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4.
이제르트 자작이 돌아왔다.
백작이란 작위와 함께 말이다.
이제르트 자작가…… 아니, 이제는 이제르트 백작가라 불리게 될 이제르트 백작령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제르트 백작은 그런 축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모두들 진정하라. 영지는 언제나와 똑같이 흘러갈 것이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제르트 백작은 기사들을 시켜 들뜬 이제르트 백작령의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이상한 일이었다.
영지에 활기가 넘치면 영주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더군다나 긍정적인 의미의 활기 아닌가? 또한 이제르트 가문이 백작 위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문의 영광이다.
대마법사 할루이 이제르트가 활동할 당시에도 이루지 못한 대단한 업적이다. 물론 할루이 이제르트 활동할 당시에는 그에게 백작 위를 내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었고, 단지 할루이 이제르트가 갑작스레 사라지면서 백작 위를 하사하는 문제는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됐던 거지만.
어쨌거나 이제르트 백작의 행보는 이상한 행보였다.
때문에 이제르트 백작령은 조용해졌다. 이러다할 소란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이제르트 백작은 이제르트 부속령에 있는 기사들과 주요 인물들을 이제르트 백작령으로 소환했다. 경비를 위한 최소한의 전력을 제외한 모든 전력을 이제르트 백작령에 집중시켰다.
이유는 하나.
“문수르 경, 이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왕도를 습격했던 몬스터 군단의 몬스터들은 다름 아니라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이었습니다. 가누스 경이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현재 테블스 산의 몬스터들 숫자는 굉장히 줄어들어든 상황입니다.”
“천운이군.”
문수르의 말을 들은 이제르트 백작 역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기회다!
그것도 보통 기회가 아니라 하늘이 준 기회다.
수백 년 동안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던 테블스 산을 정복할 아주 좋은 기회!
작전회의가 시작됐다.
일단 이제르트 백작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이제르트 백작령으로 소환했다.
이제르트 부속령에 있는 전력들이 속속 이제르트 백작령에 집합하기 시작했다.
한편 문수르는 전쟁을 준비했다.
“드디어 단전이 제 자리를 잡았군.”
바나푸스 나무의 열매 덕분에 단전은 치료가 됐다. 그 후에 주기적으로 가누스에게 근골 치료를 받았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치료였지만 문수르는 그 고통을 참았다.
치료 후에는 훈련을 했다.
가누스는 누누이 강조했다.
“훈련을 게흘리 하면 결국 또 다시 오러를 버티지 못하고 근골이 뒤틀리겠지.”
그때부터 문수르는 억지로 시간을 내 훈련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제르트 부속령의 전력 상당수를 이제르트 백작령으로 데려오자, 문수르가 나름 널널해졌다는 사실이다. 해톤과 마구르도 있었고, 뛰어난 인재인 지르미오, 그도 있었다.
기사들도 넘치니, 굳이 문수르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기강이 잡혔다.
이번 왕도 전쟁에서 이제르트 백작가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자신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제까지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몬스터와 싸우고, 계속되는 훈련을 거치면서 스스로가 강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백문불여일견, 스스로 느끼는 것과 실전에서 비교해서 느끼는 것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큰 전공을 세웠다.
정말 큰 전공, 생각지도 못했던 포상 앞에서 인간이라면 경거망동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정말 우리가 해낼 걸까?
이대로 해도 괜찮은 걸까?
긴장감을 가지게 된다.
동시에 이제르트 백작가의 병력들은 모두 강도 높은 훈련을 통과하고, 전우애가 깊으며 이제르트 백작을 향한 깊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경각심, 긴장감은 어우러져 군기로 표현됐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문수르가 해야 할 일은 줄어들었다. 문수르는 몇 가지 작업들 그리고 개인 훈련을 마치면 오히려 시간이 남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이쯤 되자 문수르는 때를 가늠했다.
“테블스 산 개간 작업을 하기 전에 지구에 한 번 다녀와야 할 텐데…….”
몇 달 동안 어스 월드로 돌아가지 못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길어졌다.
한 번쯤은 돌아가야 한다.
업무보고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것저것 챙겨올 것도 적지 않다.
‘그래, 차라리 떠나려면 지금이 낫지. 지금이 아니면 시간은 더 없을 거야.’
테블스 산 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린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적지 않기 빠져나갔지만 그렇다고 해도 테블스 산은 여전히 몬스터들의 소굴이다. 어설픈 전력을 갖춘 채 갔다가는 오히려 크게 당할 것이다.
차근차근, 땅따먹기 식으로 탐색과 개간을 번갈아가면서 움직여야 한다.
개간 작업 자체에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득은 많군.’
한편으로는 참 많은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제르트 자작가를 백작의 위에 올렸다. 좋지 못하던 필로스 왕과의 관계도 크게 개선시켰다.
이제르트 자작가를 반석에 올리는 게 목표였다. 이제르트 자작가를 백작가로 만들었으니, 목적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 셈이다. 이제르트 백작가 역시 내실을 계속해서 다지고 있다.
‘어쩌면…….’
어떻게 보면 테블스 산만 개간하면 이제르트 가문을 반석에 올리는 작업은 끝난 것일 수도 있다.
