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7.
열일곱 명.
현재 이제르트 백작가가 보유한 인간 기가스 파일럿이다.
여덟 명.
탈라트 부족 소속의 기가스 파일럿의 숫자다.
열두 명.
호우투 부족 소속의 기가스 파일럿의 숫자다.
서른일곱 명, 현재 이제르트 백작가가 보유한 기가스 파일럿의 총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이제르트 백작가가 보유한 기가스의 숫자는 아이언히트 37개, 1배 급 기가스 6대, 2배 급 기가스 3대 그리고 드래곤 파이터까지 포함해서 총 47대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가스가 남는다.
아마 어쩌면 기가스가 등장한 이후 유래가 없을 만한 경우일 것이다. 언제나 기가스 파일럿보다 기가스가 부족해 예비 기가스 파일럿마저 둘 뿐더러, 재수가 없으면 나이가 들도록 자기 기가스조차 보유하지 못하는 기가스 파일럿이 적지 않은 시대에서 오히려 기가스 파일럿보다 기가스가 넘치는 상황이라니?
이 때문에 이제르트 백작가의 측근들은 말했다.
“새로운 기가스 파일럿을 영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기도 적절했다.
“이제르트 백작님의 명성을 흠모하는 자들이 이제르트 백작가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제르트 백작가의 명성은 콩탄 왕국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물론 현재 콩탄 왕국 정세에서 가장 핫이슈는 제이머스 공작과 불스 후작이었지만, 이제르트 백작가 역시 정치 권력의 실세로 떠오른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여기에 빅토리안 공작가의 몰락 이후 빅토리안 공작 파벌 역시 몰락하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에서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새로운 주인을 찾는 기사들이 제법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 중 일부가 이제르트 백작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이제르트 백작이 허락만 하면 그들은 이제르트 백작가의 기사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측근들은 이제르트 백작가에게 그들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르트 백작가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까지 이제르트 가문이 힘들 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이들이다. 이제르트 가문이 힘을 가지니 그제야 문을 두드리는 자들이다. 내가 무엇이 아쉬어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론이었다.
이제까지는 이제르트 가문이 도움을 요청하면 관심은커녕 콧방귀나 뀌었던 자들이다.
더군다나 정말 충성심 깊은 자들이라면 제 주인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 주인을 섬기는 게 진짜 충성 아니겠는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 충성이 아니다.
그런 자들에게 이제르트 백작가가 기회를 줄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공개 모집을 하겠다.”
“공개 모집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이제까지 이제르트 가문의 영지에서 헌신한 자들, 병사들, 기사들 중에서 새로운 기가스 파일럿을 뽑도록 하겠다.”
기회를 준다면 그 누구도 아닌 이제까지 이제르트 가문을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줘야 한다.
그게 정말 제대로 된 기회의 제공이다.
물론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겠습니까?”
“기가스 파일럿이란 게 그냥 뚝 하고 나오는 게 아니잖습니까? 혹여 기가스 파일럿이 될 수 있다면…… 진즉에 영지의 기가스 파일럿이 되었을 것 아닙니까?”
이제르트 백작의 말은 궤변이었다.
이제르트 백작가의 소속이면서 기가스 파일럿의 능력을 가진 자라면 일찌감치 등용됐을 것이다.
지금의 병사들 그리고 기사들 중에서는 기가스 파일럿의 능력이 없어서 그대로 남는 것이다.
결국 이제르트 백작의 의도는 원하는 자들 중에 자질을 있는 자들을 뽑아 그들을 육성한다는 의미인데…….
기가스 파일럿의 육성이 말처럼 쉬울 리 만무하다.
하지만!
“문수르 경이 일찍히 전례를 만들어두었다. 문제는 없다. 자질이 있는 자, 도전하려는 자는 무조건 받아주겠다.”
문수르는 그걸 해냈었다.
