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97화 (195/293)

197화

3.

다크 나이트가 왕도의 내성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피해가 생겼다. 다크 나이트에 의해 몰살 당한 가문만 열 곳이 넘어갔다.

그러나 그 이후 피해는 없었다.

다크 나이트의 낌새를 눈치 채고, 그들을 처치하기 위한 병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크 나이트에 대한 대처법은 분명 있었다. 또한 그 대처법을 가능케 할 마법사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다크 나이트가 제압됐다.

그 순간 빅토리안 공작은 준비했던 기가스를 출진시켰다. 기가스들이 거침없이 왕도의 성벽을, 왕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건 참혹한 광경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왕에게 충성을 바쳤을 기사들이, 그들의 기사 작위를 임명해주는 왕을 부정하고, 왕의 성에 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침없는 기가스의 공격에 비해 성벽은 너무나도 굳건하기 그지없었다.

보통의 성벽과는 궤를 달리할 정도의 단단함을 가진 왕성의 성벽은 기가스의 충격을 잘 버텼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왕성 내의 병력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성벽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끼리릭!

성문이 내려왔다.

적이 공격을 시작했는데 성문을 내리다니?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왕성 내의 기사들은 기가스들이 성벽을 두드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성벽을 두드린다는 건, 필연적으로 병력이 성벽 쪽에 집중된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성문 쪽에는 병력이 적어진다.

자연스럽게 성문을 통해서 왕성 내의 기가스가 밖으로 나올 틈이 생긴다는 것이다.

애초에 왕성 내의 기사들은 이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실 왕성 내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왕을 지키기 위해서는 왕성이 무너져도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왕성을 최대한 무사히 지키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상대가 성벽을 무너뜨리기 전에 처치하는 게 답이다.

무엇보다 왕성 내에도 무려 30대가 넘어가는 기가스가 대기 중이었다.

그뿐인가?

2.5배 급 기가스 역시 왕성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그 2.5배 급 기가스를 이끄는 자는 다름 아니라 루이 노믹스였다.

왕의 사위!

그렇게 불리지만 본질은 오러 마스터다. 오러 나이트보다 곱절은 더 강한 체력과 힘을 가진 자다.

그런 그는 2.5배 급 기가스가 가진 모든 저력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페스로 제국 출신의 기사다.

페스로 제국! 케르빈 월드에서, 대륙에서 그 누구보다 기가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제국이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가스를 확보했으며, 가장 우수한 기가스 파일럿을 양성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제국에서도 천재 소리를 들었던 루이 노믹스다. 그 역시 어릴 때부터……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가스 파일럿이 되기 위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다.

까놓고 기가스 운영 자체를 놓고 보면, 제이머스 후작도 루이 노믹스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줘야 한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적어도 콩탄 왕국 내에서 기가스를 가지고 1대1로 붙어서 루이 노믹스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는 소리다.

더불어 루이 노믹스는 전술의 귀재이기도 했다.

평소에야 여색을 탐하고, 방탕한 생활에, 자기 사욕에만 충실한 자라 전술과는 거리를 두고 살지만, 아주 망나니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멍청한 돼지처럼 사는 게 아니라, 야수처럼 살아가는 자였다.

중요한 순간!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맹수의 본능을 깨울 줄 아는 사내였다.

왕성 내의 기가스 파일럿들은 그런 루이 노믹스의 능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자!”

때문에 루이 노믹스가 앞장섰을 때, 그 어떤 기가스 파일럿도 주춤거리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우아아!”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웅심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왕을 위하여!”

누군가 소리쳤다.

기가스에서 나온 소리, 아마 밖에서는 웅얼거림, 중얼거림 정도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마법을 쓴 듯.

“왕을 위하여!”

기가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보통의 병사들이 창을 들고, 검을 들고, 방패를 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리를 퍼졌다.

“왕을 위하여!”

메아리처럼 퍼졌다.

“왕을 위하여!”