테블스 산을 개간하면 무척 비옥한 땅을 가지게 될 뿐더러, 테블스 산이란 위협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후작, 콩탄 왕국의 정치를 잡은 실세와 원만한 관계를 이루고 있고 드워프 족과 엘프 족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이제르트 백작가. 여기에 후계자마저 충분한 능력을 가진 상황.
어쩌면 이제 문수르의 역할은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끝?”
정말이다.
이 말도 안 될 것 같았던 임무가 정말 끝이 날지도 모른다.
“제국이 걸리는군.”
물론 아직 몇 개의 산이 더 남긴 했다. 특히 지금 정치적 상황은 굉장히 불안하다.
콩탄 왕국 자체에 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페스로 제국.
“후우!”
어쩌면 정말 이야기의 끝은 페스로 제국과 담판을 지은 후일지도 모른다.
문수르는 그 순간 각오를 다졌다.
“내일 어스 월드로 돌아가봐야겠군.”
무언가 확실한 것이 필요하다. 그 확실한 걸 문수르에게 제시할 수 있는 건 한석균 뿐이다.
5.
“떠날 생각인가?”
이제르트 백작은 자신을 찾아온 문수르를 보자마자 그 말을 건넸다. 문수르는 놀랐다.
‘이제는 그런 것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인가?’
이제르트 백작과 함께한 시간이 짧지 않다.
더군다나 이제르트 백작은 문수르의 본질을, 진실을 알고 있는 케르빈 월드의 유일한 사내였다.
이제르트 백작이 느끼는 문수르는 다른 이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잠시 떠났다 올 생각입니다.”
문수르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르트 백작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여러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지금 내가 해줄 말은 하나 뿐인 것 같군.”
“무슨 말입니까?”
“수고했네.”
짧은 말이다.
길지 않은 말, 그러나 여운은 너무나도 길었다. 문수르는 잠시 동안 말을 뱉지 못했다. 이제르트 백작 역시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할까?
성취감?
‘아니, 그런 건 진즉에 다 채워졌다.’
솔직히 말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그에 따른 성취감을 느끼는 수준은 벗어난지 오래다.
이제르트 백작령의 모든 것, 문수르를 통해 이룩된 것들을 볼 때마다 가슴 속이 언제나 가득 차는 느낌이다.
모르겠다.
문수르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소설가였던 그조차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다녀오겠습니다.”
그저 인사만 건넬 뿐.
6.
문수는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노크 센터가 맞는 거야?”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 그를 맞이했다. 문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가 알던 노크 센터가 아니었다.
- 상황 파악 중입니다.
로이드 역시 이곳이 노크 센터가 아님을 파악하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문수의 표정이 구겨졌다.
‘설마…….’
예전 한석균에게 들었던 노크 클락의 몇 가지 주의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노크 클락을 통해 차원이동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작은 문제만으로도 차원이동 자체가 실패해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거나 시공간의 비틀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로이드가 수시로 조정을 하기 때문에 굳이 문수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제까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이제르트 백작가의 일이 잘 풀린 대가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니겠지.’
문수는 애써 상황을 부정했다.
- 상황 파악 맞습니다. 이곳은…… 새로운 노크 센터입니다.
로이드가 답을 내놓았다.
“뭐?”
그 답을 들은 문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운 노크 센터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 한석균 회장님께서 새로운 노크 센터를 만드셨고, 주인님이 어스 월드로 이동시에 이곳에 도착하도록 좌표 등을 수정해놓은 상태입니다.
한석균 회장이 했다?
“지구는 맞는 거야?”
-예, 지구인 건 확실합니다. 정확힌 위치는…….
“정확한 위치는 됐고, 한 회장님하고 곧바로 연락은 가능해?”
- 지금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으니, 어떤 식으로든 답변이 올 겁니다.
로이드의 말에는 이상한 특이점은 없었다. 그러나 문수는 묘한 불안감 혹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상해.’
뭐라고 해야 할까?
오러 마스터의 감이라고 해야 할까? 나름 케르빈 월드에서 정치로 수작을 부리며 쌓인 감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감이 말해주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왜 하필 새로운 노크 센터를 지은 거지?’
본래 있던 노크 센터. 한석균 회장이 이룩한 필생의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굳이 새로운 노크 센터를 지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곳이기도 했다.
하고 싶은 건 전부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노크 센터에서 못하는 건 세상 어딜 가도 못하는 거다.
그 노크 센터를 짓는데 수십 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그런데 새로운 노크 센터를 만들었다고?
‘고작 이 짧은 시간 동안?’
더군다나 문수가 케르빈 월드에 있던 시간이 짧은 건 아니지만, 1년을 넘지 않는다.
개인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새로운 노크 센터를 만들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혹여 새로운 노크 센터를 만들고자 했다면, 진즉부터 준비를 해두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문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건…….’
사실 문수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닐 수도 있다. 노크 센터를 두 개 짓든, 세개 짓든 그건 한석균 마음이다. 문수는 어디까지나 한석균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문수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 오랜만이군.
한석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수는 허공을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로이드로부터 보고서를 받는 중이네. 늦을 만한 이유가 있었군. 성과가 컸어.
한석균은 조금이지만 들뜬 기색이 보였다.
문수는 미소를 지었다.
“예, 좀 성과가 컸습니다.”
-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 하지. 일단 푹 쉬게.
그렇게 문수가 어스 월드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