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42화 (240/293)

242화

8.

11대의 기가스.

개중에서 크게 파손된 기가스가 4대였다. 파손된 기가스들은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다.

기가스 값과 비슷한 액수의 수리비가 나올 것이다.

전부 2배 급 기가스들이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터.

그러나 그마저도 돌려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까놓고 선제공격을 취한 건 슈페언 백작이었다. 그리고 패배한 것도 다름 아니라 슈페언 백작이었다.

이제르트 백작가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당연한 노획물이었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뿐인가?

오히려 이제르트 백작가는 공격당한 입장에서 슈페언 백작가에 보상금을 요구할 수도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그것들 없이 순순히 기가스를 넘겨줬다는 건 엄청 대단한 일이었다.

슈페언 백작 입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배려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빌어먹을.’

슈페언 백작 입장에서는 정말 최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배려였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최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최악이었다.

이런 배려를 받으려고 계획을 세운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건 배려가 아니라 협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슈페언 백작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다.

아니,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다.

‘입지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지.’

슈페언 백작은 고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 같다.

그때였다.

“응?”

슈페언 백작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 순간 슈페언 백작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기가스에 탑승했다.

그런 슈페언 백작의 행동에 기사들 역시 모두가 동시에 기가스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려는 순간……!

콰앙!

거대한 기가스들이 슈페언 백작가의 무리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슈페언 백작가의 기가스 파일럿들은 중 일부는 제대로 기가스에 탑승하지도 못했다.

경계를 위해 미리 탑승하고 있던 몇몇 이들만이 대처를 할 뿐이었다.

한 번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슈페언 백작가의 기가스는 단숨에 3개가 파손됐다.

이미 파손 정도가 심한 것들이었기에, 한 차례의 공격만으로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쿠웅!

그런 순간에도 슈페언 백작은 단숨에 골든 자이언트에 탑승했다.

“네놈들이!”

의문은 없다.

적 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정도로 슈페언 백작은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적의 정체는 나중에 알아도 된다.

지금 중요한 건…….

“감히 나를 공격해!”

적을 분쇄하는 것!

9.

문수르는 두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제국이 슈페언 백작을 공격했군.’

슈페언 백작을 그냥 놔주는 순간, 문수르는 제국의 누군가가 슈페언 백작을 노리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누군인지는 모른다. 제국은 이미 여러 조각으로 파벌이 나뉘어진 상황이니까.

그러나 중요한 건 슈페언 백작의 파멸을 원하는 이들은 넘친다는 것이다.

이런 슈페언 백작을 몰락시킬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었기에 문수르는 이미 진즉에 페스로 제국에 정보를 흘렸다.

슈페언 백작에 대한 모든 정보를!

그가 가진 병력과 기가스의 상황 심지어 그가 움직일 루트까지 말이다.

‘슈페언 백작이 죽는다면…….’

상황이 최악에 다다른다면 슈페언 백작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어디도 아닌 이곳, 콩탄 왕국에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최소한 콩탄 왕국과 페스로 제국 사이에 좋지 못한 움직임이 보일 것이다.

가장 놀라는 건 역시나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공작이다.

그들은 지금 슈페언 백작이 패배한 사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와중이다. 그런 와중에 슈페언 백작이 콩탄 왕국에서 죽는다면 콩탄 왕국을 이끌어가는 그들은 기겁할 수밖에.

그렇다면 그 다음 선택은 어떻게 될까?

콩탄 왕국이 내릴 선택은?

응집이다.

페스로 제국이란 거대한 적을 두고 자중지란을 일으킬 만큼 콩탄 왕국은 바보가 아니다.

또한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후작의 영향력 역시 적은 것이 아니다.

불스 백작도 그 두 세력의 뜻과 같이할 터.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주목 받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그래, 맞다.

‘이것으로 이제르트 백작가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견고해진다.’

페스로 제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면, 콩탄 왕국의 그 어떤 영지보다 강한 전력을 보유한 이제르트 백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예전부터 계획했던 시나리오다.

콩탄 왕국의 정계에서 벗어나 있던 이제르트 백작가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콩탄 왕국의 중심에 둘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국과의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동안은 시행하지 못했다.

이 시나리오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으니까.

페스로 제국!

과연 페스로 제국과 전쟁을 하게 됐을 때, 콩탄 왕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1할?

혹은 그 이하?

무엇이 됐건 간에 그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는 봉인해두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페스로 제국의 사정이 좋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문수르가 잘만 상황을 주도한다면 페스로 제국의 내전을 일으킬 수 있다.

당장만 해도 그렇다.

슈페언 백작이 죽는다면? 페스로 제국과 콩탄 왕국의 사이는 극도로 나빠지고, 전운이 감돌겠지만 동시에 일곱 개의 파벌이 비등하게 대치구도를 형성했던 페스로 제국 내에서 치열한 정치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 점을 이용하는 거다.

“좋아.”

문수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10.

새로운 소식이 대륙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맙소사…….”

