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5.
콰앙!
문수르의 드래곤 파이터가 빅토리안 공작가 소속의 기가스를 부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빅토리안 공작가의 모든 전력이 부셔졌다.
더 이상의 적은 없었다.
그리고 하늘을 가득 채우던 다크니스 베일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끝인가?”
“끝난 거야?”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은 기사들과 병사들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각했음에도 그들은 의구심을 보냈다.
“정말 끝난 건가?”
전쟁의 시작자체가 한 여름 밤의 꿈같았다. 치열하게 싸워왔지만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물론 병사들과 기사들의 이야기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고 싸운 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이끄는 무리들은 오히려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일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이머스 후작은 소리쳤다.
“모든 병력을 이용해 빅토리안 공작 수색작전을 펼친다!”
쉴 틈이 없다.
지금 이 순간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빅토리안 공작을 찾아야만 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근처에 있겠습니까?”
“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필시 직접 왕도까지 와서 작전을 내렸을 터.”
“그래도 지금 막 전쟁이 끝났는데 전력을 추스른 후에…….”
“그럴 시간이 없다. 오히려 지금 쉬면 피로가 쌓여 움직일 수 없다. 더군다나 빅토리안 공작을 찾으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 무조건! 무조건 찾아야 한다.”
제이머스 후작은 다급했다.
빅토리안 공작을 잡지 못하면 이 전쟁은 반쪽짜리 승리에 불과할 뿐이다.
흑마법사와 손을 잡은 빅토리안 공작을 이대로 놔주면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에 내정간섭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빅토리안 공작 자체만으로도 이미 위험하다. 그는 분명 콩탄 왕국의 정계를 휘어잡았던 자다. 제 아무리 흑마법사와 손을 잡아 그의 명성이 바닥을 긴다고 해도, 그의 정치능력, 인맥은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흑마법을 이용해 그는 또 다시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콩탄 왕국을 위협할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건 반역이다. 반역에 대한 처벌은 오직 하나다. 구족을 멸하는 것이다.
다른 건 없다.
무조건 잡아서, 혹여 시체라도 찾아서 목을 자르고 그 목을 성벽 밖에 메달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반역을 조금이라도 꿈꾸는 자들이 그 꿈조차 못꾸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빅토리안 공작을 놓치게 되면, 그가 평생 숨어 산다고 해도 콩탄 왕가의 역사에는 오점으로 남는 것이다.
더불어 제이머스 후작에게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제르둔 후작. 그를 위해서라도 빅토리안 공작을 처형해야지.’
제르둔 후작.
정치적 동지.
그 역시 반역죄란 누명 속에서 처형당했다. 물론 빅토리안 공작이 진행한 일을 모르는 그는 제르둔 후작의 처형을 여전히 믿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빅토리안 공작을 꼭 처치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이머스 후작, 본인의 권력을 위해서다.
제이머스 후작을 처치함으로써 이제까지의 정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을 처치하지 않으면, 기존에 빅토리안 공작 파벌에 속했던 귀족들이 새로운 우두머리를 뽑을 수도 있다. 파벌 크기로 따지면 빅토리안 공작 파벌이 여전히 제이머스 후작 파벌보다 크다. 물론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제이머스 후작 입장에서는 정치적 경쟁 세력이 남는 게 좋을 리 만무하다.
처리할 수 있을 때 처리해야 한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제이머스 후작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빅토리안 공작을 잡아 죽여야 했다.
제이머스 후작의 명령에 따라 기가스를 비롯한 병사들이 전부 왕도와 왕도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빅토리안 공작은 왕도 근처에 있었다.
그는 도망치려고 했다.
“으으…… 대체 왜……!”
그러나 지금 빅토리안 공작은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왜 나를 죽이려는 것이오!”
카라카크.
그의 손이 빅토리안 공작의 가슴을 뚫고, 그 안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두근두근!
이 와중에도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빅토리안 공작은 심장의 고동소리에 미칠 것만 같았다.
