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48화 (246/293)

248화

9.

쿠틀러 백작이 도착한 장소는 다름 아니라 신전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니라 헬라 교단의 신전이었다.

“하필이면…….”

쿠틀러 백작은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질범과 신전에서 협상을 하다니?

달리 말하면 헬라 교단의 사제 누군가가 인질범에게 회유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게 사실이면 이번 일에는 단순히 콩탄 왕국만이 아니라 헬라 교단이 관계되어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좋을 건 없다.

‘일단은…….’

어쨌거나 쿠틀러 백작은 헬라 교단의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10.

그는 사제였다.

“헤부 라고 합니다.”

쿠틀러 백작은 헬라 교단의 사제복을 입은 헤부란 이름의 사제를 보자마자 인사 대신에 본론부터 말했다.

“인질을 보여주시오.”

이 협상의 전제조건은 인질의 생사다. 죽은 시체 따위를 얻기 위해서 이 협상 테이블을 마련한 게 아니다.

쿠틀러 백작은 단호했다.

만약 인질이 죽었다면 길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단숨에 상황을 정리할 것이다. 이 신전을 점거하고 눈앞의 헤부라는 사제를 제압할 것이다.

제압한 이후에는?

두말할 것도 없다.

고문이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것들 이용해 놈의 입에서 진실을, 배후를 토해내게 만들 것이다.

‘차랄 그래.’

오히려 쿠틀러 백작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길 소원했다. 어설프게 머리싸움을 할 바에는 그냥 작살을 내는 게 낫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외부에 공개되면 쿠틀러 백작은 물론 제이머스 공작에게 좋을 것이 없다. 가뜩이나 정세가 어수선한 가운데 자칫 잘못하면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깊게 연관되기 전에 빨리 뿌리를 뽑는 게 낫다.

“좋습니다.”

그러나 헤부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문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에 수갑이 차인 그 남자는 쿠틀러 백작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홀 자작?”

“쿠틀러 백작님?”

홀 자작.

불스 후작 납치 사건에서 실종된 인물이다. 쿠틀러 백작 역시 깊진 않지만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자였다.

“총 열아홉 분을 데리고 있습니다.”

헤부 사제가 말했다.

쿠틀러 백작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실종자는 총 스물두 명이었다.”

“홀 자작님을 포함해서 현재 저희들이 신병을 확보한 분들의 숫자는 열아홉 분이 맞습니다.”

이 순간 쿠틀러 백작은 고민했다.

세 명의 숫자가 차이가 난다. 이걸 꼬투리 잡아 헤부 사제를 공격하는 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홀 자작이 멀쩡한 걸 보면, 다른 귀족들도 목숨은 부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서 눈앞의 사제를 해치우면 그들의 목숨이 위험하다.’

깊어지는 고민.

그 순간 홀 자작이 조심스럽게 쿠틀러 백작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쿠틀러 백작님…… 저 말고도 이곳에 세 분이 더 계십니다. 방금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셋?’

셋이나 더 이곳, 신전에 있단 말인가?

쿠틀러 백작은 잠시 생각을 접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그들 셋의 신병도 확보해야 한다. 그 후에 일을 처리해도 안 될 건 없다.

쿠틀러 백작이 살의를 감추었다.

“흥, 고작 이것으로 협상을 할 생각인가? 최소 다섯 명을 넘겨라.”

“그건…….”

“이미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목숨이다.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해도 안 될 건 없겠지.”

협박이었다.

헤부 사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설바 쿠틀러 백작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몰랐던 걸까?

쿠틀러 백작은 기세등등해졌다.

아니, 그는 애초에 이 판이 틀어지기를 바라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강하게 나가는 게 당연했다.

헤부 사제는 그런 쿠틀러 백작의 기질을 읽었다.

쿠틀러 백작은 협상의 의지보다는 깽판의 의지가 더 강하다. 만약 쿠틀러 백작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쿠틀러 백작은 여기서 검을 뽑을 것이다. 단숨에 신전을 점거하고, 헤부 사제를 제압하겠지.

이후 헤부 사제는 온갖 고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건 사양이었다.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헤부 사제가 당황하며 말했다.

이윽고 헤부 사제가 자리를 피했다. 그제야 쿠틀러 백작은 만족했다는 미소를 지었다.

11.

무그 백작과 문수르의 충돌은 시간이 흐를수록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결과가 뻔해졌다.

드래곤 파이터의 창은 레드 스톰의 두번째 검마저 박살을 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처음처럽 기가 막힌반격 따위는 기대할수 없었다.

오히려 드래곤 파이터가 더 빨랐다. 레드 스톰의 무기를 쳐냄과 동시에 그 기세를 몰아 레드 스톰의 머리를, 동력원을 후려쳤다.

꽈릉!

천둥소리가 났다.

기가스의 가장 두터운 분위라고 할 수 있는 머리가 깨지거나, 그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충격은 레드 스톰 안에 탑승한 무그 백작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줬다.

“크윽!”

무그 백작은 육체적으로는 엄청난 충격이 신음을 토해냈고, 정신적으로는 궁지에 밀려버렸다.

무그 백작의 전신에는 땀이 줄줄, 비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편 무그 백작과 문수르의 대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따르는 기가스들 간의 전투가 시작됐다.

사실 아이언히트만으로 무그 백작가의 기가스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1대1은 절대 안 된다.

그럼 2대1? 이 역시 안 된다. 2배 급 기가스를 제대로 상대하려면 0.6배 급 기가스가 3대는 붙어야 한다.

그러나 5대2로 붙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아이언히트는 놀라울 정도로 2배 급 기가스를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몇 차례 전투를 통해 그 사실을 증명했다.

