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61화. 깨지는 어둠.>
1.
무너진 성벽.
그 안으로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몬스터 데스나이트들.
기다렸다는 듯이 기가스가 거대한 검을 휘둘러 몬스터 데스나이트을 공격했다.
카앙!
거대한 기가스의 검이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갑옷을 후려쳤다.
후웅!
그에 질세랴 몬스터 데스나이트들 역시 제 검을 휘둘러 기가스에게 반격을 했다.
개중에는 검이 없는 놈들도 있었다.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데 검을 박았다가 검을 회수하지 못한 놈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놈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퍼억!
다크니스 베일 아래에 놓인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의 힘은 1배 급 기가스를 넘어섰다.
단순한 힘이 말이다.
더군다나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적어도 기가스들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다.
육탄전만으로도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무시무시하다. 아니, 오히려 왕군의 기가스들은 육탄전을 시도하는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의 공격에 당황을 했다.
“젠장, 이거 뭐야?”
“빌어먹을……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처음인데…….”
경험의 축적이 전투에서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새로운 전술, 전법 또는 전투 기술 따위를 개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새롭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기가스 파일럿들은 기가스와 싸우는 것에는 익숙하다. 기가스의 무기, 검을 든 적을 상대하는 데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는 이제까지 검을 들고 싸웠다. 덩치도 기가스와 비슷하다. 때문에 놈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거리를 벌려.”
“어차피 맨손 대 검이야. 검이 유리하다고!”
몇몇은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분석은 분석이고 실행은 실행이다. 분석을 하다고 해서 모든 게 실행으로 연결된다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었을 것이다.
일부는 실행에 성공했다.
카앙!
기가스의 검이 먼저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반면 일부는 실패했다.
후웅!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고.
퍼억!
대신에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카운터 펀치가 기가스의 가슴 부분을, 파일럿이 탑승한 부분을 가격했다.
“크억!”
갑작스런 충격에 기가스 파일럿은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후유증도 컸다. 눈앞에 빙글빙글 놀았다. 뇌진탕에 걸린 것이다. 균형감각은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기가스 파일럿들은 와이어를 잡아당겼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순간에도 그들은 기가스를 움직였다.
쿠웅!
기가스의 발이 움직이고.
후웅!
팔이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카앙!
비틀거리면서도 기가스의 검은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몸을 후려쳤다.
일진일퇴(一進一退).
왕군과 적군의 전투는 어느 한 곳도 압도적인 유리함을 점령하지 못했다.
격전의 시작.
그 격전 속에서 폭풍을 만든 건 빅토리안 공작이었다.
“가라!”
왕도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다크니스 베일,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력을 요구하는 마법이지만, 빅토리안 공작은 다크니스 베일을 쓰고도 마력의 여유가 있었다.
그는 흑마법을 썼다.
죽은 시체들을 깨웠다.
시체들은 충분했다.
계속되는 전투로 인해 병사들의 피해는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예우 역시 부족하지 않았다.
왕군은 왕을 위해 싸운 자들에게 너그러웠다.
시체를 수거했고, 그들의 시체를 온전하게 무덤 속에 매장시켜주었다. 길에서 짐승의 먹잇감이 되는 자들이 넘치는 시대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호사 중의 호사였다.
그 호사가 발목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병사들에게는…… 기사들의 그것처럼 데스나이트가 되지 않기 위한 장례까진 치러주지 않았으니까.
푸스스!
무덤이 흔들렸다.
푸욱!
이윽고 무덤에서 죽은 병사들이 깨어났다. 좀비가 되어 깨어난 병사들은 썩어 없어진 눈덩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장막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좀비들의 눈에 검은 어둠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만들어졌다.
세상이 보였다.
좀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바밧!
보통의 좀비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빨랐다. 다크니스 베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무덤을 나온 좀비들이 왕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좀비다!”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에!”
병사들과 기사들이 그걸 발견했다. 그리고 대응법을 고심했다.
좀비에 대한 대응메뉴얼…… 공부했다. 어느 정도의 훈련도 했다. 흑마법사는 왕군이 처치해야 하는 적 중 하나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마법이 바로 좀비 소환 마법이다. 적은 마력으로도 많은 숫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더러,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에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다가, 나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좀비는 여러 모로 유용하니까.
그러나 좀비는 불사가 아니다.
무엇보다 생명력이 강하지, 회복력이 강한 건 아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놈들은 멀쩡하다. 머리가 날아가도 멀쩡하다.
하지만 다리가 없다고 해서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몸뚱이만으로는 경련을 하는 것을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창을 이용해 거리를 벌고, 창을 꽂아 넣어 좀비의 움직임을 막은 다음에 검을 이용해, 다리를 베고, 그 다음 머리를 벤다. 마지막으로 팔을 벤다.
이러면 된다.
“창을 들어라!”
“훈련대로 3인 1조로 움직인다. 두 명이 창을 이용해 좀비의 움직임을 막는 사이, 한 명이 검으로 좀비의 사지를 자른다!”
빠른 명령.
“움직여!”
“너, 너! 둘하고 내가 한 조다.”
“내가 검을 휘두르지.”
그리고 빠른 대응.
좀비들에 대한 대처는 빨랐다. 그러나 어쨌거나 병력은 이동했고, 피해는 쌓였다.
희생 없는 전쟁은 없다.
제 아무리 메뉴얼이 완벽해도 그 메뉴얼을 수행하는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온갖 변수들, 그 변수로 인해 생기는 실패. 그 실패는 곧바로 죽음 혹은 부상으로 이어졌다.
