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66화. 비하인드.>
1.
강원도 산골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은 허가되지 않는 곳.
노크 센터는 그곳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군.”
산골 깊숙한 곳이다. 겉으로 봐서는 그냥 그저 울창한 산과 숲만 보일 뿐이다. 혹여 지도를 가지고 와도, 사람의 흔적이 없는 이곳에서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러나 문수는 그런 산을 마치 동네 뒷산 오르듯 너무나도 쉽게 오르고 있었다.
제 아무리 경사가 가파르고 돌무더기가 가득해도 문수는 개의치 않았다. 산양마냥 너무나도 쉽게 산을 넘었다.
“산 오르는 게 이렇게 편할 줄이야.”
- 이미 주인님의 몸뚱이는 인간의 범주가 아니잖습니까?
“아니면 아닌 거지, 몸뚱이가 뭐냐? 다른 좋은 표현도 있는데.”
- 틀린 표현은 아니잖습니까?
로이드와 농담 따먹기를 하던 문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가끔 보면 넌 날 일부러 약올리는 것 같아.”
- 그럴리가요. 전 주인님을 존경합니다.
“말로는 다하지.”
그때였다.
문수가 걸음을 멈추었다.
“도착이네.”
도착한 것이다. 노크 센터가 있는 곳, 노크 센터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말이다.
2.
오랜 만에 찾아온 노크 센터였다.
마치 항공모함을 지하에 가져다 둔 것 같은 거대함, 압도적인 스케일에 문수는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스케일은 크단 말이야.”
만약 통째로 노크 센터를 케르빈 월드로 옮길 수 있다면 제국이고 나발이고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응?”
그때였다.
노크 센터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문수는 무언가 이상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이드.”
- 예, 주인님.
“내가 노크 센터에 온 게 얼마만이지?”
- 오랜만입니다.
참으로 확실한 대답이다. 정말 오랜만이긴 건 맞다. 문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이 참…….”
그러나 장난은 거기까지였다.
문수, 지금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기체가 있었다.
로봇을 닮은 기체는 다름 아니라 기가스였다. 그것도 보통 기가스가 아니었다.
‘메가히트보다 크다.’
메가히트.
지금 케르빈 월드에서 문수가 소유한 드래곤 파이터의 정식 기체 이름이다. MX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최강의 기가스다. 크기도 그렇고, 스펙도 그렇고 최강이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기가스는 그 이상이었다.
느낌 자체가 다르다.
“메가히트 업그레이드 판이군.”
MX시스템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공급한다. 핵심은 그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원을 다룰 수 있는 기체다. 많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더불어 사용자의 실력도 중요하다.
어쨌거나 지금 눈에 보이는 기가스는 드래곤 파이터보다 한 단계 더 높았다.
드래곤 파이터가 대략적으로 3.5배 급 기가스 정도가 된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최소 4배 급 이상은 될 것 같다.
3.5배 급 기가스만으로도 무신(武神)이나 다름없는 위엄을 발휘했는데, 4배 급 기가스라면 어떨까?
물론 어스 월드에서 만들 수 있는 기가스와 케르빈 월드에서 만들 수 있는 기가스 스펙에는 차이가 크다. 기술력 자체가 너무 차이가 난다. 제 아무리 드워프가 대단한 장인이라고 해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비행기, 음속으로 날아다니는 전투기를 만드는 어스 월드의 기술력 만큼 좋을 리 만무하다.
케르빈 월드에서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한석균이라면 필시 그런 방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를 위한 건 아니겠지?”
그 순간 문수는 깨달았다.
“로이드, 말 좀 해봐.”
문수의 부름에 로이드는 잠시 뜸을 들였다.
- 죄송합니다. 현재 제 권한으로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로이드는 찾아봤다.
지금 이 노크 센터에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 여기서 이루어진 정보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로이드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
한석균 회장!
그가 막은 것이다.
문수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게 떠오르는군.”
처음 한석균 회장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너무 놀랐던 상황, 마치 꿈 같던 상황.
그래서 오히려 선명하게 기억한다.
“나 말고 적합자가 한 명 더 있다고 했지.”
왜 이제야 떠오른 걸까?
원래 문수는 후보였다. 문수보다 더 좋은 적합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적합자와 면담한 결과가 좋지 못해서 두 번째 후보자였던 문수를 한석균이 찾아온 것이다.
왜 그걸 그냥 넘어갔을까?
그 중요한 사실을 왜 그냥 넘어갔을까?
“나 말고 그 적합자를 포섭하는데 성공했군.”
한 명이 가는 것보다 두 명이 가는 게 좋다. 한석균 입장에서는 둘을 보내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다.
원래 그렇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경쟁을 붙이는 것이다.
또한 경쟁자가 생기면 서로 감시를 하게 된다.
한석균 입장에서는 문수 외의 그 적합자를 회유해, 두 번째 노크맨을 만드는 게 최우선의 과제였을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새로운 노크 센터의 설립.
그리고 한석균 회장의 반응들.
그 모든 게 이제야 이해가 됐다.
원래 있던 노크 센터는 다름 아니라 문수가 아닌 새로운 노크맨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 죄송합니다.
“뭐가?”
- 그러니까…….
로이드는 그런 문수를 위로해주려고 하는 듯,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문수는 다시금 실소를 머금었다.
