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40화 (238/293)

240화

<73화. 계약 그리고 거래.>

1.

이제르트 백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무탈했으면 좋겠군.’

이제르트 백작은 문수르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문수르의 계획이 무엇인지도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기겁했다.

특히 슈페언 백작을 홀로 감옥에 가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반대했었다.

그건 안 된다고 말했다.

상대는 그 누구도 아니고, 귀족이다. 그것도 보통 귀족이 아니라 제국의 귀족이다.

그런 제국의 귀족을 콩탄 왕국의 귀족이 함부로 취급한다면, 이건 단순힌 귀족 대 귀족, 개인 대 개인의 일을 떠나서 제국과 왕국 간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수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만무했다.

문수르는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그 모든 이유를, 설명을 들었을 때 이제르트 백작은 고민했다. 장고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문수르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을 해주었다.

문수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문수르는 슈페언 백작과 담판을 짓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갔다.

“최악의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군.”

문수르를 믿는다.

이제까지 문수르가 아니었다면 이제르트 가문은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수르의 계획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때문에 처음이었다.

이제르트 백작이 문수스의 일에 이렇게까지 걱정한 적은 말이다.

2.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문수르의 물음에 슈페언 백작은 씨익 웃었다.

“덕분에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지.”

그 웃음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나름 각오를 하고 온 문수르조차 등골이 싸늘하게 식을 정도로 말이다.

‘역시…….’

슈페언 백작.

오러 마스터는 아니다. 그는 절대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접어든 무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제국 최고의 기사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자였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와 제국 최고 반열에 오른 기사, 과연 둘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 것일까?

문수르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제국 최고 반열의 기사, 그 타이틀이 더 무겁다.

‘살아남은 자다.’

흔히들 말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라고.

슈페언 백작은 치열하다 못해 혹독하고, 처함한 제국 정세 속에서 살아남아 포식자가 된 자다.

그의 강함이 그저 순수한 수련과 단련으로 이룩할 수 있는 오러 마스터의 강함보다 약할 리 없다.

문수르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적수를 만난 것일지도 모르지.’

이제까지 나름 고단수의 사람들을 여러 상대했다. 심지어 필로스 왕도 상대해봤다.

그러나 오늘 슈페언 백작을 상대하는 것이 문수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원하는 게 뭐지??”

슈페언 백작이 말을 던졌다.

대화가 시작됐다.

“전쟁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이미 칼 끝을 겨누었지. 장담하지. 나를 여기서 살려주면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반대로 나를 죽인다고 해도 전쟁은 일어날 것이다.”

“섬뜩한 소리군요.”

문수르는 혀를 찼다.

‘말뿐만이라면 다행이지.’

슈페언 백작의 말…… 다른 이가 하면 그저 허장성세에 불과했겠지만 슈페언 백작의 경우라면 다르다.

그가 원한다면 정말 전쟁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를 죽인다고 해도 역시 전쟁은 일어난다.

애초에 전쟁을 막고자 했다면 슈페언 백작을 사로 잡았더라도, 최소한으 예의를 갖추고 포로에 걸맞은 대우를 해줬어야 했다.

거기서 이미 틀어진 것이다.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흥.’

그러나 문수르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르트 백작가가 슈페언 백작가를 이기는 순간, 이미 전쟁은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슈페언 백작을 포로로 잡고 충분한 대우를 해줬다면, 슈페언 백작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없다.

슈페언 백작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명히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다.

만약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슈페언 백작을 이렇게 대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 아니면 도,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다.

이게 최선이다.

‘그래, 좋아.’

이제 시작이다.

“무블 공작은 슈페언 백작, 당신의 목을 대가로 제게 제국의 작위를 제시해주셨습니다.”

갑작스런 공격은 문수르의 입에서 나왔다.

슈페언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블 공작, 네놈이!’

무블 공작.

말 그대로 공작이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작위를 가진 자다.

하지만 무블 공작의 권위는 생각 만큼 높지는 않다. 페스로 제국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페스로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건 국경을 지키는 귀족들, 바로 변경백들이다.

팽창주의를 표방하며 무차별적인 전쟁을 일으켰던 제국은 필연적으로 주변국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작은 빌미 하나만으로도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제국의 땅덩어리가 커질수록, 제국이 거대해질수록, 황실이 그 모든 일을 일일이 처리하는 게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황실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국경을 지키는 변경백들에게 권환을 위임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국경을 지키기 위한 병력 육성, 병력 운영, 전시(戰時) 상황에서의 판단 등.

그것들에 대한 권력을 가지게 된 변경백들은 어느 순간부터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 슈페언 백작 역시 그런 부류였다.

반대로 무블 공작은 중앙정계에서 활약하는 말 그대로 정치인이었다.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만, 반대로 가진 순수한 힘, 전력(戰力)은 그렇게 대단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무블 공작은 슈페언 백작 입장에서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자가 아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볼 수 있는 자였다.

그래서 적개심이 더 강하다.

야생의 먹이사슬은 처절하다. 먹이사슬 아래 있는 놈은 절대 위에 있는 놈을 노리지 못한다. 피하지만 할 뿐이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반대로 먹이사슬의 같은 위치에 있다면, 오히려 먹이를 노릴 때보다 더 격렬하게 싸운다.

