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15화 (213/293)

215화

7.

불스 백작.

‘대단한 자다.’

왕군을 총괄하는 위치에 서게 된 제이머스 후작, 그가 이번 전쟁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다름 아니라 불스 백작이란 자였다.

처음에는 그저 정치를 잘하고, 계산이 빠르고, 나름 웅심(雄心)이 있는 사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충분히 고평가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이머스 후작에게 있어 불스 백작은 변방이나 지키는 백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름조차 간신히 기억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불스 백작, 그는 어디에서나 자신의 존재감은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제이머스 후작의 측근이 되더니, 이번 몬스터와의 전쟁에서는 자신의 능력은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저런 자가 변방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니…….”

전술과 전략.

뛰어나다. 제이머스 후작이 봐도 불스 백작이 내리는 전술과 전략은 상황에 딱 맞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뿐인가?

전쟁이란 건 지도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숫자 싸움이 결코 아니다.

결국 싸우는 건 사람이다. 사람을 다룰 줄 알아야 전쟁을 할 수 있다. 병사들을 다독이고, 그들의 사기를 북돋을 수 있어야 진짜 제대로 된 전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전술과 전략이 뛰어난 자들은 많다. 그런 건 공부만 하면 된다. 물론 그 공부조차 하지 않아 무능하기 짝이 없는 귀족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반면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자는 굉장히 적다. 그건 타고난 것이니까. 배운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불스 백작은 둘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조만간…….’

제이머스 후작.

그는 전쟁 다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콩탄 왕국은 정치적으로 재개편이 시작될 것이다. 일단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속했던 귀족들에게 칼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서슬 퍼런 칼바람이다.

제이머스 후작은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치 싸움이란 건 서로를 품어주는 것보다 확실하게 일벌백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확실히 본보기를 보여줘야 나중에 기어오르지 않는 거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제이머스 후작 파벌은 세가 적다. 세가 적기 때문에 파벌에 속한 자들에게는 보다 많은 보상이 가겠지만, 정치적 입지를 넓혀줘도 능력이 없는 이는 금방 정치적 입지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제이머스 후작의 정치적 입지도 줄어드는 셈이다.

제이머스 후작 입장에서도 믿을만한 이에게 그리고 확실한 능력이 있는 이에게 정치적 권력을 쥐어줘야 한다.

불스 백작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르트 자작 역시 대단하군.’

이제르트 자작에게도 적지 않은 보상이 쥐어질 것이다.

이제르트 자작…… 제이머스 후작이 보기에는 문수르라는 희대의 기사 덕분에 성장한 귀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이었다.

아니, 솔직히 정치능력이 굉장히 부족한 자라고 생각했다.

필로스 왕이 왕위에 오를 무렵, 시류를 읽은 대부분의 귀족들은 필로스 왕의 편에 섰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은 끝까지 충성심을 지킨다는 이유로 필로스 왕과 반목했다.

그 대가로 테블스 산을 품고 있는 땅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대단한 충성심이지만, 반대로 정치적으로는 무능한 일이었다. 기사라면 모를까 영주는 그런 선택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아니다.

이제르트 자작…… 전술과 전략도 훌륭하다. 불스 백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더 뛰어난 점이 있다.

“사람을 다룰 줄 알아.”

이제르트 자작은 사람을 잘 다루고 있었다. 특히 이제르트 자작이 데려온 이들은 모두가 뛰어났다.

아이언히트의 전술적 운영은 입이 벌어질 정도다. 대체 기가스로 저런 전술 운영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필로스 전하의 노림수라고 했던가?’

필로스 왕에게 듣기로는 이제르트 자작은 필로스 왕이 페스로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몰래 키운 세력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르트 자작은 정치적으로 무능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것이 되어버린다. 그 누구보다 정치적 시류를 잘 읽었다는 의미니까.

‘무시무시한 자.’

제이머스 후작은 그렇게 이제르트 자작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이윽고 제이머스 후작이 전장을 봤다.

“슬슬 끝나가는군.”

짧지만 강렬했던 전쟁이 종막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8.

왕도에서의 전쟁은 일주일 동안 진행됐다.

왕군은 무리해서 전쟁을 치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군수물자가 충분한 상황에서 농성을 포기한다는 건 멍처안 짓이었으니까.

