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3.
드래곤 파이터가 날뛰기 시작했다.
애초에 보통 기가스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드래곤 파이터는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드래곤 파이터는 오러를 다루고 있었다. 드래곤 파이터의 창에 오러를 감싸는 것만으로도 오러의 길이가 무려 10미터를 훌쩍 넘긴다. 여기서 오러 웨폰을 뽑아내면? 그 길이만 20미터에 다다르는 오러가 출렁거리는 것이다.
20미터짜리 오러는 그냥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다.
막을 방법이 없다.
기가스도, 몬스터 데스나이트도 드래곤 파이터의 공격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더불어 문수르는 지금 일말의 동정심도 품을 생각에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드래곤 파이터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당장 눈앞에 기가스 한 대가 보였다. 적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 적입니다.
“알아!”
보통 전장에서는, 특히 지금처럼 다크니스 베일로 인해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면 더더욱 그렇다.
이 역시 빅토리안 공작의 노림수였다.
그러나 문수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분명 GPS시스템 역시 다크니스 베일에 영향을 받아서 제 구실을 못하지만, 드래곤 파이터 내에도 GPS시스템 비슷한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었으니까.
왕도 전체를 보진 못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있는 기가스가 적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를 구분하는 건 더 쉽다.
‘느껴진다.’
- 데스나이트입니다.
“알아. 지금……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어.”
몬스터 데스나이트에것 풍겨지는 흑마법의 기운, 문수르는 그 기운을 너무나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드래곤 파이터가 느끼는 것을 문수르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미치겠군.’
문수르는 드래곤 파이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드래곤 파이터의 강철 장갑이 마치 피부처럼 느껴졌다.
소름이 돋았다.
드래곤 파이터의 무지막지한 힘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힘에 취할 정도였다.
‘미치겠어!’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
두려웠다.
이 힘에 취해버려 이성이 마비되고, 말 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참아.’
끌어오르는 폭력성. 문수르는 그 폭력성을 어떻게든 억누르고자 했다.
그러는 사이 드래곤 파이터는 계속해서 가차없는 학살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왕군도 그런 드래곤 파이터의 존재를 파악했다.
“대체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지?”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드래곤 파이터는 생김새부터가 보통의 기가스들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궤를 달리하고 있었으니까.
일부는 생각했다.
“제국에서 보낸 기가스가 아닐까?”
“제국? 그래, 제국일 수도 있겠군!”
“제국이 보낸 기가스가 벌써 도착했다고?”
그 크기 그리고 보여주는 위용…… 그것은 페스로 제국의 기가스가 아니면 감히 보여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런 만큼 드래곤 파이터를 페스로 제국의 기가스로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착각은 나쁘지 않은 착각이었다. 적어도 사기 진작에 도움을 줬으면 줬지, 나쁜 영향을 주진 않을 테니까.
단 한 명, 이제르트 자작은 알았다.
‘왔구나!’
문수르의 등장에 이제르트 자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든 카드가 마련됐구나.’
문수르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문수르가 어떠한 계획을 세웠는지 모른다. 지금은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르트 자작은 문수르를 믿었다.
그가 등장한 건 필시 이 전쟁에, 빅토리안 공작의 반역에 종지부를 찍기 위함일 터!
그렇다면 이제르트 자작이 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문수르 경을 돕는다.’
문수르를 도와야 한다.
그걸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지금 왕군에 대한 모든 통솔권을 가진 제이머스 후작에게 드래곤 파이터가 문수르 경의 기가스이며, 아군이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준비를 했다.
“그 사실을 전달하게.”
“예.”
기사를 준비 시켰다. 당장 제이머스 후작에게 달려가 정보를 전달해줄 역할을 가진 기사였다.
기사는 대답과 함께 움직였다.
사실 이제르트 자작의 행동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제이머스 후작 역시 드래곤 파이터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쥴리언 경에게 이미 정보를 들었다.
‘좋아.’
때문에 드래곤 파이터가 전장에 등장했을 때, 제이머스 후작은 곧바로 전술을 바꾸었다.
“이제 몰아칠 때다. 성벽 쪽으로 이동해 적이 성벽 밖으로 나가는 걸 막는다.”
일부러 성벽을 무너뜨려 적이 알아서 성벽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그 성벽을 막을 것이다.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제이머스 후작도 이 전쟁 후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잔당을 남기면 안 된다. 싹 처치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찌꺼기를 남긴다면 결국 페스로 제국이 콩탄 왕국의 정치에 개입하게 될 건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 대단하군.”
한편 드래곤 파이터가 보여주는 위용에 제이머스 후작은 이러다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렇게 막강한 기가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저 기가스가 콩탄 왕국의 것이라니?
‘어쩌면…….’
페스로 제국이 보유한 3배 급 기가스보다 강력해 보인다.
“골든 자이언트보다 나은 것 같군.”
더군다나 제이머스 후작은 3배 급 기가스를 직접 두 눈으로 봤다.
과거 페스로 제국이 필로스 왕을 돕기 위해 슈페언 백작을 보냈다. 그 당시 슈페언 백작은 페스로 제국이 만든 3배 급 기가스, 골든 자이언트를 이끌고 콩탄 왕국에 왔었다.
친왕파 귀족이었던 제이머스 후작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리 만무했다.
골든 자이언트를 봤을 때의 위압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혹자는 2.5배 급 기가스와 3배 급 기가스 사이에 고작 0.5배 급의 출력 차이만 있는 게 아니냐, 라고 묻는다.
한때 제이머스 후작도 그리 생각했었다.