다시금 기가스 파일럿들이 같은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루이 노믹스는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그 소리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왕을 위하여 싸워야지!”

이윽고 루이 노믹스가 기가스의 와이어를 잡이 당기며, 단숨에 성문 밖으로 돌진했다.

4.

기가스 간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의 머릿수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이다.

때문에 유효한 공격을 먼저 성공시키는 쪽이 굉장히 유리하다.

그래서 고출력의 기가스와 뛰어난 기가스 파일럿의 가치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개전 초기, 단숨에 적의 기가스 숫자를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카드는 필승 카드나 다름없었으니까.

루이 노믹스는 그런 필승 카드였다.

루이 노믹스는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최전선에 나아갔다. 아니, 그가 있는 곳이 곧 최전선이었다.

그는 이미 타깃을 잡았다.

‘네놈!’

딱 봐도 2배 급 기가스로 보이는 놈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도 적당했다. 주변에는 다른 기가스가 없었다. 홀로 성벽을 두드리고 있는 놈이었다.

최적의 먹잇감이다.

루이 노믹스가 와이어를 조작했다. 그가 조종하는 2.5배 급 기가스가 거대한 검을 높이 들었다.

그 기가스의 검은 보통 기가스들이 사용하는 검들과는 형태가 조금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날렵한 느낌이 나는 놈이었다.

보통 기가스들은 자신들의 출력을, 어마어마한 힘을 곧이곧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묵직하고, 거대한 검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루이 노믹스는 오히려 반대였다.

날렵하고, 가벼운 검.

그건 다름 아니라 루이 노믹스의 성향, 술(術)과 법(法)이 아닌, 본능에 의해서, 짐승처럼 싸우는 그의 성향을 제대로 표현해주기 위한 도구였다.

루이 노믹스는 그 정도로 뛰어난 기가스 파일럿이었다.

자신이 가진 검술의 일부분을 기가스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으니까.

타깃으로 삼은 적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졌다. 루이 노믹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쉬리리릭!

보통 기가스와는 다른 날렵한 검이 호쾌한 선을 그리며 단숨에 적의 기가스를 향했다.

서걱!

그리고는 묵직한 소리가 아닌 날카롭게 베이는 소리를 냈다.

루이 노믹스가 노린 건 기가스의 장갑이 아니었다. 장갑과 장갑 사이, 기가스의 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루이 노믹스는 마나 동력이 위치한 머리와 조종자가 탑승한 가슴 부분, 그 사이의 틈을 베어버렸다.

장갑을 두르지 않은 부위였기에 루이 노믹스의 검은 너무나도 쉽게, 단칼에 기가스를 베었다.

인간으로 따지면 목이 베이는 것이다.

갈길을 잃은 마나 동력원이, 기가스의 머리통이 기가스의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왓다.

루이 노믹스는 그 머리통을 발로 짓밟았다.

콰직!

그러나 머리통은 깨지지 않았다. 마나 동력원의 보호를 위해 기가스의 장갑 중에서 가장 단단하게 보호해둔 것이 바로 머리다. 제 아무리 기가스가 밟는다고 해도 쉽게 부셔지지 않는다. 그저 땅에 깊숙하게 박힐 뿐이었다.

물론 그걸로도 충분했다.

“우아아아!”

“루이 노믹스님이 승리하셨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본 다른 기가스 파일럿들은 환호했다.

선공을 취했고, 승리했다.

그것도 그냥 승리가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승리였다.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혹여 기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거짓으로라도, 연기로라도 기뻐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쟁에서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니까.

반면 루이 노믹스는 부풀어 오르는 아군의 사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다른 적을 찾았다.

‘어떻게든 숫자를 줄인다.’

루이 노믹스는 기세등등하게 전장에 나왔고, 단숨에 한 기의 기가스를 고철로 만들었지만 그의 감은 지금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짐승의 그것과 비슷한 그의 감이,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적이 숨긴 카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고작 눈앞에 보이는 기가스 전력이 적이 준비한 전력의 전부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적이 숨겨둔 카드를 쓰기 전에 먼저 적의 기가스를 한 대라도 더 많이 처치해야 한다.

