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6.
불스 후작가의 파티.
후작 즉위를 축하하는 불스 후작의 파티는 화려하고, 성대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무수히 많은 이들이 불스 후작을 축하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여,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이곳에 모여 나를 축하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며, 콩탄 왕국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겠소!”
파티의 흥은 꺼질 줄을 몰랐다.
불스 후작 역시 어느 정도 기분이 도취된 듯, 평소의 진중했던 모습보다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불스 후작도 이제까지 참고 있었다. 그라고 후작의 위에 오른 게 마땅치 않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기뻐 날뛰고 싶었다. 당장 이 사실을 많은 이들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최대한 스스로를 절제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절제심을 잠시 풀어 놓았다. 풀어놓는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도 없었다.
“후작님이 기분이 좋은가보군.”
그런 불스 후작을 감시하듯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브라스 경.
콩탄 왕국 최고의 자유기사로 불리웠던 그는 불스 후작의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불스 후작가의 모든 경비를 총괄하고, 책임지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수히 많은 귀족들 그리고 기사들이 향락에 취하고, 술에 취하는 와중에도 그는 입에 음식과 술은 대지도 않았다.
사전에 검사는 계속했다.
요리사들이 요리를 만드는 와중에도 기사들이 직접 그 과정을 감시하고 검사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더군다나 음식은 멀쩡해도, 그 음식이 나온 이후에 그 음식에 독을 타는 경우도 있다.
축제나 다름없는 행사에 과연 누가 독을 탈까? 그런 의문을 가지는 자들도 있겠지만 자유기사로 콩탄 왕국은 물론 대륙 곳곳의 귀족들을, 영주들을 만나본 브라스 경은 확신한다.
충분히 가능하다.
불스 후작가의 파티에서 누군가 일을 저지르고, 불경스러운 상황이 발생한 가능성은 충분했다.
때문에 브라스 경은 조심했다.
물도 자신이 가져온 물만 먹었고, 음식 역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날카롭게 파티장을 훑어봤다.
그렇게 신경이 곤두 선 기사는 비단 브라스 경만이 아니었다. 파티장 내에도 브라스 경과 같이 신경을 곤두선 채 오는 음식과 술들을 마다하는 기사가 있었다.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분이시군.”
“한 잔 하시겠소?”
그건 다름 아니라 이리아 이제르트의 호위를 위해 그녀와 함께 온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들이었다.
다른 귀족의 기사들은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구실로 접근했다. 그 구실 중 가장 좋은 건 역시 술이었다.
술을 한 잔 걸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생판 남도 절친한 사이가 되는 법이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마시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들은 입에 술 한 모금도 대지 않았다.
사실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들이 이렇게까지 절제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여긴 불스 후작령이다.
경호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불스 후작가가 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호위를 위해 온 다른 귀족의 기사들도 불스 후작령에서는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는 중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들의 그런 절제된 모습은 다른 기사들에게 귀감이되기보다는 조롱거리가 됐다.
“쯧쯧, 어차피 변방 놈들이 다 그렇지.”
“운 좋게 불스 후작 눈에 띄어서 여기까지 온 거겠지.”
“촌놈이라서 그런지 즐기는 방법도 모르는 거야.”
시기와 질투였다.
갑작스레 듣도 보지도 못했던 변방 귀족에서 단숨에 정치 권력의 핵심이 된 이제르트 백작가가 곱게 보이는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니까.
물론 면전에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편 이리아는 열심히 사람들을 맞이하며, 이제르트 백작가를 대표해 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어머, 이제르트 백작님께 이리도 아름다우신 영애가 있으셨다니.”
“하하, 내 자식 놈이 성혼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으려만!”
“이리 똑똑하고, 아름다운 영애를 가지신 이제르트 백작님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달콤한 말들.
“그보다 이제르트 백작님과 언제 한 번 만남을…….”
“이 편지를 전해드릴 수 있나?”
“나는 호부 평원의 영주…….”
그 감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정치적 노림수 속에서도 이리아는 휘둘리지 않았다. 줄타기를 하듯, 절묘하게 그 사이를 움직이며, 이제르트 백작가에 이익이 되는 것들만 낚았다.
이리아 이제르트에게는 그 정도의 역량은 충분히 있었다.
그렇게 파티의 분위기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7.
브라스 경.
그가 이상한 조짐을 느낀 건 파티의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렀을 무렵이었다.
시기상으로 가장 위험한 시기였다.
술에 취한 자들, 배가 부른 자들…… 여기에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실망감을 품거나 혹은 열등감을 품은 자들, 대화에서 소외된 자들, 그에 따른 불만감을 품은 자들이 폭발할 만한 시점이다.
난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더더욱 가능하다.
하지만 브라스 경, 그가 느낀 조짐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귀족이 취해서 부리는 행패나 난동 같은 느낌의 불안감이 아니었다.
‘등골이 오싹하다.’
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이다.
늦은 밤을 틈 타 움직이는 암살자가 뒷통수를 노릴 때와 비슷한 불안감.
브라스 경이 허리춤에 천 검에 손을 가져갔다.
온다.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안에, 파티장 안에 암살자가 있다.
순간 다른 불스 후작가의 기사와 브라스 경의 눈빛이 마주쳤다. 아무런 조짐도 느끼지 못하고 있던 그 기사는 브라스 경의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보는 순간 본인도 긴장했다.
‘브라스 경이 왜?’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다.
왜 이런 곳에서 전장에서나 할 법한 눈빛을 품는 것인가?
‘아니, 브라스 경이 맞다면 맞는거다.’
