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01화 (199/293)

201화

<60화. 영웅.>

1.

킁킁!

오크들이 돼지 마냥 큼지막한 코를 들썩이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윽고 놈들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달리기 시작했다. 오크들에게 포착된 건 인간이었다.

화전민들…… 가혹한 영지의 수탈을 버티지 못해 산으로 도망쳐서 살아가는 그들은 오크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수백여 마리의 오크들이 화전민의 마을을 덮쳤다.

“으아악!”

“오, 오크라니? 여기에 대체 왜 오크가?”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고 누군가는 의문을 뱉었다.

화전민들 입장에서 오크, 그것도 수백여 마리나 되는 오크의 등장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화전을 이루고 터를 잡을 지 십 년 가까이 됐지만, 그동안 이렇게 다수의 오크가 등장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의문을 던진다고 해서 대답이 날아오는 건 아니었다. 날아오는 건 오크의 투박한 무기들이었다. 오크들은 도끼, 칼 따위를 던졌다. 노리는 건 인간들의 다리였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오크들은 한 마리의 인간도 놓치지 않을 속셈이었다.

이윽고 인간을 붙잡은 오크들은 그 자리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큼지막한 송곳니로 인간의 살점을 뜯어냈다.

“으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비명을 내지르는 인간의 목젖을 오크가 물어 뜯었다.

끄륵, 끄르륵!

그러자 비명 대신에 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잘근잘근!

오크는 그런 인간의 목젖을 우걱우걱, 씹었다.

그렇게 오크들의 식사가 시작될 무렵…….

크오오!

어디선가 흉포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가 오크들이 식사를 멈추었다.

부들부들!

오크들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려,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웅!

오우거가 등장했다.

오우거는 우악스러운 손으로 오크를 통째로 집었다. 오우거의 손에 잡힌 오크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오크는 오우거에게 대들 수가 없었으니까. 오우거는 그런 오크를 입 안으로 넣었다. 한 입에 거대한 오크의 몸뚱이를 삼켰다.

콰직콰직!

오크의 몸뚱이는 그렇게 오우거의 입에서 잘근잘근 씹혀 곤죽이 되었다.

꿀꺽!

오우거는 그렇게 오크 한 마리를 먹어치웠다. 그러나 그걸로 오우거의 거대한 배가 채워질 리 만무하다.

오우거는 몇 마리의 오크를 입에 더 처넣었다. 오크들은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2.

“빌어먹을 몬스터들.”

슈페언 백작은 몬스터 군단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몬스터 군단의 습격을 받은 이후 슈페언 백작은 고민했다. 그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였으니까.

하나는 원래 목적대로 왕도로 향하는 것!

다른 하나는 몬스터 군단을 쫓는 것!

보통 경우라면 몬스터 군단을 무시하고 왕도로 이동했겠지만, 슈페언 백작은 몬스터 군단이 단순히 자연적으로 생긴 무리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흑마법사다.

필시 흑마법사가 관계된 일일 것이다.

거기서 슈페언 백작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흑마법사를 이용하면…… 페스로 제국의 군대를 콩탄 왕국에 보내는 게 전혀 문제되지 않지!’

거기서 슈페언 백작은 몬스터 군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놈들의 뒤를 쫓았다.

물론 적당히 동선만 살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 군단의 동선이 다른 곳도 아닌 왕도로 향하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슈페언 백작은 모든 병력을 추스르고, 적당한 거리를 벌린 채 몬스터 군단을 뒤쫓았다.

그런 몬스터 군단이 남긴 흔적은 참혹한 것이었다. 오크들은 야생 동물이든, 인간이든 혹은 동족이든, 배가 고프면 뭐든 먹었다. 그리고 오우거와 자이언트 트롤은 배가 고플 때 그런 오크들을 먹어 치웠다.

혐오스러운 광경이었다.

슈페언 백작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국경 지역에서 자신을 습격한 몬스터 군단이 어째서 왕도로 향하는 걸까?

물론 이유는 안다.

왕도로 향하는 건 결국 왕도를 함락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설마 놀러가는 건 아닐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갑자기 왕도로 향하는가, 그게 슈페언 백작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몬스터 군단을 이용해 왕도를 함락시킬 순 있어도, 그 후환이 두려울 텐데?’

몬스터 군단을 쓴다. 흑마법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륙의 공적이 될 만한 일이다제 아무리 대단한 몬스터 군단도 당장 페스로 제국이 힘 좀 쓰면 단숨에 짓누를 수 있다.

‘상대의 목적이 왕위 찬탈이 아닌가?’

만약 상대의 목적, 지금 왕도를 공격하는 자의 목적이 왕위 찬탈이라면, 몬스터 군단을 쓰는 건 최악의 수다.

그런데 왜 그런 최악의 수를 쓰는 걸까?

혹시 상대의 목적이 왕위 찬탈이 아니라, 콩탄 왕국의 멸망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정말 그게 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몬스터 군단을 이끌고 왕도를 공격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대체 왕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결국 이건 왕도를 공격한 자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일어났다는 의미였다.

“일단 왕도에 가면 알 수 있겠지.”

3.

치고 나오는 루이 노믹스.

적당히 기가스를 상대로 시간을 버는 이제르트 자작.

이 두 존재들을 상대로 빅토리안 공작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을 하나 뿐이었다.

후퇴!

빅토리안 공작은 이를 갈며 병력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하루를 쉬었다.

밤이 되었음에도 빅토리안 공작은 몬스터 데스나이트와 기가스를 움직이지 않았다.

3일 차의 밤은 평온하게 지나갔다.