루이 노믹스는 그런 조급함을 안고 움직였다.

그런 루이 노믹스의 조급함을 알고 있는 자가 있었다.

빅토리안 공작!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전장을 바라보던 그는 성문이 열리는 순간, 왕성에서 기가스가 쏟아지듯 나오는 순간!

“하하하!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오히려 그 장면을 예상했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루이 노믹스의 기가스가 단숨에 빅토리안 공작의 2배 급 기가스 한 대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광경에서는 웃음이 잠시 멈췄다.

‘루이 노믹스, 개차반 같은 성격을 가진 놈이지만 재능 만큼은 하늘이 줬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군.’

루이 노믹스의 명성은 귀가 따갑다 못해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어봤다.

‘그래 봐야 제국이 보낸 잡졸!’

더불어 페스로 제국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보는 빅토리안 공작에게 있어 루이 노믹스는 토막을 내 쳐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 노믹스는 슈페언 백작과 필로스 왕이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 그 자체였다.

‘놈!’

더더욱 놈을 죽일 이유가 확실해졌다.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운 빅토리안 공작은 이 순간 숨겨둔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아직 나머지 30여 기가 오지 않았지만…….’

사실 변수 하나가 있다.

본래대로라면 쿠틀러 백작령을 함락시킨 후에 왕도에 도착했어야 할 몬스터 데스나이트 30여 기가 도착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전력의 공백이었다.

예상외의 공백이기도 했다.

30여 기의 몬스터 데스나이트면 1배 급 기가스 20기의 몫은 해줄 수 있는 전력이다.

당연히 그 전력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 전력이 사라졌으니, 기존의 계획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보통 군사(軍師)였다면 이 상황에서 크게 당황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군사들이 이 상황에서 작전을 포기했을 것이다.

기존의 계획과 다르게 진행되는 작전은 더 이상 제대로 된 작전이 아니다. 작전을 포기하고,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군사들의 생각이니까.

그러나 빅토리안 공작은 군사도 아니었을 뿐더러, 새로이 작전을 짤 만큼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사내 역시 아니었다.

어떻게든 전쟁을 그 무엇보다 빨리 끝내야 했다.

그런 빅토리안 공작의 의지는 단숨에 70여 기의 몬스터 데스나이트를 전장에 투입하도록 만들었다.

그건 왕을 따르는 왕군의 입장에서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어둠 한 구석에서 거대한 무리들이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헛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될 정도였다.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에는 상대방이 숨겨둔 기가스를 출발시킨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거리가 더 가까워졌을 때!

“기가스가 아니야?”

“뭐야, 이건?”

처음 보는 기사의 등장에 왕군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루이 노믹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지? 이 놈들은?”

처음 보는 놈들이다.

몸뚱이는 기가스 만큼 거대한데, 기가스와는 다르다.

대체 정체가 뭘까?

루이 노믹스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드리면 알 수 있겠지!’

적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칼로 열심히 두드리다 보면 저절로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

루이 노믹스는 타깃을 바꾸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거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익!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루이 노믹스가 조종하는 기가스의 검은 갑옷과 갑옷 사이, 그 좁은 틈을 노리고 들어갔다.

상대가 갑옷을 입은 이상, 관절이 있는 이상, 결국 틈이 있는 이상!

루이 노믹스의 적수는 될 수 없다.

츠츠츠!

그러나 그 틈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며 검이 내뱉는 소리는 굉장히 껄끄러운 것이었다.

루이 노믹스는 느꼈다.

‘뭐지?’

마치 철판을 포크로 긁는 듯한 느낌이다.

그 순간 이제까지 루이 노믹스의 가슴 속을 두드리던 불안감이 가슴을 터뜨렸다.

“아!”

루이 노믹스.

그는 잠시 동안 절망이란 단어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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