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7.
문수르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왕국의 정세에 대한 것이다. 문수르는 절대 왕국의 정세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다시금 정세가 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보통 수준이 아니라 크게 흔들릴 것이다.
두 번째는 제국의 정세였다. 제국이 너무 조용하다. 페스로 제국의 호전성을 고려했을 때 제국의 그런 고요함은 긍정적인 신호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신호일 가능성이 높았다. 제국에 문제가 생기면 비단 콩탄 왕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륙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고민은 다름 아니라 흑마법사에 대한 것이었다.
“빅토리안 공작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흑마법사의 힘을 빌렸을까?”
몬스터 데스나이트.
처음 놈을 봤을 때는 무시무시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걸 만들 수 있는 흑마법사가 있다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 무시무시한 놈이 빅토리안 공작 편에 붙었다는 걸 느꼈을 때는 암담함을 느꼈다.
그 정도였다.
두려움을 느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의문이 들었다.
특히 빅토리안 공작이 너무 허무하게 잡혔을 때, 그의 시체가 진짜임이 확인되었을 때 문수르는 어렴풋이 느꼈다.
‘빅토리안 공작은 이용당한 거다.’
빅토리안 공작.
그는 흑마법과 손을 잡은 게 아니다.
흑마법사에게 이용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부터 문수르의 고민이 시작됐다.
빅토리안 공작마저 이용할 정도의 흑마법사라면 보통 수준이 아닐 터! 더군다나 빅토리안 공작이 죽었다. 아마 그 흑마법사가 빅토리안 공작을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면 빅토리안 공작은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흑마법사를 어떻게든 찾아서 무찔러야 돼.'
달리 말하면 그 흑마법사에게 빅토리안 공작의 목숨은 그저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는 수준이다.
‘흑마법사의 본진은 테블스 산이 맞다.’
몬스터 데스나이트에 사용된 몬스터들, 오우거나 자이언트 트롤 그리고 몬스터 군단을 이루고 있던 오크들까지!
절대 다른 지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놈들이다. 오직 테블스 산에서만 구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다.
테블스 산을 뒤지다보면 빅토리안 흑마법사의 흔적을 발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문수르의 예상은 맞았다.
“던전이 발견됐다고요?”
“예.”
“누가 발견한 거지요?”
“히스티 대장이 발견했습니다.”
히스티.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문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일단 던전이 발견된 지역에서 모든 수색대에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라는 명령을 전달하세요.”
“알겠습니다.”
던전이 발견됐다고 좋아라 달려들면 오히려 지옥행 문이 열릴 게 불보듯 뻔하다.
혹여 흑마법사가 근처에 있다면?
상대는 몬스터 데스나이트란 무시무시한 괴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다.
그런 흑마법사가 전력으로 이제르트 백작가를 노린다면 정말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조심히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나 접근해서도 안 된다. 충분한 실력과 기량이 있는 자 위주로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그래, 그걸 쓸 때가 왔군.’
더불어 문수르에게는 이런 때를 대비해 어스 월드에서 가져온 것이 있었다.
8.
한석균 회장은 생각했다.
“GPS시스템은 하늘에서 보는 것이라 효율적이지만 반대로 한계가 있는 법이지.”
하늘 위에서 땅을 바라보는 GPS시스템은 전체적인 지리, 상황을 파악하는데 유리하다.
그러나 정확한 지형을 탐색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한석균 회장은 GPS시스템보다는 탐색범위가 좁지만, 좀 더 정밀한 장치를 만들었다.
GPS볼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 손가락 크기의 GPS볼은 강한 내구성과 함께 카메라 기능이 장착되어 있다.
이런 GPS볼은 GPS파일럿과 송신을 주고 받으며, GPS파일럿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땅 위를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시험삼아 20여 개의 GPS볼을 가져왔다. 아마 지금 문수르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만한 장치일 것이다.
때문에 문수르는 수색대를 던전 근처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그리고 직접 테블스 산 안으로 들어가 GPS볼을 굴렸다.
9.
GPS볼의 화질은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니다. 또한 GPS볼의 작동시간은 24시간이 한계다. 충전을 해줘야 한다. 적당히 태양열 등을 이용해 충전을 하고 에너지 소모 자체도 적은 GPS파일럿에 비하면 아무래도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또한 GPS파일럿은 조작이 가능하다. 세밀한 조작은 안 되더라도 방향 정도는 정할 수 있다.
하지만 GPS볼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청소 로봇 같은 거다. 던져 놓으면 이리저리 구르고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거다. 작은 볼 하나가 100평 정도의 공간의 정보를 전부 수집하는 데에 최소한 10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없는 것보다는 낫다.
특히 던전 탐사 같은 경우, 사람 목숨을 대신에 GPS볼을 이용하는 게 훨씬 이득일 뿐더러, 은밀한 공간, 숨겨진 공간을 파악하는 데에도 GPS볼만큼 좋은 게 없다.
사실 한석균 역시 그런 부분 고려해 GPS볼을 만들었다.
그 역시 마법사다.
던전을 탐사하는데 어떤 것이 필요할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다.
어쨌거나 문수르는 직접 GPS볼을 설치하기 위해 발견된 던전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곁에는 히스티가 있었다.
수색대의 대장인 그녀가 문수르를 안내했다. 물론 히스티는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요즘도 스승님한테 가르침을 받으시나요?”
“뭐, 매일 혼나고 있습니다.”
