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10화 (208/293)

210화

<63화. 몬스터 군단.>

1.

쿠웅!

마치 지진이 난 것 같았다.

“뭐지?”

“지, 지진인가?”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게 단순한 지진이라고 생각했다.

쿠웅!

그러나 지진이라고 생각한 그것은 계속해서 땅을 흔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웅!

“어어?”

“왜 소리가 가까워지는 거야?”

그 지진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쯤 되니 그 누구도 그게 지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 지진의 정체가 드러났다.

“오, 오우거다!”

“오, 오크들도 있어!”

지진의 정체. 그건 다름 아니라 무수히 많은 숫자의 몬스터 군단이 움직이면서 지축을 흔든 탓에 나는 소리였다.

2.

몬스터 군단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느새 놈들과 왕도 사이의 거리는 3일이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졌다.

더불어 놈들은 더욱더 흉포해진 상태로 왕도를 향해 돌진 중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필로스 왕의 귀에도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문수르와 거래를 마친 이후 그제야 필로스 왕은 칩거를 끝내고 모습을 드러냈다.

필로스 왕이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자 혼란스러웠던 왕도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정리됐다.

모든 일이 필로스 왕을 중심으로 다시금 재편되었다. 하루 만에 왕도는 필로스 왕을 위한 오롯한 땅으로 바뀌었다.

그 후에 필로스 왕은 제이머스 후작을 불렀다. 그리고는 그 누구도 참석을 허락치 않은 채 단 둘만이 대화를 나누었다. 콩탄 왕국의 귀족들은 생각했다.

필로스 왕과 제이머스 후작의 비밀회담이 앞으로 콩탄 왕국의 정치를 바꿀 기점이 되리라고.

이윽고 그 비밀회담이 끝난 후에 필로스 왕은 말했다.

“지금 왕도로 몬스터 군단이 오고 있다.”

몬스터 군단?

갑작스런 존재의 등장에 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상상조차 못했던 표현이다.

“빅토리안 공작, 그와 손을 잡은 흑마법사가 부리는 몬스터 군단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필로스 왕의 설명에 귀족들은 상황을 이해했고, 얼굴이 탈색되듯 하얗게 질렸다.

빅토리안 공작의 반역이 끝난 후 아직 그 뒷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몬스터 군단과 싸워야 한다니?

더군다나 몬스터 군단의 숫자가 보통이 아니었다. 오우거와 자이언트 트롤 그리고 오크들이 뒤섞인 그 군단의 숫자가 수만에 이른다고 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왕도의 귀족들은 전부 떨었다.

반면 그 상황에서 냉철함을 유지하는 귀족들도 있었다.

‘몬스터 군단이라고 해도, 결국 몬스터는 몬스터. 왕도에 모인 병력을 가늠하면 수만이란 숫자보다는 오우거와 자이언트 트롤의 숫자가 중요한 거겠지.’

불스 백작.

그는 몬스터 군단이 두렵진 않았다. 몬스터 군단이 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왕도 함락은 불가능할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다른 영주들이 보낸 병력이 왕도로 집결 중이다.

무엇보다 몬스터 군단에게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몬스터들이 식량이나 보급 따위를 할 리 만무할 터. 보급이 안 되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지.’

이제르트 자작.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왔던 그는 몬스터 군단의 무서움도 알지만, 몬스터들이 가지는 최악의 약점 역시 알고 있었다.

식량!

어떠한 군사들은 전쟁을 보급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보급이 안 되는 군대는 싸울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전투라는 격렬한 행위를 아무 것도 혹은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농성으로 가면 된다.

제 아무리 사악한 흑마법사가 배경에 있다고 해도 농성을 벌이면 몬스터 군단은 결국 서로 잡아먹으며 자멸할 것이다.

물론 피해는 클 것이다.

그러나 왕도 함락은 없다.

