬다.

슈페언 백작 때와는 이야기가 달랐다.

슈페언 백작 때는 기습적이었다. 또한 슈페언 백작이 적진에서 난리법석을 떤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적진에서는 제 아무리 대단한 장수도 속절없이 당할 수 있다.

또한 마지막에 슈페언 백작이 공격 당했을 때는 뒤통수를 때린 경우나 마찬가지였다. 슈페언 백작 입장에서는 이러다할 경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나, 해답이 없다. 슈페언 백작이 공격 당했으며, 슈페언 백작의 기사들 시체가 발견은 되었지만 정작 슈페언 백작과 그가 이끌던 골든 자이언트의 흔적은 없다. 이후 수색 결과 골드 자이언트를 구성하는 부품이 발견됐지만 그뿐이었다.

일각에서는 콩탄 왕국이 슈페언 백작을 포로로 잡고 몰래 골든 자이언트를 노획했다고 말하지만 여하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서 슈페언 백작이 나름 변명을 하고자 하면 변명을 할 수 있는 껀덕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반면 무그 백작의 경우는 다르다.

일단 전시 상황이었다.

그리고 적진에서 싸운 게 아니었다. 홀로 고립되서 싸운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싸웠다.

그리고 이미 전선에는 페스로 제국의 군대가 콩탄 왕국에 비해 더 큰 수적 우위, 전력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슈페언 백작과는 반대, 우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란 의미다.

그런 상황에서 무그 백작은 패배했다.

그뿐인가?

무그 백작 본인은 포로로 잡히고 그의 3배 급 기가스인 레드 스톰은 이제 공식적인 노획물, 콩탄 왕국의 소유가 됐다.

‘이번 일로 무그 백작은 끝이로군.’

일단 무그 백작의 정치생명은 그 일을 기점으로 끝장이 났다. 포로에서 풀려난다고 해도, 콩탄 왕국으로부터 레드 스톰을 받아낸다고 해도 더 이상 무그 백작이 정치판에 끼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그 백작이 뒤에서 밀던 칠황자 파벌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여기까지는 무블 공작 입장에서 최고의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페스로 제국은 어떤식으로든 무그 백작을 구해내야 하고, 레드 스톰을 회수해야 한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협상으로 회수하는 것.

다른 하나는 무력으로 회수하는 것.

‘무력은 절대 안 돼!’

무블 공작 입장에서는 무조건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전쟁이 전면전이 되면 오히려 무블 공작의 입장이 줄어든다.

더군다나 만약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면 그 대표로 무블 공작은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그래, 이번 일의 배경에도 이제르트 백작가가 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이번 일이 있기 전 무블 공작가는 이제르트 백작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상황이다.

무블 공작이 제국 대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고, 반대쪽 테이블에 이제르트 백작가가 앉는다면?

윈윈이다.

무블 공작은 자신한다. 그렇게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다면, 양쪽 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이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지금 그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제국은…… 제국이다.’

페스로 제국.

이제까지 전쟁을 통해 역사를 세웠돈 국가다. 그런 국가가 전쟁과 대화, 두 가지 선택지 중에 과연 대화를 택할가?

더군다나 이미 전쟁 중이었다.

전면전은 아니었어도 양쪽 국가 모두 나름 적지 않은 전력을 투입한 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과거의 제국이었으면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콩탄 왕국을 박살냈을 것이다.

그러한 기질이 쉽게 사라질 리 없다.

‘후우!’

무블 공작은 한숨부터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무그 백작의 일을 놓고 이루어진 황실 회의에 무블 공작만 참석하는 게 아니다.

방금 본 아델 후작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권력가들이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아니 무블 공작은 제외한 전부가 전쟁을 원하고 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전쟁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은 것이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무블 공작이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을까?

‘힘들겠구나.’

무블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내 회의가 시작됐다.

2.

카이탄 황제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그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카이탄 황제를 보는 순간 자리에 참석한 귀족들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폐하는 정말 괜찮으신 건가?’

‘맙소사…… 폐하께서 혹여라도 승하하신다면…….’

‘지금 전쟁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군.’

무블 공작도 놀랐다.

‘저번보다 더 좋지 못하시다.’

무블 공작은 아마도 가장 최근에 황제를 알현한 귀족일 것이다. 그때에도 카이탄 황제의 상태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심각했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대들에게 고한다.”