“부럽네요. 전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받은지 꽤 됐는데.”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거 아닙니까?”
“배울 게 없는데 여전히 오러 나이트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죠.”
히스티, 그녀도 결국 검사다.
더군다나 그녀와 문수르의 인연은 적지 않다. 문수르의 도움이 없었으면 히스티도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터.
연모?
그런 종류의 감정은 아니다.
동료의식.
아마도 그런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이제르트 백작가 내에서 드워프와 엘프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같이 전장에서 싸우다 보면, 정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히스티, 그녀는 여전히 인간을 상대하는 게 거북했다. 그런 히스티에게 유일하게 거북하지 않은 인간이 바로 문수르였다.
어쨌거나 그런 문수르와 오랜만에 만나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갈 수밖에 없었다.
문수르도 딱히 그 대화가 어색하진 않았다.
“그보다 던전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조사를 해야겠지요.”
“조사? 위험할 텐데요?”
발견된 던전.
던전 주변에는 많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몬스터들의 시체, 특히 오크들의 시체가 유독 눈에 띄었다.
흑마법사의 던전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함정도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흑마법사가 바보도 아니고, 자신의 연구 결과와 비밀이 숨겨진 던전을 그냥 놔둘 리 만무하지 않은가?
혼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그것도 굉장히 위험하다. 더군다나 히스티나, 문수르나 무(武)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을지 몰라도 마법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지 못하다. 문수르에게 마법에 대한 지식이 있긴 하지만, 흑마법사의 던전을 맨몸으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상관 없습니다. 오늘은 어차피 탐사일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그런 게 있습니다.”
“아, 혹시 이번에도 그 신비한 장치를 이용하려는 건가요?”
신비한 장치?
그 순간 문수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고 보니…….’
히스티가 말하는 신비한 장치는 멀티 글라스를 말함이다. 그녀는 멀티 글라스의 존재를 알고 있다. 직접 사용도 해봤다.
물론 그 이후 문수르는 멀티 글라스가 특수한 마법 아티팩트라고 얼벼무렸고, 그걸로 이야기가 끝나는 듯 했는데…….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
아무래도 히스티는 지금까지도 멀티 글라스에 대한 관심이 깊은 모양이다.
“뭐, 비슷한 겁니다.”
차라리 잘 됐다.
이렇게 되면 GPS볼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테니까.
10.
필로스 왕은 고개를 숙였다.
“하필이면…….”
편지 한 통에 그에게 왔다. 그 편지는 다름 아니라 필로스 왕 휘하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단체에서 온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길지 않았다. 간략했다.
- 라울 백작가에서 흑마법사의 흔적 발견.
라울 백작가.
모를 리 없다.
라울 백작가는 제이머스 공작가가 공작가가 되기 전, 제이머스 후작 파벌이 형성될 당시부터 제이머스 가문을 보필하던 가문 중 한 곳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에 제이머스 공작이 정치 권력을 잡으면서 라울 백작가 역시 적잖게 쏠쏠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불스 후작가나 쿠틀러 백작가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 슬슬 이름을 떨치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리고 필로스 왕은…… 권력을 쥔 귀족들을 조사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견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이머스 공작이 필로스 왕과 합의를 맞췄다고 해도 정치에는 영원한 아군이 없는 법이다.
결국 제이머스 공작은 귀족들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할 것이고, 그 이익은 왕가의 이익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귀족들의 약점 등을 수집하는 건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보낸 조사원들이 경악할 만한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라울 백작가가 걸려들 줄이야.”
라울 백작가.
그들과 흑마법 사이의 관계가 포착된 것이다.
필로스 왕은 고개를 숙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는데, 콩탄 왕국의 다른 귀족들이라고 깨끗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적지 않은 귀족들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콩탄 왕국은 방탕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던 페스로 제국이 강력한 우군으로 변하자, 귀족들의 경각심은 나날이 줄어들었고, 그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사치와 향락의 끝에 있는 게 흑마법이다.
또한 흑마법사들 역시 그런 부분을 이용해 귀족들을 자신들과의 동업자 혹은 하수인으로 만들고는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이머스 공작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울 백작가가 흑마법사의 마수에 빠진 것이다.
이건 문제가 크다.
어설픈 귀족…… 아니, 하다 못해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속했던 귀족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다면 처치가 가능하다.
빅토리안 공작과 같이 묶어서 처리하면 된다. 당장 처벌을 해도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제이머스 공작 파벌 소속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른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니라 슈페언 백작이다.
“기어코 나서겠군.”
아히만트 백작을 이용해 슈페언 백작을 맨손으로 돌려보내긴 했지만 슈페언 백작은 여전히 콩탄 왕국을 노리고 있다.
더불어 콩탄 왕국 내에는 슈페언 백작에 줄을 대려는 귀족들 역시 상당수 있다.
소문이 퍼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슈페언 백작의 귀에도 들어갈 터!
그 후에 슈페언 백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금 콩탄 왕국에 올 것이다.
그때에는 병력도 함께 올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라울 백작가로 쳐들어간 후에 온갖 행패를 부리고, 종국에는 다시금 왕도로 돌아와 필로스 왕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할 것이다.
필로스 왕은 그게 우려됐다.
간신히 잡은 기회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다.
“빨리…… 빨리 제거하는 게 최선이겠군.”
지금 필로스 왕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라울 백작가를 뿌리뽑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