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4.
카라카크의 던전에서 카라카크가 만들고자 한 건 썩지 않는 시체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만들고자 한 건 기존의 흑마법 탐색 마법에 걸리지 않는 흑마법이었다. 썩지 않는 시체는 그 과정에서 나온 부수적인 옵션 같은 것이었다.
그럼 대체 왜 카라카크는 왜 그런 실험과 연구를 한 걸까?
뒤집기 위해서다.
무엇을?
세상을 뒤집기 위해서다.
언제나 그렇다. 세상의 가치를 부정하고, 뒤집는 거싱 등장할 경우 세상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카라카크가 원하는 건 세상의 혼란이다.
그리고 그런 카라카크의 마수는 콩탄 왕국 전체에 퍼져있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촉이 왔다.
불스 후작가의 파티가 떠올랐다.
‘절호의 기회다.’
단단하던 불스 후작가의 문이 활짝 열린 상황. 카라카크는 필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터!
문수르가 움직였다.
던전에서 뛰쳐나왔다. 갑작스레 등장한 문수르의 모습에 밖에서 보초를 서던 히스티가 놀랐다.
“무슨 일이야?”
던전 내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 위험한 가디언의 등장? 흑마법사의 등장?
히스티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문수르는 그런 히스티에게 소리쳤다.
“당장 영지로 복귀해야 합니다.”
“영지? 왜?”
“급합니다.”
그 말만 남기고 문수르는 영지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영지에 도착한 후에는 긴급히 사람들을 모집했다. 이제르트 백작과 폐욤 족장 그리고 포비어와 가누스까지.
“불스 후작령이 위험합니다.”
그리고 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어떻게 문수르가 그런 일을 알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그래왔다.
문수르는 그들이 감히 예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따른 대처방법을 강구해냈다.
이야기를 들은 이제르트 백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리아…….”
불스 후작령이 위험하다.
그렇다는 건 이리아 이제르트, 그녀도 위험하다는 소리였다.
이제르트 백작은 처음으로 모두들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이제르트 백작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이리아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 앞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이제르트 백작의 모습에 모인 이들은 실망감을 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제르트 백작처럼 슬픔을 품었다.
문수르도 슬펐다.
그러나 문수르는 단순히 슬퍼하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병력을 움직여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아마 불스 후작이라면……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겠지.”
불스 후작.
그가 가진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함정에 빠져서 큰 위기에 봉착하겠지만 결국 불스 후작은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탈출하게 되면…… 아마도 이제르트 백작령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수르는 생각했다.
자신이 불스 후작이라면 분명히 이제르트 백작령으로 피신하고자 할 것이다.
그게 최선이다.
지금 상황은 단순히 파티장에 흑마법사의 졸개들이 난입해 깽판을 친 게 아니다.
콩탄 왕국의 근간들 뒤흔드는 공격이다.
시작에 불과하다.
카라카크가 만들어낸 괴물들은 그 어떤 검문과 검색에도 걸리지 않은 채 콩탄 왕국의 요지(要地)에 들어가 행패를 부릴 것이다. 귀족들이 죽어나가고, 귀인들이 살해당하거나 납치당할 것이다.
사전에 막아야 한다.
아니, 막기보다는 어떻게든 표본을 채취해야 한다.
‘그 괴물들을 잡아야 돼! 시체라도 좋아!’
이리아를 구하는 것도 구하는 거지만, 기존의 방법으로 절대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없는 괴물들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걸 확보해야 연구 등을 통해서 대응법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아이언히트를…….”
“아니, 아이언히트는 영지에 남겨둡니다. 테블스 산 개간 작업은 계속 진행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상황에서 테블스 산을 개간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긴급 상황이다.
테블스 산의 개간에 투입된 아이언히트를 당장 전장에 투입시킬 만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문수르의 생각은 달랐다.
테블스 산은 계속 되어야 한다.
“테블스 산을 개간해야 적의 던전을, 흑마법사의 던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테블스 산 곳곳에 카라카크의 던전이 있다. 한두 개가 아니다. 수십여 개가 있을 것이다.
그걸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아니, 더 중요한 건 카라카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테블스 산을 없애는 것이다.
카라카크의 몬스터 데스나이트, 그리고 개조된 괴물들…… 그것들은 전부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을 이용해 만든 것들이다. 테블스 산이 사라지면, 그것들을 만들 수 없게 된다.
적의 병참기지를 폭발시키는 건 전략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더군다나 테블스 산을 개간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이번이 유일무이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카라카크가 바보도 아니고 테블스 산의 상황을 파악하면 테블스 산을 지키고자 할 것이다.
또한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은 일시적으로 개체 수가 줄었을 뿐이지, 언제라도 다시 예전 수준으로 개체수가 늘어날 수 있다. 몬스터들이란 건 말도 안 되는 번식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카라카크는 그 몬스터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고, 조종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인간이 몬스터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전술과 전략 그리고 단합이 가능한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몬스터들이 그 인간들의 장점을 흡수하면, 결코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하면 테블스 산 개간은 계속 진행하는 게 좋다.
“불스 후작령은 저 혼자 가겠습니다.”
“위험하네!”
“적은 그 정제조차 확실시 않은 존재다. 하물며 카라카크라니…….”
폐욤 족장.
그가 반대를 표했다.
