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10.
“폐하, 콩탄 왕국의 태도는 감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오나, 제국은 거대합니다. 제국 앞에서 콩탄 왕국은 어린애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린애가 치기 어린 짓을 한다고 해서 어른이 그 아이를 겁주고 때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벌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쟁이란 수단을 통해서 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무블 공작은 카이탄 황제를 어떻게든 설득하기 위해서 온갖 말들을, 주장들을 늘어놓았다.
카이탄 황제는 그런 무블 공작의 말을 경청했다.
카이탄 황제에게 있어 무블 공작은 나름 훌륭한 충신이었다.
카이탄 황제가 갑작스레 제국 정치의 방향을 공격적이었던 것에서 제국의 내실을 가꾸는 것으로 바꾸었을 때에 그런 카이탄 황제의 의견에 가장 열렬한 동의와 힘을 보탰던 인물이 무블 공작이었다.
그래서일까?
카이탄 황제는 무블 공작의 계속되는 주장 앞에서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무블 공작은 물러났다.
물론 한 번 물러났다고 해서 자리를 떠날 무블 공작이 아니었다.
무블 공작은 황도에 상주하며 꾸준하게 카이탄 황제와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꾸준하게 전쟁은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치수작이 절정에 다다른 무블 공작이다.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되는데, 무블 공작은 그걸 너무나도 잘 알았고, 그 선을 넘나들며 카이탄 황제의 마음을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다.
황도에 긴급속보가 들어왔다.
“뭣이라?”
카이탄 황제도 기겁할 만한 일이었다.
“현재 콩탄 왕국과의 국경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다름 아니라 현재 제국군의 일부 부대와 콩탄 왕국군이 몇 차례 교전을 치렀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근거는 있었다.
콩탄 왕국이 먼저 선공을 취했으며, 그로 인해서 제국군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
당연히 응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여기서 강하게 나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페스로 제국이 얕보이는 결과가 될 테니까.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설마 그 누구도 콩탄 왕국이 먼저 선공을 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 이야기는 당연히 무블 공작의 귀에도 들어갔다.
무블 공작은 직감했다.
‘이건…….’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러졌다는 것을.
그 시각 콩탄 왕국의 필로스 왕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필로스 왕이 이제르트 백작가를 대표해 온 마구르와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협의를 나눌 무렵이었다.
“페스로 제국군이 선공을 취했다고?”
“그러니까 그게…….”
콩탄 왕국 입장에서는 불에 데인 느낌이었다.
양국의 탐색대 간의 교전은 양쪽이 동시에 공격을 했다. 콩탄 왕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공격을 당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후에 자중했다. 괜히 그 한 번의 작은 교전에 대전(大戰)으로 번지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오히려 페스로 제국쪽에서 기가스까지 이끌고 콩탄 왕국의 국경을 넘어 공격한 것이다.
피해도 적지 않았다.
병사 160여 명이 사망했고, 2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귀족 두 명과 기사 두 명이 사망했다.
분명한 피해였다.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피해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필로스 왕이 내릴 수 있는 결단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적의 공격에 절대 물러서지 마라!”
반격!
전쟁은 전쟁이다.
전쟁에서 나중을 기약해서 혹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협상을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고, 당장 승리하는 게 최우선이다.
이제 더 이상 소극적인 자세,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아니었다.
“젠장.”
안다.
필로스 왕도 정말 전면전이 발발하면, 이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혹여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더라도, 콩탄 왕국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후일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넋놓고 그 협상 테이블만 기다리다가 오히려 그냥 쫄딱 망할 수도 있는 법이다.
전쟁이란 그런 놈이다.
한 번 기세가 기울이면 막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이상, 그 기세를 바꿀 수가 없다.
“마구르.”
“예.”
“자네가 말한 그 계획…… 수락하겠네.”
“알겠습니다.”
그 순간 같이 자리를 하던 마구르에게 필로스 왕이 대답을 했다. 마구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1.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제르트 백작령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이제르트 백작령은 병력을 움직일 준비를 한 상황이었다.
병사 100명.
아이언히트 20대.
기가스 파일럿 25명.
2배 급 기가스 3대.
그리고 드래곤 파이터까지!
그 병력은 다름 아니라 제국과의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이제르트 백작가가 준비한 병력이었다.
문수르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난다.’
GPS시스템으로 국경의 상황을 파악했던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문수르는 알고 있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이 전쟁을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필시 카라카크, 놈이 수작을 부렸을 테니까.’
이 전쟁을 누구보다 원하는 자가 있다.
다름 아니라 흑마법사 카라카크!
놈은 불스 후작가에서 사건을 일으킨 이후 이러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납치한 인물들을 가지고 협박을 하지도 않았다.
왜일까?
문수르는 고민해봤다.
일단 카라카크가 귀족들을 혹은 그 귀족과 관계된 인물들을 죽이지 않고 납치했다면 필시 협박을 위해서일 것이다.
무엇을 위한 협박일까?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좋은 의미에서의 협박은 아닐 것이다.
또한 카라카크는 혼란을 원하고 있다.
대륙이 전운에 휩싸이기를 소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운신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
그런 놈이 페스로 제국과 콩탄 왕국의 전쟁을 방관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놈은 완성했다.
기존의 마법으로는 절대 밝혀낼 수 없는 흑마법의 피조물들을 말이다.
