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16화 (214/293)

216화

<65화. 숨 고르기.>

1.

페스로 제국의 현 황제, 카이탄 황제.

그는 이미 나이가 꽤 찼다.

그러나 지금 그런 카이탄 황제의 후계구도는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후계자 감이 없어서?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후계자 감이 너무나도 많다.

카이탄 황제의 슬하에는 뛰어난 황자들이 너무 많았다. 누구 하나를 명확히 택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기다렸다. 카이탄 황제는 굳이 자식들의 싸움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약육강식.

결국 약한 자는 도퇴될 것이고, 강한 놈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 강한 놈을 잡으면 되는 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카이탄 황제의 건강이 차츰 나빠지기 시작했다.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가끔 가슴이 답답하며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을 느끼고는 했다. 거기서 카이탄 황제는 직감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요절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솔직히 역대 황제들의 수명을 생각하면 예순을 넘긴 카이탄 황제는 병으로 죽어도 호상(好喪)이 될 팔자였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카이탄 황제는 우려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국이 쪼개질 지도 모르겠구나.”

카이탄 황제가 후계자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 동안, 황자들은 황위를 높고 세력을 키웠다.

비슷하게 우수한 기량.

여기에 한 가지 더 특이사항이 있었다.

페스로 제국 특유의 귀족 간의 상쟁하는 문화!

이미 수십 개로 파벌이 갈린 제국의 귀족들이 황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이 파벌을 형성했다.

보통 경우라면 두 개, 많아 봐야 세 개 정도의 파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재 제국 내에 생긴 황자 파벌의 숫자는 일곱 개가 넘어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누가 황제가 되도 제국이 분열될 건 불보듯 뻔했다.

혹여 황제가 나오고 모든 파벌을 통일한다고 해도 제국의 국력은 크게 쇠퇴할 게 뻔했다.

결국 후계자 선별을 위해 황제가 움직였다.

더불어 카이탄 황제는 움직이기 전에 이런 자신의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 충신들에게 말했다.

“세상의 이목을 흐트려라!”

제국의 흔들림을 알게 되면 다른 왕국들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올 게 뻔하다.

그동안 제국이 잠잠한 탓에 제국의 주변국들 역시 충분히 힘을 모은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제국도 힘을 축적했다. 그러나 지금 제국은 그 축적한 힘을 서로를 향해 터뜨리기 전이다. 자중지란에 빠지기 전이다. 만약 조짐이 파악되면, 불리한 건 제국쪽이었다.

잠잠했던 카이탄 황제의 충신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아히만트 백작.

그는 콩탄 왕국으로 향했다.

2.

아히만트 백작은 슈페언 백작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마음에 안 들어.”

슈페언 백작.

지금 페스로 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정치활동을 벌이는 귀족 중 한 명이다.

아히만트 백작은 그런 슈페언 백작이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페스로 제국에는 9인의 기사가 있다고 말한다.

황제로부터 3배 급 기가스를 하사 받은 9명의 귀족들, 기가스 파일럿들을 말함이다.

모두가 각자의 특색이 있다

그런데 유독 개중에서 슈페언 백작과 아히만트 백작은 자주 비교가 되고는 했다.

이유는 하나, 그 둘이 전장에서 많은 활약을 벌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장에서 활약하지 않은 자를 가지고 비교를 하는 건 무리가 있다. 명성만으로 비교하는 건 제대로 된 비교가 아니니까. 전공을 가지고 비교를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비교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슈페언 백작과 아히만트 백작은 전공이 많았다.

슈페언 백작이야 말할 것도 없이 제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귀족 중 한 명이다.

더불어 혀보다는 검을 더 잘 쓰는 인물이기도 하다. 수틀리다 싶으면 제 군대를 이끌고 움직이는 자다. 전투가 잦으니, 전공도 많을 수밖에 없다.

아히만트 백작은 황제의 검이라 불리는 자다. 황제가 주도하는 전쟁의 선두에는 언제나 아히만트 백작이 있었다. 제국이 아무리 요즘 얌전해졌다고 해도, 그 호전성이 금방 사라질 수는 없는 법! 제국은 크다. 문제도 많다. 내부적으로 반란 또는 그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귀족들이 없지 않다. 그들의 처형은 그 누구도 아닌 아히만트 백작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아히만트 백작의 전공도 꽤나 많다.

