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7.
루이 노믹스.
그의 짐승 같은 본능은 주변 상황에 대해 시시각각 반응을 보였다. 불리할 때는 경고를 보냈다.
반대로 유리할 때, 무언가 변화의 조짐이 보일 때는 열심히 주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왔다!’
이제까지 심장을 쥐어 뜯을 것 같던 공포가 마치 거짓말처럼, 따듯한 날에 내린 눈꽃처럼 녹아버렸다.
대신에 가슴 언저리에는 무언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
루이 노믹스는 이런 감정 변화를 몇 차례 느껴본 적이 있었다. 전세가 유리하게 기우는 상황, 그럴 때 느낀 감정이었다.
더불어 루이 노믹스는 자신이 감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노믹스 경!”
기사 한 명이 헐레벌떡 숨이 가득 찬 모습으로 루이 노믹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요?”
“그게…… 지원군이 왔습니다.”
“지원군?”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가스의 숫자는?”
“30기 가까이 되는 듯합니다.”
“30기?”
순간 루이 노믹스는 기겁했다. 아니, 갑작스레 30기나 되는 기가스가 지원을 왔다고?
‘대체 누가?’
루이 노믹스는 모른다. 제이머스 후작 파벌이 빅토리안 공작가를 치기 위해 결사대를 조직했다는 사실을. 물론 지금 지원군은 제이머스 후작 파벌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루이 노믹스에게 30기에 가까운 기가스 지원군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제국이?’
이 정도 전력을 움직일 수 있는 단일세력은 페스로 제국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페스로 제국에서 지원군을 보낸 것일까? 그러나 루이 노믹스는 전술을 알고 있다. 또한 제국과 콩탄 왕국의 거리도 알고 있다. 제국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아니, 그게 아니지.’
그 순간 루이 노믹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이 잘못됐음을 차악했다.
‘기회다.’
지금 중요한 건 지원군이 누구의 지원군인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려 30기나 되는 기가스가 지원군으로 왔다는 것.
더불어 지금 그들은 외부에서 왔다는 것, 바로 이 부분이다.
‘싸먹어 야지.’
적을 공격할 때 가장 좋은 건 전방과 후방을 점하는 것이다.
머릿수에서 뒤져도, 앞뒤로 공격하면 적의 병력 중 일부는 스스로의 무리들 속에 갇히게 된다.
적의 병력을 일시적으로 줄일 수 있다.
더군다나 성벽이 있다.
성벽을 중간에 두고 지원군과 왕군이 전후방에서 몰아친다면, 적을 몰아세우기는 더 쉬울 터!
천우제일의 기회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물며 지금 루이 노믹스의 감이, 짐승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적을 먹어 치울 때라고!
“당장 기가스를 움직이시오. 내가 최전선에 서겠소. 당장 지원군과 같이 적군을 몰아세워야 하오!”
루이 노믹스의 단호한 결정!
그 결정에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겁쟁이 모습을 보여줬건, 보여주지 않았건, 지금 필로스 왕이 없는 왕도에서 가장 발언권이 큰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루이 노믹스,, 바로 그였으니까.
8.
이제까지 성벽을 방패 삼아 웅크리고 있었던 왕군이 기세를 바꾸어 전진을 시작했다.
성벽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이제까지 기세등등하게 성벽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성벽을 넘어오던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갑작스런 왕군의 진격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는 강했다. 그들은 피해를 입었지만, 쉽게 밀려나진 않았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는 몬스터 데스나이트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못했다.
성벽을 막 넘어온 상황이다.
성벽을 넘어 외성 내에 들어온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숫자는 20여 기에 불과했다.
왕군의 기가스들이, 이제까지 웅크리며 전력을 보존하고 있던 기가스들이 일제공격을 하자,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제르트 자작가의 아이언히트들은 전면전을 피한 채 계속해서 시간을 끌었다.
‘정면 승부는 안 된다.’
그런 이제르트 자작가의 의중을 모르는 빅토리안 공작가의 기가스들은 스스로 등을 맞댄 채 혹시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갑작스런 적의 등장, 더군다나 적은 강력한 기동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처음 보는 타입의 기가스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전투를 하다가 잘못해서 큰 피해를 입는다면?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적을 관찰하고, 적의 공격을 가장 적은 피해로 막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 어떤 전술가도 이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정석이며, 정론이다.
그러나 그 전장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밖에서 바라보는 빅토리안 공작을 미칠 지경이었다.
“공격! 공격하란 말이야!”
적은 누가 보더라도 출력이 낮은 기가스다. 기동력을 빼면 이러다할 특이점은 없다.
공격하면 이긴다.
1대1이든 2대1이든, 일단 붙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
그럼 싸우는 게 정답 아닌가?
그런데 그런 빅토리안 공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기사들은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서로 등을 맞댄 채 적을 관찰하고, 탐색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빅토리안 공작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다시 명령을 내려야 한다. 빅토리안 공작은 병사들을 불렀다. 병사들을 이용해 명령을 다시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밤중인 상황에서, 깃발을 이용해 명령을 전달하려고 해도 쉽게 전달되지 않을 터.
알고 있다.
밤에 전투를 한다는 건 이 정도 리스크는 짊어진다는 의미다.
‘젠장!’
빅토리안 공작은 여기서 무언가가 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빅토리안 공작의 심중은 왕군의 기가스에 밀려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성벽 밖으로 나오는 순간 터지고 말았다.
9.
몬스터 데스나이트.
이러다할 약점이 없는 병기다. 만들기도 어렵고, 적지 않은 돈이 투입되지만 밤하늘 아래에서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강력함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강함의 비교 대상은 결국 기가스다. 기가스 만큼 강하다는 거지, 기가스 이상으로 강하다는 건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몬스터 데스나이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몬스터를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카라카크는 몬스터로 하여금 오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단한 능력이다.