일반 병사들 중에서 기가스 파일럿을 만들어냈고, 지금 그들은 아이언히트를 타고 활약 중이다.
물론 그 후에 새로운 기가스 파일럿의 육성은 없었다. 문수르가 시간이 없던 것도 이유겠지만, 마나 호흡법이란 게 그렇게 쉽게 가르쳐 줄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실망하고 있었다.
혹은 누군가는 다시금 기회가 오지 않을까 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제르트 백작이 다시금 기회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 선언은 파격적이었다.
물론 그냥 아무나 뽑는 건 아니었다. 이제르트 백작은 포비어에게 말했다.
“포비어 경.”
“예, 영주님.”
“천 명이 지원을 한다면 그중에 열 명을 걸러낼 자신이 있는가?”
이제르트 백작은 모든 병사들과 기사들을 관리하는 포비어에게 선별 시험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의 질문이었다.
포비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오히려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문수르의 별명이 한때 착한 악마였다.
그러나 포비어의 별명은 그냥 악마다. 병사들의 훈련 그리고 기사들의 훈련, 모든 훈련을 총괄하는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였으니까.
그럼에도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을 때 소수의 병사들과 기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이 지원을 했다.
그 무렵이었다.
문수르가 도착한 것은 말이다.
8.
이제르트 백작은 말했다.
“문수르 경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을 진행한 것에 대해 일단 사과부터 하겠네.”
그 사과에 문수르의 표정이 굳었다.
“백작님.”
문수르의 음성은 진지하게 그지없었다. 이제르트 백작은 여기서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한 게 아닐까?
이제르트 백작은 잠시 스스로를 책망해보기도 했다.
그런 이제르트 백작에게 문수르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이제르트 백작님의 기사이며, 신하입니다. 제게 일일이 사정을 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영주님은 백작이십니다. 백작은 단순히 기사들 뿐만이 아니라 주변 영주들마저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순간 이제르트 백작은 마음이 울컥해졌다.
문수르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라고 말씀하시면 되고, 일이 생기면 처리하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단지 그 말이면 충분합니다.”
이제르트 백작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수르, 그는 이제르트 백작을 존경한다. 그는 훌륭한 영주다. 마음 가짐도 그렇고, 능력도 그렇다.
무엇보다 이제르트 백작은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의외로 그런 자질을 가진 지도자는 많지 않다. 지도자에게 변화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으니까. 변화를 두려워한다. 현재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변화 없인 발전도 없다.
이제르트 백작에겐 그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제르트 백작은 문수르의 눈치를 봤다. 문수르 입장에서는 편한 일이다.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까.
‘나는…… 언제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언제가지 이제르트 백작 옆에 있을 수 없다.
특히 새로운 노크맨이 등장했다.
어느 순간 문수르와 그 새로운 노크맨의 역할이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때에도 이제르트 백작이 문수르에게 계속해서 의존하고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알겠네.”
이제르트 백작은 문수르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문수르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다.
9.
이제르트 백작령에서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됐다.
테블스 산 개간 작업과 동시에 기가스 파일럿 선별 시험을 시작한 것이다.
문제될 건 없었다.
기가스 파일럿이 될 만한 자질, 즉 오러 나이트가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이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포비어는 이제르트 백작령 내의 대부분의 병사들, 기사들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포비어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는 자였다.
그는 냉정하고, 무정했지만 대신에 최선의 효율을 추구하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였다.
지도자의 자질 중에 덕목(德目)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덕목이 전부는 아니다.
지도자는, 무리의 수장은 결국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를 만든지 못하는 수장은 수장 대접을 받지 못한다. 사람이 좋고, 착하고, 친절하고, 푸근해도 전쟁에서 연전연패, 십전구패를 당하면 그 어떤 부하들도 그 수장을 따르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리 성격이 더럽더라도,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오고, 더 많은 생존자를 남기는 등, 결과를 만드는 자는 어떤 식으로든 부하들이 알아서 따르게 되는 법이다.