이런 이유로 슈페언 백작과 아히만트 백작은 언제나 비교 대상이었다.

그리고 비교의 끝에서는 대부분 슈페언 백작이 우세를 보이고는 했다.

아히만트 백작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이다. 더 짜증나는 건 아히만트 백작도 안다는 거다.

만약 슈페언 백작과 아히만트 백작, 둘이 1대1로 붙으면 아히만트 백작이 열세다.

이유?

다른 건 없다.

똑같은 3배 급 기가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결국 하나뿐이다.

기량의 차이다.

슈페언 백작은 천재다. 아히만트 백작 스스로가 생각해도 짜증이 날 정도로 천재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만큼 기사에게 속이 쓰린 일도 없다.

“빌어먹을.”

그런 슈페언 백작을 떠올리니, 아히만트 백작의 심기가 뒤틀리는 것도 당연지사.

더군다나 그런 슈페언 백작에게 선전포고를 한 상황이다.

이제 그 둘은 충돌할 것이다.

“흥.”

물론 이 모든 건 당연한 말이지만 아히만트 백작이 의도한 바였다.

애초에 아히만트 백작이 원하는 건 콩탄 왕국이 아니다. 콩탄 왕국의 혼란이다.

“빅토리안 공작이 제 구실을 못했지만…….”

빅토리안 공작이 그렇게 허무하게 패배할 줄은 몰랐다. 다름 웅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계획을 준비한 듯 했는데…….

‘필로스 왕에게 그 정도 노림수가 있었을 줄이야.’

필로스 왕 때문이다.

필로스 왕이 숨겨둔 패가 작지 않았다. 너무나도 컸다.

‘차라리 잘됐군.’

처음에는 긴장했다. 황제 폐하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러나 희소식이 들렸다.

필로스 왕과 슈페언 백작, 둘 사이가 어긋났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아히만트 백작은 슈페언 백작을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선전포고를 했다.

필로스 왕과의 불화, 그 상황에서 아히만트 백작의 도발.

슈페언 백작은 어떻게든 다시금 필로스 왕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할 것이다.

물론 회유책보다는 강압적인 방법을 쓸 것이다. 협박 따위를 말이다. 당연히 콩탄 왕국은 다시 혼란에 빠질 터. 여기에 아히만트 백작까지 가세하면 그림이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이게 제국의 새로운 후계자가 선정되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눈속임이라는 걸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 모든 건 폐하의 뜻대로.”

그걸 위해서라면 아히만트 백작은 슈페언 백작과 진심으로 싸울 생각도 있었다.

3.

빅토리안 공작의 반역 사건 그리고 몬스터 군단 사건.

이 두 사건이 정리가 됐다.

필로스 왕은 말했다.

“빅토리안 공작은 사악한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콩탄 왕국을 전복시키려 했다. 그의 죄는 무겁다. 빅토리안 공작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그 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반역죄.

콩탄 왕국에서 기나긴 역사를 써내렸던 빅토리안 공작가는 반역죄란 굴레를 뒤집어 썼다.

그것으로 빅토리안 공작가의 역사는 끝이었다. 이제부터 빅토리안이란 성을 가진 모든 이들이 추적을 받고, 종국에는 처형 당할 테니까.

“또한 아직 흑마법사의 위협이 끝이 난 건 아니다.”

그리고 필로스 왕은 전쟁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빅토리안 공작과 손을 잡았던 흑마법사!

그 흑마법사가 언제 다시 한 번 콩탄 왕국을 노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흑마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잡아라.”

흑마법을 향한 전면전이 선포됐다.

이 부분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어찌 됐건 슈페언 백작은 흑마법을 명분 삼아 콩탄 왕국의 정세에 개입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슈페언 백작의 개입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는 건, 콩탄 왕국이 자체적으로 흑마법의 흔적을 찾고, 흑마법사를 찾아 죽이는 것이다.