카라카크는 그런 빅토리안 공작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게 내 시나리오다.”
“나를…… 나를 이렇게 써먹고 버릴 생각이었소?”
빅토리안 공작은 카라카크의 의중을 단숨에 파악했다. 그렇기에 빅토리안 공작은 이를 갈았다.
“대체 왜!”
토사구팽.
말 그대로다. 카라카크는 빅토리안 공작을 이용할 만큼 이용한 후에 그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빅토리안 공작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이번 전쟁은 실패다. 빅토리안 공작에게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큰 실패고, 패배다.
카라카크에게 동정을 구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흑마법사에게 동정을 구걸한다? 차라리 거지에게 돈을 구걸하는 게 나을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은 패배했고, 많은 걸 잃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저력이 분명 남아있다.
카라카크에게 있어 빅토리안 공작은 아직 충분히 쓸 만하다.
그런데 왜 대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걸까?
빅토리안 공작은 그걸 납득할 수가 없었다.
카라카크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답해줄 이유도 없었다. 카라카크의 시나리오에는 빅토리안 공작의 죽음이 존재했으니까. 그 시나리오는 절대적인 것이다.
꽈악!
이윽고 카라카크가 빅토리안 공작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크아아악!”
빅토리안 공작이 비명을 내질렀다.
처절한 외침이었다.
“그래 울부짖어라. 그래야 적이 네놈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카라카크는 그 처절한 외침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6.
제이머스 후작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앞에는 시체 한 구가 있었다. 시체의 형태는 너무나도 온전하기 그지없었다.
“사인(死因)은?”
“심장이 터졌습니다.”
“심장 파열이라…….”
온전한 형태였기에, 그 시체의 주인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한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빅토리안 공작이 정말 맞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빅토리안 공작이다.
어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이 나오는 악몽도 몇 번이나 꾸었던 제이머스 후작인데.
빅토리안 공작의 시체는 왕도 근처의 숲에서 발견됐다. 엄청난 비명소리가 나서 달려가보니 빅토리안 공작의 시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이머스 후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시체를 보고도 믿을 수 없다.
‘흑마법사다.’
빅토리안 공작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다는 건 명백해진 사실이다.
흑마법사의 시체를 믿는 건 멍청한 짓이다. 흑마법사는 시체를 얼마든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자들이다. 거짓 시체를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전후사정을 보면, 이 시체는 빅토리안 공작이 추격에 혼란을 주기 위해 만들었을 가짜 시체일 가능성이 높다.
비명 소리가 났다고?
일부러 시선을 끈 거다.
적어도 제이머스 후작의 이성은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반대로 제이머스 후작의 감은 반대로 판단했다.
‘감으로는 이 시체가…… 빅토리안 공작 본인인 것 같군.’
감은 말한다.
눈앞에 있는 시체가 빅토리안 공작, 본인의 시체가 맞다고. 물론 감일뿐이다.
“일단 마법사를 불러서 시체를 조사해봐야겠지.”
어차피 이 시체가 진짜든 가짜든 마법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진짜라고 해서 추적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추적은 계속될 것이다.
“그보다 문수르 경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 순간 제이머스 후작은 화제를 돌렸다. 지금 빅토리안 공작만큼 중요한 자가 있었다.
문수르!
어떤 의미에서 앞으로 콩탄 왕국의 정세를 뒤바꿀 폭풍의 핵이나 다름 없는 사내다.
그런데 그런 문수르가 쓰러졌다.
전투가 끝난 직후, 전장에 마침표를 찍었던 드래곤 파이터에서 모습을 드러낸 문수르는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추락하듯 기가스에서 떨어졌고, 이제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상처는 심했다.
오러를 담는 단전이 깨져 있었다. 제이머스 후작은 잘 알고 있다. 오러를 다루는 이에게 단전이 깨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말이다.
“그게…… 이러다할 진전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치료할 방법도 없습니다.”
