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57화. 왕도 집결.>
1.
왕도의 위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아니, 오히려 왕도 안에 있는 인간들은 왕도의 위엄과 웅장함을 잘 모르고 있다.
거대하니까!
인간 따위가 가까이서 왕도의 위엄을 느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멀리 떨어져서, 보다 넓은 시야로 왕도를 바라볼 때만이 왕도의 진정한 위엄을 느낄 수 있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단단하지만, 아름답다.
겉보기에는 그저 화려하게만 느껴지지만, 그 안을 잘 파고 들어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실용성이 숨어져 있다.
무엇보다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성벽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해자, 그리고 그 넓이를 예측할 수 없는 성벽의 두께는 적으로 하여금 작전보다는 탄식을 내뱉게 만든다.
“흥!”
그 왕도를 바라보는 빅토리안 공작의 눈빛은 증오 그리고 증오와 비슷한 어떠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앞의 왕도가 자신의 것이 될 뻔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의 파렴치한 개입이 없었다면, 콩탄 왕국의 왕도는 빅토리안 공작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오롯하게 왕국만을 위한 왕도로 남았을 것이다.
“필로스, 빌어먹을 자.”
필로스 왕.
그는 왕위에, 저 찬란한 왕도의 주인이 되는 대가로 페스로 제국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주었다.
돈을 주었고, 권력을 주었다.
하지만 개중에서 가장 뼈아픈 건 다름 아니라 자긍심이었다.
콩탄 왕국은 페스로 제국과 국경을 마주했음에도 오랜 세월 그 정통을 유지했던 나라였다.
그 무시무시한 페스로 제국의 군대와 무차별적인 전쟁으로 영토를 넓히던 제국의 역대 황제들로부터 왕국을 지켜냈다.
자긍심이 없을 수가 없다.
그 엄청난 페스로 제국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명예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필로스 왕이 페스로 제국의 힘을 빌어 왕위에 오르면서 그 자긍심은 시궁창에 빠졌다.
그뿐인가?
콩탄 왕국의 모든 이들이 제국의 속국민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명예가 사라진 것도 뼈아픈데 불명예스러운 굴레까지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용서할 수 없다.
“그래, 내가 바꿀 것이다.”
빅토리안 공작은 그런 콩탄 왕국의 현실을 바꿀 생각이었다.
왕위를 찬탈할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일주일 내에 왕도를 함락시킬 자신이 있다. 이미 그가 가지고 온 기가스의 숫자만 30대가 넘어간다. 그 중에서 2배 급 기가스가 20대가 넘는다. 콩탄 왕국이 보유한 2대의 2.5배 급 기가스 중 한 대도 가져왔다.
그뿐인가?
기가스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몬스터 데스나이트 100여기가 왕도로 집결 중이다. 이미 40여 기의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도착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다크 나이트 부대도 있다.
카라카크가 보낸 다크 나이트도 있지만, 빅토리안 공작이 직접 만들어낸 다크 나이트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빅토리안 공작의 기사들은 모두 흑마법을 통해 개조를 받은 이들이었다.
오러 나이트임과 동시에 강력한 신체 능력, 그리고 흑마력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보통 기가스 파일럿들과는 능력이나, 체력적으로나 궤를 달리하는 철인들이다.
모든 게 완벽하다.
가뜩이나 몸을 웅크린 왕도다. 그 어떤 추가적 전력도 없는 상황이다.
다크 나이트로 요인들을 암살한 뒤에 곧바로 전력을 투입하면 제 아무리 대단한 왕도의 성벽이라고 해도 일주일 만에 함락시킬 수 있다.
아니!
일주일도 필요한다.
삼일이면 된다.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삼일이 걸리고, 왕위를 바꾸는데 하루가 걸릴 것이다.
남은 삼일 동안은 정리만 하면 된다.
페스로 제국으로 하여금 개입할 수 없도록 모든 증거를 없애는 정리 말이다.
흑마법의 흔적은 지워야 한다.
“하하하!”
빅토리안 공작은 단순하지만 완벽한 자신의 계획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빅토리안 공작, 그가 왕도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2.
제이머스 후작은 기사들을 보았다.
기사들은 억지로 미소를 짓고,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지치겠지.’
지금 전속력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것도 기가스를 가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전투보다는 단순히 이동하는 게 체력적인 소모가 덜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도 힘든 건 똑같다. 더 힘드냐, 덜 힘드냐,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사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막상 왕도에 도착한 이후 체력과 컨디션 문제로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것이다.
“힘든가?”
그나마 제이머스 후작은 오러 마스터니까 문제없이 버틸 수 있는 거다.
“아, 아닙니다.”
제이머스 후작의 물음에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기사들에게 제이머스 후작은 주군임과 동시에 우상이었다. 하늘 위의 태양 같은 존재였다. 그런 제이머스 후작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더군다나 지금 사안이 굉장히 중대하다.
체력적으로 지친 걸 가지고 징징, 짜는 소리를 하는 자는 기사 작위를 버려야 할 것이다.
“기가스의 마나 동력 상태는 어떠한가?”
“대부분…… 70퍼센트 대일 겁니다.”
“충전하지 않으면 힘들겠군.”
“왕도까지 거리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한 번쯤은 최소 80퍼센트 대까지 차기를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또한 기가스의 마나 동력 충전 상태도 중요하다. 50퍼센트 이하가 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진다. 마나 동력 상태를 적정 수준을 유지한 채 이동해야 한다.
