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94화 (192/293)

194화

7.

몸이 너무나도 아팠다.

사지가 잘려나가는 느낌이다. 누군가 톱으로 어깨를, 허벅지를, 무릎을, 팔꿈치를 자르는 느낌이었다.

통증은 한 번이 아니었다.

잘 들지 않는 톱을 이용해 억지로 사지를 자르는 듯, 소름 끼치는 통증이 계속해서 온몸을 유린하고 있었다.

덕분이었다.

‘일어나.’

문수르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통증 덕분에 오히려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문수르는 그 눈꺼풀을 열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이윽고 눈을 떴다.

“헉!”

막혀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화산이 분출하듯 터져나온 숨소리와 함께 문수르의 정신이 번쩍 뜨였다.

“크으으…….”

그 순간 뱃속에서 벼락이 터진 듯한 느낌이 났다. 그 벼락은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절할 것만 같은 통증이다.

“로이드.”

그러나 문수르는 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 제대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문수르는 오히려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 예, 주인님.

“상황 설명…….”

로이드를 찾아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로이드는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8.

쿠틀러 백작은 생각했다.

‘왕도로 가는 길목이라면…….’

쿠틀러 백작.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영지가 있다!’

그의 영지는 왕도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영지다. 쿠틀러 백작령을 거치지 않고 왕도로 가려면 험난한 산길을 가로 질러야 한다. 특히 기가스와 같이 덩치가 큰 경우에는 산길을 통해 이동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적이 한 방향으로 왕도로 향할 리는 없다. 너무 눈에 띈다. 그 정도로 노골적인 병력의 움직임이었으면 제이머스 후작도 진즉에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필시 전력을 분산한 다음 사방에서 움직였을 것이다.

‘일단 내 영지에도 사람을 보내야겠지.’

결사대가 떠나기 전 그의 영지에 남겨둔 전력을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만약 상대가 왕도를 전복할 정도로 강대한 전력을 이끌고 왔다면 솔직히 쿠틀러 백작령은 버티지 못하고 함락했을 것이다.

함락!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쿠틀러 백작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콩탄 왕국의 백작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세력을 가진 자다.

최악의 경우, 자신의 영지가 함락된 상황을 맞이했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 정도는 마련해두었다.

함락당한 이후에도 일부 전력은 쿠틀러 백작령에 숨겨진 장소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들 자체의 전력이 큰 도움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정보는 귀중한 정보가 될 것이다. 그 정보가 지금은 필요하다.

빅토리안 공작이 단순 기가스 전력만 있고 일을 벌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분명 다른 전력이 있을 것이다. 그게 이번 전쟁의 핵심이다. 전쟁에서 상대의 전력을 보다 명확히 아는 게 승패를 좌우한다.

때문에 쿠틀러 백작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기사를 쿠틀러 백작령으로 보냈다.

쥴리언, 그가 쿠틀러 백작령으로 향했다.

9.

쥴리언이 기가스와 함께 쿠틀러 백작령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성벽이 무너져 있었다. 다시 복구하려면 족히 1년은 넘게 걸릴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성벽 안은 더 처참했다. 모든 건물들이 박살이 나 있었다. 태풍이 휩쓸고 가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곳곳에는 시체가 너부러져 있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영지민들의 시체들이었다.

이미 시체는 썩어가기 시작한 탓에 냄새가 지독했다. 쥴리언은 그 광경을 무시했다.

‘내성이 중요하다.’

요인들은 내성 안에 모여 있다. 쥴리언은 내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내성의 성벽 역시 흉할 정도로 무너진 상황이었다. 내성 안의 고급스런 저택들 역시 대부분이 무너져 있었다.

쥴리언은 두 눈을 살짝 감았다.

쿠틀러 백작가 역사상 이렇게 영지가 처참하게 유린 당했던 적이 과연 있었는가?

쥴리언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신의 세대에서, 자신이 기사로 활약하는 이 시대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치욕이다.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치욕이다.

그때였다.

“헉!”

쥴리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건 어떻게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기, 기가스인가?”

거대한 기가스였다.

보통 기가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덩치는 그보다 더 큰 기사였다.

처음이다.

이제까지 많은 기가스를 봐왔지만, 이렇게 큰 기가스를 본 건 처음이었다.

순간 쥴리언은 긴장했다.

‘적인가?’

적어도 아군에 저렇게 거대한 기가스는 없다. 그렇다는 건 적일 가능성이 높다.

꿀꺽!

순간 쥴리언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눈앞의 거대한 기가스와 싸우는 광경을 말이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큰 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마나 동력 출력이 낮은데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절대 느린 놈이 아니다.’

그러나 쥴리언은 기사임과 동시에 기가스 파일럿이다.

그런 그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눈앞의 거대한 기가스는 절대 덩치만 큰 얼간이가 아니라고. 무시무시한 놈이라고.

“응?”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이건…….”

기가스는 거대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기가스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기가스에게 심장 같은 건 없다. 기가스사 생명체처럼 숨을 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가스가 움직일 때는 마나 동력이 강력한 마나를 뿜어낸다.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기가스 파일럿들, 오러 나이트들은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기가스는 그런 조짐이 없었다.