“그래, 평화가 길었던 게지. 이제 그 평화가 끝날 때가 온 셈이고…….”

슈페언 백작의 패배.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륙은 충격에 빠진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엄청난 소식이 터져나왔다.

슈페언 백작이 죽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병사(病死)한 것도 아니다.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장소였다.

그 어디에도 아닌 콩탄 왕국의 땅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필로스 왕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전 대륙을 상대로 해명을 했다.

“슈페언 백작과 콩탄 왕국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또한 슈페언 백작은 이제르트 백작가과의 싸움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고, 배상금을 지불했다. 그렇기에 이제르트 백작가 역시 슈페언 백작을 풀어주고, 슈페언 백작가로부터 노획한 모든 기가스 역시 넘겨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콩탄 왕국이 슈페언 백작을 공격할 이유는 없다!”

맞는 말이었다.

상식적으로 필로스 왕이 슈페언 백작에게 엄청난 원한을 가지지 않은 이상, 슈페언 백작을 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슈페언 백작을 공격할 경우 그 후환은 어마어마하다.

상상조차 못한다.

페스로 제국!

카이탄 황제 즉위 이후 수십여 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채 내부적으로 힘을 응축했던 그 대제국과 싸울 만한 담력이 필로스 왕에게 있을까?

담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힘이 없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게 왕의 역할 아니던가?

많은 이들이 필로스 왕의 말을 믿었다. 콩탄 왕국의 영지에서 슈페언 백작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슈페언 백작은 패배했던 상황 아닌가?

하지만 제국의 입장은 달랐다.

페스로 제국은 당장 콩탄 왕국에 대해 분노의 일갈을 내질렀다.

“콩탄 왕국은 비열한 수법을 이용하여 제국의 뛰어난 기사이자, 귀족인 슈페언 백작을 해하였다. 이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용납이 불가능한 행위이다. 필로스 왕이 직접 황제 폐하 앞에 서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지 않는한, 제국은 이 상황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쟁을 통해서라도 슈페언 백작의 복수를 할 것이다.”

페스로 제국은 강하게 나왔다.

그런 페스로 제국의 움직임에 대륙 전체가 몸을 떨었다.

사실 요 근래 수십여 년 동안 조용했을 뿐이지, 페스로 제국은 이제까지 무식할 정도로 전쟁만을 일삼던 제국이었다.

지금 현역에서 활동하는 기사들, 영주들 중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페스로 제국과의 전쟁을 경험한 경험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명분이 섰는데 페스로 제국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동안 이렇게까지 참은 것이 대단한 일이지.”

“페스로 제국의 무수히 많은 귀족들이 이번 일을 반길 터.”

“비단 콩탄 왕국만 몸을 사릴 때가 아니다. 본국도 필시 방비를 해야 할 것이다.”

페스로 제국은 그동안 힘을 축적했다.

축적한 힘은 결국 폭발한다. 폭발할 방향을 찾지 못하면 그 힘은 내부에서 터지는 법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또한 페스로 제국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 전쟁을 통해 부와 명예를 쌓아온 그들이 전쟁을 꺼릴 리 만무하지 않은가?

오히려 기회를 삼을 것이다.

황제가 전쟁을 하자고 하면, 오히려 서로 앞장서서 병력을 바치고자 할 것이다. 시키지도 않는데 먼저 최전선에 병력을 이끌고 나갈 것이다.

뻔했다.

이 순간 필로스 왕은 페스로 제국과의 전쟁으 불가피한 것임을 느꼈다.

더 이상의 해명이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는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그들 스스로가 슈페언 백작을 처리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빌어먹을.’

필로스 왕은 고뇌했다.

‘가뜩이나 흑마법사 때문에 골머리가 아픈데!’

지금 콩탄 왕국은 페스로 제국과 전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흑마법사 문제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필로스 왕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이미 소식이 들리고 있었다.

콩탄 왕국과 페스로 제국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 귀족들이 병력을 움직인다는 소리를 말이다.

넋놓고 무죄만 주장하다 일격을 맞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필로스 왕은 병력 소집의 필요함을 느꼈다.

페스로 제국과 그나마 싸움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병력을 국경에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걸 위해서는 동시에 또 하나의 작업이 필요했다.

‘주변국들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

주변국들!

콩탄 왕국과 인접한 다른 국가들과의 동맹!

‘어떻게든 동맹을 맺어야 해!’

필로스 왕은 측근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그들에게 외교관의 직위를 주어, 주변국들과의 동맹을 추진했다.

주변국들 역시 콩탄 왕국 다음 차례가 그들이 될 것을 알고 있을 터!

협조는 생각보다 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남이었다.

‘대체 어떻게 페스로 제국의 병력을 막아야 한단 말인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콩탄 왕국과 페스로 제국의 전력!

이 전력 차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전력을 모으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로스 왕은 도무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단지 한 사람을 떠올릴 뿐!

“이제르트 백작가 밖에 없군.”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그나마 내놓을 수 있는 자는 이제르트 백작,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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