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03화 (201/293)

203화

6.

흑마법 중에서는 인간을 상대로 굉장히 위력적인 마법들이 많다. 너무 많아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흑마법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이기도 하다. 흑마법은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박해 받고, 핍박 받았다. 때문에 흑마법을 익히는 자들은 세상과 싸워야 했고, 그들은 어떻게든 보다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 보다 효율적으로 인간, 엘프를, 드워프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보다 효율적으로 생명체를 처치하기 위해 발전의 발전을 거듭한 것이 바로 흑마법이란 놈이다.

강력한 흑마법사, 만약 8서클에 다다른 흑마법사가 작정하고 흑마법을 펼치면 성 한 채를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

아니, 성벽 자체를 무너뜨리는 건 힘들 것이다. 성을 전부 불태우는 것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성 안의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흐흐흐!”

그리고 그런 힘이, 왕도의 모든 인간을 몰살시킬 수 있는 힘이 빅토리안 공작에게 주어졌다.

“그래, 이 힘이야.”

빅토리안 공작을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마력 앞에 오르가즘을 느꼈다.

솔직히 카라카크가 힘을 준다고 했을 때 조금은 의심했다.

힘을 준다면 과연 얼마나 줄 수 있을까?

기대도 했지만, 우려도 했다.

그러나 막상 그 힘을 받았을 때, 카라라크가 준 힘을 흡수했을 때, 그런 모둔 걱정과 우려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 이 힘이다.

이 정도의 힘이면 전술이고 전략이고 그딴 건 의미가 없다. 고려할 필요도 없다.

“이 힘만 있으면 왕국은 물론 제국도 무찌를 수 있다!”

빅토리안 공작은 확신했다.

이 힘만 있으면 더 이상 주변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당장 왕도를 함락시키고 콩탄 왕국을 지배할 것이다.

그 다음은?

제국과 싸울 것이다.

가능하다.

이 무지막지한 힘만 있으면 페스로 제국과도 싸울 만하다!

빅토리안 공작은 넘치는 자신감을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갔다.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밤이 오지 않았음에도, 빅토리안 공작은 기가스들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움직임에 카라카크는 자연스럽게 몬스터 데스나이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양 빛에 노출된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그들은 느린 걸음으로 왕도 성벽으로 향했다.

당연히 성벽 위에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적이다!”

“적습니다!”

뎅뎅뎅뎅!

기다렸다는 듯이 종소리가 왕도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대기 중이던 모든 기사들과 병사들이 움직였다.

푸슈슈!

기가스들도 곧바로 출전을 준비했다.

제이머스 후작 역시 움직였다. 그는 이미 자신의 기가스 바로 곁에서 대기 중이었다. 상황보고는 물론 식사와 잠마저 기가스 옆에서 잤다.

지금과 같은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갑작스런 적의 공격에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 최전선에 나가 싸우기 위해서!

당연한 말이지만 제이머스 후작은 루이 노믹스와는 다르다. 실력의 유무를 떠나서 콩탄 왕국과 왕가에 대해서는 일말의 존경심도 없는 루이 노믹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왕국과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하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최전선에 싸울 줄 아는 자다.

제이머스 후작의 그런 모습은 모든 기사와 병사들에게 믿음과 신뢰 그리고 용기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며칠 동안의 휴식은 병사들의 피로를 풀어줬다. 더군다나 아직 전쟁이 길어지지 않았다. 먹을 거리는 충분했다. 배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굶주림이란 가장 처절한 고통을 겪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 모든 준비를 마친 왕군이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런 왕도 위로…….

펄럭펄럭!

“뭐, 뭐야?”

“가, 갑자기 밤이 왔어?”

“밤이 아니야!”

검은 커튼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흑마법이다!”

빅토리안 공작, 그가 다크니스 베일이란 무시무시한 흑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7.

다크니스 베일.

그 자체로는 이러다할 공격력은 없다. 그러나 그 부수적인 능력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다.

하늘 위에 검은 장막을 친다.

마치 달빛조차 숨어든 밤하늘마냥 세상이 어두워진다.

그 어둠 속에서 흑마법으로 탄생한 모든 생명체들은 무시무시한 힘을 얻게 된다.

불사가 아닌 생명체는 불사의 힘을 얻고, 불사인 생명체는 강력한 힘을 얻는다.

반대로 다크니스 베일 아래에서 입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가 빠르게 썩어문드러진다. 피로감도 쉽게 쌓인다.

그뿐인가?

좀 더 많은 마력을 사용하면, 다크니스 베일 아래에서 죽은 자들은 좀비가 되어버린다.

정말 무시무시한 흑마법이다.

때문에 쉽게 쓸 수 없는 흑마법이기도 했다. 흑마법의 정수라고 불리는 흑마법이지만, 너무나도 많은 마력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최소 8서클의 마력이 아니면 다크니스 베일을 시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 마법이 지금 왕도 위에서 펼쳐졌다.

장막이 내려왔고, 시야가 캄캄해졌다.

왕도, 그 거대한 땅을 뒤덮을 정도로 빅토리안 공작이 펼친 다크니스 베일은 거대했다.

“불을 켜라!”

“시야를 확보해라!”

기사들이 외쳤고,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쿵쿵쿵!

그건 다름 아니라 몬스터 데스나이트였다.