마나 동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리다.

전투 불가 상황!

마나 동력이란 건 바로 움직이게 만들고 싶다고 해서 움직이는 놈이 아니다. 예열이 필요한 놈이다.

접근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기가스를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살짝 아쉬움도 생겼다.

만약 기가스를 가지고 왔다면 전투를 걸었을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덩치 큰 기가스는 표적으로는 최적의 상대가 될 테니까. 그러나 기가스를 가져오지 못했다.

어설프게 기가스 한 대만 이끌고 왔다가, 오히려 쿠틀러 백작령에 대기 중이던 적과 조우한다면?

기가스 한 대를 그냥 내주는 꼴이 된다.

쥴리언은 그저 검만 차고 왔다. 기가스와 조우했을 때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반대로 기가스가 있다고 해도 들키지 않고 이동하기에는 맨몸으로 움직이는 게 편하다.

쥴리언이 움직였다.

그는 은밀하게 하지만 빠르게 기가스 근처로 접근했다.

‘으윽!’

기가스와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이상한 시체들의 숫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괴상한 시체였다.

너무 녹아버려 형태를 확실히 분간하긴 힘들었지만 사람의 시체는 절대 아니었다.

마치 몬스터의 시체 같았다.

냄새도 고약했다. 느낌도 좋지 못했다. 때문에 쥴리언은 시체를 무시하고 기가스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기가스 지척에 도달했을 때, 쥴리언은 기가스 앞에 쓰러진 한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헉!”

쥴리언은 한 눈에 그를 알아봤다.

“문수르 경?”

10.

로이드의 상황 설명이 끝났다.

문수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쥴리언 경이 날 발견했구나.’

천만다행이다. 만약 그 순간 다른 적이 문수르를 발견했다면 문수르은 죽었을 지도 모른다.

쥴리언, 그가 문수르를 발견한 탓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더불어 몸의 치료도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단전에 생긴 상처는 그대로였다.

문수르는 붕대로 감긴 제 배를 만졌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문수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 주인님, 너무 위험했습니다.

로이드가 그런 문수르를 나무랐다. 문수르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위험한 정도가 아니었다.

죽을 뻔했다. 정말 어이 없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물론 얻은 것도 있다.

이제 문수르는 드래곤 파이터를 통해서도 오러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마음대로 창술을 쓸 수 있다. 오러 웨폰을 꺼내는 것도 가능하고, 그 외에도 페르수스의 창술도 쓸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드래곤 파이터의 기반이 되는 MX시스템의 마나 동력을 이용해 페르수스의 창술을 쓸 수 있다?

드래곤 파이터의 스파이럴 어택은 그냥 창으로 찌른 공격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이다. 미사일이나 다름없는 위력을 보여줄 것이다. 성벽 같은 건 적수가 되지 못한다.

엄청난 힘을 얻었다.

이제까지의 전세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이다. 앞으로 그 힘은 문수르에게 그리고 이제르트 자작가에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리스크도 엄청나다. 그 힘은 함부로 쓸 수가 없다. 힘을 사용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문수르의 생명이다.

더군다나 지금 당장 상처 입은 단전을 회복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나 걸릴까?

아니, 치료는 가능할까?

엘프들의 신목의 도움을 받는다면 치료는 가능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 당장 드래곤 파이터를 이끌고 왕도로 가야 한다. 거기서 더 큰 적들과 싸워야 한다.

그런데 단전이 망가진 상황에서 기가스를 움직일 수나 있을까?

상황은 좋지 못하다.

문수르는 두 눈을 감았다.

‘내 실수인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로이드 말대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적의 전력만 야금야금 감소시키는 게 답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얻은 것도 크지만 잃은 것도 크다.

‘일단…… 일단 반성은 나중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반성을 위해 자괴감을 느낄 때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왕도로 가서 빅토리안 공작을 막는 것이다.

그때였다.

“몸은 괜찮으시오?”

쥴리언, 그가 문수르를 찾아왔다.

문수르는 그를 보자마자 고개부터 숙였다.

“구명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아니오.”

쥴리언은 고개를 저었다.

문수르를 구출한 이후 쥴리언은 내성 안의 대피소에 숨은 이들과 만났고,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히려 쿠틀러 백작가가 문수르에게 입은 은혜가 크다.

문수르, 그가 아니었으면 쿠틀러 백작가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을 뻔했다.

쥴리언은 문수르에게 감사했다.

동시에 놀랐다.

‘문수르 경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병사들에게 들은 문수르의 위용은 정말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솔직히 믿지 못하겠다.

병사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쥴리언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병사들이 환상을 본 건 아닐까? 너무 긴박한 상황에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도 했다.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쥴리언은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문수르를 의심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오히려 문수르의 위용이 그리 대단하다면 반길 일이다. 지금은 문수르의 도움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니까.

“문수르 경, 몸이 좋지 않음은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이 시급하기에 말씀드리겠소. 당장 왕도로 떠나야 하오.”

쥴리언의 말에 문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가 좋든 싫든 왕도로 떠나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문수르와 쥴리언이 합류했다.

빅토리안 공작이 왕도를 공격하기 나흘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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