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5.
제이머스 공작은 인질범과 접촉을 했다.
인질범은 제이머스 공작이 협상 의지를 보이자, 협상을 할 장소를 알려줬다.
물론 제이머스 후작은 그 협상 장소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제이머스 공작은 쿠틀러 백작은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불스 백작가에서 있었던 납치사전, 그 배후와 거래를 할 생각이네.”
“공작 각하!”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쿠틀러 백작은 기겁했다. 아니, 인질범과 거래를 한다니?
말도 안 된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콩탄 왕국의 최고귀족인 제이머스 공작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잘 듣게.”
놀라는 쿠틀러 백작에게 제이머스 공작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실질적인 거래는 없네. 협상 역시 없네.”
“그게 무슨……?”
“목적은 어디까지나 납치 사건의 원흉을 찾는 것. 이제까지 꼬리조차 없었던 놈들을 잡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닌가?”
쿠틀러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때 납치사건으로 적지 않은 귀족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탓에 이러다할 추적도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불만은 하늘을 치솟았다.
얼마 전까지는 슈페언 백작이 난리법석을 떠는 바람에 그 부분에 대한 불만이 크지는 않았지만 슈페언 백작이 이제르트 백작가에 패배한 이후 고민거리가 줄어든 귀족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시 그 불만은 페스로 제국과의 전쟁 분위기에 잦아들긴 했지만 계속해서 콩탄 왕국의 골칫거리로 남을 만한 문제였다.
그런데 꼬리가 잡혔다.
페스로 제국과의 전쟁도 중요하지만, 그 부분도 중요하다. 오히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인질의 목숨을 꼭 구할 필요는 없네.”
“그렇다는 건…….”
“인질이 죽어도 무방하네. 핵심은 이 사건의 원흉을 찾는 것. 그걸 위해서 협상하는 척 연기를 해주게.”
쿠틀러 백작은 납득했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또한 그 누구보다 자신이 이번 일의 적격자임을 알았다.
물론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제국과의 전선은…….”
“그 부분은 걱정말게.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알겠습니다.”
확답을 들은 쿠틀러 백작은 곧바로 인질범이 보낸 장소로 향했다.
6.
무그 백작의 명령에 따라 페스로 제국군의 병력이 분산되어 동시에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당연히 무그 백작도 움직였다.
“흥, 콩탄 왕국 놈들! 이번에 확실한 실력차이를 보여주마!”
황소보다 더 저돌적인 무그 백작이 전장을 놔두고 엉덩이 무겁게 앉아있을 리 만무했다.
직접 자신의 3배 급 기가스인 레드 스톰을 이끌고 움직였다.
또한 그런 무그 백작을 따라 무려 15기의 기가스가 함께 움직였다. 무그 백작이 소유한 기가스들였다.
2배급 기가스 8대와 1배 급 기가스 7대.
여기에 3배 급 기가스 레드 스톰까지!
어지간한 영주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솔직히 무그 백작은 이 정도 전력이면 이제르트 백작군 놈들도 단숨에 처부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흥, 슈페언 백작은 멍청해서 당한 거지.”
이제르트 백작군이 슈페언 백작을 격파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무그 백작은 자신했다.
슈페언 백작이 멍청해서 당한거라고! 또한 콩탄 왕국은 적진이나 다름 없는 곳 아니었던가?
슈페언 백작이 제 힘만 믿고 설치다 몹쓸 꼴을 당한 것이다.
무그 백작은 그런 슈페언 백작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르트 백작 그 작자만 잡으면 이제까지 슈페언 백작에게 뒤쳐졌던 내 평가도 달라질 터! 그래, 이건 좋은 기회야!”
이제까지 제국 내에서 무그 백작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슈페언 백작보다 아래였다.
그 사실이 무그 백작은 다음에 들지 않았다.
1대1로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고작 정치를 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저평가를 당해야 하다니?