“끄응…… 골치 아프게 됐군. 어쨌거나 문수르 경이 깨어나야 무엇이든 물어볼 텐데 말이야.”
특히 문수르가 쓰러지자, 제이머스 후작은 문수르를 비롯해 이제르트 자작에게 그 어떤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물어볼 건 산더미처럼 많았다.
대체 이제르트 자작가가 보유한 기가스는 무엇이며, 문수르가 조종한 기가스는 무엇인가?
어디서 나온 기가스인가?
더군다나 쥴리언 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필로스 왕이 사전에 기획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대체 필로스 왕과 이제르트 자작가 사이에는 대체 어떠한 합의가 있었던 건가?
알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더군다나 지금 필로스 왕은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질문을 건네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제르트 자작과 문수르는 영웅이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번 전쟁은 감히 승리를 장담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왕위의 주인조차 바뀌었을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이 왕이 된다?
정말 그렇게 됐다면, 그 후의 제이머스 후작의 미래는 뻔하다. 절망의 연속이겠지.
모든 게 이제르트 자작가 덕분이다.
그런데 상황에서 제 아무리 제이머스 후작이라고 해도 이제르트 자작가를 몰아붙일 순 없다.
더군다나 필로스 왕이 개입된 듯한 느낌이 강하다. 필로스 왕과 이제르트 자작이 어떠한 밀약을 맺은 상황이라면…… 어쩌면 지금 콩탄 왕국에서 가장 정치의 핵심권력을 쥐고 있는 건 이제르트 자작일지도 모른다.
‘벌집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
그런 이제르트 자작을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이제르트 자작은 제이머스 후작 파벌에 속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상대방을 자극해서 아군을 적으로 만드는 멍청한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참는 거다.
어차피 진실은 밝혀질 테니까.
“후우!”
그런데 어째서일까?
제이머스 후작은 왠지 지금 더 참담한 미궁 속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7.
문수르의 상처는 위중했다. 분명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 드래곤 파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단전에 난 상처는 문수르의 모든 생명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절했다.
기절할 수밖에 없다. 정신을 유지할 힘조차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후 이제르트 자작은 곧바로 문수르의 신병을 확보한 후에 그를 치료했다.
치료를 맡은 건 헤인 경이었다. 이미 의술이 경지에 이른 헤인 경은 문수르의 상처 대부분을 치료했다. 단전만큼은 치료할 수 없었지만, 문수르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는 알았다. 그에 맞는 치료법도 알고 있었다.
덕분에 문수르는 생각보다 일찍 깨어날 수 있었다.
단전은 깨진 상태 그대로였지만, 정신을 차릴 수는 있었다.
그리고 문수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제르트 자작에게 말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십시오.”
이제르트 자작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문수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건 헤인 경과 이제르트 자작, 단 둘뿐이었다.
덕분에 문수르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제부터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이 공개됐다.
그러나 이 전력의 탄생은 비인상적이다. 모든 걸 그대로 공개할 수는 없다.
각색을 해야 한다.
연출도 필요하다.
이 세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가공을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필로스 왕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거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에 가장 확실한 개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는 필로스 왕이다.
그와 합의를 내놓고, 그가 협조해준다면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그럴싸하게 꾸밀 수 있다.
‘젠장.’
그러나 필로스 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 협조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터.
아니, 필로스 왕은 왕이다. 이제르트 자작가가 콩탄 왕국에 적을 둔 이상, 필로스 왕을 섬겨야 한다.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필로스 왕이 과연 협조를 해줄지, 합의를 이루어질지, 그것부터가 미지수다.
‘어쩔 수 없어.’
문수르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주사위는 던졌다.’
더군다나 쥴리언 경에게 말했다. 드래곤 파이터는 필로스 왕이 만든 것이라고.
자세히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말했다.
이쯤 되면 필로스 왕과 손을 잡는 것만이 지금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지금 필로스 왕 역시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때문에 문수르는 답답했다.
그러나 아직 문수르의 고민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