혹여 정말 빅토리안 공작과 손을 잡았던 흑마법사를 잡는다면 슈페언 백작이 콩탄 왕국에 개입할 명분이 사라진다. 중요한 일이었다. 또한 이렇게 필로스 왕이 선포를 하면, 귀족들이 알아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흑마법과의 관계를 의심받을 만한 조금의 흔적도 없앨 것이다. 자연스럽게 슈페언 백작에게 꼬투리를 잡힐 가능성이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이번 빅토리안 가문의 반역을 막은 이들의 업적이 너무나도 크다. 제이머스 후작, 그에게 공작의 위를 하사한다.”

마지막으로 필로스 왕은 논공행상을 진행했다.

제이머스 후작, 그가 공작의 작위를 수여 받았다.

파격적이지만, 나름 예상된 결과였다. 어찌 됐건 공작의 작위도 공백이 길어지면 좋을 게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제이머스 후작만이 공작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더 파격적인 일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불스 백작, 그에게 후작의 작위를 하사한다.”

파격을 넘어서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제이머스 후작이 공작이 되면, 자연스럽게 후작의 자리 역시 공백이 생기게 된다.

혹자는 그 자리에 쿠틀러 백작이 오르리라 생각했다. 당연한 생각이었다. 쿠틀러 백작은 제이머스 후작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인 사내. 제이머스 후작 파벌이 밀리는 와중에도 제이머스 후작을 향한 쿠틀러 백작의 충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쿠틀러 백작을 제치고 불스 백작이, 이제까지는 변방의 백작에 불과했던 그가 후작의 작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불스 백작 본인도 놀랄 만한 결과였다.

“내가?”

후작의 위(位).

꿈이었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이제까지 몸을 웅크린 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기화가 왔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던 것을 풀어 놓았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좀 더…… 좀 더 정치를 하고, 실적을 쌓고, 전공을 쌓은 후에야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사전 예고도 없었다. 필로스 왕은 물론 제이머스 후작조차 짧은 언질조차 없었다.

불스 백작이 후작 위를 하사 받은 건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제이머스 후작과 필로스 왕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로스 왕은 제이머스 후작에게 말했다.

“제이머스 후작, 그대를 대신에 후작의 자리에 어울리는 자가 있으면 추천하도록.”

그건 굉장한 기회였다. 제이머스 후작이 원하는 자를 자신의 후임으로 앉힐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제이머스 후작은 고민했다.

‘쿠틀러 백작이 낫겠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당연히 쿠틀러 백작이었다. 자신을 따르던 충신 중의 충신이다. 또한 능력도 출중하다. 휘하에는 강력한 기사단과 강력한 기가스 전력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또한 콩탄 왕국이 자랑하는 명문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제이머스 후작은 고민했다.

‘쿠틀러 백작은…….’

쿠틀러 백작.

그의 성정은 너무나도 제이머스 후작을 닮았다. 제이머스 후작은 그게 우려 됐다.

제이머스 후작은 정치를 모른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성정을 가진 쿠틀러 백작이 후작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정치적 능력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 될 것이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난 자.’

후임으로는 무력보다는 정치 능력이 뛰어난 자가 와야지 제이머스 후작에게도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한 명이 떠올랐다.

“불스 백작, 그가 괜찮겠습니다.”

제이머스 후작 스스로가 생각해도 파격적이라고 생각한 인사였다. 그러나 필로스 왕은 놀라지 않았다

“내 생각과 비슷하군.”

“예?”

오히려 필로스 왕은 불스 백작을 제이머스 후작의 뒤를 잇는 후작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 역시 불스 백작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게 무슨…….”

“이제르트 자작가에 백작 위를 하사할 걸세. 그런데 그런 이제르트 자작가를 가까이 두고 있는 불스 백작이 여전히 백작으로 남아있으면 힘의 균형이 뒤틀릴 테니까.”

필로스 왕.

그는 이제르트 자자가를 백퍼센트 신뢰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필로스 왕은 지금 눈앞에 있는 제이머스 후작도 백퍼센트 신뢰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왕에게는 당연한 자질이다.

그리고 숙명이다. 귀족을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말이다.

어쨌거나 필로스 왕 입장에서도 이제르트 자작가를 견제할 세력이 필요했고, 불스 백작은 그 역할에 딱 맞는 자였다.

제이머스 후작과 필로스 왕의 의견이 맞았다.

그것이 바로 불스 백작이 후작의 위에 오르게 된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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