하지만 이번에 그 평가를 뒤집을 기회가 왔다. 슈페언 백작이 무참하게 패배한 이제르트 백작가를 무그 백작이 무너뜨린다면, 세간의 평가는 백팔십도 바뀔 것이다.
“하하하! 뭐 어차피 죽은 인간보다 좋은 평가를 받아봐야 딱히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무그 백작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얼마나 갈지, 그는 몰랐다.
7.
이제르트 백작군이 움직였다. 이제르트 백작군의 움직임은 은밀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르트 백작군에 소속된 백 명의 병사들은 보통 병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색대였다.
1차적으로 GPS시스템을 통해 이동루트를 확인한다.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이제르트 백작의 수색대가 다시 한 번 2차적인 탐색을 하는 것이다.
보통 탐색과 이동, 이 두 가지를 순차적으로 하려면 이동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지만, 이제르트 백작군의 능력은 너무나도 뛰어났다. 또한 이미 훈련을 통해 실력도 절정에 다다른 상황.
사기까지 치솟아 있었다.
때문에 이런 두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걸쳤음에도 이제르트 백작군은 그 어느 군대보다 빠르게 이동했다.
순식간이었다.
“찾았습니다.”
“무그 백작군 발견했습니다.”
무그 백작의 병력이 포착됐다.
그 순간부터는 수색대의 역할은 끝이었다. 그들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문수르는 굳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을 전장에 투입하고 싶지 않았다.
문수르가 각오만 다지면 된다.
“3배 급 기가스.”
그에게는 드래곤 파이터가 있었으니까.
더군다자 지금의 드래곤 파이터는 예전의 것이 아니었다. 업그레이드를 했다. 노크센터에서 얻은 기술들, 그 정보들을 이용해서 보다 수준 높은 드래곤 파이터를 만들었다.
출력은 무려 3.5배 급!
“한 번 싸워본 적은 있지.”
더군다나 문수르에게는 3배 급 기가스와 이미 한 번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슈페언 백작의 골든 자이언트!
그놈과 말이다.
때문에 확신했다.
“내가 이긴다.”
문수르의 승산은 80퍼센트 이상이다. 더군다나 기가스와의 전투에 익숙한 건 문수르만이 아니었다.
“문수르 경 어떻게 할까요?”
“언제나 그렇듯 바람처럼 빠르게, 불처럼 화끈하게 처리합니다.”
“알겠습니다.”
문수르의 말에 이제르트 백작군 소속의 기가스 파일럿들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였다.
그렇다.
이제르트 백작군 역시 기가스와의 전투를 이미 질릴 때로 경험한 상황이었다.
이제까지 이제르트 백작령에 쳐들어온 기가스만 수십여 대다. 개중 대부분이 내놓라하는 무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이제르트 백작군은 단 한 번의 패배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전쟁에 참가한 이후에도 이제르트 백작군은 백전백승!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상대가 무그 백작, 페스로 제국이 자랑하는 3배 급 기가스의 주인이라고 해도 걱정거리는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떨렸다.
“이번에 이기면 몇 번째 승리가 되는 겁니까?”
“글쎄, 12승째 아닌가?”
“12연승이겠지.”
무그 백작이란 강력한 적! 예전에는 감히 싸운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적을 상대로 오히려 농담까지 하고 있다.
문수르는 그런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하게 끝낸다.’
8.
전투는 벼락이 내리친 것처럼 시작됐다.
기습이었다.
“적이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갑작스런 기가스의 등장에 무그 백작군은 당황하진 않았다. 어차피 국경 근처다. 또한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언제 어느 순간 적이 등장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미 대비는 하고 있었다.
모든 기가스 파일럿들이 기가스에 탑승한 상황이었다.
“적의 숫자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15대는 넘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15대가 넘어?”
기가스의 전투에서는 아무래도 머릿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크기가 작습니다.”