그러나 골든 자이언트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페스로 제국의 3배 급 기가스는 단순히 출력만 높인 기가스가 아니었다. 장갑부터 시작해서 작은 부품까지, 모든 게 최신식, 최상급의 부품들이었다. 2.5배 급 기가스 두 대가 동시에 덤벼도 어찌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가스였다.
그런데 지금 제이머스 후작의 눈에 비친 드래곤 파이터의 위엄은 그 대단한 3배 급 기가스, 골든 자이언트마저 뛰어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감이다.
확실한 통계도, 수치도 없이 그저 감으로 평가할 뿐이다.
그러나 제이머스 후작이 누구인가? 콩탄 왕국이 낳은 오러 마스터다. 정치는 모르지만 전투에 있어서는 콩탄 왕국 최고라고 자부해도 될만한 자다.
그런 그의 감은 보통 이들의 감과는 비교를 거부할 터.
때문에 이 순간 제이머스 후작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잘만 하면…… 페스로 제국의 계속되는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페스로 제국.
콩탄 왕국을 속국마냥 다루고 있는 제국이다. 물론 페스로 제국으로부터 받는 도움도 적진 않다.
더불어 페스로 제국의 도움을 요청한 건 그 누구도 아닌 콩탄 왕국이고, 필로스 왕이었다.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제 필로스 왕의 왕위도 굳건해진 상황에서 솔직히 더 이상 페스로 제국의 도움은 필요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원래 그게 정치라는 놈이다. 필요없으면 버리고 외면하는 게 정치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제이머스 후작 역시 페스로 제국으로부터 콩탄 왕국이 자립할 때가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이제까지 힘이 없어 감히 그런 것을 시도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드래곤 파이터가 전면에 선다면…… 페스로 제국과 어느 정도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터.
“일단 지금 전쟁이 우선이다.”
제이머스 후작도 그렇게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전장의 판도는 빠르게 왕군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4.
전세 역전이다.
문수르의 등장은 전세의 판도를 근본부터 바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래곤 파이터는 두어 번의 공격만으로 몬스터 데스나이트와 기가스들을 아주 작살을 냈다.
순식간에 삼십여 기의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드래곤 파이터의 창 아래에서 썩은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기가스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빅토리안 공작가의 병력 수가 급격하게 줄자, 전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졌다.
전쟁이란 그런 거다. 한 쪽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쪽으로 모든 것이 급격하게 기울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기울어진 전세는 그 어떤 방법을 써도 회복할 수가 없다.
전술가라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전술가라면 이렇게 전세가 기울어졌을 때 오직 한 가지의 명령만 내릴 수 있다.
후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기울어진 전세에 병력을 계속 투입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그런 전술가는 전술가 취급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잘 후퇴하는 것도 전술가의 뛰어난 능력 중 하나다. 병력을 잘 추스리고, 더 큰 피해없이 후퇴하는 것도 뛰어난 전술 중 하나다.
빅토리안 공작은 전술을 안다.
알고 있다.
“빌어먹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빅토리안 공작, 자신이 제 아무리 무엇을 하든 간에 전세를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왜!”
그러나 납득할 수 없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단 말인가!”
눈앞에서 자신의 기가스들을…… 그리고 카라카크의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을 무참하게 박살을 내는 무시무시한 기가스!
몰랐다.
설마 왕군에게 저런 카드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다.
눈으로 보고도, 드래곤 파이터의 존재를 감히 믿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저것만 아니었으면……!”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세는 빅토리안 공작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그래, 조금만 더 밀고 나가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왕도는 빅토리안 공작의 손아귀에 함락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고작 한 기의 기가스가 난입하자마자 전황이 바뀌었다. 전세가 뒤집어졌다.
기가스는 분명 전세를 바꿀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병기인 건 맞다.
하지만 이번에 등장한 기가스는 그 정도가 심했다. 그 위엄과 위력을 놓고 보면 페스로 제국의 무시무시한 3배 급 기가스들조차 가소롭게 보일 정도 아닌가?
말도 안 된다.
저런 기가스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 만무하다.
혹여 누군가 만든다고 하더라도 세상천지에 저 정도 기가스를 만들 수 있는 곳은 페스로 제국 밖에 없다.
그런데 페스로 제국이 만들었다면 필시 저 기가스는 특급 중의 특급, 황제만이 보고 감사할 수 있었을 터! 고작 콩탄 왕국의 왕가를 돕기 위해 여기까지 파견됐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대체 어디서…… 아니, 대체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수십, 수백 번 작전을, 계획을 가다듬었다. 온갖 전술과 전략을 내놓았다. 빅토리안 공작은 자신한다. 자신의 능력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합쳐지면 왕도를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늘 위의 태양을 바꾸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심지어 카라카크로부터 엄청난 힘을 받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권능을 가지게 됐다.
하늘 위의 태양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다.
그런데!
그 능력을 썼음에도 실패했다.
이제 도망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약삭 빠른 제이머스 후작은 어느새 왕군의 기가스로 무너진 성벽을 막았다. 성 안으로 들어온 병력을 그대로 가두겠다는 의도다.
다크니스 베일로 하루 종일 펼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만간 다크니스 베일도 사라질 것이다.
신기루마냥……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럼 끝이다.
빅토리안 공작의 정치 생명은 끝이고, 빅토리안 공작가는 흑마법사와 손을 잡은 파렴치한 가문으로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으아아아!”
빅토리안 공작을 그걸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결국 빅토리안 공작은 거기서 미쳐버렸다.
“그게 다시 하는 거다. 지금…… 지금 내게는 힘이 있다. 기가스 따위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다! 이 힘으로 왕을 암살하고, 내가 왕이 되면 되는 거다. 변장을 하든, 왕의 얼굴을 뒤집어 쓰든! 이 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빅토리안 공작이 현실을 도피했다.
그 순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미소를 짓는 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