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8.
슈페언 백작.
대륙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다.
페스로 제국 최고의 기사!
황제의 총애를 받는 기사!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뜨는 최강의 기사!
그는 뜻을 이루기 위해 검을 든 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자였다.
또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이기도 했다.
페스로 제국, 그 거대한 제국에서도 슈페언 백작의 권력과 발언권은 엄청난 것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게 괜한 것이 아니다. 황제는 슈페언 백작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3배 급 기가스다. 3세대 기가스로도 불리는 이 기가스를 황제는 슈페언 백작에게 줘버렸다.
빌려준 게 아니다.
3세대 기가스는 페스로 제국이 제국의 돈과 제국의 마법사들을 이용해 만든 제국의 작품! 말 그대로 황제의 소유다. 그 어떤 영주도 개인적인 역량으로 3세대 기가스를 제조하지 못한다.
페스로 제국의 황제는 이런 3세대 기가스를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에게 빌려준다.
그러나 슈페언 백작에게는 그냥 줘버렸다.
이제 황제조차 슈페언 백작에게 다시 3배 급 기가스를 달라고 할 수도 없다. 혹여 슈페언 백작이 3배 급 기가스를 다른 나라에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판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슈페언 백작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했고 또한 모든 일에서 승승장구했다.
콩탄 왕국에 필로스 왕을 앉힌 건 일생의 작품이었다.
그 이후 콩탄 왕국은 슈페언 백작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왕이 백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매년 슈페언 백작의 입맛에 맞는 선물을 잔뜩 보냈다.
콩탄 왕국을 페스로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 건 슈페언 백작의 가장 큰 공이기도 했다.
그 일로 인해 슈페언 백작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그런 슈페언 백작의 작품이 무너지고 있었다.
왕도가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암살자가 습격을 했다고 한다.
“빌어먹을!”
심지어 필로스 왕이 암살자의 습격을 당해 지금 은밀한 곳으로 피신한 상황이라고 한다.
왕도는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필로스 왕은 슈페언 백작에게 특별히 만든 마법 수정구를 이용해 연락을 보냈다.
- 빅토리안 공작의 반란.
짧은 내용이었지만 슈페언 백작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감히! 빅토리안 공작 네놈이!”
사실 슈페언 백작도 최근 빅토리안 공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슈페언 백작은 원래부터 빅토리안 공작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오래 전, 슈페언 백작이 필로스 삼왕자를 지원하기 전, 빅토리안 공작은 카스트로 왕세자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빅토리안 공작은 태양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자였다. 필로스 왕의 왕위를 노릴 수도 있는 자였다. 예의주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조용했다.
더군다나 시간이 흐를수록 빅토리안 공작은 나이를 먹어갔다. 솔직히 지금 나이라면 일선에서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다. 자식에게 공작의 작위와 가문을 넘겨준다고 해도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관심을 조금씩 줄였다.
제 아무리 무시무시한 호랑이도 이빨이 빠지면 죽만 먹게 되는 법이다.
조만간 나이를 더 처먹으면 노망이 들 지도 모른다.
그런데!
관심을 줄인 틈을 노려 빅토리안 공작이 기어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슈페언 백작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가겠다!”
그는 직접 기가스를 이끌고 콩탄 왕국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직접 빅토리안 공작의 목을 잘라 성벽 위에 걸어버린 속셈이었다.
기사들은 그런 슈페언 백작을 막지 않았다.
그는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다.
슈페언 백작은 곧바로 군대를 모았다.
그리고 출진 준비를 다 끝냈을 무렵!
슈페언 백작가에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다름 아니라 아히만트 백작이었다.
9.
기가스가 등장한지도 꽤 됐다. 1세대 기가스가 나온 이후 어느새 3세대 기가스까지 등장했다.
기가스는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한다.
“기가스는 나날히 발전하지만, 그 기가스를 다루는 파일럿의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기가스 파일럿!
과연 그들은 기가스의 발전만큼 발전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기가스 파일럿은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고개를 숙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쓴소리를 할 것이다.
발전한 게 없다고!
맞는 말이다.
기가스 파일럿들은 1세대 기가스가 있던 시절이나 3세대 기가스가 있던 시절이나 바뀐 게 없다.
문수르는 그게 언제나 의문이었다.
케르빈 월드에는 기가스가 꽤나 발전했음에도 기가스 파일럿들을 위한 교본이나, 교육 체계는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기가스를 이용한 검술조차 없었다. 기가스의 움직임이 둔하다고? 둔하면 둔한 대로 검술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언히트가 기존의 전술 중 일부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전력이 엄청나게 강해진 것을 보자.
기가스 파일럿들의 생각이 조금만 바뀌어도 기가스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끄집어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문수르는 그런 기가스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새롭게 끄집어내려고 했었다.
‘기가스가 가진 그 강력한 마나를 자유자재로 쓸 수는 없을까?’
기가스를 타고 와이어를 조작하다보면 저절로 느끼게 된다.
와이어를 통해서 기가스가 사용하는 강력한 마나 동력의 힘이 말이다.
그리고 좀 더 수준이 높아지면, 기가스가 사용하는 마나 동력과 파일럿이 사용하는 오러가 어느 순간 접촉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문수르는 그때부터 시도해봤다.
기가스의 마나 동력과 자신의 오러를 연결해보고자 한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실패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무언가 더 긴박한 상황이 되면 가능할 것 같았다.