이 사실을 아는 불스 백작이나 이제르트 자작은 필로스 왕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이번에도 제이머스 후작을 중심으로 전력을 개편할 것인가?’

어쨌거나 또 한 번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 전쟁 역시 큰 전쟁이다. 때문에 전쟁을 총괄할 수 있는 총책임자를 뽑을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자리에 앉는가?

그게 핵심이다.

제이머스 후작이 앉을 수도 있고 필로스 왕이 앉을 수도 있다.

제이머스 후작이 임명된다면, 필로스 왕이 제이머스 후작을 전폭적으로 선임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필로스 왕이 앉는다면, 제이머스 후작에 대한 신뢰가 아직까지 깊지 않다는 의미다. 혹은 비밀회담 와중에 제이머스 후작과 필로스 왕 사이가 갈라졌을 수도 있다제3의 인물이 앉는다면? 다시금 여러 정치적 해석이 추가될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전쟁의 총책임자로 누가 앉는가?

“이번 전쟁은…… 이번에도 제이머스 후작, 그대가 앞장서서 수고해주었으면 좋겠군.”

“분에 넘치는 영광이옵니다.”

제이머스 후작이다.

그가 총책임자의 자리에 앉게 됐다. 현재 왕도에 모인 모든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됐다. 더불어 앞으로 필요한 주요 보직에 대한 임명권도 그의 소관이 됐다.

더불어 필로스 왕이 제이머스 후작과 손을 잡고, 그의 뒤를 밀어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광경에 귀족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제이머스 후작을 나름 밀었던 제이머스 후작 파벌의 귀족들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

이런 역전도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밀려 존속을 위협 받던 상황에서 한방으로 전세를 역전하고, 정치권력의 핵심에 앉게 되었다.

반대로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속했던 귀족들은 울상이었다. 이제부터는 가진 모든 걸 털어서 제이머스 후작 앞에 바쳐야지 그나마 콩코물이라도 먹을 수 있을 판이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그들에게 제이머스 후작은 정적(政敵)이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제이머스 후작에게 밉보인 자는 제 아무리 뇌물을 바쳐도 다시는 정치의 중심에 서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몬스터 군단을 상대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끝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 문수르는 없었다.

3.

아히만트 백작은 소식을 들었다.

“빅토리안 공작이 실패했군.”

그건 다름 아니라 빅토리안 공작이 반란에 실패했다는 내용의 소식이었다. 아히만트 백작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밀어주던 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물질적인 도움을 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히만트 백작이 빅토리안 공작의 배경을 자처했다.

애초에 왕위에 뜻을 품고 있었던 빅토리안 공작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페스로 제국의 실세라 할 수 있는 귀족을 배경으로 두는 것이 그 무엇보다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패했다.

더군다나 그 과정이 문제였다.

아히만트 백작의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필로스 왕이 이기든, 빅토리안 공작이 이기든 그건 중요치 않다. 누가 되든 결국 페스로 제국 앞에서 고개를 조아릴 테니까.

문제는 혼란이다.

아히만트 백작이 원했던 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혼란이었다. 콩탄 왕국의 정치가 붕괴될 정도의 혼란을 원했다. 승자조차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혼란 말이다.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던 빅토리안 공작이라면 충분히 그런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아니, 한달이 무슨 말인가? 보름을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이런 건 혼란이 아니다.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뿐이다.

아히만트 백작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대로 일이 풀리시지 않으셨나봅니다.”

그런 아히만트 백작 앞에 한 사내가 아히만트 백작의 표정을 보고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세상 일이 마음대로 풀리면 세상살이 힘들다고 타령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오.”

아히만트 백작은 그 사내에게 나름 존칭을 쓰며 말했다.

황제의 검으로 살아왔던 아히만트 백작이 대우를 해주는 사내라니?

대체 사내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노운 경까지 나설 필요는 없소이다. 이 정도도 못하면 제국의 백작이란 작위를 버려야 할 터.”

노운 경이란 이름을 가진 자.

