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98화 (196/293)

198화

<59화. 타오르는 성.>

1.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참전!

그것으로 인해 전황은 180도 바뀌었다. 기세 좋게 치고 나갔던 왕의 기가스들이 단숨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받은 기가스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굉음이 터졌다.

우르르!

땅이 울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다.

대규모 교전, 다수 대 다수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단숨에 5대의 기가스가 전력 외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5대 모두 왕군 소속의 기가스였다. 단 한 번의 교전에서 무려 2할에 가까운 전력이 무너진 것이다.

엄청난 타격이었다.

더 무서운 건 이게 시작이란 사실이었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한 전황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차선책이라고 한다면 루이 노믹스, 그의 존재뿐이다. 그가 나서서 병사들의 사기를, 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려줘야 한다. 그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절박한 상황에 최전선에서 나가 소리쳐야 한다.

왕을 위하여!

그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

그러나 이 순간 루이 노믹스는 가슴보다 머리가 움직였다.

‘어떻게 하지?’

루이 노믹스의 짐승 같은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눈으로 봐도 그렇다. 지금 눈앞에는 최소 백에 가까운 거인들이 숲의 나무처럼 서있다.

아니, 숲의 나무라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적어도 숲은 움직이지도 않고,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으니까.

놈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파도 같다.

그냥 파도가 아니라,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듯한 파도였다. 몸이 저절로 굳을 정도다.

그리고 루이 노믹스는 그 파도 앞에서 물러섰다.

‘젠장!’

루이 노믹스.

왕의 사위라 불리는 자.

그뿐이다.

루이 노믹스는 콩탄 왕국의 국민도 아니며, 콩탄 왕국의 귀족 역시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페스로 제국의 일원이다. 단지 정치적 이유로 콩탄 왕국에서 왕의 사위로 있을 뿐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 역시 많지 않다. 그 사랑이 지극했다면 그가 방탕한 생활을 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정치적인 이유의 결혼이었다. 그건 루이 노믹스도 알고, 그의 아내 역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 노믹스가 콩탄 왕국에 절대적인 충성을 표현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하물며 루이 노믹스가 콩탄 왕국의 왕, 필로스 왕을 위해, 왕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도와주는 건 가능하다. 피를 좀 흘려주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목숨을 내주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런 이유로 루이 노믹스가 전장에서 물러났다. 이제까지 최전선을 이끌고 있던 그가 물러나자, 자연스럽게 전선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이 물러나자, 적은 더 기세등등해졌다.

쿵쿵쿵!

거대한 몸뚱이를 가지고, 육중한 갑옷을 두른 몬스터 데스나이트와 기가스들이 빠르게 발을 놀렸다.

왕군은 그 기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단숨에 성벽 근처까지 밀렸다.

그러나 성벽을 등지고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성벽 앞에는 해자가 있다. 성벽을 등지고 싸운다는 건, 달리 말하면 절벽을 등지고 싸운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왕군은 능력이 있었다.

이 와중에 그래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름 전술적 포메이션을 갖추고자 했다.

조금 복잡한 전술은 쓰지 못한다. 대부분의 기가스 파일럿들은 기가스 자체의 조종 방법만 익힐 뿐, 기가스를 근간으로 한 전술법을 따로 연습하거나 공부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아주 단순한 전술, 기초적인 전술, 동네 꼬마들조차 전쟁 놀이에서 써먹는 전술 정도는 쓸 수 있다.

아군끼리 등을 맞대고 싸운다는 식의 전술 말이다.

적어도 그냥 무작정 싸우는 것보단 그 기본적인 전술법이라도 써먹을 필요가 있었다.

아니, 기본적인 것이라지만 그 위력이 가소롭다는 건 아니다.

많은 군사들이 말한다.

기본적인 전술이 가장 강력한 전술이라고.

막 밀리던 병력이 어느 정도 맞서 적과 대치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쿵!

충돌이 시작됐다.

후웅, 후웅!

기가스들은 두터운 장갑을 앞세웠고,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 데스나이트들 역시 두터운 갑옷을 내세웠고, 호쾌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앙!

터지는 소리가 나고.

째쟁!

깨지는 소리가 나고.

“으아악!”

비명 소리가 울려 펴졌다.

반면 몬스터 데스나이트 사이에서는 그 어떤 비명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어느 문헌에도 데스나이트가 비명을 내지른다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 순간!

꽈르르릉!

거대한 굉음이, 이제까지 들려온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굉음이 전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치 메아리가 울리 듯.

“성벽이 무너졌다!”

거대한 병사들의 목소리가 꼬리를 물며 터져나왔다.

2.

꽈르르릉!

거대한 굉음이 터졌을 때, 그 소리는 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빅토리안 공작의 귀에까지 들렸다.

“후후!”

빅토리안 공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렇게 되어야지.”

몬스터 데스나이트를 투입하기 전, 빅토리안 공작은 휘하의 기가스 파일럿들에게 몇 가지 작전을 전달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등장하는 순간, 5대의 기가스가 곧바로 성벽을 부수는 데에 전력을 다하라는 작전이었다.

이제까지처럼 그저 가볍게 성벽을 두드리는 수준의 작전이 아니었다. 기가스가 파괴되도 좋으니,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에 전력을 다하라는 내용의 작전이었다.