그러나 몬스터에게 인간의 그것처럼 고난도의 검술과 정신적 수양을 가르치지는 못했다.
데스나이트가 정말 무서운 점은 그 베이스가 되는 기사가 생전에 가진 검술과 정신력 그리고 전투 경험이다. 이것들은 데스나이트가 된 이후에도 발휘된다.
하지만 몬스터 데스나이트에게는 그 부분이 없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는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고, 검술 역시 위력적이고 강력하지만 단순했다.
이제까지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치고 들어왔지만, 사실 뚜껑을 열고 보면 몬스터 데스나이트 자체만으로는 왕군의 기가스를 압도하기 힘들었다.
물론 몬스터 데스나이트와 빅토리안 공작가의 기가스가 연합하면 왕군이 속절없이 밀리는 건 당연하겠지만…….
지금은 공작가의 기가스가 이제르트 자작가의 아이언히트와 교전으로 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
더군다나 전운이 바뀌었다.
지원군의 등장으로 병사들도, 기사들도 기운을 얻었다. 지원군의 존재는 그런 것이다.
여기에 이제까지 겁쟁이마냥 꼬리를 숨긴 채 웅크리고 있던 루이 노믹스가 다시금 기세등등하게 앞장섰다.
사기가 오를 수밖에 없다.
사기가 오르면 안 되는 것도 된다. 그게 바로 전쟁이란 세계다.
덕분에 왕군의 기가스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을 성벽 밖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은 후퇴란 걸 몰랐다. 빅토리안 공작은 그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니까. 후퇴명령이 없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전진만 했다.
그게 오히려 피해를 키웠다.
전력으로는 밀리는데, 무리하게 싸우게 되면 피해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기어코 왕군의 기가스가 다시금 성벽을 탈환했다. 더군다나 루이 노믹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원군과 함께 적을 쳐야 한다.”
이 기세!
이대로 이어 가야 한다.
루이 노믹스가 다시금 앞장섰다.
동시에 성문이 다시금 내려오기 시작했다. 루이 노믹스는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몰라!’
왕군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밀리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우세를 점할 때의 왕군은 본래 기량을 대부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했을 때의 왕군은 절대 약한 군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떤 군대보다 강하다.
최고의 엘리트들을 모아두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담금질을 마친 강병들이었으니까!
그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바로 빅토리안 공작이었다.
오랜 세월 왕의 군대를 조사했다. 그들을 언젠가 무너뜨리기 위해서, 샅샅이 조사했다.
그렇기에 기세를 탄 왕군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지금 그들과 상대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빠득!
빅토리안 공작이 이를 물었다.
안다.
지금 빅토리안 공작은 자신이 내려야 할 결정이 무엇인지,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후퇴.’
그렇다.
지금 빅토리안 공작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후퇴다.
피해는 크지 않다.
기가스 전력을 무사하고,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제법 피해를 입긴 했지만, 여전히 그 숫자는 50여 기 넘게 남아 있다. 또한 이미 외성의 성벽은 임시보수조차 무의미해질 정도로 망가진 상황이다.
병력을 추스를 때다.
여기서 무리하게 계속해서 싸우다가는 오히려 피해만 더 커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빌어먹을!”
빅토리안 공작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의 계획이 어긋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대체!”
지원군 때문이다.
저 말도 안 되는 지원군의 등장이 빅토리안 공작의 대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대체 누구냐!”
빅토리안 공작은 자신의 계획을 망쳐버린 이를 향해 증오 섞인 음성을 토해냈다.
사실 빅토리안 공작은 이렇게 다혈질적인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본래 냉철한 이성은 물론 감정마저 차가운 자였다. 그런 성정이었기에 필로스 왕에게 왕위를 빼앗겼을 때도 경거망동하기 보다는 오히려 속마음을 숨기고, 나중을 기약했다.
하지만 이런 빅토리안 공작의 성정은 흑마법을 접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흑마법은 올바른 인성과 성정을 가진 자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혹여 그런 인성과 성정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흑마법을 익히는 순간, 그러한 것들은 모두 더럽고, 지저분하고, 추악하고, 추레한 것으로 타락하기 마련이다.
괜히 흑마법사들이 미치광이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더불어 흑마법을 익혔음에도 자신의 성정을 컨트롤하고, 제어하는 게 가능했다면 오히려 흑마법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흑마법이 가지는 매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니까.
어쨌거나 흑마법에 깊이 빠지고, 타락한 빅토리안 공작의 성정은 결국 그가 가진 냉철한 판단력을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상황이 잘 풀렸을 때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비틀어지자, 그는 분노하고 결국 최악의 카드를 뽑고 말았다.
“오냐!”
그는 분노했다.
진심으로 분노했다.
아니, 어쩌면 그 분노는 빅토리안 공작의 분노가 아니라 빅토리안 공작을 더 깊은 어둠으로, 절망으로 타락시키고 싶어하는 악마의 수작이었을 지도 모른다.
“모두 죽여주마. 까짓것 증인 전부가 죽으면 될 일 아닌가?”
빅토리안 공작.
그가 택한 것은 다름 아니라 이제까지 숨기고자 했던 몬스터 군단을 왕도로 부르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로 200회를 맞이했네요.
권수 분량으로 따지면 8권이 넘더군요.
가장 처음 조아라에 쓴 글이고, 거의 반년 가까이 쓰게 되었네요. 그런 것 치고는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답답해할 독자님들이 많으실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언제나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응원이 없으셨다면 이렇게 오래 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충고, 조언, 지적에도 감사드립니다. 그 충고, 조언, 지적 덕분에 부족했던 글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충고, 조언에 대한 보답으로 더 나은 글을 쓰지 못해 언제나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보다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