누구든 간에 필시 제국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건 분명했다.

4.

몬스터 군단이 왕도에 도착하기 하루 전, 슈페언 백작이 보낸 전령이 왕도에 도착했다.

슈페언 백작의 전령의 등장은 가라앉았던 왕도의 정치 분위기를 들끓게 만들기에 부족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슈페언 백작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왔다는군.”

“그럼 이번 몬스터 군단과의 전쟁에서는 슈페언 백작이 나서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제이머스 후작은?”

“모르겠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적어도 슈페언 백작이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겠지.”

슈페언 백작의 의중을 모르는 귀족은 없었다. 슈페언 백작은 어떻게든 필로스 왕, 더 나아가 콩탄 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영향력을 발휘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필로스 왕이 먼저 손을 내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협박을 할 수도 있고 혹은 회유책을 쓸 수도 있다.

그게 어떤 방법이 됐던 간에 필로스 왕의 결정에 따라서 콩탄 왕국의 정세는 다시 한 번 크게 바뀔 것이다.

그렇게 필로스 왕은 슈페언 백작의 전령으로부터 슈페언 백작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전령은 많은 말을 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내용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몬스터 군단이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도움을 요청한다면 병력을 지원해주겠다!

그게 내용의 전부다.

너무나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하다고 그냥 받아들이는 건 멍청한 짓이다.

먼저 도움을 요청하라는 게 핵심이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아마 슈페언 백작 입장에서는 현재 왕도에 모인 병력의 상황을 모르기에, 왕도의 병력만으로 몬스터 군단을 상대하는게 힘드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슈페언 백작은 자신의 이 제안을 필로스 왕이 기꺼이 수락하리라 생각했다.

반면 필로스 왕 입장에서 이 제안은 거절해도 무방했다.

이미 몬스터 군단의 병력 상황은 파악이 끝났다. 이미 선발대를 보내 병력 구성 등을 진즉에 파악했다.

그리고 모의 전투도 계산해봤다.

그 결과 왕군이 이길 가능성이 8할이 넘어갔다. 물론 피해도 크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정도의 피해였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대가를 지불하고 슈페언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물론 있다.

슈페언 백작의 병력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콩탄 왕국의 사정상 그리고 필로스 왕의 사정상 슈페언 백작의 제안은 무조건 수락해야 할 수밖에 없다.

대가다.

필로스 왕이 슈페언 백작의 힘, 더 나아가 페스로 제국의 힘을 빌려 왕위를 찬탈한 대가로 필로스 왕은 슈페언 백작의 제안이라면 무조건 수락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필로스 왕은 슈페언 백작의 전령에게 말했다.

“슈페언 백작의 제안은 감사하나, 콩탄 왕국은 슈페언 백작의 병력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말에 전령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필로스 왕이 슈페언 백작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건가?

“전하!”

필로스 왕의 측근 역시 놀라며 말했다.

이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가서 슈페언 백작과 필로스 왕의 사이가 틀어지면, 필로스 왕 입장에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지금 필로스 왕의 왕권이 제 아무리 강하다 한들 페스로 제국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전령 역시 다시 물었다.

“필로스 전하, 정말 그것이 전하의 선택이시옵니까?”

“물론이다. 그동안 슈페언 백작에게 받은 도움이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도움을 요청하는 건 염치가 없는 행동일 터. 하물며 이번 일은 콩탄 왕국의 일이다. 굳이 페스로 제국이 나서서 콩탄 왕국의 골칫거리를 처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정론이다.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굳이 수고해서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표현을 써서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줬다.

콩탄 왕국의 일이니까 페스로 제국은 개입하지 말라고 선도 그었다.

전령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 정론에 맞받아칠 말 따위는 없다. 맞받아칠 수 없으니까 정론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전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의 말씀, 슈페언 백작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령은 그렇게 물러났다.

그 이후 왕도가 다시 한 번 뒤집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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