그걸 이용하면 제국이든, 왕국이든 그곳의 정치에 혼란을 주기에, 내부에 적을 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필시 놈이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문수르는 그걸 역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리아 아가씨의 목숨은 포기한다.’
물론 그것이 이리아의 목숨을 포기하고, 도외시되는 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로 카라카크, 네놈은 내가 기필코 죽일 것이다.’
문수르는 확실하게 결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12.
불스 후작은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의 내용은 기겁할 만한 것이었다.
“감히…….”
다름 아니라 얼마 전 자신의 영지를 습격했던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보낸 편지였다.
편지에는 여러 내용이 적혀있었지만 중요한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때 잡은 인질들을 지금도 살려서 데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살리고 싶다면 자신의 명령을 들으라는 것이었다.
“미친 새끼.”
불스 후작은 그 편지 내용에 콧방귀를 뀌었다.
의미가 없고, 들을 가치도 없는 내용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불스 후작가가 그때 사건 이후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건 맞지만, 불스 후작가의 인물들 중에 납치를 당한 인물을 없었다.
납치 당한 인질들은 다른 영지의 영주나 혹은 그 친인척들 또는 그 영주의 기사들이 전부였다.
불스 후작이 그들의 목숨을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하물며 흑마법사의 행패가 분명한 일이다. 아직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했을 뿐.
그렇다면 이 협박범의 말을 따르라는 건 흑마법사의 명령을 따르라는 건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짓은 못한다.
불스 후작이 어떠헥 해서 자신의 가문을 후작 위에 올려 놓았는가?
차라리 명예롭게 죽으면 죽었지, 가문의 영광을 시궁창에 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불스 후작은 편지를 무시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제이머스 공작!
그에게도 똑같은 내용의 편지가 갔다.
제이머스 공작은 그 편지를 받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제이머스 공작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 협박에 순순히 따라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질들 중에서는 제이머스 공작을 따르던 귀족들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제이머스 공작의 위치가 흔들릴 게 분명했다.
협상이 결렬되도 좋다.
그러나 적어도 제이머스 공작은 그 인질들을, 귀족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라도 보여줘야 한다.
더군다나 최근 제이머스 공작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굉장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르트 백작가가 너무 치고 올라왔어.”
이제르트 백작가 때문이었다.
슈페언 백작과의 전투 그리고 이후 이제르트 백작가의 승리는 콩탄 왕국의 정치적 균형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이제까지 영주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무력을 가진 곳은 제이머스 공작가였다.
당연하다.
제이머스 공작, 그 자신이 오러 마스터 아니었던가?
그는 콩탄 왕국의 자존심이었다. 또한 콩탄 왕국 모든 기사들, 기가스들 파일럿들의 우상이었다.
단순히 권력과 무력만 가지는 것과 존경을 받는 것,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위치가 흔들렸다.
이제르트 백작가에는 모든 게 있었다. 특히 문수르의 명성은 날이갈수록 치솟아올랐다.
이제르트 백작가가 워낙 외부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였다.
자세를 낮춘 채 활동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이야기가 더 부풀어지고, 나중에는 영웅담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존재가 실체가 없는 존재다.
지금 이제르트 백작가는 존재하되, 그 능력과 저력은 실체하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위험했다.
‘오늘의 동지는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정치 앞에서는 오늘의 동지도, 내일의 적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 제이머스 공작의 입지는 추락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제르트 백작가는 너무 실체가 불분명하다.
필로스 왕이 후원을 했다고?
아니다.
그런 것치고는 필로스 왕과 이제르트 백작가 사이의 연결선도 생각보다 희미하고, 불투명했다.
이번 슈페언 백작 일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여러 귀족이 연합을 했다고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파고 들어가면 이제르트 백작가와 연결된 귀족은 없다. 오히려 연결되고 싶어하는 귀족들만 있을 뿐.
하물며 이번 일로 이제르트 백작가가 얻은 건?
슈페언 백작을 무너뜨렸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얻는 게 보통 일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르트 백작가는 어떤 대가를 얻었지?
모른다.
한편 슈페언 백작이 콩탄 왕국 내에서 갑작스런 습격에 실종되면서, 심지어 슈페언 백작의 사망설마저 떠돌기 시작했다.
전쟁의 시발점이다.
만약 페스로 제국과 콩탄 왕국 사이의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 시발점은 이제르트 백작가가 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이제르트 백작가가 예전처럼 정치적 왕따였다면, 콩탄 왕국은 오히려 이제르트 백작가를 제물 삼아 이 난국을 타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모두가 이제르트 백작가를 믿고 있다. 그들이 가진 힘이 왕국을 구해주리라 믿고 있다.’
반대다.
지금 이제르트 백작가는 귀인 중의 귀인으로 대접 받고 있다.
그들만이 페스로 제국이란 무시무시한 적으로부터 콩탄 왕국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제이머스 공작이 번듯하게 살아있고, 여전히 현역인 시대에 말이다.
제이머스 공작은 찾아야 했다.
정치적 입지도 되찾고, 동시에 콩탄 왕국도 기둥이 되어야만 했다.
“좋아.”
그 순간 제이머스 공작은 생각했다.
“인질범과 협상을 하는 척, 놈을 친다. 여차하면…… 인질이 죽더라도 그 인질범의 실체를 파악해 같이 죽이면 최소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