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33화 (231/293)

233화

7.

전쟁이었다.

어니언 자작가의 성은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무참하게 박살이 나는 중이었다.

10대의 기가스들은 어니언 자작령의 성벽을 무너뜨렸다. 그건 던순한 공성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공격하는 자들은 단순히 성을 넘기 위해 성벽을 부수는 게 아니었다. 성벽을 다시 복구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다시 성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성벽을 무참하게 박살내고 있었다.

그 후에는 더 참혹했다

기가스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 무차별적인 파괴를 일삼았다. 모든 것을 때려 부셨다.

후웅!

거대한 기가스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큼지막한 저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이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렸다.

쾅쾅!

기가스들은 그렇게 쓰레기가 된 잔해마저 사정없이 짓밟았다.

“으아악!”

“사, 살려줘!”

그 잔해에, 기가스의 밟에 깔린 이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소리에 어니언 자작령이 지진이 난 것마냥 울렸다.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비명소리에도 기가스들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무차별적인 폭력과 파괴를 일삼았다.

그들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어니언 자작가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는 것이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 중심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기가스가 있었다.

골든 자이언트.

페스로 제국이 자랑하는 3배 급 기가스!

더불어 페스로 제국에서도 이름난 실력자, 슈페언 백작이 이끄는 기가스이기도 했다.

그렇다.

콩탄 왕국의 귀족, 어니언 자작령을 파괴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아닌 슈페언 백작의 부하들이었다.

“모든 걸 태워라. 생존자를 남기지 마라.”

슈페언 백작은 명령했다.

“이곳은 사악한 흑마법사의 마수에 넘어간 사악한 땅이다. 신조차 용서하지 않는 비참하고, 추악한 땅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해라.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마라.”

기사들은 그런 슈페언 백작의 명령에 충실했다.

일말의 동정심도, 자비도 품지 않았다.

그건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성 주변에는 슈페언 백작가의 병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흑마법의 졸개에게 자비는 없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저는 절대 흑마법의 졸개가 아닙…….”

푸욱!

도망치는 어니언 자작령의 영지민들. 그들을 처치하는 것이 병사들의 역할이었다. 병사들은 영지민들이 보이는 족족 검으로, 창으로 그들을 찔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영지민들 처치했다.

“변명은 필요없다. 슈페언 백작님이 명령하셨고, 황제 폐하가 네놈들의 죽음을 명하셨다. 그럼 그냥 죽으면 되는 거다.”

슈페언 백작가의 병사들.

그들은 제대로 된 훈련과 오랜 경험으로 연마된 백전노장들이었다. 그들에게 자비는 없었고, 틈은 더더욱 없었다.

철두철미했다.

도망치는 어니언 자작령의 영지민들이 그런 그들을 뚫기 위해 힘을 합심하여 덤벼들었지만 영지민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도 병사 둘을 이기지 못했다.

오히려 슈페언 백작가의 병사들은 무리를 지어 덤비는 걸 환영했다.

“잡으러 쫓아다닐 필요가 없군.”

“흥! 그래봐야 평민이지.”

도망치는 걸 잡는 것보다 덤비는 걸 잡는 게 병사들에게는 더 편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어니언 자작령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콩탄 왕국에 태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8.

테블스 산 개간 작업이 시작됐다.

새로운 목적을 위해 진행된 테블스 산의 개간 작업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테블스 산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제까지 산에 불을 지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엘프인 탈라트 부족을 위한 것도 이유겠지만, 산에 불을 지른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짓이다. 특히 테블스 산처럼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에 불을 지르면 몬스터들이 산을 뛰쳐나올 테고, 놈들이 향할 곳은 이제르트 백작령이 될 것이 뻔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문수르는 어스 월드의 인간으로, 산에 불을 지른다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있었다.

과거에는 많은 인간들이 산에 불을 질러 화전(火田)을 만들어 살아가고는 했지만 문수르에게는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숲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훗날 미래의 이들을 위해서 자연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보고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문수르는 거침 없이 불을 질렀다.

문수르는 어스 월드의 가치관을 카라카크라는 무시무시한 흑마법사를 상대로 발휘할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었다.

“불에 쫓긴 몬스터들이 영지로 달려듭니다.”

“병력이 부족합니다.”

“개간 속도를 늦추는 게…….”

물론 무리한 움직임은 부작용도 가져왔다. 테블스 산의 몬스터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테블스 산의 악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여전히 많은 몬스터들이 있었다.

기존의 작업은 그 몬스터들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면서 진행되었지만, 불을 지른 순간부터 그 효율적인 제거는 머나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불을 지르자마자 몬스터들이 숲을 뛰쳐나왔다.

이제르트 백작가의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아이언히트는 그런 몬스터들과 전쟁을 하기 바빴다.

그리고 가장 바쁜 건 역시 문수르였다.

“제가 처리합니다.”

“방금 전투를 마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몸이 상하십니다. 문수르 경은 휴식을 취하심이……. 전장에는 우리들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문수르.

그는 전선에 섰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많이 싸웠고, 누구보다 오래 싸웠다.

때문에 누구보다 많은 몬스터를 처치했다.