조금씩 몬스터 군단의 숫자를 줄여갔다.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우거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다. 또한 붕괴된 성벽은 제 아무리 임시복구를 했다고 해도 오우거의 공격 한 방에 무너졌다. 그 무너진 성벽을 넘어 성 안으로 들어온 오우거들이 남긴 피해는 무지막지했다.

수십여 대의 기가스가 파괴됐다. 병사들의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왕도 함락은 없었다.

결국 마지막 오우거를 처치하는 것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우아아아!”

“이겼다!”

병사들은 환호했다.

기사들 역시 승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 승리에 환호하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군.”

필로스 왕.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9.

가누스는 말했다.

“무리한 오러의 수용은 근골에 무리를 주지.”

문수르는 갑작스레 오러의 양과 질이 늘어나면서 오러 마스터가 된 케이스다.

육체가 그런 오러의 양과 질에 맞추어 변하긴 했다. 여기서 문수르는 큰 실수를 했다.

훈련을 게을리 한 것이다.

훈련을 통해서 몸을, 근골을 오러에 맞추어 발달시킬 필요가 있었다. 단련시켜야만 했다.

그런데 그걸 하지 못했다.

무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힘이 아니다. 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밸런스다.

오러와 육체가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면 무너지기 시작한다.

특히 문수르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육체가 무너진 부분을 오러가 대신 채워주기 시작한 것이다. 육체의 부족함을 오러가 대신 채웠다. 오러가 더 발달하기 시작했다. 오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당연히 오러의 질과 양은 계속 늘어갔지만, 반대로 육체의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아니, 원래 오러 마스터는 육체의 성장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자들이 대부분이다.

가누스는 그렇게 무너진 문수르의 근골을 억지로 맞추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다.

억지로 맞춘 건 언젠가는 풀어질 수밖에 없다. 다시 오러를 수용하게 되면 어느 순간 다시 근골이 뒤틀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부터 제대로 관리해야지.”

그러니가 앞으로가 중요하다.

앞으로 수련을 빼먹지 말고 스스로를 연마해야 한다.

문수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10.

콩탄 왕국의 내전이 끝났다. 그건 마치 한 여름의 폭풍 같은 전쟁이었다.

갑작스레 시작됐지만 그 끝도 갑작스럽기 그지없었다.

콩탄 왕국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대륙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콩탄 왕국의 내전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정치를 아는 자들은 더더욱 관심이 깊었다.

“재미있게 됐군.”

“그러니까 빅토리안 공작이 반역을 저질렀다?”

“흑마법사가 개입됐단 말이지…….”

“슈페언 백작과 필로스 왕이 반목하고 있다고?”

현재 대륙의 정세는 정체되어 있었다. 그 무엇도 아닌 페스로 제국이 잠잠한 탓이다.

이제까지 대륙의 정세는 페스로 제국의 행보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페스로 제국이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전쟁을 시작하면 여러 국가들이 힘을 합쳐 동맹을 이루는 식의 정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페스로 제국이 잠잠해지자, 모든 국가들이 서로의 눈치를 그리고 제국의 동세를 살피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콩탄 왕국의 내전 그리고 그와 관련된 페스로 제국의 움직임은 고요한 호수 위에 돌무더기를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제국이 움직일까?”

“흑마법사라는 좋은 명분을 버릴 리는 없겠지.”

“과연 그 여우 같은 빅토리안 공작이 아무런 배경도 없이 움직였다는 게 말이 될까?”

“빅토리안 공작과 흑마법사가 손을 잡은 것 자체가 의문투성이군.”

“제국이 움직이고 있어. 그 의미는 필시 제국의 정세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겠지.”

모든 국가들이 저만의 해석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슈페언 백작 그리고 아히만트 백작.

그 둘이 한 자리에 모여 만남을 가지게 됐다. 휘황찬란한 곳에서 이루어진 만남은 아니었다.

조촐하고 퀘퀘한 냄새가 잔뜩 풍겨져 나오는 천막, 불빛이라고는 거의 다 녹아버린 양초 하나를 두고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그 초라한 광경은 다름 아니라 슈페언 백작과 아히만트 백작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둘의 관계는 이 정도다.