포비어는 후자의 경우였다.
여하튼 포비어는 빠르게 병사들과 기사들 중에 기가스 파일럿이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이들을 추렸다.
몇 가지 간단한 테스트로 숫자를 줄이고, 그 다음에는 개별적인 면담을 통해 다시 숫자를 둘였다.
스물두 명이 추려졌다.
그들에 대한 소관은 문수르에게 넘어왔다. 이제부터 그들에 대한 처우는 문수르에게 전부 일임됐다.
“안녕하십니까?”
그 스물두 명…… 기사 두 명, 병사 스무 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문수르의 등장에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긴장만 한 건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된 기색도 보이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그들은 만족하고 있었다.
동시에 기대하고 있었다.
이미 앞서서 문수르의 훈련을 거친 이들 중 상당수가 오러 나이트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 후에 기가스 파일럿이 됐다.
병사와 기사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지만 동시에 기사와 오러 나이트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오러 나이트만 되면 어딜 가서든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다. 요즘 기가스 숫자에 비해 오러 나이트가 많아서 기가스 파일럿의 가치가 떨어졌다…… 라고 하지만 기가스 파일럿을 마다하는 영주는 없다. 여력이 되면 어떻게든 보다 많은 오러 나이트를, 기가스 파일럿을 보유하고 싶어한다.
그런 기가스 파일럿이, 오러 나이트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흥분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한 반응이군.’
문수르도 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문수르는 그들에게 말해줄 생각이었다.
“자들 제 이름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불어 이제르트 백작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신병에 대한 모든 것을 제게 위임하셨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수르는 그런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즉 이제부터 여러 분들이 오러 나이트가 되는 것도…….”
오러 나이트란 단어.
그 단어에 모두의 눈빛이 흔들리고,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흥분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기가스 파일럿이 되는 것도…….”
기가스 파일럿 부분에서는 몇몇 이들은 크게 소리가 날 정도로 숨을 골랐다.
흥분이 절정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문수르는 마지막 말을 했다.
“그리고 죽는 것도 전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죽는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는 자가 없었다. 그저 흥분된 상태로, 들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몇몇 이들이 문수르의 말을 이해했다.
점차 많은 이들이 문수르의 말을 이해했다.
흥분으로 붉게 상기됐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어붙기 시작했다.
문수르는 그런 그들에게 확인사살을 하듯 다시 말해줬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 분들이 목숨 역시 이제 제 소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죽음.
그 단어 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 자는 없다.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자도 없다.
살아가는 생명체라면 모두가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선별된 이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오러 나이트가 되는 게 쉽다고 생각되십니까?”
문수르의 물음에 기사에서 뽑힌 두 명이 고개를 저었다.
오러 나이트가 되는 건 굉장히 힘들다. 마나 호흡법을 얻는다고 해도 십중팔구는 오러를 느끼지 못한 채 평범한 존재로 남는다.
재능 그리고 노력.
두 가지가 합쳐져야만 될 수 있는 게 바로 오러 나이트다.
“최소 십 년 이상의 수련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도 될까 말까한 게 오러 나이트의 경지입니다.”
맞는 말이다.
평생을 수련해도 안 되는 사람도 넘치는데, 십 년 수련으로 오러 나이트가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십 년을 바칠 자들은 세상에 넘치고 넘친다.
“그 시간을 단시간에 줄인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다.
반대하거나, 부정할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제 예상으로는 지금 스물두 명 가운데 오러 나이트가 될 수 있는 건 여덟 명 정도…… 나머지는 실패하고 개중 다섯 명 정도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스물두 명 중 다섯 명이 죽는다?
섬뜩한 사망율이다.
“이제라도 목숨이 아까우신 분은 포기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런 선별자들을 향해 문수르는 마지막 기회를 줬다.
그러나 그 기회를 받아들이는 자는 없었다.
단 한 명도!
“좋습니다.”
문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