20대의 아이언히트를 이용해 5대2의 전투 포메이션을 갖추면 2배 급 기가스를 최대 8대까지 상대하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미 사전에 GPS시스템을 통해서 적진의 기가스 위치를 완벽하게 파악한 문수르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전투 동선을 제시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1배 급 기가스들이 남는다.

이 1배 급 기가스들을 막는 건 이제르트 백작군에 속한 2배 급 기가스 3대였다.

역할의 분담.

그리고 완벽한 전투포메이션과 사전에 습득한 확실한 적의 위치!

이제르트 백작군의 공격은 폭풍우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이 자식들 뭐 이래?”

“젠장 정신이 없군.”

“세력을 합쳐야 돼! 적의 술수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무그 백작가 소속의 기가스 파일럿들은 저도 모르게 늪에 빠진 듯한 착각을 받았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전장은 이제르트 백작군이 의도한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그 백작가의 2배 급 기가스들은 2대씩 쪼개진 채 5대의 아이언히트에 포위되어 있었고, 1배 급 기가스들 앞에는 이제르트 백작가의 2배 급 기가스들이 위풍당당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전투!

격전이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이제르트 백작군이 처음에는 우세하다 싶었지만, 무그 백작가의 기가스 파일럿들 역시 실력이 보통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상대했던 페스로 제국 소속의 어설픈 기가스 파일럿듯…… 전투 경험조차 거의 없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질이 달랐다.

콰앙, 콰앙!

사방에서 육중한 기가스들이 내뿜는 무지박지한 위력의 공방(攻防) 소리가 터져나왔다.

피해도 있었다.

양측 다 교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가스가 파손됐다.

이제르트 백작군에서는 아이언히트 3대가 교전 직후 전투불능이 됐고, 무그 백작군에서는 2배급 기가스 2대가 교전 직후 전투불능이 됐다.

그렇다고 숨 돌릴 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격전은 계속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콰앙!

그 격전에 강력한 파문을 일어났다. 그 파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문수르의 드래곤 파이터였다.

무너졌다.

레드 스톰, 이제까지 전장을 휩쓸떤 그 무시무시한 3배 급 기가스, 무그 백작의 기가스가 무너진 것이다.

오른팔은 박살이 났고, 파일럿이 타고 있는 가슴팍은 사정없이 찌끄러져 있었다.

외부는 그나마 나았다. 계속되는 공격에 내부 부품들이 완전 산산조각이 나는 바람에 레드 스톰은 더 이상 파일럿인 무그 백작의 말을 듣지 못했다. 정지해버렸다.

그 순간 문수르는 레드 스톰을 무시한 채 곧바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3.5배 급 드래곤 파이터가 전장에 오자, 전장의 판도는 180도 바뀌었다.

비단 드래곤 파이터의 위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백작님을 구해라!”

“무조건 백작님의 신병이 우선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무그 백작님을 구해라!”

무그 백작이 패배하는 순간, 레드 스톰이 머춘 순간 무그 백작가의 기가스 파일럿들은 하던 모든 행동을 멈추고 무그 백작을 도우기 위해서, 그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도, 그로 인해서 큰 피해를 입는 것도 무시했다.

아니,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예상대로군.”

문수르는 그런 무그 백작가 소속의 기가스 파일럿들의 행동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똑같다.

슈페언 백작과 싸웠을 때도 똑같았다. 슈페언 백작의 골든 자이언트가 멈추는 순간, 슈페언 백작가의 파일럿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도외시한 채 슈페언 백작을 구하기 위해 덤벼들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슈페언 백작가는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도 이러다할 분전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때부터 상황이 더 좋지 못할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문수르가 의도적으로 무그 백작을 살려줬으니까.

더군다나 문수르에게 무그 백작은 몰라도, 그 무그 백작의 파일럿들을 살려둘 이유는 없었다.

개인 대 개인의 전쟁이 아니다.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다.

“모두들 작전대로 움직인다!”

12.

새로운 소식이 전장을 그리고 대륙을 뒤흔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맙소사, 무그 백작! 레드 스톰의 주인인 그가 패배했다고? 대체 누가? 누가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단 말인가?”

“이제르트 백작군?”

“이제르트 백작가가 대체 무엇이기에 슈페언 백작을 무너뜨리고 이후 무그 백작까지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무그 백작의 패배.

엄청난 일이었다. 더군다나 무그 백작을 패배시킨 세력이 이제르트 백작군이라고 한다.

물론 정말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나름 전장을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은 무그 백작의 패배, 그 하나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그 백작과 그가 소유한 기가스들은 포로와 노획물이 되어 콩탄 왕국의 소유가 되었을 터.”

무그 백작.

그가 페스로 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았다. 더군다나 페스로 제국은 이미 슈페언 백작이라는 인재 중의 인재 그리고 3배 급 기가스인 골든 자이언트를 잃은 상황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무그 백작까지 잃는다?

패배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여기서 무그 백작과 레드 스톰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물질적 피해를 넘어서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콩탄 왕국에서는 절호의 찬스를 잡은 셈이었다.

포로로 잡은 무그 백작과 3배 급 기가스인 레드 스톰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협상을 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을 기대했던 필로스 왕 입장에서는 최고의 소득일 것이다.

결국 둘 중 하나였다.

페스로 제국이 무그 백작과 레드 스톰을 얻기 위해 먼저 협상 테이블을 제시하던가.

아니면 무그 백작에 대한 복수를 위해 대전(大戰)을 강행하던가.

모두가 카이탄 황제를 주목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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