하지만 그런 머릿수만큼 중요한 게 바로 기체의 스펙이다. 무그 백작은 비웃었다.
“어설프게 숫자만 채운 거로군.”
무그 백작은 생각했다.
“전면전이다.”
이 전투, 피할 이유가 없다. 적이 알아서 범의 아가리에 몸을 던져주는 꼴인데, 범이 미쳤다고 그걸 피할까?
무그 백작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제르트 백작군의 기가스는 24대였지만, 개중 20대가 0.6배 급 출력을 가진 아이언히트였다.
반면 무그 백작의 기가스 16대 중 8대가 2배 급 출력의 기가스다. 나머지도 1배 급 기가스다.
질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무그 백작에게는 레드 스톰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무그 백작이 모르는 게 있었다.
“음!”
적과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무그 백작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위험하다!’
눈에도 보였다.
거대한 기가스였다. 무그 백작이 자랑하고, 페스로 제국을 대표하는 3배 급 기가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뿐인가? 그 어깨 넓이, 덩치는 어떠한가?
엄청나다.
레드 스톰이 작아보일 정도의 기가스였다.
더 놀라운 건 속도였다.
몰려오는 기가스들 중에서 가장 선두에 위치한 그 기가스는 어떤 기가스들보다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저건가?’
무그 백작은 느꼈다.
‘저 기체에 슈페언 백작이 무릎을 꿇었다, 그거로군!’
이제르트 백작가가 슈페언 백작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저 기가스일 것이다.
“좋다!”
그 순간 무그 백작은 도망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 역시 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무그 백작이 와이어를 잡아 당기자, 레드 스톰의 거대한 몸뚱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무그 백작! 이제까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다!”
달려오는 드래곤 파이터.
달려가는 레드 스톰!
그 두 존재의 결말은 하나였다.
콰앙!
충돌!
레드 스톰의 검과 드래곤 파이터의 창이 충돌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충돌에서 레드 스톰의 검이 박살이 났다.
“으헉!”
무그 백작은 기겁했다.
어느 정도 밀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상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으니까.
그러나 설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고작 한 번인데?’
딱 한 번이다.
두 번도, 세 번도 아니고 딱 한 번의 충돌이었다. 그것도 그냥 충돌이 아니었다.
서로의 무기를 이용한 충돌이었다.
검과 창의 충돌!
그런데 그 한 번의 충돌만으로 무그 백작의 검이 단숨에 박살이 난 것이다.
무그 백작은 이 상황에 너무나도 당황했지만, 반대로 무그 백작의 본능은 이 상황에서 놀라우리만큼 섬뜩한 대처능력을 보여줬다.
기가스들은 예비 무기를 소유하고 다닌다. 워낙 기가스의 힘이 엄청나서, 무기가 기가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하물며 3배 급 기가스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싸우다가 너무 강력한 힘에 적도 파괴하고, 자기 무기도 파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레드 스톰은 들고 다니는 검을 비롯해서 세 자루의 무기가 몸 곳곳에 있었다.
무그 백작은 검이 부러지마자자, 그 찰나의 순간에 다른 손으로, 평소 쓰던 손이 아닌 왼손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드래곤 파이터를 향해 도리어 역습을 날렸다.
무그 백작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멋지면서도 소름끼치는 반격이었다.
그러나 드래곤 파이터는 그 사실을 예측한다.
콰앙!
창대를 이용해 무그 백작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순간 무그 백작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무그 백작이 잽싸게 와이어를 잡아당기며 레드 스톰을 조종했다.
“이 놈!”
무그 백작은 파상공세를 준비했다.
‘힘대 힘으로는 힘들다!’
적의 기가스가 가진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런 적을 상대로 힘으로 싸우면 패배한다.
그렇다면 기술로 상대해야 한다.
무그 백작은 상대 기가스가 창을 쓴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걸 두려워해서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할 생각은 없었다.
“진짜 실력을 보여주마!”
무그 백작이 호통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