빅토리안 공작의 노림수였다.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있는 상황에서 대여섯 대의 기가스 공백은 크게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 기가스를 이용해 성벽을 무너뜨리는 게 전장을 지휘하는데 훨씬 좋았다.

빅토리안 공작의 작전은 적중했다.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5대의 기가스가 무리하게 성벽 파괴를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3대가 무리하게 출력을 끌어내다가 기어코 마나 동력원이 폭발했다. 마나 동력원이 파괴된 기가스는 그냥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나머지 2대는 마나 동력원은 무사했지만 해자에 빠지고, 무너지는 성벽의 잔해에 맞으면서 장갑이 크게 파손됐다. 그 2대 역시 당장 전장에 투입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무려 5대의 기가스가 전투불능이 됐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이제까지 굳건하게 기가스의 공격조차 막아냈던 왕도의 성벽이 무너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성벽의 붕괴, 그것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일단 왕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됐다. 가뜩이나 갑작스런 몬스터 군단의 등장으로 인해 사기가 추락을 하던 중에 성벽이 무너지니,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좋아.”

이것으로 전장의 기세는 빅토리안 공작 쪽에 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빼야겠지.”

그러나 빅토리안 공작은 이 순간 병력을 빼고자 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하늘을 향했다. 구름 사이를 가리고 있는 달빛을 향했다.

아직 밤은 남아있다.

그러나 조만간 밤이 사라지고 새벽이 올라올 것이다.

지금 빅토리안 공작의 전력이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은 그 무엇도 아닌 태양이다.

데스나이트 자체가 태양에 너무나도 취약하다. 태양 아래에서는 기가스와 1대1은 커녕, 기가스 한 대에 몬스터 데스나이트 3기가 붙어도 이기지 못한다.

그뿐인가?

이번 전쟁은 빅토리안 공작이 왕이 되기 위한 전쟁이다.

그런 전쟁인데 빅토리안 공작이 사악한 흑마법을 이용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면 과연 그 어떤 이가 빅토리안 공작을 따를까? 오히려 빅토리안 공작은 대륙의 공적이 되어 온갖 무리들의 공세와 비난 속에 죽어갈 것이다.

결국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사체를 회수하고, 안전하게 전선에서 이탈하기 위해서는 추격 시간을 길게 잡을 필요가 있다.

무리해서 성벽을 무너뜨린 것도 그때문이었다.

성벽이 크고 두텁기 때문에 임시복구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공격 때에는 성벽을 넘어 외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흥.”

솔직히 빅토리안 공작에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히 태양이란 놈만 없었다면 다음 달이 뜨기 전에 왕도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강하게 몰아 붙인다면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이곳으로는 제이머스 후작 파벌의 결사대가 전력을 다해 오는 중이다.

그 전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 오느라 대부분의 기가스들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고 하더라도 수십여 대의 기가스 전력이 추가된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제이머스 후작 파벌의 결사대가 아니더라도 이미 왕도가 습격당하는 순간 다른 지역의 영주들 역시 빠르게 지원병력을 보냈을 것이다. 십시일반으로 모인 병력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어차피 시간은 있다.’

물론 그 부분도 염두에 두었다.

또한 결사대가 왕도까지 오는 데에는 아직도 4일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었다.

‘어차피 내일 공격이면 내성 성벽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내일 2차 공격으로 내성 성벽을 무너뜨리고, 외성 내의 병력을 정리한 다음에 다시 후퇴한다.

그리고 마지막 3차 공격으로 왕위를 얻는 것이다.

제이머스 후작 파벌의 결사대가 도착했을 때 그들이 보게 되는 건 머리만 남은 필로스 왕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빅토리안 공작은 단 하나의 영주를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었다.

3.

“모두들 힘내게.”

이제르트 자작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기가스 파일럿들이, 기사들이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작님, 좀 더 쉬십시오.”

“먼저 이동하겠습니다.”

그 말에 이제르트 자작은 미소를 지었다.

강행군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기가스 파일럿들은 물론 병사들마저 지칠 만한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개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제르트 자작이었다.

이제르트 자작은 이 강행군에서 그저 홀로 안식을 취하거나, 유유자적 늦장을 부리는 영주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남들보다 먼저 일어났고,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강행군으로 인해 생기는 각종 소란들, 문제들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스스로 해결했다.

그뿐인가?

병사들과 기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쉴 새 없이 그들을 다독였으며, 작전을 계획하고, 그 작전을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설명하고, 또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작전을 변경하는 등의 일도 해야만 했다.

병사들 혹은 기사들 개인에게는 한 가지 일과에 불과하겠지만, 이제르트 자작에게는 하루라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과다한 일과였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은 한 마디의 불평불만도 없었다.

“아닐세. 어차피 전장에서 내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지금이라도 힘을 써야겠지.”

오히려 그는 미안해했다.

치열한 전장으로 자신의 병사들과 기사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더군다나 이번 전쟁 참가는 결국 이제르트 자작, 그를 위한 전쟁 참가나 마찬가지다.

까놓고 병사와 기사들에게 돌아갈 몫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필로스 왕이 크게 상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 상 대부분은 이제르트 자작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고작 힘들다고, 지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는 건 영주의 도리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런 영주의 모습에 감탄할 뿐이었다. 더불어 영주가 솔선수범을 보이니, 그 누구도 강행군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잡음도 굉장히 적었다. 탈영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력을 빠르게 왕도에 도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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