특히 전투가 계속될수록, 전투가 격렬해질수록 그 감이란 것이 더 구체화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지금!
‘왔다!’
문수르는 느꼈다.
드래곤 파이터의 그 강대한 마나 동력과 자신의 오러가 공명하는 것을 말이다.
‘이거다.’
- 주인님, 갑작스레 심박 수가 상승했습니다. 위험합니다.
“로이드, 괜찮아!”
그 순간 문수르의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드래곤 파이터의 엄청난 마나 동력이 문수르의 몸에 들어오자, 문수르의 몸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로이드가 위험을 알렸다.
- 주인님 정말 위험합니다!
재차 알렸다.
“로이드!”
그러나 문수르는 로이드의 개입을 막았다.
문수르는 지금 황홀경을 느끼고 있었다. 엄청난 마나 동력이 몸 안으로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고 있었다. 세포는 지금 더 많은 힘을, 피를 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심장은 더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심장이 내뿜는 힘을 몸이 버티지 못하겠지만, 세포가 활성화된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
그 순간!
드래곤 파이터의 창에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단순히 오러가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그건 분명한 오러 웨폰!
오러 마스터의 비기였다.
문수르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와이어를 잡아당겼다. 드래곤 파이터의 관절을 움직였다. 관절이 움직이자 몸이 움직였다. 팔이 움직였다. 창이 움직였다.
휘릭!
창은 옅은 소리를 남기며 몬스터 데스나이트를 갈랐다.
서걱!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창을 휘두를 때마다 들리는 건 거친 충돌음이었다. 데스나이트의 방어구들은 쉽게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데스나이트의 방어구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이제까지 단단한 몸뚱이를 자랑했던 데스나이트의 몸뚱이도 같이 잘려나갔다.
스르르!
잘려나간 데스나이트의 몸뚱이가 절단면을 따라 미끄러지며 이내 바닥이 떨어졌다.
“후우!”
그 광경을 본 문수르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반대로 드래곤 파이터의 창에는 푸르스름한 오러가 맺힌 채 공기를 잘라내고 있었다.
- ……계획을 수정합니다. 계산값을 변형합니다. 다시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수정된 계획 도출까지 1분 42초 남았습니다.
로이드는 그런 문수르의 능력을 보고 모든 걸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지금 문수르가 보여준 능력은 로이드의 예상된 범주 내에는 절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로이드도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문수르가 대단한 일들을 한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이 로이드의 상정 범위 내의 일이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문수르는 그 완벽에 가까운 로이드의 예상마저 뛰어넘은 것이다.
“하하하!”
문수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하하…….”
그러나 어느 순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심장은 여전히 두근두근거리고 있었다. 온몸에서는 힘이 넘치고 있다. 힘이 너무 넘쳐서…… 힘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문수르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입에서는 계속 웃음이 흘러나왔다. 문수르는 더 이상 웃기 싫음에도 말이다.
문수르는 자각했다.
‘제, 젠장!’
위험하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주화입마! 그것과 비슷한 상황에 빠진 것 같았다.
이미 비슷한 경험은 해봤다.
탈라트 부족을 만나러 가는 길, 그 과정에서 오우거로부터 히스티를 구했다.
그러다가 무리를 한 덕분에 주화입마 비슷한 경우에 빠졌다. 다행이 탈라트 부족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동시에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됐지만.
그러나 그때 행운이 이번에도 반복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힘을 써야 해!’
걷잡을 수 없다.
지금 드래곤 파이터를 움직이게 만드는 강대한 마나 동력이 문수르의 뭄에 들어오고 있었다.
문수르는 어떻게든 이 힘을 써야 했다.
몸이 터지기 전에 힘을 발산해야 했다.
“로이드, 당장 전투!”
- 알겠습니다.
“드래곤 파이터가 파손되도 좋아! 어떻게든 전투를 해! 보다 치열하게! 최대한 마나 동력을 소모하는 방법으로!”
로이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로이드는 빠르게 계산을 했고, 단숨에 방법을 도출했다. 문수르에게 그 방법을 알려줬다.
멀티 글라스 너머로 해야 할 일이 보였다.
문수르가 움직였다.
쿠웅!
드래곤 파이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래곤 파이터의 움직임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으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바뀌었다.
오러를 휘감은 드래곤 파이터의 창은 이제까지의 창과 비교자체를 불허했다.
쉬익!
공기를 가르고.
서걱!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몸뚱이로 갈랐다.
한 번에 한 기!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단단한 갑옷도, 무시무시한 몸뚱이도 드래곤 파이터의 창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물론 몬스터 데스나이트들도 그냥 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날아오는 창을 향해 검을 움직였다.
카앙!
그들의 검은 용케도 문수르의 창을 막아냈다. 단순한 검이 아니었다.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근원을 이루는 악마의 마력이, 흑마법의 마력이 검에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뿐이었다.
드래곤 파이터의 창이 다시금 신묘하게 궤적을 그렸고, 몬스터 데스나이트가 허겁지겁 검을 들어 드래곤 파이터의 창을 막아냈을 때.
콰직!
검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상황에서 기세를 잃지 않은 창이 단숨에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반으로 갈랐다.
“크윽!”
그 순간 문수르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이겼다.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있다.
그러나 문수르의 상황은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