아직 지지 않은 태양, 석양 빛 속에서 힘을 쓰지 못하던 그들은 다크니스 베일이 펼쳐지자마자 그 어느 때보다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그리고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콰앙!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해자를 도약했고, 성벽 위로 몸을 날렸다. 그들의 몸뚱이는 투석기의 돌덩이들보다 곱절은 강력했다. 성벽이 흔들렸고, 일부는 무너졌다.

콰직!

동시에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성벽 위에 검을 박았다. 거대하고 무식한 검이 성벽에 박혔다.

사실 보통의 성벽이었다면 검히 박히기보다는 오히려 박힌 검에 의해서 성벽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왕도의 성벽은 보통 영주의 성들과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두꺼운 탓에 검이 꽂히고도 무너지지 않았다. 꽂은 검에 데롱데롱 메달린 몬스터 데스나이트들, 장갑을 끼고 있는 그들의 손이 성벽 위에 박혔다.

콰직, 콰직!

그리고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암벽등반을 하듯 성벽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성벽 위에서 지켜보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기겁했다.

“아, 아니 뭐야, 저게?”

“미친!”

기사들은 너무 기겁한 나머지 명령조차 내리지 못했다. 무슨 명령을 내려야하는지 몰랐다.

기가스 만큼 거대한 괴물이 지금 맨손으로 성벽을 올라오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할까?

기름을 부울까? 돌을 던질까? 창을 앞세워서 못 올라오게 방해할까?

그게 과연 통할까?

“기, 기…….”

기사들은 당황해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조금씩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보통 때의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의 몸뚱이는 가볍지 않으니까.

하지만은 지금은 아니었다.

다크니스 베일은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의 능력을 강화시켜줬다. 성벽을 오를 수 있게 해줬다.

“크하하! 그래, 그거다! 성벽 따윈 넘으면 되는 거다!”

전장을 바라보는 빅토리안 공작의 입에서는 광소가 터져나왔다. 그래, 이대로 가면 된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이 성벽을 넘는 순간 학살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죽은 왕군은 곧바로 좀비가 되어 빅토리안 공작의 명령에 복종할 테고, 그 좀비들은 새로운 좀비를 만들어낼 것이다.

왕도가 단숨에 빅토리안 공작의 것이 될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은 이미 왕위에 앉은 듯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왕도에는 지금 분명 전세를 바꿀 수 있을 만한 역전의 기사가 존재하고 있었다.

“성벽을 무너뜨려라!”

제이머스 후작.

그는 분명 뛰어나고, 유능한 자다.

더불어 확실하게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자이기도 했다.

“예?”

제이머스 후작의 갑작스런 명령, 성벽을 부수라는 명령에 기사들은 당황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성벽 위의 병사들은 전부 대피하고, 기가스들은 단숨에 성벽을 무너뜨린다.”

“아, 안쪽에서 성벽을 부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이해하기 힘들다.

본인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성벽을 본인들 스스로 무너뜨리라니? 오히려 적의 일감만 줄여주는 꼴 아닌가?

그러나 일단 제이머스 후작의 명령은 빠르게 다른 영주들, 기사들에게도 전달됐다.

명령을 전달 받은 대부분의 영주들과 기사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런 의미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두 귀족은 달랐다.

쿠틀러 백작 그리고 불스 백작.

그들은 단숨에 제이머스 후작의 의중을 파악했다.

‘성벽에 매미마냥 달라붙었다면 성벽을 무덤으로 만들어주면 되겠지.’

불스 백작은 단숨에 제이머스 후작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꿰뚫어 보았고.

‘제이머스 후작 각하의 명령,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다.’

쿠틀러 백작은 제이머스 후작의 명령에 조금의 이견도, 의구심도 품지 않았다.

더불어 지금 그들은 왕군을 움직이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그 둘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병사들과 기가스들이 움직였다.

곧바로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성벽 안쪽에는 해자가 없다. 때문에 기가스는 성벽 바로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다. 그 상황에서 기가스들이 힘을 모아 단숨에 성벽을 두드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성벽 바깥쪽에서는 이미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이 난리법석을 피운 탓에 성벽 일부가 무너진 상황.

기가스들은 단숨에 성벽을 무너뜨렸다.

쿠구궁!

성벽이 무너지며 거친 굉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성벽 위를 느릿느릿 올라오던 몬스터 데스나이트 중 일부가 성벽의 잔해들과 뒤엉킨 채 해자로 떨어졌다.

정말 무덤 비슷한 형태가 됐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매장된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숫자는 10여기를 간신히 넘을 정도였다.

반대로 성벽은 뻥 뚫렸다. 특히 복문과 동문, 적의 공격이 집중되는 두 곳의 성벽이 뚫리고, 성벽의 잔해들이 해자를 메운 탓에 더 이상 상대를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제이머스 후작의 오판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제이머스 후작은 오히려 성벽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왕군의 기가스 전력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빅토리안 공작의 전력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력 대부분이 성 안에 있다. 오히려 이 기가스 전력들이 성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어진 것이다.

오히려 성벽이 왕군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제대로 붙자.’

더군다나 제이머스 후작은 지지부진하게 전쟁이 길어지다가 빅토리안 공작이 도망치는 경우를 최악의 경우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전쟁을 왕도에서 끝내는 게 좋다. 빅토리안 공작을 놓치게 되면…… 콩탄 왕국의 앞날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적이 강하게 몰아칠 때 같이 상대해주는 게 나을 터!

제이머스 후작은 피해가 크더라도 그런 부분을 염두에 주고 작전을 짠 것이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빅토리안 공작과 제이머스 후작의 전쟁이 아니니까. 콩탄 왕국의 명운을 건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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