이건 로이드가 죄송할 문제가 아니다. 로이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한석균이 죄송해야 할 일인가?
그 역시 아니다.
한석균 입장에서는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골랐을 뿐이다. 그걸 가지고 문수가 뭐라고 하는 것도 웃기다.
또한 어차피 새로운 노크맨의 목적도 하나다.
이제르트 가문의 부흥!
문수에게는 적이 아니라 동지고, 동업자다. 오히려 반길 만한 일이다. 그동안 문수 혼자서 많이 고생했으니까. 동료가 생기면 앞으로 숨통도 트일 것이고,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새로운 노크맨을 뽑았다면 문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게 효율적으로 낫지 않았을까?
문수와 새로운 노크맨, 그 둘이 서로를 인지하고 협력하는 게 더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 이유가 중요하지.’
문수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왜 한석균은 이 사실을 문수에게 알려주지 않고, 감추고자 한 것일까?
그게 핵심이다.
아마 한석균도 단순히 문수를 골리기 위해서 그 사실을 숨겼을 리가 없다.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숨겼을 것이다.
그 의도를 꿰뚫어야 한다.
“로이드.”
- 예, 주인님.
“내가 여기 방문한 기록을 제거하는 건 가능해?”
- 불가능합니다. 노크 센터의 기록들은 한석균 회장님의 허락 하에만 삭제가 가능합니다.
“그래?”
그리고 문수가 노크 센터에 온 것을 본 한석균 역시 문수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지금은 모르지.’
어쨌거나 지금 당장 한석균의 의도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성이 있으며 동시에 여기 왔던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그럼 간만에 들린 김에 이곳저곳 탐사나 하자. 내가 얻은 정보를 저장하는 건 가능하지?”
- 예, 한석균 회장님이 삭제 명령만 내리지 않는다면 영구적으로 저장이 가능합니다.
“좋아.”
문수가 노크 센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3.
문수는 노크 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만들어진 기가스를 살펴보고, 그 외의 여러 것들을 살펴봤다. 해부를 할 기세로 그것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정보 수집이었다.
어차피 한석균은 노크 센터 자체를 숨기려고 했다. 그런데 한석균에게 정보를 부탁하는 것도 우습다.
물론 정보를 훔치는 셈이 되겠지만, 문수는 차라리 훔쳐서라도 정보를 습득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보를 훔친다고 해서 한석균이 문수를 나무랄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보를 훔치지 않고 소극적으로 행동했다면 한석균은 더 크게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랬다.
한석균은 이미 문수가 노크 센터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야 찾아왔군.”
한석균은 문수에게 말했다.
쉬라고.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다시 케르빈 월드로 떠나기 전가지 푹 쉬라고 말했다.
모든 편의를 봐줬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만약 정말 문수가 휴식을 요구했고, 휴식을 누렸다면 한석균은 문수에게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문수는 한석균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격투기 시합을 보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걸 파악했을 때는 문수의 수준이 여기까지인가, 생각했지만 이후 문수는 곧바로 노크 센터를 찾아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석균은 충분히 의심할 만한 행동을 했다. 그걸 포착했었어야 한다. 한석균은 문수에게 그 부분을 누누이 강조했고, 가르쳤다.
노크 센터에 들어온 이후에도 문수의 행동은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문수가 케르빈 월드에서 활동하는 동안 한석균이라고 손 놓고 놀기만 한 건 아니다.
많은 것을 만들었다.
메가히트의 업그레이드 판인 새로운 기가스도 만들었고, 케르빈 월드에서 도움이 될 여러 가지 장비들을 새롭게 만들었다. 더 업그레이드 된 GPS시스템도 만들었다.
그것들을 노크 센터에 진열하듯 놔두었다.
마치 보란 듯이 말이다.
그리고 문수는 그걸 살피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굳이 그것들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로이드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기술력을 충분히 케르빈 월드에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합격점이다.
한석균은 문수의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후우.”
미소 후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걱정했다.
문수, 그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일 경우, 한석균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노크맨이란 카드를 써야 할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새로운 노크맨은…… 한석균 입장에서도 도박이나 마찬가지인 카드였다.
쓰기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문수에게 모든 걸 위임하고 싶었다. 실제로 문수는 기대 만큼 일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그 새로운 노크맨을 이제서야 꺼내든 이유는 하나였다.
“이제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군.”
그건 다름 아니라 한석균, 그에게 더 이상 많은 미래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미 한석균은 나이를 많이 먹었다. 무엇보다 본래 한석균의 육체는 차원 이동에 적합한 육체가 아니었다.
괜히 문수라는 대리인을 선별해 노크맨을 만든 게 아니다. 한 번의 차원이동을 하면서, 한석균의 몸에는 이미 많은 무리가 간 상황이었다. 그 후에는 적당한 관리로 나름 천수를 누리고 있었지만, 솔직히 지금 당장 죽어도 한석균의 나이를 생각하면 호상에 가까울 정도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석균은 분명하게 끝을 보고 싶었다.
그게 한석균으로 하여금 도박을 하게 만든 배경이었다.
"문수에게는 여러모로 몹쓸 짓이군."
물론 알고 있다. 이 도박으로 인해서 가장 곤란해지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문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석균은 믿었다.
문수, 그라면 잘 해내줄 것이다.
한석균이 고른 진정한 노크맨은 바로 문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