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41화 (239/293)

241화

4.

무블 공작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슈페언 백작, 그가 패배했다고?”

“소문을 보면 그런 모양입니다.”

“정말 이제르트 백작가가, 그 보잘 것 없는 콩탄 왕국의 귀족이 슈페언 백작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소식이 왔다.

이제르트 백작가가 슈페언 백작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심지어 슈페언 백작과 그 기사들을 포로로 잡았다고 한다.

“소문은 그렇습니다.”

제 아무리 소문이라도 그렇지, 그건 정말 무블 공작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슈페언 백작이 어떤 인간이었던가?

페스로 제국 내에서는 그 누구도 힘으로 슈페언 백작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자다.

그런데 그가 고작 이제르트 백작가, 콩탄 왕국의 보잘 것 없는 귀족가에 패배하고, 심지어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소문, 소문! 소문만 듣지 말고 정보를 가져오라고!”

그러나 무블 공작은 그저 소문만 믿고 판단을 내릴 정도로 무지한 자가 아니었다.

소문은 소문이다.

중요한 건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였다.

정말 슈페언 백작이 패배한 게 맞는지, 그리고 정말 포로로 잡힌 것인지, 그걸 파악해야 했다.

“사, 사람을 보냈습니다.”

무블 공작의 호통에 그의 충신은 쩔쩔 맸다. 그런 충신의 모습에 무블 공작은 분노를 멈췄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곱씹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이게 사실이라면 제국에 피바람이 불겠지.”

5.

슈페언 백작의 패배 소식은 제국에도 크나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콩탄 왕국에 미친 영향 역시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특히 개중에서 필로스 왕이 느낀 경악감은 가장 큰 것이었다.

필로스 왕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르트 백작가가 슈페언 백작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르트 백작가에 알 수 없는 저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적어도 슈페언 백작을 상대로 이길 수준의 전력은 절대 아니다. 필로스 왕은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여기서 필로스 왕은 예측했다.

‘그래, 누군가 이제르트 백작가와 손을 잡은 거로군.’

이제르트 백작가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다른 도우미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필로스 왕은 그 도우미가 누군지 모른다.

여기서 필로스 왕의 고민이 시작됐다.

‘대체 누굴까?’

이제르트 백작가를 도울 만한 귀족들……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리상으로 보면 불스 후작 정도가 있고, 콩탄 왕국 전체를 놓고 보면 제이머스 공작 정도뿐이다.

만약 정말 그 둘, 제이머스 공작과 불스 후작 중 한 명이 이제르트 백작가와 손을 잡고 슈페언 백작을 무너뜨렸다면, 이번 일은 보통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견제하겠지.’

콩탄 왕국의 모든 귀족에게 근심걱정을 주던 슈페언 백작, 그러나 그 슈페언 백작 앞에서 필로스 왕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르트 백작가가 슈페언 백작을 막았다.

콩탄 왕국의 귀족들 입장에서 이제르트 백작가는 구세주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제르트 백작가는 막강한 정치력을 가지게 될 터.

그렇게 만들어진 힘은 결국 필로스 왕을 견제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쉽지 않군.’

필로스 왕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슈페언 백작이 패배한 건…….’

하지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필로스 왕 입장에서는 슈페언 백작과 싸우는 것보다 이제르트 백작가와 싸우는 게 더 편하게 여겨지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때까지 필로스 왕은 몰랐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정말 어떠한 적인지 말이다.

6.

슈페언 백작이 감옥에서 나왔다.

그의 기사들 역시 슈페언 백작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났다. 더불어 노획했던 기가스 역시 돌려줬다.

물론 슈페언 백작과 함께 온 그의 사병들 대부분은 죽음을 맞이한 상황이었다.

슈페언 백작은 그부분에 대해서는 이러다할 말을 하지 않았다.

슈페언 백작 입장에서는 기사들이 무사하고, 기가스를 돌려 받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으니까. 그 외의 것들은 패자가 감수해야 하는 당연한 피해였다.

슈페언 백작은 곧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약속은 꼭 지키도록.”

그리고는 문수르에게 그 말을 남긴 채 곧바로 자신의 영지로 향해 움직였다.

문수르는 그런 슈페언 백작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지켜주지.’

슈페언 백작이 떠난 직후 문수르는 세 장의 편지를 썼다. 각기 다른 그 편지는 불스 후작과 필로스 왕 그리고 페스로 제국의 무블 공작에게 향했다.

7.

아히만트 백작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슈페언 백작이 패배라니?”

슈페언 백작의 패배 소식, 그건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슈페언 백작은 아히만트 백작조차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사내였으니까.

그 무렵이었다.

슈페언 백작의 소식에 아히만트 백작이 큰 충격을 받았을 무렵, 손님이 아히만트 백작을 찾아왔다.

“노운 경?”

“아히만트 백작님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아니, 노운 경이 언제 오셨소?”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페스로 제국의 떠오르는 별이 된 노운 경, 그가 아히만트 백작을 찾아온 것이다.

노운 경은 아히만트 백작은 자주 찾아오고, 실제로 아히만트 백작가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최근 어디론가 훌쩍 떠났던 노운 경의 등장은 갑작스런 것이었다.

“슈페언 백작의 소식을 듣고 급하게 왔습니다.”