왕군과 이제르트 자작 입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제르트 자작, 감사하오. 전하께서 필시 큰 상을 내리실 것이외다.”

“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렴 어떻소? 이제르트 자작이 왕도를 구했소!”

왕도의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원군을 이끌고 온 이제르트 자작을 칭찬했다.

이제르트 자작은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속으로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이제르트 자작을 칭찬하는 자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제르트 자작의 목을 베고, 이제르트 자작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자들이었다. 필로스 왕을 부정했던 그를 어떻게든 짓누르려고 했던 자들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제까지 왕 곁에서, 왕도에서 머물 수 있었던 귀족들이다.

그런 그들의 칭찬이 이제르트 자작에게 곱게 들릴 리 만무했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은 자신의 감정에 취해 일을 그르칠 정도의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정치를 했다.

오는 미소를 받았고, 자신을 칭찬하는 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두었다.

이번 일은 이제르트 자작가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르트 자작가는 엄청난 지원군을 이끌고 위험에 빠진 왕도를 구했으니까.

더불어 이제까지 숨기고 있었던 이제르트 자작가의 전력이 드러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훗날 잡음이 생길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제르트 자작가가 그런 막강한 전력을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력으로 얻는 건 쉽게 납득하기 힘들 테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이 귀족들을, 한때 자신을 추락시키려고 했던 귀족들을 포섭해야 한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이 이제르트 자작가로부터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문제가 제기될 때 그들이 앞장서서 이제르트 자작가의 편을 들어줄 테니까.

물론 이제르트 자작이 해야 하는 건 이런 정치적인 일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당장 적이 눈앞에 있다.

하루는 잠잠했지만, 내일도 잠잠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혹시 모를 적습에 대비해 전력을 점검해야 했다. 또한 왕군과 같이 움직일 때를 대비해 작전도 합의해야 했다.

이제르트 자작은 그 모든 걸 하루 만에 해야 했다. 잠을 잘 시간조차 없었다.

그 무렵이었다.

조용했던 3일차가 끝나고, 4일차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제이머스 후작의 결사대에서 미리 파견한 기사들이 왕도에 도착했다.

4.

제이머스 후작은 가장 날랜 기사와 가장 빠른 말을 먼저 왕도로 보냈다.

지원군이 가고 있으니 어떻게든 버티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그 임무를 맡게 된 기사들은 말에게 쉴 새 없이 채찍질을 했다.

왕도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에는 말의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왕도에 도착하기 직전!

히이잉!

말은 마지막 울음 소리를 토해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기사들은 예상했다는 듯 쓰러지는 말을 박차고 몸을 던졌다.

쿵!

말은 쓰러지마자자 혀를 내밀었다. 숨소리는 없었다. 말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두 마리 모두가 즉사했다.

이미 한계를 넘은 지 오래였던 탓에,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제까지, 왕도의 성벽이 보이는 데까지 달려와준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기사들은 자신들의 말을 향해 가볍게 목을 숙였다. 이 순간까지 달려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그 후 기사들은 곧바로 왕도로 향했다.

“맙소사.”

“이게 왕도란 말인가?”

기사들의 눈에 비친 왕도는 처참했다. 대충 봐도 성벽이 흉물스럽게 무너져 있었다. 거대한 성벽이,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을 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성벽이 무너져 있다니?

전투의 격렬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단 증거다.

꿀꺽!

기사들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기사들은 몇 가지 절차를 거친 후에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그들은 왕군의 지휘를 담당하는 귀족들과 만날 수 있었다.

기사들은 가져온 제이머스 후작의 편지를 건넸다.

그 이후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갔다.

다시금 작전이 재편됐다.

“제이머스 후작이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소이다.”

또 다시 희소식이 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절망감에 몸부림을 치던 왕도의 귀족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오오! 제이머스 후작!”

“역시 왕국을 지켜주는 이는 제이머스 후작, 그밖에 없소이다.”

모두가 제이머스 후작을 칭찬했다.

“그리고 지금 왕도를 공격하는 자는…… 다름 아니라 빅토리안 공작이외다.”

동시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왕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사실 일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필로스 왕은 진즉부터 빅토리안 공작의 낌새가 평범치 않음을 파악하고, 측근들에게 빅토리안 공작을 조심하라 일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빅토리안 공작이 왕도를 공격하는 일의 주범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빅토리안 공작의 이름이란 그런 거니까.

쉽게 뱉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직 빅토리안 공작의 얼굴을 본 것도 아니었기에 애써 외면했다.

그런 것치고 증거는 사실 여러 번 나와 있었다. 특히 왕도를 공격했던 기가스들은 잘 보면 빅토리안 공작가의 기가스가 분명했다. 밤중이라서 잘 안 보였다는 변명은 무의미한 변명이다. 그건 무능력을 증명하는 꼴이나 다름없으니까어쨌거나 어렴풋이 느꼈던 사실.

그 사실이 확실해지자, 모두들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적은 적이다.

빅토리안 공작이 적이라고 해서 대응 방법이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빅토리안 공작은 반역자가 됐다. 필로스 왕과 빅토리안 공작은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에서 공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럼 처치하는 게 맞다.

오히려 일부는 이 상황에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빅토리안 공작이 몰락하면, 제이머스 후작이 그 공작 위를 대신할 터.’

‘제이머스 후작이 공작이 되고, 제르둔 후작의 자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면…….’

후작 위 두 자리!

그 누구도 탐낼 수 없었던 그 두 자리가 공석으로 변하는 것이다.

왕도에 모인 귀족들은 나름 왕의 측근들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후작 위는 그 어떤 것보다 탐스러운 자리였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꿈틀거렸다.

그리고 다시금 4일차 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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