“카라카크는 2백 년 전에 이미 악명을 떨쳤던 강력한 흑마법사네. 그가 2백 년 동안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을지 상상조차 안 되네. 그런 그를 문수르 경 혼자서 상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네.”
맞는 말이다.
“드래곤 파이터를 가지고 갈 겁니다.”
하지만 문수르도 그냥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드래곤 파이터!
문수르에게는 그 강력한 도우미가 있다. 더군다나 최근 얻은 깨달음 덕분에 지금 문수르와 드래곤 파이터의 조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
물론 그렇더고 해서 원하는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단지 최악의 순간에 도망치는 것쯤은 가능하다.
드래곤 파이터를 가져간다는 말에 더 이상의 반대는 없었다.
5.
불스 후작과 그 기사들의 신병을 확보한 이후 포비어는 그들을 데리고 이제르트 백작령으로 향했다.
반면 문수르는 그들과 떨어져 나와 곧바로 드래곤 파이터와 함께 불스 후작령으로 이동했다.
문수르는 혼자 움직였다.
사실 지금 문수르 입장에서는 혼자 움직이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고, 유리한 상황이었다.
“로이드, 상황은 어때?”
- 적의 동선 파악이 힘듭니다.
“적에 대한 정보는?”
- 보신 대로 두 팔 대신에 채찍 같은 칼날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채찍이 신체의 일부로 보입니다.
“신체를 변형시킨 건가?”
-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모로 처음보는 타입이군.”
GPS시스템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적의 동향 그리고 적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략적인 형태는 파악할 수 있었다.
“왕도 상황은?”
- 아직 이러다할 특징은 없습니다.
“GPS파일럿 중 일부를 라울 백작가로 이동시켜.”
- 이미 이동중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듯 합니다.
불스 후작은 바보가 아니었다. 떠나는 문수르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정부, 추측한 가설을 알려줬다.
“문수르 경, 이번 일의 배후에 라울 백작가가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그를 조심하게.”
라울 백작가.
솔직히 문수르 입장에서는 예상 외의 가문이었다. 그러나 들어본 적은 있다.
아니,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다.
예전에 왕도 페르코 아카데미에 갔을 때 라울 백작가의 소란에 얽힌 적이 있었다.
그때 라울 백작가가 해톤을 노렸었다.
‘이쯤이면 악연도 인연이 되는 셈이군.’
라울 백작가.
라울 백작가는 제이머스 공작 파벌에 속해 있다. 그렇다는 건 카라카크, 그의 마수가 단순히 빅토리안 공작 파벌만 아니라, 제이머스 후작 파벌 쪽에도 뻗쳐 있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파벌을 나누는 건 의미가 없다.
‘모두가 적이다.’
콩탄 왕국 전역에 카라카크의 마수가 뻗쳐 있다.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공작도 위험하다.’
문수르는 이를 꽉 물었다.
빅토리안 공작의 반역을 막는 것으로 어느 정도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지금 더 큰 위기가 왔다.
지금 만약 카라카크가 전심전력을 다해 콩탄 왕국을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당장 가능하다.
막아야 한다.
더군다나 정말 최악의 상황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빌어먹을 이 사실을 슈페언 백작이 알아차리면…… 전쟁이 일어나겠군.”
흑마법의 등장.
이것만으로도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의 일에 간섭할 만한 명분은 충분하다.
그런데 만약 그 괴물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이제까지의 흑마법과 전쟁을 하면서 쌓아왔던 노하우가 갑자기 무색해진다면?
당장 옆에 있는 하인 하녀가, 호위 기사들이 흑마법사에게 개조 당한 괴물이라면?
페스로 제국은 어떻게 나올까?
간단하다.
쓸어버리는 거다.
콩탄 왕국의 모든 걸 싹 쓸어버리는 거다. 흑마법이고 자시고, 모든 걸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페스로 제국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할 만한 호전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 일이란 모르는 법이니까.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과 손을 잡고 사이 좋게 흑마법사 카라카크와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참모는 긍정적인 방향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고의 결과보다 최악의 결과를 걱정해야 한다.
문수르가 그랬다.
6.
이리아를 호위하던 세 명의 기사들 중 두 명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두 기사를 죽인 괴물…… 카라카크가 블레이더(Blader)라 명명한 괴물은 여전히 이리아를 쫓고 있었다.
그런 이리아를 업고 도망치던 기사는 어느 순간 직감했다.
‘도망칠 수 없다.’
블레이더는 강했다.
그리고 집요했다.
그 순간 기사는 결단을 내렸다.
‘내 목숨으로 시간을 번다.’
지금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단은 기사가 희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것이다.
기사는 말했다.
“아가씨, 무조건 앞으로 뛰십시오.”
그 말에 이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이리아는 이 상황에서 못하겠다는 칭얼거림 따위는 뱉지 않았다.
이미 두 명이 죽었다.
그들은 이리아를 살리기 위해 죽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리아는 살아남아야 한다.
이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기사가 이리아를 내려놓았다.
동시에 블레이더를 향해 기사가 몸을 날렸다. 상대는 무시무시한 칼날 채찍을 휘두르는 괴물이었고, 기사는 비무장이나 다름없었지만, 기사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덤벼라!”
기사의 외침.
그 외침을 뒤로 한 채 이리아는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