악재들 뿐이다.
‘이 시간에도 빅토리안 공작은 왕도에 한 발자국식 나아갈 터.’
제이머스 후작은 속이 탔다.
설마 이런 상황이 나올 줄은 몰랐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은 어떠한가?”
“조금 뒤쳐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결사대에 합류한 이들.
쿠틀러 백작이나 불스 백작들, 그들 역시 열심히 제이머스 후작 뒤를 쫓아오는 중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많이 지쳐 있었다.
제이머스 후작은 고개를 숙였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제이머스 후작의 머리에는 그 어떤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3.
쿠틀러 백작령.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공격 이후 폐허가 되어버린 그 땅 위에 썩은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그 위로!
썩은 시체들 위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태양에 노출된 썩은 시체들이 고약한 냄새를 내고 썩은 물이 되기 시작했다. 갑옷조차 썩어 녹은 물이 되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시체들이었다.
그 강력하기 그지없던 놈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고, 태양 빛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시체를 본래의 모습으로…… 썩어문드러져야 했던 형태로 되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 데스나이트들을 전부 처치했던 드래곤 나이트는 그 중심에, 쿠틀러 백작령의 중심에 오롯하게 서있었다.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마치 전설 속…… 아니, 신화 속의 신(神)이 존재한다면 지금 드래곤 파이터의 모습일 것이다.
“으윽……!”
그런 드래곤 파이터의 가슴부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문수르다.
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운 문수르, 그런 문수르는 기뻐하기는 커녕 심장을 부여잡은 채 드래곤 파이터에서 추락하듯 떨어졌다.
쿵!
문수르의 몸이 바닥 위에 떨어지며 거친 소리를 냈다. 절벽에서 떨어져도 온갖 수단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문수르가 고작 드래곤 파이터의 가슴부에서 떨어져 추락한 것이다.
착지도 못했다.
문수르는 그냥 몸뚱이 그대로 추락했다.
“으으…….”
신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추락에 의한 고통 때문에 나오는 신음은 아니었다.
‘심장이…….’
가슴을 움켜 쥔 문수르.
그의 심장은 지금 폭발할 것만 같았다.
- 심박 수가 정상치를 벗어났습니다. 당장 조치가 필요합니다.
로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문수르는 들리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고막 안쪽에서 울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 때문이었다.
드래곤 파티어의 마나 동력과 문수르의 오러가 공명한 이후, 문수르는 내부에서 폭발하듯 솟아오른 힘을 소모하기 위해 힘을 내보냈다. 그 힘으로 데스나이트들을 시체로 되돌렸다.
그런데!
모든 데스나이트를 부셔도 힘은 여전했다.
MX시스템 때문이었다.
MX시스템은 무한에 가까운 마나 동력을 만들어내는 어스 월드 궁극의 장치였다.
소모해도 다시금 힘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 상황에서 문수르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MX시스템의 가동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한 번 멈춘 MX시스템이 다시 가동을 시작하고, 마나 동력을 공급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당장 왕도로 떠나 계속해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 문수르에게 그 공백은 너무나도 뼈아픈 공백이다. 혹여 드래곤 파이터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적을 만난다면? 드래곤 파이터가 없는 문수르는 기가스 한 대 조차 이기지 못한다.
결국 문수르가 택한 건 두 번째 방법이었다.
강제로 드래곤 파이터에서 나오는 것이다. 잘 돌아가던 기계의 코드를 갑작스레 빼는 것이다.
물론 그건 절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잘 작동하던 기계의 전원공급을 갑자기 중단시키면 기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같은 경우는 기계가 아니라 문수르의 몸이다. 문제가 생긴다면…… 목숨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문수르의 몸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힘이…….’
몸에 남아있는 힘은 오히려 갈 길을 잃은 듯 더 미친 듯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드래곤 파이터의 마나 동력과 문수르의 오러가 공명할 때에는 마나 동력의 힘 역시 문수르의 몸에 무리 없이 흡수됐다. 하지만 갑자기 연결을 끊자, 마나 동력의 힘은 오히려 문수르의 몸 내부에서 반발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아군이 적으로 변한 것이다.
그 힘이 무차별적으로 문수르의 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터질 것 같았다.
실제로 몸의 핏줄 몇 개는 터져버렸다. 문수르의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두 눈은 붉게 출열되어 마치 붉은 눈을 가진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러다가 만약 뇌에 문제가 생긴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 순간 문수르는 답을 내놓았다.
혹시 몰라 가지고 다니는 작은 단검을 꺼냈다.
“로이드!”
그리고 로이드를 불렀다.
“지금부터…….”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문수르는 마지막 정신력을 쥐어짜내, 로이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내 단전을 가를 거야.”
- 주인님!
“그 다음은…….”
그 순간 문수르가 단검으로 제 배꼽 아래를 찔렀다.
푹!
단검이 사정없이 살덩이를 찢고 그 안에, 깊숙한 곳에 위치한 단전마저 찔렀다.
오러를 가득 머금고 있던 단전에 상처가 났다.
그러자 문수르의 뱃속 아래로 오러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무색 투명, 마치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문수르의 상처 틈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붉게 터질 것 같았던 문수르의 전신이 오히러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컥!”
갑작스레 오러가 빠져나가자, 문수르는 결국 쇼크를 받았다.
이윽고 문수르가 자리에 쓰러졌다.
그렇게 문수르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