드래곤 파이터를 타고 쉴 새 없이 몬스터를 처치하는 문수르의 모습은 무신(武神), 그 자체였다.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런 문수르의 모습에 감탄했다. 또한 그런 문수르가 자신들의 기사라는 사실에, 동료라는 사실에, 상관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동시에 우려했다.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 무리할 정도의 테블스 산 개간 작업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지쳤다.

문수르 역시 크게 지쳤다.

평소 흐트러진 모습을 쉬이 보이지 않는 문수르가 기사들은 물론 심지어 병사들 앞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때가 잦아졌다.

그걸 가지고 혀를 차는 이들은 당연히 없었다.

오히려 그 모습에 걱정만 깊어질 뿐이었다.

이제르트 백작가에서 문수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문수르를 떼어놓고 이제르트 백작가를 설명하는 건 이제 불가능할 지경이다. 그런 문수르는 누가 보더라도 무리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는 더 있었다.

- 주인님, 오버 페이스입니다.

로이드.

그 역시 문수르의 행동이 오버 페이스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알아.”

휴식을 취하는 문수르.

그런 그도 알고 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자신의 몸이기에 잘 알 수 있었다.

“오버 페이스 정도가 아니지. 이미 한계야.”

-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상황으로 가다가는 조만간 몸에 무리가 올 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가 아니잖아.”

안다.

오버 페이스란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수르는 계속해서 달릴 생각이었다.

“젠장, 생각보다 던전을 파괴하는 데에 너무 시간이 걸려.”

개간 작업 자체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원래 목적인 카라카크의 던전 파괴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했다.

카라카크도 바보가 아닌지라, 자신의 던전에 대한 방어를 철두철미하게 준비해두었다.

또한 잘 숨겨두기도 했다.

찾는 것도 힘들었고, 파괴하는 것도 어려웠다.

“테블스 산…… 진짜 몬스터들의 왕국이군.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불을 지르니까 예상보다 곱절이나 많은 숫자가 튀어나오더니.”

변수는 또 있었다.

테블스 산.

몬스터들의 소굴이란 표현이 딱 맞았다. 숲에 불을 지르자, 그동안 숨어 지내던 몬스터들조차 뛰쳐나왔다.

그렇게 해서 나온 몬스터의 개체 수는 문수르의 예상을 훌쩍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문수르가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계획은 하나부터 열까지 그가 계획했다. 그런데 변수의 등장, 오판으로 인해서 병사들과 기사들이 다친다면 문수르들은 그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정도 염치는 있다.

- 그래도 이 페이스는 위험합니다.

“걱정 마.”

물론 문수르가 평소와 다르게, 이제까지와 다르게 이렇게 무리를 하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실패해도 두 번째 노크맨이 일을 처리해줄 테니까.”

이제 까지와는 다르게 지금 문수르에게는 스페어의 존재가 있다.

두 번째 노크맨!

그가 있는 이상, 문수르가 실패를 해도 한석균의 계획은 무리없이 진행될 것이다.

문수르가 죽어도 후임이 있다.

그렇다면 문수르가 해야 하는 건 목숨을 아끼는 게 아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제르트 백작가를 구하는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도박수를 해도, 마음의 부담이 줄어든다.

‘이리아 아가씨…….’

물론 이리아를 향한 마음 역시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아니, 어쩌면 문수르를 이렇게 무리하게 만드는 건 이리아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카라카크도 궁지에 몰리면 협상을 할 것이다.’

문수르는 노리고 있었다.

카라카크는 단순히 왕국 전복을 꿈꾸는 이가 아니다. 그런 걸 꿈꿨다면 좀 더 과격하게, 직접적으로 나왔을 것이다. 좀 더 역사의 표면에 나섰을 것이다.

그는 암중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

콩탄 왕국의 전복이 아닌 그 이상의 목적이 있다는 의미다.

그에게는 계획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테블스 산이 무너지게 된다면 그의 계획에는 큰 차질이 생길 터.

그렇다면 카라카크는 확보한 인질들을 이용해 협박이 아니라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대가는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리아의 목숨을 구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높아진다.

문수르가 노리는 건 그 부분이었다.

- 이제르트 백작께서는 이리아 아가씨의 목숨을 가지고 협상하실 생각이 없으십니다.

로이드는 경고했다.

- 이리아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무리를 하는 것은 오히려 영지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입니다.

“알아.”

로이드의 경고.

머리는 이해한다.

그러나 가슴은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도 아닌 건 아닌 거야.”

몰랐다.

문수르는 자신의 가슴 속에 이런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다.

이리아를 향한 연모의 감정일까?

아니면 그냥 소중한 이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의 감정일까?

모르겠다.

두 종류의 감정이 뒤섞인 것일수도 있고, 그 두 종류의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감정일수도 있다.

“그보다 왕도 상황은? 특이 동향은?”

이 순간에도 문수르는 콩탄 왕국 전체를 살펴봤다. 테블스 산 개간 작업도 중요하지만 콩탄 왕국의 정세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 이러다할 움직임은 없습니다. 하지만 페스로 제국과의 국경 쪽에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슈페언 백작?”

- 계속해서 이동 중입니다. 거침없이 이동하는 것이 전쟁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전쟁이란 말에 문수르는 이를 갈았다.

“이제 진짜 태풍이 몰아치겠군.”

진짜 전쟁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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