같은 제국이란 틀 그리고 똑같은 황제를 모시고 제국을 따르며 황제에 충성하지만 결코 서로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사이다.

원래 페스로 제국의 실세들은 그렇다.

제국은 너무 크다.

너무 크기에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과 무력을 지닌 황제라고 해도 제국 전체를 통솔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딘가에서는 황제를 고꾸라드릴 음모를 꾸미는 세력들이 있다.

그런 페스로 제국의 황제가 자신의 황권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택한 것이 귀족 간의 대립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귀족들끼리 싸움을 붙인 후에 이긴 자에게 더 많은 명예와 권력을 쥐어주는 것이다.

가뜩이나 호전적인 제국민의 성정이다. 그런 제국민의 성정에 황제의 정치 스타일은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효과는 제대로 먹혔다. 귀족들은 서로 상쟁하게 자기 세력을 갉아먹었고 황제의 권위는 더욱더 오롯하게 변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삼황자 님의 성인식 이후 처음이군.”

“얼굴을 마주보는 것 말인가?”

“그럼 달리 또 만났던 적이 있었나? 그다지 왕래도 없는 우리 둘 사이에?”

“혹시 모르지. 밤중에 스쳐 지나가듯 만났을 지도. 가끔 소문이 들리더군. 슈페언 백작, 자네의 목을 노리는 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흥!”

슈페언 백작.

그는 굉장히 적극적인 귀족이다.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스타일이다.

적극적이기에 이룩한 것도 많다. 제국의 백작들 중에서 슈페언 백작 만큼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는 없다. 아히만트 백작을 포함해서 말이다. 단순히 세력만으로 따지면 아히만트 백작은 슈페언 백작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적극적이기에 적도 많다.

슈페언 백작은 말보다는 주먹을 먼저 휘두르는 사내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자이기도 하다. 또한 황제는 슈페언 백작이 귀족들을 때려잡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귀족들이 서로 상쟁해서 세력을 줄이는 건 황제가 기대하는 일이니까. 오히려 귀족들의 세력을 줄일 때마다 슈페언 백작을 향한 황제의 총애는 깊어진다.

어쨌거나 이런 슈페언 백작에 앙심을 품은 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오러 마스터의 경지, 여기에 3배 급 기가스 골든 자이언트의 주인이기도 한 슈페언 백작을 무력으로 어찌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 암살 밖에 없다.

슈페언 백작은 이제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암살 위협을 당했었다.

솔직히 좋은 일은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암살자를 보내는데 발 쭉 뻗고 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슈페언 백작의 약점 아닌 약점이었다.

아히만트 백작은 그 부분을 쑤시고 들어온 것이다.

도발이다.

물론 그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슈페언 백작은 가소로운 자가 아니다.

“그러는 그쪽은 그동안 제 영지에 콕 박힌 채 보이지 않더니, 무슨 일이 있어서 콩탄 왕국에 관심을 가진 거지? 응?”

아히만트 백작.

솔직히 그는 황제의 검이라고 불릴 정도의 명성을 가졌지만, 슈페언 백작과는 다르게 소극적인 행보로 정치적 영향력이 명성 만큼 크지 못하다.

“누군가와는 다르게 나는 오직 폐하를 위해서만 움직인다.”

“오호, 그럼 이번에도 폐하를 위해서 움직였다는 소리인가?”

“물론이다. 내 모든 행보는 황제 폐하만을 위해 존재한다.”

“말은 그럴싸하군.”

“슈페언 백작, 자네와 이 자리를 맞이한 건 분명하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내가 하는 일은 폐하를 위한 일. 네 녀석에게 조금의 충심이라도 있다면 콩탄 왕국에서 손을 떼라.”

“우스운 소리.”

슈페언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콩탄 왕국에서 손을 떼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자신이 콩탄 왕국을 지금 여기까지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감히 황제 폐하를 팔아 제 사욕을 채우려고 하다니. 아히만트 백작, 콩탄 왕국에 손을 댄다면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극단적인 반응들이었다.

이 만남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 반응은 서로가 원하는 반응이기도 했다. 그 두 백작이 만남을 가진 건 농담 따먹기나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확실한 선전포고를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 그 선전포고가 이루어졌다.

남은 답은 결판을 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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