그런 카이탄 황제가 귀족들 앞에서 말했다.

“무그 백작의 일에 대한 것이다. 귀족은 나라에 충성을 받치고 의문을 행해야 한다. 동시에 나라는 그런 귀족을 아끼고, 보살피며 대우해줘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그건 거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때문에 무그 백작의 신병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슈페언 백작의 생사마저 모르는 상황에서 무그 백작마저 잃는다면 과연 그 누가 제국에 충성을 바친단 말인가?”

다른 귀족들이 무어라 말을 꺼낼 시간도 없었다.

모두가 뻐금뻐금 붕어마냥 입술만 움직였다.

이윽고 카이탄 황제가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왕국과 협상을 하겠다. 그대들은 그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조치를 취하도록.”

“알겠사옵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소리를 내질렀다.

모두가 놀라서 제대로 말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황제의 말에 대답을 한 건 다름 아니라 무블 공작이었다.

정치의 최고수!

그런 무블 공작은 이 타이밍을 그리고 황제의 의중을 너무나도 빠르게 파악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이렇게 카이탄 황제의 말에 절대적인 동조를 보낸 것이다.

이 순간 황제의 말에 어떻게든 반박하려던 귀족들은 속으로 입술을 깨물었을 것이다.

“무블 공작, 고맙네.”

“아닙니다. 폐하의 말이 곧 제국의 의지 아니겠사옵니까? 오히려 귀족들을 위한 폐하의 마음씨에 소신은 감격할 뿐이옵니다.”

줄줄!

무블 공작의 눈에서는 정말 눈물이 흘러내렸다. 닭똥같은 작은 눈물이 아니었다. 주룩주룩, 소나기같은 눈물이었다.

그 눈물을 본 다른 귀족들은 혀를 찼다.

‘역시 대단하군.’

‘정계에서 살아남은 여우답군. 저 정도 연기력이 없다면 이제까지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그러나 무블 공작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허오면 폐하, 제가 직접 콩탄 왕국으로 넘어가 그들과 담판을 짓고 오겠사옵니다.”

주도권을 쥔 무블 공작은 거침이 없었다.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향해 달라겼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이제까지 한숨만 쉬던 다른 귀족들의 표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선택을 바꿀 순 없다.

그렇다면 황제의 선택 안에서 최선의 이익을 구해야 한다.

카이탄 황제는 전쟁이 아닌 대화를 택했다. 그렇다면 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이익이 뭘까?

대표다.

제국의 태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최선의 이익이다.

몇몇 귀족들이 무블 공작의 행동을 막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호오.”

그러나 이번에도 입을 연 사람은 카이탄 황제였다. 카이탄 황제가 반응을 보이자 나머지 귀족들은 입을 다물었다.

황제가 말하는데 끼어든다는 것은 정말 정치생명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주변이 있는 귀족들은 아군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자기 목을 베어갈 수 있는 늑대고, 사자들이다.

만약 누군가 작은 실수를 하면, 모두가 합심하여 그 실수를 물어뜯을 것이다.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무블 공작, 그대가 대표로 나가주겠나?”

“물론이옵니다. 소신, 목숨을 걸어서라도 무브 백작을 구해오겠사옵니다.”

무블 공작이 자신있게 말했다.

사실 무브 백작을 구해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건 콩탄 왕국 쪽이다.

즉, 휴전 혹은 종전, 이 두 가지를 대가로만 지불한다면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다.

그뿐인가?

지금 전쟁이 끝나길 가장 소원하는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무블 공작 아니었던가?

무블 공작 입장에서는 일석이조, 그 자체다.

더군다나 어차피 무그 백작이 무사히 제국에 복귀한다고 해도 그의 정치 생명은 끝이다.

슈페언 백작 그리고 무그 백작, 둘이 무너지면 남은 건 다섯이다.

그리고 협상을 통해, 회담을 통해 무블 공작이 공을 세운다면…… 자연스럽게 주도권은 무블 공즉을 중심으로 흘러갈 터!

“좋다. 무블 공작, 그대에게 모든 일인 위임하겠다.”

“소인, 꼭 폐하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겠사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났다.

그 광경은 다른 귀족들은 입술을 깨문 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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