그러나 의문은 잠시였다. 브라스 경,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자는 불스 후작 내에 아무도 없다.
또한 그는 기사단장이기도 하다.
기사들의 우두머리다.
그가 움직이면 기사들은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다. 그 행동을 무조건 믿고 따르면 된다.
불스 후작가의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당장 눈앞에 적이 생기면, 곧바로 검을 꺼낼 수 있도록, 휘두를 수 있도록, 혹은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면 어떤 대피경로를 확보해야 하는지, 그것들을 준비했다.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그 순간 브라스 경, 그가 움직였다.
8.
문수르는 던전을 더 탐사했다. 던전은 굉장히 넓었다. 그리고 굉장히 참혹했다.
“흑마법사가 잔혹한 건 알고 있지만…….”
무수히 많은 연구실.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대부분 인체실험의 결과물들이었다. GPS볼을 통해서 어느 정도 파악은 했지만 그 정도가 굉장히 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로이드는 그것들이 위험대상이 아니라는 걸 파악하고, 그냥 편집을 해버렸다. 한두 장면만 문수르에게 알려줬을 뿐이었다.
모든 광경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멀티 글라스를 통해 보는 것과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정말 참혹했다.
시체들의 숫자는 무지막지했고, 그 시체들에게 가해진 생체실험의 흔적은 실험이 아니라 고문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문수르는 도달했다.
“이 방인가?”
로이드가 알려준 방.
썩지 않는 시체가 있는 방이라고 했다. 문수르는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지금 문수르는 이 던전에서 흑마법사가 만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파악한 상황이었다.
‘살아있는 언데드 몬스터.’
언데드 몬스터.
죽지 않은 괴물들을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미 죽은 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표현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언데드 몬스터란 무엇일까?
모르겠다.
단지 그렇게 정의할 뿐이었다.
‘불사(不死)일 지도…….’
어쩌면 불사의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이 흑마법사는 불사의 존재를 꿈꾸었을 지도 모른다.
그 결과물에 가까운 것이 지금 문수르의 눈앞에 있었다.
그것 역시 시체였다.
오크의 시체였다.
그러나 보통 시체와는 달랐다. 일단 썩지 않았다. 오히려 혈색마저 돌고 있었다. 눈동자에는 초점이 맺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체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숨을 쉬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심장이 없었다. 놈의 몸에서 뽑아낸 심장은 시체의 옆에 놓여서 있었다. 심장은 보통의 그것처럼 벌떡벌떡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썩지도 않았고, 여전히 핏물을 머금고 있었다.
기괴하다.
문수르가 살아가는 어스 월드의 의학, 소위 현대의학으로 불리는 그것으로는 절대 이해도, 설명도 불가능한 장면이다.
오직 마법만이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겠지.
“로이드.”
- 정보를 모으는 중입니다.
“아니, 정보는 됐고.”
그 순간 문수르는 보았다.
“카라카크란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가 너한테 입력되어 있어?”
- 카라카크 말입니까?
“그래.”
- 있습니다.
카라카크.
엘프가 뱃속에 숨겨두었돈 천쪼가리에 나온 이름은 다름 아니라 카라카크란 이름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 던전이 카라카크란 흑마법사의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로이드도 알고 이었다. 로이드는 이미 카라카크에 대한 정보를 말해줄 준비가 끝났다.
로이드가 줄절, 카라카크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놀라운 정보들이었다.
특히 그 카라카크가 할루이 이제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럼 카라카크의 수명이 2백 살은 넘겼다는 의미로군.”
- 흑마법사들 중에서 백 년 넘게 사는 부류들은 적지 않습니다. 리치가 되는 경우에는 라이프 베슬이 무사한 이상 영생 동안 존재할 수 있습니다.
흑마법사는 애초에 인간의 탈을 벗은 존재다. 수명을 늘리고자 마음 먹으면 영생동안 살 수 있다.
문제는 평범한 정신을 유지한 채 영생을 살 수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는 점이다.
흑마법사는 끊임없이 악마의 유혹을 받는다. 그뿐인가? 계속되는 사악한 흑마법의 사용, 악마로부터 빌려온 마력의 사용, 처참하고 참담한 생체실험 등…… 인성과 감성이 무너질 만한 행위를 평생동안 하게 된다.
여기에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세상과 적이 되어 도망자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삶이 1년 그리고 10년…… 이렇게 흐르게 되면 인격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결국 참다 못해 자살을 하는 흑마법사도 적지 않다.
리치가 되는 것 역시 굉장한 일이다. 라이프 베슬만 유지하면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도 리치가 되는 건 고문이며, 지옥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흑마법사로 영생을 산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카라카크, 그가 2백 살이 넘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문제가 되는 건 그의 상태다.
“정상은 아니겠지.”
- 굉장히 미친 인간일 게 분명합니다.
로이드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 카라카크. 그는 분명 미친놈이다.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겠지.”
세상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몬스터 데스나이트 역시 그의 작품일 터.
여기에 그는 살아있는 언데드 몬스터를 만들어냈다.
무언가 있다.
단순히 자기 취미를 위해 이런 일을 했을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몬스터 데스나이트를 이용해서 콩탄 왕국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조합했을 때 카라카크, 그는 콩탄 왕국을 무너뜨릴 속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만약 문수르가 그라면…….
“설마…….”
지금을 노릴 것이다.
콩탄 왕국이 여러 이유로 혼란스러운 지금을 노릴 것이다.
“로이드, GPS파일럿을 이용해서 불스 후작과 왕도 그리고 제이머스 후작가를 관찰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