동족혐오라고 해야 할까?

“흥! 결국 네놈도 작위를 탐내는 자였군. 제국의 작위를 가지고 싶은가? 그럼 내 기사가 되어라.”

이 순간 슈페언 백작은 놀라운 제안을 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문수르에게 자신의 기사가 되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문수르는 놀랐다.

‘역시 배포가 남다르군.’

마음에 안 드는 건 안 드는 거다. 그러나 반대로 필요하다면 받아들일 줄 안다.

무리를 이끌어가는 자, 우두머리가 되는 자에게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배포를 가져야 한다.

“미안하지만 제국의 기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제국의 기사가 아니다. 슈페언 백작가의 기사다. 대륙 모든 기사들이 꿈꾸는 자리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지. 나를 보필한다면 훗날 네 스스로가 백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정말 제국의 기사가 되고 싶었다면, 애초에 무블 공작 이야기를 당신 앞에서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슈페언 백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이 녀석…….’

슈페언 백작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와 거래를 하고 싶다는 거로군.”

“솔직히 말해서 이제까지 아무런 접점도 없었던 무블 공작보다는 슈페언 백작, 당신이 훨씬 더 믿을 만합니다.”

“하하하!”

웃긴 놈이다.

슈페언 백작은 지금 문수르가 참으로 웃긴 놈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무서운 놈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내 처지를 알고 있군. 대단한 놈이야.’

사실 무블 공작에게 콩탄 왕국은 계륵 같은 존재다. 가지면 좋다. 콩탄 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가져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콩탄 왕국을 얻기 위해 사활을 걸 가치는 없다반대로 슈페언 백작은 나름 사활을 걸어야 한다. 콩탄 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잃는 건 슈페어 백작이 패배자란 의미나 마찬가지이니까.

“필로스 왕의 계획인가?”

문수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물론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군.’

문수르의 목적.

무블 공작과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슈페언 백작과 손을 잡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슈페언 백작을 이용해서 필로스 왕을 견제할 것이다. 슈페언 백작가와 이제르트 백작가가 손을 잡는다면 필로스 왕을 견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필로스 왕은 좋은 왕이다.

하지만 이제르트 백작가는 굳이 필로스 왕이 콩탄 왕국의 주인일 필요는 없다.

핵심은 이제르트 백작가의 존립.

그리고 이제르트 백작가를 반석에 올려놓는 것.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어설픈 감정에 휩쓸려 최선의 선택을 놓치는 불상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결국 이리아 때문이다.

휴머니즘.

좋은 단어다.

그러나 휴머니즘이란 단어만으로 세상에 평화로울 수 있었다면 이 세상에 전쟁을 하는 인간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여긴 소설 속이 아니다.’

더 이상 소설가였던 문수르는 없다.

‘이제르트 백작가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제국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다.’

문수르, 그는 이제 이제르트 백작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기사다.

그런 문수르의 속을 알 리 없는 슈페언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그는 이해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로군. 그래, 그래야지.”

슈페언 백작은 오히려 납득해버렸다.

아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필로스 왕 입장에서도 제국의 다른 귀족들보다 내 손을 잡는 게 편하겠지. 아무렴!”

슈페언 백작은 생각했다.

필로스 왕은 슈페언 백작과 손을 잡고 싶어 한다. 제국의 도움 없이는 콩탄 왕국이 유지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냥 손을 잡는 건 아무래도 그렇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는 필로스 왕과 슈페언 백작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슈페언 백작에게 유리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서로 동등한 위치…… 아니, 필로스 왕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위해 함정을 판 것이다.

이제르트 백작가에 전력을 감추고, 무블 공작가와 손을 잡는 척을 하며 덫을 설치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르트 백작가가 단독으로 이런 막강한 전력을 가진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제국의 그 어느 귀족도 혼자서 이런 거대한 전력을 가진 이는 없으니까!

“좋아.”

슈페언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굴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슈페언 백작의 머릿속에는 좋은 계획 하나가 떠올랐다.

“거래의 내용을 들어보지.”

서로 치열하게 물어뜯기만 했던 제국의 정치 싸움을 서로 검을 들고 싸우는 치열한 전장으로 바꿀 수 있는 계획이 말이다.

3.

소문은 퍼진다.

그 누구도 소문을 막을 수는 없다.

“맙소사, 슈페언 백작이 패배했다고?”

“그 무적이나 다름없던 슈페언 백작이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소문은 쉽게 믿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슈페언 백작!

제국 최고의 기사 중 한 명!

무시무시함 3배 급 기가스, 골든 자이언트의 주인!

백전무패, 모든 전장에서 절대적인 공포로 군림하던 그가 패배했다는 걸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 천지에 얼마나 될까?

그렇게 소문은 퍼졌다.

동시에 다른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최근 시간이 없어서 일구일생 위주로만 글을 올렸네요.

노크맨 연재는 다시 꾸준하게 연재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이제 왕국편이 끝나고 제국편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제국편도 짧지는 않겠지만, 제국편이 끝나면 노크맨도 완결을 맞이하는 셈이겠죠.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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