그런 노운 경은 슈페언 백작을 언급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히만트 백작은 무언가를 느꼈다. 노운 경의 혜안은 아히만트 백작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슈페언 백작에 대한 것을 언급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슈페언 백작과 이제르트 백작가가 가문 대 가문으로 붙었는데 슈페언 백작가가 패배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아히만트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놀라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다. 놀라고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슈페언 백작이 패배했는지, 그것부터 역으로 파악하는 게 순시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기에 많은 이들은 놓치고 있었다.

패배에 놀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패배의 배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 중 하나입니다. 필로스 왕이 이제르트 백작가에 몰래 힘을 실어줬거나 그게 아니라면 콩탄 왕국의 귀족들이 필로스 왕 몰래 힘을 모아서 함정을 팠거나.”

“그렇구려.”

그제야 아히만트 백작은 가려졌던 시야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무엇이 됐건 간에 적어도 페스로 제국과의 합의가 없다면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을 겁니다.”

노운 경, 그는 핵심을 꿰뚫었다.

아히만트 백작은 기겁했다.

“그게 무슨 의미오?”

“간단한 겁니다. 콩탄 왕국의 필로스 왕이 혹은 귀족들이 힘을 합쳐 슈페언 백작을 공격했다? 한 귀족이 개인의 자격으로 슈페언 백작과 싸우는 건 문제가 없지만, 다수의 귀족이, 왕이 힘을 모아 슈페언 백작을 쳤다는 건, 명백히 페스로 제국에 대한 도전입니다.”

페스로 제국에 대한 도전!

그 표현에서 아히만트 백작의 눈빛이 달라졌다.

세상은 아히만트 백작의 실력을 슈페언 백작의 이름 뒤에 놓지만, 제국을 향한 충성심 만큼은 아히만트 백작이 슈페언 백작보다 훨씬 위다.

그런 아히만트 백작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제국에 대한 적의이며, 도전이다.

“……폐하께 말씀드려야겠소.”

이건 아니다.

페스로 제국이 그동안 얌전했던 것도 사실이고, 콩탄 왕국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건 용납할 수 없다.

제 아무리 슈페언 백작이 아히만트 백작 입장에서는 고까운 존재라고 해도 제국의 귀족이며, 제국을 대표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함정에 빠져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한 것이다.

이걸 그냥 두고 본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제국을 무시하는 처사고, 제국을 얕잡아보는 행위다.

전쟁이다.

다른 건 없다.

콩탄 왕국의 왕이 세계를 향해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상, 페스로 제국은 힘을 보여줘야 한다. 자신들이 어떤 존재였었는지, 그걸 명명백백하게 보여줘야 한다.

“아히만트 백작님,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기회라니?”

“하루 빨리 황태자 위의 주인이 가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일곱 명의 황자들의 세력은 비등비등한 탓에 그 누구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히만트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황에서 슈페언 백작이란 한 축이 무너지면 과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야…….”

아히만트 백작은 상상해봤다.

슈페언 백작이 몰락한다면, 자연스럽게 슈페언 백작이 밀고 있던 이황자의 세력도 급속도로 몰락할 터.

그렇게 되면 이황자 파벌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놓고 다른 황자 파벌들이 피 튀기는 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아!”

전쟁이 일어나는 거다.

“하지만 그리 되면 내전 아닌 내전이 일어나는 것 아니오?”

“그래서 이번이 기회인 것입니다. 어차피 황자들의 경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황자들이 서로 경쟁을 하는 사이 주변국이 페스로 제국을 공격하는 일입니다.”

“그렇소.”

황자들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아니, 경쟁 없이 황태자가 선정되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렇게 되면 그 누구도 그 황태자 위를 납득하지 못할 터. 그런 식이면 진짜 제국이 쪼개질 수도 있다.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황자들이 서로 경쟁을 통해 황태자 위가 정해지는 게 맞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황자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한 상황에서 그 낌새를 눈치 채고 타국들이 페스로 제국을 공격한다면?

그걸 막기 위해서, 황자들의 경쟁을 가리기 위해서 제국은 주변국을 이용하려고 했다.

주변국 역시 내부적으로 혼란을 겪게 함으로써, 페스로 제국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아히만트 백작이 콩탄 왕국으로 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럼 간단한 겁니다. 슈페언 백작이 만약 콩탄 왕국에서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면?”

“그게 무슨!”

아히만트 백작이 기겁을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히만트 백작의 머릿속이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슈페언 백작이 포로로 잡히긴 했지만 콩탄 왕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를 풀어줄 건 당연한 일. 슈페언 백작은 당연히 영지로 복귀할 것이다.

그 와중에 슈페언 백작이 콩탄 왕국 내에서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한다면?

과연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제국 내부에서는 슈페언 백작이 차지하던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제국 외부에서는 콩탄 왕국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아니, 콩탄 왕국과 전쟁을 꼭 할 필요는 없다. 슈페언 백작에 대한 일을 놓고 콩탄 왕국이 알아서 자중지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친 제국파 귀족들을 이용해서 몇 가지 정치적 수작만 부리면 춥운히 그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아!”

그 순간 아히만트 백작은 이해했다.

노운 경,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아히만트 백작님,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슈페언 백작의 처리는 그 누구도 아닌 아히만트 백작만이 가능한 일이다.

“제국을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더군다나 아히만트 백작, 그는 분명 슈페언 백작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잔뜩 있는 귀족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