다크니스 베일은 그 부상을 악화시켰고, 죽음을 좀비라는 단어로 바꾸었다.
죽은 동료가 적이 되었다.
“눈앞의 있는 건 동료가 아니다! 흑마법사에게 농락당하는 적이다!”
누군가가 외쳤다.
이를 물고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가다듬고, 좀비가 되어버린 동료를 공격했다.
침착한 대응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쌓이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머리가 터지고, 목덜미가 타오르는 느낌이다.
그리고 다크니스 베일은 그 스트레스마저 양식으로 삼아 사악한 기운을 심는다.
그래서 다크니스 베일이 무시무시한 것이다.
인간을 여러 방향에서 무너뜨리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더불어 빅토리안 공작이 노리는 건 단순히 병사들, 기사들의 숫자를 줄이는 게 아니었다.
화르륵!
“불이다!”
“젠장, 불이 번졌어!”
어둠 속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켜놓은 불꽃들, 기름을 잔뜩 먹은 불꽃들이다.
그리고 시작된 아수라장.
불꽃을 지켜야 할 병사들이 전장에 투입되고, 좀비와 싸운다. 개중에 병사들 중 일부는 좀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좀비들은 불꽃을 이용해 불을 지르는 것이다.
하나의 화재를 잡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불길을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화마(火魔)는 무시무시하다.
단숨에 왕도에 불길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왕군이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압박감은 다름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감이었다.
“젠장, 불길이라니!”
“빨리 전투를 끝내야 해.”
지키는 자에게 승리란 적을 해치우는 게 아니다. 지키고자 하는 걸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왕군에게 승리란 적을 해치우는 게 아니다. 적이 왕도를 무너뜨리는 걸 막는 것이다.
적을 해치웠으나, 왕도는 잿더미가 됐다…… 그런 건 승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불길을 본 모든 이들이 빨리 전투를 끝내고 불길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긴 심리적 압박감은 변수가 되었다. 왕군에게는 부정적이지만, 빅토리안 공작의 군대에게는 긍정적인 변수다.
그리고 그 변수는 점차 전장의 판도를 조금씩,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다.
쿠웅!
전쟁을 끝낼 종결자가 등장한 건 말이다.
2.
문수르는 기다렸다.
“크윽…….”
그의 몸은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단전이 깨진 상황이다. 드래곤 파이터의 마력을 공급 받는다고 하지만, 깨진 그릇에 계속 물을 채운다고 해서 그 그릇이 과연 멀쩡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단전의 상처가 더 커졌다.
‘버텨라.’
그나마 오러 마스터의 몸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버틴 것이다. 오러 나이트 수준이었으면 진즉에 몸이 터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문수르는 절대 함부러 움직일 수 없었다기다렸다.
빅토리안 공작의 모든 전력이 왕도 안으로 들어가기를 말이다.
사실 하늘 위에 다크니스 베일이 펼쳐졌을 때는 당황했다. 저런 강력한 흑마법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참았다.
상황을 지켜봤다.
‘안에서 어떤 작전이 펼쳐졌는지는 모르지만…… 운이 좋았어.’
한 가지 문수르에게 행운이 됐던 건 제이머스 후작의 작전이었다. 제이머스 후작이 성벽을 일부러 무너뜨린 덕분에 몬스터 데스나이트들과 기가스들이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제이머스 후작이 문수르를 염두에 두고 그런 계획을 짜냈을 리는 만무하다.
우연의 일이다.
운이 따른 것이다.
세상은 이것을 천운(天運)이라고 부른다.
덕분에 문수르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무너진 성벽 안으로 마지막 기가스 한 대까지 들어갔을 때!
‘지금이다!’
문수르가 움직였다.
그런 문수르의 의지는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드래곤 파이터에게도 전달됐다.
끼익!
드래곤 파이터의 몸 곳곳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만에 운동을 하려고 하자 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소리였다.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원했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굳어있는 관절을 풀 때 나는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고 시원한지.
쿠웅!
드래곤 파이터는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다. 단숨에 대지를 가로 지르고, 순식간에 성벽을 통과했다.
성벽을 통과함과 동시에 드래곤 파이터의 창이 막 성벽을 넘어온 빅토리안 공작가의 기가스를 향해 쏘아졌다.
휘리릭!
창이 나선으로 회전했다. 회전하는 창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소용돌이마냥 맴돌기 시작했다.
오러다.
오러를 머금은 창이 기가스의 머리를, 마나 동력원을 향해 조금의 자비도 없이 날아갔다.
콰직!
순식간이었다.
기가스의 몸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머리, 마나 동력원을 감싸고 있는 투구를 드래곤 파이터의 창은 종이마냥 찢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을 꽂고, 다시 뽑은 후에 드래곤 파이터는 창을 크게 휘둘렀다.
콰직!
섬뜩한 오러를 머금은 창날은 기가스의 몸뚱이를 거대한 도끼로 나무를 자르듯 잘랐다.
한 번에 깔끔하게 자르진 못했다.
그러나 단숨에 기가스의 몸통 중 절반을 잘라냈다.
기가스에 탑승한 파일럿의 몸뚱이가 반으로 조각날 정도로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드래곤 파이터의 공격을 당한 기가스는 더 이상 고철, 그 이상의 값어치는 하지 못할 테니까.
쿠웅!
동력을 잃고, 파일럿도 죽어버린 기가스가 힘없이 쓰러졌다.
“후우!”
그리고 문수르는 숨을 돌렸다.
“그럼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